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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화요일


알려지지않은주시자


 


0. 살다가…


 


네이버에서 이런 페이지를 발견했다. 처음엔 좀 화가 났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게 흥분 잘하는 성격도 아닌지라 글을 다 읽을 즈음엔 오히려 좀 착잡해 졌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들 살까.


 


딴지처럼 그야말로 음악 전문가가 넘쳐나시는 공간에서 내가 굳이 이 글을 쓰려는 이유는, 그들이 써먹은 ‘인디’라는 타이틀이 어이없게도 ‘1년간 일본에서 유학했어요’라는 경험담이었기 때문이다(참고로 말씀 드리는데, 표절 이야기는 안 나온다. 난 그 분야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참… 이젠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1. 네 명의 잘 생긴 친구들
 
악감정 없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 열심히 노력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바둥대는 건 죄가 아니다.



2. 소속사


 


좋은 감정 없다. 천천히 이야기 해 보자.



일단 네이버의 저 글을 통해 뽑아낼 수 있는 견적은 이런 게 된다.


 


(1) 외모도 먹힐 만 하고 기타 코드 좀 아는 아해들 네 명으로 밴드를 만들자.
(2) 그냥 만들어선 먹힐 것 같지 않다. 그래, 롹이 뭐냐. 헝그리 정신 아니냐. 고생 좀 시켜서 ‘우리도 눈물 젖은 빵 먹으면서 음악 좀 했어요’라고 액자 하나 만들자.
(3) 근데 이걸 오래 굴리면 투자한 돈 뽑기 힘들고, 또 어차피 그림만 만드는 건데 길게 고생시킬 것 있나. 한 1년 구르다 오라고 하지 뭐.
(4) 어라, 드라마 촬영 스케쥴 잡혔네. 뭐해, 귀국해서 드라마 찍으라 그래야지.
(5) 리더이자 보컬이자 트윈기타 중의 한 대가 빠졌는데 어떻게 인디생활 계속하냐고? 야, 우리가 언제 진짜 인디 시킬려고 보냈냐 ㅡㅡ;. 1년간 일본에서 고생했다잖아. 멤버가 (부모님 병환이나 생계유지가 아니라, 드라마 찍으러) 한 명 빠진 사이에 나머지 멤버들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한 거야. 알간?



이게 아니면 아마 내가 난독증인 거겠지? 뭐, 평소부터 그게 좀 의심이 되긴 했어.


 




 


3. 왜 ‘인디’를 들먹이나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왜 하필 ‘인디’냐는 거다. 아이돌 밴드면 아이돌 밴드답게 기획사에서 시키는 대로 연습해서 누가 만들어준 곡을 그것도 라이브를 하는 게 아니라 라이브로 연주하는 척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풍토가 한국에는 이미 충분히 조성되어 있지 않나. 그러다 그냥 영화 찍고 드라마 찍고 살 수 있었을 텐데.


 


이게 좋고 나쁘고 하는 논쟁은 솔직히 무의미 하다. 전 국민이 아이돌 밴드 보기를 돌같이 한다면 그 시장 자체가 예전에 없어졌겠지. 그게 돈이 된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거고, 수요가 있는 시장을 활용해서 사업가가 돈을 버는 것은 권장할 만한 미덕이다. 싫은 사람은 안 들으면 된다.


 


그런데 그 루트도 이젠 사람들이 질려 하니까 ‘우리도 고생했다’라는 일종의 ‘졸업장’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학력 세탁하듯 부랴부랴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겠지. 아예 군데군데 ‘유학’이라고 쓰여 있더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밥 사먹을 일본어 실력도 안 되는 친구들이 고작 몇 달 길거리에서 연주하다가 연말 즈음엔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는 건 내가 영국에 가서 벌판에 차를 달리다 보니 바위에 검이 꽂혀 있었는데 뽑아보니 그게 엑스컬리버 였다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일본의 클럽을 신성시 하려는 게 아니라, 이곳 클럽 신의 ‘치열한 경쟁’을 이야기하는 거다. 여기선 정말 실력 있는 친구들도 밴드 하면서 틈틈이 알바도 해야 한다. 클럽 오디션을 보고도 따로 ‘클럽 사용료’를 자신들이 지불하고 연주를 하는 식이니까. 근데 어떻게 슈퍼에서 도시락도 못 사는 아해들이 <자력으로> 클럽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사용료를 교섭해서 돈 주고 스케쥴 잡고 현지 스텝이랑 장비 세팅하고 리허설 해서 연주를… 하나. 생각해 보니 엑스컬리버 쪽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연말에 영국엘 한 번 가 볼까.


 



 


기본적인 추론이 가능한 중학생 이상의 독자제위라면 ‘아, 소속사 스텝이 따라가서 다 세팅해 줬구나. 클럽에서 연주하는 사진도 찍어주고’라고 생각하시는 게 상식이지 않을까.


 


그게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유학>이라자너. 소속사에서 싹수 있는 아해들 뒷바라지 해 주는 게 뭐가 나쁜 일 인가. 일본에서 이런 저런 경험도 시켜 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다. 그렇게 클럽에서 연주하다 보면 실력도 늘겠지.



그런데 이게 왜 ‘우리도 고생했어요’로 둔갑을 해야 하냐는 거다. 그냥 소속사가 지원해 줘서 일본에서 이런 저런 신기한 경험도 좀 했고 그 사이 우리 밴드 리더는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그 드라마에 출연도 했어요. 부럽죠?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가 진행되자 미국으로 건너간 게 ‘정치를 더 잘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둔갑하는 시절이니 우리도 벤치마킹 해 보겠다 이거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살짝 답이 보이긴 한다. ‘우리도 고생했어요’라는 타이틀이 반드시 필요했다면, 시장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돈이 되니까 이런 일을 했겠지(다시 한 번 강조한다. 사업자가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싫으면 그 일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 되도록 소비자가 변하면 된다). 그럼 시장은, 그러니까 소비자들은 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밴드’를 원했을까.



… 사실은 그게 바람직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4. 악인은 없다


 


좀 멀리 중세 역사를 뒤져보면, 왕위를 찬탈한 자 일수록 스스로의 정통성을 이야기 한다. 좀 가까이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돌아보면, 서민들에게 들어갈 예산을 깍아 낸 정당일수록 입만 떼면 서민 이야기다. 켕기는 게 있는 사람들일수록 겉모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오히려 ‘전 왕조는 별 볼일 없어서 내가 셔터 내리라고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혁명가나, ‘없는 것들은 그냥 없이 살아라’라고 대 놓고 이야기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개인적인 찬반은 둘째 치고라도 그 용기는 가상히 여겨 줄 수 있다. ‘난 악인이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꽤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선악 논쟁을 떠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마일드한 문제로 내려와도, 이야기는 비슷하다.



내가 이 ‘인디’밴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황당했던 건, 그래도 ‘돈에 얽메이지 않고 열심히 음악만 하는 청년들이 사실은 존중 받아야 한다’라는 걸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알고 다 알고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을 재확인 했기 때문이다. 막말로, 인디가 졸업장이 되고 타이틀이 되니 그걸 애써 위조하려 든 거다. 음악 소비자들이 ‘인디음악? 그 딴 거 촌스러워’라고 오히려 경멸하는 풍조가 있었다면 저렇게 현해탄을 넘나드는 생 쑈를 해서 인디 타이틀을 붙이려 하지 않았겠지. 미국 박사를 경멸하는 풍조가 있는 나라에서 누가 미국으로 비싼 학비 내서 유학 가려 하겠나.


 


아이돌 밴드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마음속 한 구석엔 ‘진짜 밴드의 모습이 이런 건 아닐 텐데’ 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근데 진짜 신기한 건, 그렇게 ‘돈에 얽메이지 않고 열심히 음악 하는 청년들’이 우리나라엔 진짜 넘쳐난다는 거다. 근데 왜 정작 그들은 캐무시 해 놓고 이제 와서 진짜 순수하고 맛있는 버터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면서 마가린 통에 숟가락을 쑤셔 넣느냐는 거다.


 


이건 정말 글 쓰는 내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사회적 병리현상처럼 느껴졌다. 살짝 이상하지 않나?


 


(갑자기 정치 이야기 해서 미안하다만) 가카께서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실 때, 한편 안쓰럽게도 했지만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불기둥님 말씀처럼 누구도 그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건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댁들은 돈이 필요해서 날 뽑았지? 이제 댁들에게 돈을 보여주마. 난 경영자니까’하는 편이 보는 쪽도 훨씬 속 편했을 것 같다. 그런데 깨끗한 정치가 이미지를 추구했다는 건, 사실 정치가는 깨끗해야 한다는 걸 알기는 알았기 때문이겠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아이돌 밴드에게 많은 걸 바라는 나라도 아니지 않나. 그냥 우린 잘 생겼고 몸도 좋고 연기도 잘하는 밴드라고(이것은 충분히, 매우 대단한 일이다. 난 이것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이들보다 잘난 것이 없다) 이야기 해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음악적 고뇌와 젊은 시절 고생’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려 했을까. 그건, 그런 식으로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존중 받는 것이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란 걸 그들도 알았기 때문이겠지.


 


슬슬 마무리를 지어보자.



5. 음악을 듣자


 


대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다.


 


깨끗한 정치인이 바람직하다는 걸 안다면, 선거 때 깨끗한 정치인을 뽑으면 된다.


 


진지하게 음악 하는 사람들의 음악이 바람직하다는 걸 안다면, 좀 사서 듣자. 돈을 내고 듣자는 말이다. 클럽도 좀 가고. 음반도 좀 사고. 누군 땅 파서 음악 하는 줄 아시는가.


 



 


인디 밴드를 ‘사칭’했다는 건 인디 밴드란 것이 ‘사칭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이니, 아직 희망은 있는 거라 애써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의 음악이 사실 참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들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럼 그들의 소중한 음악을 듣기 위해 돈과 시간을 한 번 써 보자. 그러다 보면 진짜 좋은 음악을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어느 골목길 클럽에서 라이브를 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