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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2월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COVID-19 의 판데믹(Pandemic) 선언 후 8개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감염자 수는 늘어만 가고 있는데요. 특히, 영국은 2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연일 2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 전국적인 락다운을 실시하며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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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난리가 나도 여러 번은 났을 법한 통계입니다만, 영국은 이상하리만치 별일 없습니다. 간헐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일탈 현상이 눈에 띄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감염자 수만 보면 도대체 이 정부가 방역을 위하여 일은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서구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68혁명 정신

 

1968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던 혁명. 1968년도에 시작됐다 하여 68혁명이라 명명된 이 혁명은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이었지만, 지구촌의 큰 축제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이라 자유는 커녕 철저한 국가 차원의 감시가 있었고, 언론도 엄격한 통제를 받던 시절이라 한반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죠. 

 

68혁명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을 비롯한 북미, 남미 그리고 아시아 일부 지역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축제라 표현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유럽은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고 20세기형 민주주의 국가 형태를 재건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특히 왕권을 무너뜨리고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프랑스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적 사건이 있었음에도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회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던 국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계급 문화도 남아있었죠.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청년들은 이러한 올드패션에 저항했고, 그렇게 시작된 68혁명은 또 한 번 프랑스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온 유럽에 막대한 영향 미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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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의 68혁명 시위

 

이때,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외쳤던 것이 바로,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였습니다. 그렇게 기존에 갖추고 있던 체제에 저항하고, 자기 결정권과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이들의 외침은 유럽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아시아와 중동까지 이르렀습니다. 

 

“인간 스스로에게 주어진 권한과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도 이를 침해하고 간섭할 수 없다.” 

 

68혁명의 이러한 아젠다는 당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혁명은 지금까지도 유럽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제한을 두는 일이 없을 뿐더러 국민들도 쉽게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면 부여받게 되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유럽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런 기조는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집단주의 vs 개인주의

 

이러한 혁명 탓이었을까요, 아님 DNA가 다른 걸까요?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인간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회에서, 영국은 개인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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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지도 / 출처-<Eupedia>

 

개인주의란 무엇일까요? 흔히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많이 혼동합니다만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개인주의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목표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변의 환경이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것을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주의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현재 영국이 겪고 있는 방역의 실패에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개인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보기보다는, 각 개인이 타인과는 다른, 독립된 구성원으로 보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집단의 목표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목표가 중요합니다. 국가가 방역에 대해 목표를 제시한다 해도, 이를 따르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 방역 정책이 큰 효력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영국의 의료총책임자(Chief Medical Officer)인 ‘크리스 위티’(Professor Chris Whitty) 교수는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세울 때,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감염자의 동선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도 최초 방역 대책을 세울 때, 개인의 사생활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쳐왔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Trace’(추적)하고 ‘Test’(시험)해서, ‘Treat’(치료)하는 것, 즉, 3T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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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의료총책임자 크리스 위티(Chris Whitty) 교수

 

반면,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집단주의적 사회로 알려져 있는 만큼, 개인보다는 집단의 목표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방역을 하는 데 있어 유리했습니다. 집단주의는 개인주의와 반대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타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존재로 여기는 것을 말하는데요. 

 

대학을 잘 가야 하고, 좋은 차를 타야 하고, 다이어트를 통해 몸매를 가꾸는 일에 정성을 쏟는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건강과 복지, 복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의식해서라는 여느 설문조사의 결과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집단성이 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영국의 경우는 우리와는 사뭇 상반된 모습들이 많습니다. 가령, 대학진학의 경우, 영국 내 대학진학률은 30-40% 정도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입니다.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연구직 혹은 기타 전문직 등 대학 과정을 필수로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 훈련을 받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브랜드보다는 가성비를 많이 따지고, 중고차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합니다. 학교 네임밸류에 따라 눈치를 보거나 남과 비교하는 일 등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덜 신경 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집단주의적 사회는 집단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상하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가 있지만,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 발생했을 시, 집단적으로 대처를 잘하기에 용이합니다. 그 일이 바로 내 일이니까요.  

 

개인주의는 개인이 특별한 존재라 여기는 만큼, 계층적 차이나 신분보다는 평등을 우선적인 가치로 여긴다는 장점은 있지만, 집단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가 될 수 없는 만큼, 코로나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 있을 시,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기가 어렵습니다. 

 

 

토론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매주 수요일이면 영국의 총리는 PMQs(Prime Minister’s Questions)라는 시간을 통해, 한 주간의 현안에 대해 야당과 열띤 토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영국은 토론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열띤 논쟁을 좋아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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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정책 하나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가령, 최저임금제를 법으로 제정할 때도 조사 기간만 꼬박 2년이 소요됐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에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쟁 중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해도, 과학적 증거와 통계를 바탕으로 반대를 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여전히 꽤 존재합니다. 이들의 주장을 믿고 길거리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보다 착용하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많은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게다가 마스크라는 것이 굉장히 답답하기도 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하니 많은 이들이 마스크 착용을 원치 않죠. 

 

이렇게 토론을 좋아하고, 개인의 의견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했던 방역 수칙 결정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방역 수칙에 대해 신속하게 결정 내리고, 대처하질 못했습니다. 

 

토론의 핵심은 논거이고, 이는 정확한 증거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런데 겪어보지 않는 유행병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존재할 리 만무하며, 있다 해도 발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가변성이 다분한 유행병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정확할까요? 

 

때문에 콩글리쉬로는 ‘골든타임’(Golden Time), 정확한 표현은 ‘골든아워’라 불리는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간’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초반, 그렇게 갈팡질팡하던 사이 감염자 수는 급격하게 상승했고, 현재 영국은 누적 확진자 수가 약 120만 명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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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직접 촬영한 사진. 마스크를 착용하라 해도, 착용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코로나 대처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 국면 속에서 우리는 독보적으로 잘 대처하며 세계적 모범국가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나’ 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여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국민들과 특히, 질병관리청, 의료진, 공무원들의 인내와 노고 덕분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정부의 투명성과 일관성 있는 정책 운영은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반면, 영국은 방역에 실패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방역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의 권리와 자유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니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의 제재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물론, 도시를 봉쇄하고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더 침해하는 조치가 아니냐 얘기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거나 인적사항 등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으니 (영국인의 시선으로) 사생활 보호 측면에선 프라이버시가 존중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락다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정부는 락다운 기간 동안 강제적으로 영업을 중지해야만 하는 자영업자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보상금을 지원하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1차 락다운 때는 약 433조에 달하는 재정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우선 과제인 방역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뒤로 제대로 된 방역 조치에 줄줄이 실패하며, 세계가 경외하며 쳐다봤던 서구 유럽의 거대한 허물은 벗겨졌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안만 보고 그 나라에 대해 단정 지어 판단한다면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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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유튜브<대한민국청와대>

 

이제는 우리가 여러 부분에서 많이 성숙하고 발전하여 당당한 세계 선진국인 것은 맞지만, 각각의 나라마다 그들의 특성, 가치관, 더 발달된 사회 인프라 등에 따라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문제의 영역이 있습니다. 각 지역, 국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은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코로나라는 문제는 사회 인프라도 있지만, 의식적인 부분에서부터 우리가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다른 문제에서는 우리보다 서구 유럽이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많은 선진국들이 똥볼을 차고 있지만, 코로나 국면에서의 대처만을 보며 그들을 무시하고 얕잡아 본다면, 앞으로 그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세계 선진국으로 막대한 힘이 있고,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아프고 죽어 나가는 것도 제대로 대처 못 하면서, 다른 면이 좋아봤자 무슨 소용이냐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한가지 사안에 대한 자료만으로 그 나라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자료만을 갖고 하는 각 국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결국, 우리에게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코로나 국면입니다. 일단은 이 국면을 어떻게 잘 버티느냐가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국면에서 영국인들의 의식, 가치관은 불리하고, 그들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긴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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