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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민원'이다. 학부모 민원에 교사의 의욕과 사기가 꺾이고, 맘카페에서 형성된 여론과 민원이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학교가 '민원의 왕국'이란 자조도 흔하다. 나도 '민원'이란 단어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욕설을 주고받아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할 경우 타임아웃을 시행하겠다고 하자 한 학생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엄마들이 민원 넣으면요?"

 

민원을 주로 처리와 조정의 대상으로 여기던 내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달 사이의 작은 사건들 때문이다. 평생 처음으로 민원을 신청했다. 아니, 시작은 분명 '문의'였는데 문의가 '민원'이 되고, 문의를 반복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진상 민원인이 되어 있었다. 

 

지난 1월 연말정산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이다. 법외노조 기간 동안 납부한 조합비의 소득공제가 가능하니 경정청구를 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조합이 자세한 안내문과 영상을 배포했으나 일부 조합원들은 매뉴얼대로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다수 조합원들이 세무서에 문의한 결과 모두 '그냥 내방하라'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결국 세무서 직원들이 간단히 해결해 주더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방문이 용이한 시간과 준비사항을 알기 위해 관할 세무서에 미리 전화했다.

 

"아니요, 내방하지 마세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네? 다른 지역 조합원들은 다 내방하라고 해서 세무서에 가서 해결했다고 하던데요?"

 

"코로나 때문에 내방하는 걸 권하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신고서를 다운로드해서 소득신고를 하세요."

 

"제가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요. 세무서에 갈 테니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요, 오지 마세요. 저희가 해드릴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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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세무서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란에 민원을 신청했다. 민원은 국민신문고로 접수되었고 3일쯤 지나자 같은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해명과 설명은 없이 신분증을 가지고 방문하라고 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직원은 다음날 메시지를 보내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전히 언짢고 석연치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숨통을 쥐고 있는 기분도 좋지 않아 민원을 취하했다. 빠르고 정확한 해결이었다. 향후가 불투명하고 소통이 부재한 해결이기도 했다.

 

두 번째 사건은 내가 속한 노동조합인 전교조에 문의 글을 남기며 시작된다. 조직의 공식 결정사항에 대한 문의였는데 답변이 없었다. 예민한 사안인 줄은 알았지만, 정상적이고 공적인 절차를 거쳐 질문을 거듭해도 무응답이 계속되자 의문은 의혹이 되고, 신뢰와 인내심은 3주 만에 바닥이 났다. 결국 내가 공개적인 SNS에 격한 항의글을 쓴 끝에 겨우 답변을 받았다. 그 3주간 내가 받은 스트레스와 충격은 꽤 컸다. 문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분명 조합원이었는데, 어느 순간 민원인 그것도 진상을 떠는 민원인으로 내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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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진상 민원인들도 처음부터 진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 떠들썩했던 가수 바비킴의 기내 난동 사건도 알고 보면 발권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거듭된 착오와 실수라는 배경이 있었다. 어쩌면 이름 없는 진상들의 배후에도 상대측의 무사안일주의, 편의주의, 관료제 특유의 비밀주의와 책임 전가라는 그림자가 있었을지 모른다.      

 

民願. '민이 원한다'는 의미의 '민원'은 애초 더러운 뉘앙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조차 고객과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개념과 어휘를 남용하면서 '민원'은 그저 해결하고, 처리하고, 삭제하고, 지워야 할 기록이 되었다. 또 최근 많은 학교들이 경청해야 할 합리적 민원과 터무니없는 민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책임과 권위를 방기하며 민원에 휘둘리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즉 일부 신청인의 안하무인적 태도와 몰상식도 문제지만 이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과 민주적 소통 능력, 정치력, 조정 능력의 부재 역시 민원의 부정적 아우라를 짙어지게 한 주범이다.   

 

덧붙여, 질의자에서 민원인으로 내몰린 듯한 상황에서 들었던 생각들도 보태본다. 타인을 단순한 빌런,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자로 규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진상 민원인들 중 일부는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인물들일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어서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진상들이 코앞에 있어도 끝내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할 지점들이 있다. 타인의 고통과 요구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고 있는지, 상대를 대상화하고 있지 않은지, 당사자가 처한 상황의 특수성을 읽어냈는지, 단순한 감정 이입을 넘어 타인의 요구가 가진 의미를 파악해 연대하고 책임을 나누려 하는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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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그의 말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진상 떠는 민원인은 단순한 불만 종자이고 나는 복잡한 상황 속의 해결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대체로 이해를 갈구하는 복잡하게 나약한 사람들이다. 

 

 

편집부 주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는 초중고딩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으로서 교육인으로서 누구보다 학교에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교사의 시선이, 학교의 문제를 실체적으로 조명해볼 기회가 될 수 있지 있지 않을까.   

 

그 고민을 담은 필자의 책 몇 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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