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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

 

대한민국의 게이머 중에 '블리자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윷놀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불리던 <스타크래프트>의 제작사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로그아웃하면 갈 수 있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창조주이기도 하니까요. 1인칭 슈팅게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오버워치>도 빼놓을 수 없고, RPG게임에서 핵앤슬래쉬 장르를 정립시킨 <디아블로> 시리즈 역시 많은 게이머들의 수면시간을 줄이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디아블로>에 수면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확인되면서 수면제로 애용되고 있기도 합니다만. 

 

이렇듯 내놓는 게임마다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고, 재미가 보장되는 게임만 출시하는 블리자드. 이런 자신감은 블리자드의 홈페이지를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 퀄리티’라고 이야기하며, 게임의 품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죠. 

 

게이머들 역시 블리자드의 게임은 믿고 구입해도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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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블리자드 퀄리티'의 설명

그래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를 그 따위로…

 

 

표절인 듯 아닌 듯 애매하지만, 재미있으니 모든 것이 용서된다

 

지금 와서 블리자드가 '다른 회사의 게임을 표절했다'고 이야기하면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블리자드의 초기작들 대부분이 표절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1991년에 출시된 블리자드의 첫 작품 <RPM 레이싱>은 <슈퍼 오프 로드>(89년)를 비롯한 쿼터뷰 레이싱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았고, 이듬해인 92년 내놓은 <로스트 바이킹>은 3명의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조작한다는 점에서 <더 고블린스>(91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94년에 출시한 <블랙 쏜>은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스테이지 구성에서 <페르시아의 왕자>의 아류작임을 쉽게 알 수 있었죠. 블리자드의 첫번째 대히트작인 <워크래프트>역시, <듄2>가 만들어둔 RTS(Real Time Strategy,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공식을 따라간 작품이었습니다. 

 

블리자드는 표절로 성공한 회사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나열한 게임들이 얼핏 보면 타사의 게임을 흉내낸 것 같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게임성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로스트 바이킹>은 퍼즐 어드벤쳐였던 <더 고블린스>와 달리 액션성이 강조된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이었고, <블랙 쏜>은 총과 폭탄을 이용하는 방식이 <페르시아의 왕자>와는 결이 다른 게임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 역시 판타지 세계관과 발전된 UI(유저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며 <듄2>와의 차별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즉, 블리자드의 게임은 다른 게임을 단순하게 흉내내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컬러를 입히면서 더 큰 재미를 주는 방향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표절작이라고 비난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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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오리지널 게임, 오른쪽은 블리자드의 게임

플레이를 해보면 게임성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WOW>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10년 이상 세계 1위를 지켜오고 있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MMORPG이지만, <WOW>가 출시되기 전만 해도 기대반 걱정반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의 대히트작을 연달아 성공시킨 블리자드라고 해도, MMORPG는 한번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패키지 게임과 달리 온라인게임은 서버 운영이라든지, 종족 및 직업의 밸런스, 유료화에 대한 사업모델 등에서 많은 노하우가 필요한데, 과연 블리자드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이죠. 

 

처음 <WOW>가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에버퀘스트>를 비롯한 해외 인기 MMORPG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쪽이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에버퀘스트>의 이용자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 국산 RPG와는 다른 재미를 주는 <WOW>가 신선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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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은 에버퀘스트2, 아래쪽은 WOW

두 게임의 발매시기는 거의 동일하지만,

에버퀘스트1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WOW가 많은 면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블리자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리니지>, <바람의 나라>등의 성공을 바탕으로 양질의 국산 MMORPG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덕분에 서버관리나 운영에 대한 노하우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블리자드는 <WOW>의 국내 서비스를 위해 운영관리 및 유통을 맡아줄 업체를 선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하나의 기회로 생각한 국내 온라인 게임회사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내세우며 블리자드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한빛소프트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에 대한 국내유통을 담당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얻는 것을 지켜본 다른 게임 회사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최종적으로 블리자드는 국내 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WOW>를 운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블리자드와의 계약을 기대했던 게임회사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각 회사들의 핵심적인 노하우가 상당 부분 블리자드에게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블리자드가 애초부터 직접 운영하기로 결정해두었으면서 온라인 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 업체를 선정할 것처럼 꾸민 것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저 너머에…)

 

<WOW>도 발매 초기에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결국에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에버퀘스트>와 비슷하든 말든 게임 자체는 엄청나게 재미있으니까요.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확장팩의 추가를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재미를 제공한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단순히 다른 게임을 흉내내는 것을 넘어서, 여러 게임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흡수하고, 단점은 고쳐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 그것이 블리자드 게임의 특징입니다. 일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표절이라고 욕하기에는 원본과는 다른 부분이 많고, 원본보다 뛰어난 점 역시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장르의 창조, 유저를 생각하는 게임

 

블리자드의 작품이 항상 다른 작품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디아블로>만 보더라도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핵앤슬래쉬 액션RPG의 기준을 세웠으며, <오버워치> 역시 FPS(일인칭 슈팅 게임) 장르에 캐릭터별 스킬과 특성을 도입하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장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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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앤슬래쉬라는 새로운 액션RPG장르를 정립시킨 디아블로1

많은 게임에 영향을 준 명작입니다

 

특히 블리자드의 게임들은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가 잘 되어 있어서 접근이 쉽습니다. 게임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지 않도록 설계해서 초기 난이도가 낮은 경우가 많고, 게임 초반부에 자연스럽게 시스템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둔 튜토리얼 시스템 역시 친절한 편입니다.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가 웨스트우드의 <듄2>, <커맨드앤컨커>가 만들어둔 RTS 장르를 흉내냈다고 하지만, 유저 편의성 면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단축키와 유닛 생산, 시각적인 효과 등 다양한 면에서 유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결국 원조를 밀어내고 새로운 표준이 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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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플레이 모드인 캠페인 전체가 튜토리얼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하나씩 배울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튜토리얼이 끝나면 지옥 같은 전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게 익힐 수 있다고 해서 게임이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며 많은 프로게이머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도 테란, 프로토스, 저그라는 세 종족 간의 절묘한 밸런스와 다양한 유닛 간의 상성 관계를 통한 깊이 있는 전략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WOW>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종족과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지만, 첫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주어진 퀘스트를 진행하며 스토리를 즐기다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세상에서 많은 아군과 적을 만날 수 있죠. 몇 명 단위의 파티부터 수십 명이 함께하는 레이드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결코 단순하지는 않은 게임성. 그것이 블리자드 게임의 특징입니다.  

 

 

블리자드 퀄리티

 

블리자드의 품질관리는 꽤 유명한 편입니다.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죠.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자신의 손으로 깨버리는 도공처럼, 충분한 재미를 주기 힘들 것 같은 게임은 완전히 갈아엎고 처음부터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주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공전의 히트작 <스타크래프트>의 경우만 해도, 초기에는 <워크래프트2>의 시스템에서 스킨만 변경한 수준으로 개발되던 게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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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2에 우주판 스킨을 씌운 듯한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 알파버전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를 만들고 있던 개발진들이 케이브독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과 이온스톰의 <도미니언 : 스톰 오버 기프트3>의 개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에 <스타크래프트>의 출시를 연기하고, 그래픽과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죠. <워크래프트2>의 성공에 안주한 나머지, 자신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은 것입니다. 그만큼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당시 기준으로는 획기적인 수준의 그래픽과 사실적인 유닛 움직임을 보여준 RTS 게임이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높은 사양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만, 이 작품이 <스타크래프트>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나중에 밝혀지지만, <도미니언 : 스톰 오버 기프트3>의 경우, 발매 전 공개되었던 트레일러 영상과 실제 게임은 전혀 달랐습니다. 게임업계에서 흔히 보는 '트레일러 사기'인 셈인데, 어쨌든 블리자드의 개발진이 그 영상에 속아서 지금의 <스타크래프트>를 만들었으니, 결론적으로는 해피엔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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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는데 큰 도움을 준 작품.

위쪽이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아래쪽이 <도미니언 : 스톰 오버 기프트3>

 

사실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 입장에서 상당 부분까지 개발이 진행되던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새로 만드는 결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개발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또, 오래 개발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잦은 발매 연기 끝에 나온 작품이 시대에 한참 뒤쳐진 망작이었던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게임성이 담보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폐기하는 것은 품질관리의 측면에서 최고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는 소비자의 신뢰로 이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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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누켐 포에버>

개발기간과 완성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

 

품질을 위한 블리자드의 노력은 이미 발매된 게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아블로3>가 대표적인데, 오랜 팬들의 기대 속에서 발매되며 높은 판매고를 올리긴 했지만 초기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ERROR 37'로 대표되는 서버 문제부터 잦은 점검과 버그, 새로 추가된 경매장 시스템 등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나왔습니다. 게임 내적으로 난이도 밸런스 역시 말이 많았습니다. 최종 컨텐츠라고 할 수 있는 불지옥 구간의 난이도가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게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NPC를 이용하는 꼼수플레이가 정석이 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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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3를 출시 초기부터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이렇게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블리자드는 디렉터를 교체하고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약속하며 정면돌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이템부터 난이도, 파밍시스템 하나하나까지 대격변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부분을 갈아엎은 끝에,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습니다. 출시 후에도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통해 좀 더 나은 게임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죠. 

 

만들던 게임을 갈아엎거나 이미 출시한 게임을 지속적으로 고쳐나가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개발 중이던 게임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외전작으로 개발되던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는 몇 년 간 개발중단, 발매연기, 출시 기종 변경 등을 반복하다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 중 하나인 노바를 주인공으로, 고스트라는 직업을 살려 잠입요소가 포함된 FPS 게임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발매되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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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등에 엎고 개발되던 작품이지만,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 고스트> 이전에 개발을 중단했던 작품에는 <워크래프트 어드벤쳐>가 있습니다.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에 따르면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오크가 주인공인 2D 어드벤처 게임으로, 루카스 아츠의 어드벤처 게임들과 비슷한 방식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어드벤쳐 장르의 팬들에게는 큰 기대작이었지만, 만족할만한 게임성으로 보여주기 힘들다는 이유로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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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개발되던

<워크래프트 어드벤쳐>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은 일단 발매가 되어야 수익이 발생하는 만큼, 개발 도중에 중단될 경우 그동안의 비용은 모두 회사의 손실로 남게 됩니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은 발매하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즉, 블리자드의 게임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만큼 블리자드의 게임은 ‘믿고 살 수 있는 게임’이라는 공식이 성립했었습니다. 

 

네. 과거형입니다. 성립했었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무제한 환불 사태

 

‘믿고 사는 블리자드 게임’이라는 신뢰를 한방에 날려버린 작품은 바로 작년에 발매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입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발매된 명작 RTS 게임 <워크래프트3>의 그래픽을 최신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추가요소도 포함시킨 리마스터 작품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3>는 아직도 해외에서 프로리그가 진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인 만큼, 많은 팬들이 리마스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앞서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원작에 비해 훨씬 깔끔해진 그래픽과 높아진 유저 편의성으로 호평받았기 때문에 이번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역시 기대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최악의 결과물만 들어있었습니다. 15년 전에 발매된 원작과 뭐가 달라진 건지 알기 힘든 조잡한 그래픽은 물론, 시점이나 연출 면에선 오히려 원작보다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국내의 경우 한글번역과 폰트의 문제로 인해 캐릭터의 대사를 알아보기 힘든 것 역시 큰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추가요소로 만들다 만 듯한 수많은 버그까지 포함되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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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출시된 <워크래프트3>(위)

2020년 출시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아래)

 

이런 식으로 만들 거라면 왜 새로 출시한 건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출시 전에 약속했던 추가요소가 거의 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게임 내의 이벤트 장면에서 추가될 것이라고 했던 4시간 분량의 컷신은 아예 들어있지 않았고, 초기 발표에서 사용했던 영상조차 실제 게임에선 사라져 있었습니다. 전투의 재미를 높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리얼한 연출들 역시 출시 후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죠.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수준에 당연히 유저들의 원성은 불타올랐습니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했는데, 바로 제작팀의 이해하기 힘든 대응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글을 통해 추가적인 업데이트로 다양한 요소를 추가하겠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유저들이 원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또 유저들이 자신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해버렸습니다. 

 

블리자드의 안이한 대응에 불만을 가진 많은 유저들이 환불을 요청하였습니다만, 이에 대한 대응 역시 최악이었습니다. 쉽게 환불하기 힘들도록 복잡하게 만들어둔 사이트의 구성도 문제였지만, 환불을 원하는 유저들을 마치 악성 블랙 컨슈머처럼 취급하며 계정제재까지 시도한 사실이 밝혀지며 사태는 최악으로 흘러갔습니다.

 

블리자드 측에서 이례적으로 ‘플레이타임에 상관없이 무조건 환불’을 약속하며 어느 정도 마무리 되긴 했지만, 이미 유저들의 신뢰는 산산히 부서져버린 다음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블리자드의 게임은 믿고 살 수 있다’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죠.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로 인한 당장의 손해보다도 이런 이미지의 훼손이 훨씬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쌓을 때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긴 쉬운 신뢰. 2편에서는 과연 블리자드가 게이머들의 신뢰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블리자드의 자체 행사인 블리즈컨을 돌아보며 앞으로를 예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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