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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4년 봄.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故 김근태 의원과 인터뷰를 하고 얼마 뒤였을 거다. 국방위 모 의원실에서 날 초청했다. 이쪽 분야 몇몇 전문가들과 의원실 보좌관들이 국방사업을 놓고 난상토론을 했었다. 

 

(그 말석에 나도 끼었던 거다. 이후에도 17대 국회 국방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큰 안건은 한국형헬기개발사업(KHP : Korean Helicopter Program)이었다. 모 의원님을 위해 이와 관련한 장문의 보고서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걸 만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자리에서도 갑론을박이었는데, 지금 ‘수리온’이라고 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기를 보면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당시 기억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게,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진행될까요?”

 

술자리 안줏거리로 등장할 법한 이야기. 남자들끼리 모여 있으니 나올 만한 이야기가 나온 거였지만, 이게 자리가 자리이고, 정치인과 전문가가 참여자이다 보니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 긴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나와 함께 간 전문가 한 분이 한 마디 툭 던졌고, 그 이야기로 모든 논란이 종결됐다.

 

“일본이 제주도 앞바다를 움켜쥐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당시 일본 해상자위대는 4개의 호위대군을 편성해 놓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본은 영토상으로 큰 나라이다. 총면적은 약 37만 8,000㎢. 독일만 한 크기이다. 바다의 경우는 더 크다. 

 

일본 영해주장.gif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의 영해 범위

 

한중일 해상경계.JPG

독도는 우리 땅!

 

국제법상 자국의 영해로 인정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준으로 일본의 경우, 수역과 주변 해역을 포함한 EEZ의 면적은 485만 7,193㎢이다. 이건 한국의 16배 크기이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해상전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다(섬나라이니 당연하겠지만).

 

2004년 기준으로 일본과 한국이 무력충돌을 벌였을 경우. 일본이 제주도 앞바다를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 

 

중동의 석유가 말라카 해협을 거쳐 제주도 앞바다까지 온다. 이게 부산항으로 인천항으로 간다. 우리의 수출품이 유럽을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꼭 석유만이 아니라 수많은 자원, 식량 등등이 제주도 앞바다까지 와서 갈라진다.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루트인데, 제주도 앞바다에서 갈라져서 일본의 각 항만으로 들어간다. 

 

이 제주도 앞바다가 일본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섬나라’다. 반도국가가 아니다. 현재로선 휴전선 위로는 못 올라간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자급자족으로 사는 나라가 아니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대외무역 의존도는 63.51%로, 수출입화물의 99.7% 선박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 특히나 원유, 철광석, 연료용 석탄 등의 원자재들은 100% 해상 운송되고 있다. 그런데, 그 바다가 막힌다면 어떻게 될까? 

 

2004년 봄 우리나라는 일본이 해상봉쇄를 한다면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무현의 안보는 북한에만 머물지 않았다

 

노무현 시대의 군사 정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난 2007년 5월 25일을 선택할 거다. 

 

노무현 축사.jpg

 

“정말 이 좋은 배가 필요한 거냐 곰곰이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북한하고 아웅다웅하고 있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장차 저는 동북아시아의 질서가 화해와 협력 통합의 질서로 나아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질서가 그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리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동북아시아의 멈추지 않는 군비경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죠.” 

 

                                       - 2007년 5월 25일 세종대왕함 진수식 축사 

 

 

딱딱한 진수식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어린 시절 울산에서 막노동을 했던 이야기도 하며, 딱딱한 공식행사 분위기를 풀어보려 애썼다. 그러나 잔잔한 웃음이 지나가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말 이 좋은 배가 필요한 거냐 곰곰이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북한하고 아웅다웅하고 있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북한을 상대로 이지스함이 그렇게 필요할까? 물론, 탄도탄 요격을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분명 필요한 역할이긴 하다), 이지스함이 진짜 상대가 북한이 아니란 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세종대왕함이 북한을 상대하는 무기가 아니란 걸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북한과 아웅다웅 하고 있을 일은 아니라잖은가? 그렇다면 세종대왕함의 건조 이유는 뭘까? 

 

『이 동북아시아의 멈추지 않는 군비경쟁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죠.』

 

2007년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 뭘까? 

 

중국이다. 

 

중국의 군비팽창으로 시작된 역내 불안감이 슬슬 끓기 직전이었던 상황. 당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중국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고, 이 틈을 타 중국은 슬슬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나온 것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이다. 2005년부터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이 외교정책은 공식적으론, 

 

"평화의 균형자이며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참여정부의 구상"

 

이라고 선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매체, 그리고 상당수의 진보매체에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던 게 바로 이 <동북아균형자론>이다. 이걸 깐 건 당시에도,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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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서울신문에서 실은 동북아균형자론 이미지 

 

<동북아균형자론>의 현실성이나 역내의 역학관계, 한국 정부의 현실 인식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이 개념 자체 그리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수많은 연설이나 발언 등을 보면, 대략 두 가지 정도로 그 배경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동북아에 민족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며 국가들이 저마다의 군비경쟁을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는 구한말 외세의 국권침탈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둘째, 그러나 대한민국이 구한말의 힘없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이제는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성장했다.

 

라는 거다.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이 <동북아균형자론>의 상수는 언제나 ‘한미동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강조했지만, 밑의 참모들의 부주의한 말 설화(舌禍)와 당시 한일관계의 냉랭한 상황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당시나 지금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버리는 게 가능할까? 이 당시 거의 모든 매체에서는 동북아균형자론을 노무현의 몽상이니, 아마추어의 망상이니 등등 하면서 깎아 내리기 바빴다. 이게 납득하기 어려운 게 외교 교과서나 국제정치학 책들 보면 널리고 널린 게 ‘균형자 개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놓은 균형자 개념이 그렇게 특이하거나 생뚱맞은 게 아니란 거다. 게다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실력을 ‘긍정’했다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의 첨예한 군사대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서 군비를 증강했었다. <동북아균형자론>이 아무리 욕을 먹고, 몽상적이고, 망상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이런 현실 인식과 미래 설계가 있었기에 한국군은 비약적으로 전력증강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이 좋은 배가 필요한 거냐 곰곰이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란 말뜻이 이제 달리 들릴 거다. 

 

 

대양해군을 위한 노무현의 업적, 제주해군기지와 제7기동전단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바로 ‘제주해군기지’. 소위 말하는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다. 크루즈 접안시설이 있긴 있지만, 실제 핵심은 제7기동전단을 비롯한 한국의 전략 자산들이 들어갈 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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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촬영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소재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하 ‘제주해군기지’)의 전경.

 

당시 진보진영에서 어마어마하게 들고 일어났던 게 기억난다. 구럼비 바위란 게 연일 지면에 오르내렸고, 후보지였던 화순, 위미, 강정 마을 등은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현장에는 활동가들이 등장해 시위를 했고, 구럼비 바위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란 헛소문까지 돌던 게 기억난다. 

 

제주해군기지는 대한민국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장 부산항의 경우, 항 자체도 복잡하고 번잡하지만, 바로 코앞에 대한해협이 있다. 그 너머에는 일본이 있다. 군사보안상 썩 좋은 곳은 아니다. 진해항의 경우는 수로가 복잡해서 대형함이 외해로 빠져나가려면 작정을 하고 터그보트가 달라붙어야 나올 수 있다. 목포신항의 경우는 진해보다 더 열약하다. 

 

세종대왕급 이지스함과 이순신급 구축함들이 주축이 되는 제7기동전단의 배들은 전부 대형선이다. 이들은 북한을 상대하는 연안함대가 아니다.

 

(우리나라 1, 2, 3함대 모두 합친 것 보다 제7기동전단의 전력이 월등히 앞서 있다. 제7기동전단은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전략부대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외부세력들에게, 

 

“대한민국에도 함대세력이 있다.”

 

란 걸 보여줄 수 있는 부대다. 아덴만에 파견된 우리나라 이순신함 다들 기억할 거다. 예전에 아덴만 여명작전 보라. 다들 뿌듯해했을 거다. 우리나라 대외 투사력이 이 정도 수준이 됐다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건데, 이 청해부대의 구축함들도 다 제7기동전단 소속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목줄이 되는 말라카 해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당장 파견할 수 있는 부대가 바로 이 제7기동전단이다. 이들의 모항이 바로 제주해군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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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수송 경로 / 이미지 출처-<SK innovation>

 

물론, 군항으로서의 방어력(적의 공중공격이나 미사일 공격) 측면에서는 한 번 생각해 봐야겠지만, 최소한 1만 톤급 이지스 구축함을 운영하는 데 큰 무리가 없고,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상정했을 때 중국의 턱밑에 붙은 최전방 전초기지가 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석유와 원자재가 지나가는 말라카 해협. 그리고 중국이 역내 국가들과 한참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영토분쟁. 그리고 우리나라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생각한다면 제주해군기지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제주해군기지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말 노무현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됐다. 임기 말에 정치적 손익계산이나 지지도 따위를 다 포기하고, 정말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 이렇게 온갖 욕을 다 먹어가며 강정마을로 결정을 했었다. 욕은 노무현 대통령이 다 먹었다(임기 말에 그 욕을 다 먹지 말고, 차기 정부로 미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기지 건설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지만, 그 누구도 제주해군기지 때문에 이명박을 욕하지는 않았다. 

 

(당시 구럼비 바위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과 해적기지 논란 일으키며 노무현 대통령을 욕했던 이들에게 되묻고 싶었던 게,

 

“지금 중국과 미국의 대치상황이 보이지 않나? 이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란 말이었다. 미 해군이 입항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제주가 전쟁의 첨병이 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 해군 단독으로 중국해군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온갖 조롱과 비아냥, 욕설들을 들어가며 만들었던 제주해군기지. 역시나 온갖 비아냥과 조롱, 비난을 들어야 했던 <동북아균형자론>과 그에 입각해 준비했던 전략자산들. 그 전략자산들이 지금 우리나라 관함식 때, 에어쇼 때, 림팩 때, 튀어나가는 것들이고 불안정한 외교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나라가 우리와 외교 테이블에 앉았을 때, 우리 등뒤에서 굳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풍경이다. 암묵적으로 한국의 위치와 힘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제주해군기지와 제7기동전단. 이 두 개의 카드.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군사 유산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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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귀빈정에 올라 주변인들에게 군대생활을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노무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