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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의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고작 안경닦이와 초음파 세척기. 쓸데없는 물건만 쌓이는 꼴을 보고 이번에는 꼭 필요한 물건을 리뷰하리라 생각했지만, 딴지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이하 죽돌)는 '와인 오프너' 리뷰라는 미션을 던져준다. 과연 불가사리는 성공적으로 딴지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을 것인가...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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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와인 따기의 어려움

 

일반적으로 '와인 오프너'는 와인을 사면 그냥 주는 물건, 혹은 편의점에서 1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와인 오프너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가격 역시 천차만별이다. 우연치고는 얄궃지만 마침 나는 와인 오프너를 사서 쓰는, 이전부터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와인’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중 하나는 확실히 ‘따기 더럽게 힘들다’일 것이다.

 

어린 시절 편의점에서 떨리는 마음에 와인을 구매했을 때, 고학번 선배가 엠티에 와인을 가져왔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와인을 샀던 그 모든 순간에, 와인 따개가 없어서 와인을 따지 못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다. 구두창으로 쳐보고, 못을 박아 보고, 부수어서 병 안으로 빠뜨려 보지만 잘해야 코르크 부스러기가 둥둥 뜬 와인이고, 못 하면 병이 깨지기도 한다. 그 뿐이랴. 와인 오프너가 있어도 제대로 못 따서 코르크가 난도질되거나, 거의 다 딴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남은 코르크를 빼보려고 무진장 고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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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이런 경험을 막기 위해 궁극의 와인 오프너, 정확히는 코르크스크류(Corkscrew)를 찾는 것이 이번 미션이다. 그러나 와인 오프너를 고르기 이전에 일단 생각할 것이 있다. 대체 왜, 오프너가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통조림도 통조림 따개가 필요했고, 병도 병따개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별도의 도구 없이 딸 수 있도록 나온다. 그러나 와인만 여전히 오프너가 필요하다. 왜 코르크 마개를 쓰는 걸까, 어떤 놈이 이런 걸 개발한 것이길래.

 

 

코르크와 코르크 마개

 

코르크는 와인 따개부터 버켄스탁 신발, 칠판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 쓰이지만 이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코르크는 코르크 참나무(Quercus suber)의 통껍질을 말리고 삶아 만드는 것이다. 코르크 나무 껍질은 매우 두껍고 방수가 되면서도 물에 뜨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서, 나무의 껍질을 벗겨 코르크를 채취하고 10년 뒤 나무 껍질이 자라나면 또 채취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개인적으로는 껍질을 벗긴 코르크 나무의 모습이 꽤나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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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벗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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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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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펀치로 뚫으면 와인 오프너가 완성된다. 코르크 마개를 만들고 남은 부분은 가루로 만든다. 이걸 붙여서 또 코르크 마개를 만들거나, 신발이나 칠판, 건축자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코르크 마개를 처음 음료의 병마개로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17세기 중엽의 일로 본다. 그 전까지 와인은 지역에서 만들어 큰 나무통 등에 보관해, 국자로 떠서 집에 있는 병이나 남비 등에 담아 두었다가 그때그때 마시는 술에 가까웠다. 보관이 필요하면 기름을 먹인 종이로 병을 막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부르봉 왕조와 바로크 시대가 열리면서 부가 집중되고 상업이 발전하여 지역 특산물 와인을 먼 곳까지 운송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샴페인을 비롯한 탄산이 들어가 있는 와인이나 탄산 사이다(탄산음료 말고 사과주)같은 술, 즉 '종이로 병 입구를 막을 수 없는 와인'도 생겨났다.

 

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코르크 마개’다. 그래서 코르크 마개를 개발한 사람이 샴페인의 개발자로 알려진 ‘돔 페리뇽’ 수도사라고 보는 설도 있다. 많은 이들은 일본 호스트바에서 쌓아 둔 잔에 쏟는 음료로 기억하겠지만 사실 수도사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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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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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를 생각하시라

 

굳이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이유는 당시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마개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리병은 입으로 불어 만드는 것이라 사이즈가 다 달랐고, 완벽한 원형도 아니었다. 이 때 신축성이 있는 코르크를 적당히 마개 사이즈에 맞게 잘라서 꽂으면 병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17세기에서 18세기 초에 사용되던 코르크 마개는 따로 따개가 필요하지 않은, 손으로 꽂았다 뺐다를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가가멜이 들고 있는 병 모양 등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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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스크루의 시대

 

위 사진에서 보이는 병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손으로 뺄 수 있는 코르크 마개는 운반 중에 빠질 수 있다.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꼭 끼면 손으로 빼기가 어려워진다. 당시에도 이미 손으로 코르크를 빼기 어려운 상황들이 생겨났다. 특히 군대에서 그랬다. 보급을 위해 마개를 단단히 닫다 보니 열기가 어려웠는데, 이 때 한 군인이 머스킷 총 안에 있는 이물질을 뺄 때 쓰던 건웜(Gunworm) 이라는 작대기를 사용해서 코르크 마개를 제거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싸우라고 준 물건들을 다른 일에 사용할 때는 창의력이 넘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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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웜은 이렇게 생겼다.

지금도 코르크스크루의 구불거리는 부분을 worm이라고 부르는데,

벌레를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초가 되면 많은 이들이 건웜 또는 건웜 모양의 코르크스크루를 사용하는데, 누가 발명자인지 당시 사람들도 궁금했던 것 같다. 영국의 시인 니콜라스 앰허스트는 1720년, 코르크스크류를 발명한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하여 개탄하며 말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물건/ 그것을 발명한 이가/ 모두에게 잊혀져 무덤에서 잠들어 있다/ 어떤 영광의 이름도 그에게는 없다’

 

그러다 영국의 Samuel Henshall이라는 사람이 1795년에 최초의 코르크스크루 특허를 낸다. 스크루가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도록 제한하는 동전 모양의 철판이 덧대어져 있고, 옆에 코르크 가루를 털어낼 수 있는 솔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T형 코르크스크루의 탄생이다. 목사였던 Samuel Henshall이라는 양반은 런던의 한 교회에 묻혀 있는데, 그 묘비에는 “세계 최초로 코르크스크루를 개발한 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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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코르크스크루와

Samuel Henshall의 묘비

 

세계 코르크스크루 중독자 연합(International Correspondence of Corkscrew Addicts, ICCA)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Samuel Henshall의 무덤에 모여 목사 복장을 하고, 코르크스크루를 들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Wine that maketh glad the heart of man, 시편 104장 15절)”라는 구절을 읊는다고 한다(...). 양덕들의 깊이는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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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코르크스크루 중독자 연합의 집회 장면

 

그러나 당시 특허 인정기간은 매우 짧았고, 영국에 특허를 냈을 뿐 다른 곳에 특허를 낸 것이 아니기에, 수많은 모조품 내지 발전품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미국에서 그러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미국은 선진국에서 나온 발명품, 물건, 미술과 문학 작품 등을 특허권, 저작권 등에 구애받지 않고 싼 가격과 조악한 품질로 베껴대는 곳이었다. 우리는 흔히 중국이 우리를 베끼고 우리는 일본을 베꼈고 일본은 미국을 베꼈다 정도만 알고 있지만, 미국이야말로 베끼기 대국이었다. 미국이 표절과 저작권 침해에 엄격해진 것은 '베낄 것'보다 '베낌당할 것'이 많아진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발전과 함께 점점 저작권, 특허권 침해에 엄격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어쨌든 코르크스크루에 있어서도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영국과 독일의 특허권의 제약을 받지 않던 다른 나라(특히 미국)의 생산자들은 Henshall의 최초의 스크루가 등장한 직후부터 수많은 모방판 스크루를 찍어냈고, 개선을 하거나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넣거나 했다. 덕택에 수많은 함량 미달의 물건들이 등장했지만, 수많은 기술적 미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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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19세기의 코르크스크루

엄청난 창의력의 시대다

 

코르크스크루의 발전과 비슷한 시기에 유리병의 발전과 표준화도 이루어졌다. 이제는 병 사이즈에 맞추어 코르크를 자를 필요 없이, 균일한 크기의 유리병에 미리 생산된 균일한 코르크를 박으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긴 거리의 운송, 오랜 보관도 필요해졌고, 코르크는 점점 유리병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이를 뽑기 위해 코르크스크루가 발전했고, 코르크는 점점 더 유리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아는 모습, 즉, 병 안에 코르크가 완전히 들어간 모습이 된다.

 

코르크스크루는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와인 오프너, 즉 '소믈리에 나이프'의 형태는 독일인인 Karl Wienke가 1883년에 특허를 냈다(The U.S. Patent Filing For Carl FA Wienke’s Lever Corkscrew – Granted 1883 No 283,731). 특허를 낸 이름은 아주 근사하게도 ‘Waiter's Freind'이다. 실제 제품을 살펴보면 현재의 코르크스크루와 구조상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특허권 10년도 지키지 않고 수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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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인 1888년에 영국의 Al Heeley에 의해 날개형 코르크스크루(흔히 ‘만세형’또는 ‘졸라맨’으로 부르는 것)가 발명되었고, 1930년에는 현재의 모습과 완전히 동일한 특허가 나왔다. 그리고 1981년에는 토끼형(또는 레버형) 코르크스크루가(리뷰편에서 보여주마), 2010년에는 가스를 주입하여 코르크를 제거하는 물건이(이건 ‘스크루’라 부르기가 힘들다) 나왔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코르크 마개와 코르크스크루의 역사에 매우 해박해졌다고 자부해도 좋다. 고작 코르크 마개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풀어둔 글은 외국 코르크스크루 중독자 커뮤니티 정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대체 왜, 아직도 쓰는 것인가?

 

앞서 말했던 18세기에는 와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음료에 코르크 마개를 사용했다. 마개로서 그보다 나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적 코르크스크루가 생겨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892년 미국에서 ‘크라운 코르크(현재는 ’크라운 캡‘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가 개발되었다. 기존의 코르크마개보다 훨씬 더 완벽한 밀폐가 가능했고, 간단한 병따개나 숟가락, 나무젓가락, 구두, 심지어 이빨로도 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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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그 물건

 

대부분의 음료가 이 병마개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런 병마개 음료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코카콜라 역시 최초 생산시에는 코르크 마개를 사용했지만, 1900년부터 크라운 캡을 적용한다. 이처럼 탄산이 매우 강한 맥주나 탄산음료 등을 보관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이 병따개가 코르크보다 '밀폐'라는 측면에서 우월한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왜 와인은 크라운 캡을 쓰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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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19세기 와인에 일어난 대격변과 필록세라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와인에 일어난 대격변과 필록세라

 

와인, 즉 포도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앞섰을 가능성이 높다. 포도 껍질에는 천연 효모가 붙어 있어서, 포도를 으깨기만 하면 원시적 형태의 포도주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초로 포도주를 만들어 먹은 기록도 아무리 늦게 보아도 신석기 시대 이전이고, 길가메시 서사시와 창세기 등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물에도 와인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포도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고,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해면에 적신 포도주를 마셨으며, 로마인들은 일상적으로 포도주와 물을 타서 마셨다. 적어도 남유럽인에게 포도주는 필수품이었다. 이렇듯 과거부터 시작된 전통이기에, 대규모 포도 농업이 시작되고 수출이 활발해진 19세기에도 유럽에서 양조장과 포도 농장은 구분되지 않았다. 보르도의 양조장 중에 샤또(Château)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포도원과 양조장이 포함된 저택을 이르는 말이다.

 

18세기 중엽 이후 유리병의 발달과 코르크 마개의 사용으로 와인의 유통기한이 늘어났고, 19세기 초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유럽의 경제적 통합이 가속화되었다. 무엇보다 19세기 초 철도 교통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는 엄청난 양의 와인을 유럽 곳곳과 아프리카까지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파스퇴르가 와인의 발효와 산화를 막는 살균법(파스퇴르 공법, pasteurization)을 개발하면서, 나무통에 담아 1달 이내에는 마셔야 하는 술이었던 와인은 몇 년 정도는 기본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술, 배에 타고 신대륙에 가도 아무런 문제 없을 정도로 유통이 가능한 술이 된다.

 

이러한 배경들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와인 산업은 고도화되고 대규모화된다. 중산층이 확장되고 부르주아가 성장하면서 고급 와인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서, 185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그랑 크뤼 클라세’도 등장하고, AOC라는 와인 등급도 생겨난다. 비록 부와 번영 이면에는 노예들과 식민지의 고통이 있었을지언정 최소한 유럽의 인류는 부와 번영을 경험했고, 수많은 현대 문화와 예술,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일어난다.

 

바야흐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의 도래. 당시 탄생한 중산층들은 와인에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코르크스크루의 발전과 크라운 캡의 발명 등이 모두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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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후반의 번영을 상징하는,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19세기 중후반, 알 수 없는 이유로 포도나무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진딧물이 유럽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내성이 없던 유럽의 포도나무는 전멸에 가깝게 죽어갔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 포도원의 3/4가 파괴되는 등 와인 산업이 몰락한다. 특히 대규모로 와인을 생산하던 와이너리가 직격탄을 맞았고, 밭을 보호할 수 있는 작은 와이너리들만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보니 와인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지고, 중산층을 비롯한 서민들은 와인 및 와인을 증류한 꼬냑 등의 브랜디를 버리고 다른 술을 택한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와인이 아닌 압생트에 취했던 이유, 스코틀랜드의 토속주에 불과하던 스카치 위스키가 전세계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 이유도 필록세라로 인해 와인 산업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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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럽인들은 필록세라 내성이 있는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에 자생 포도나무 가지를 접붙이는 방식으로 와인 산업을 복구하지만, 이미 와인은 사치재에 가까운, 보수적인 귀족들 및 부유층이 즐기는 음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와인 산업은 다른 술 산업에 비해 산업화와 대규모화를 제대로 겪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라운 캡이 개발되었다. 크라운 캡은 대충 펀치로 잘라 끼워 넣으면 되는 코르크 마개와는 달리 생산에 큰 기계와 고도의 표준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필록세라로 붕괴된 와이너리들은 여전히 작은 규모였기에 크라운 캡을 도입할 만한 규모가 되지 못했으며, 그만큼 안정적인 양의 와인을 생산할 수도 없었다. 소규모로 생산하던 전통도 영향이 있었다. 

 

일찌감치 맥주 생산의 대규모 공장화가 완료된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크라운 캡을 사용했지만, 작은 도시 양조장 중심으로 맥주가 생산되던 독일에서는 꽤 오랜 후에야 크라운 캡이 사용된 것도 같은 이치다. 한편 와인은 이미 사치재에 가까운 지위였기에, 굳이 ‘따기 쉬운’ 크라운 캡을 도입할 이유도 없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숙성이다. 파스퇴르는 파스퇴르식 살균법만 알아낸 것이 아니라, 와인을 미세한 산소와 지속적으로 만나게 하면 병 안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코르크 마개에 와인을 담아 보관하면 와인의 맛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와인을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금방 산화되어 식초가 되고, 와인을 크라운 캡 등으로 완벽히 밀폐하면 거의 변화하지 않아 맛의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코르크로 닫아두면 미세하게 발효나 산화가 일어나는데, 이 미세한 변화를 거친 와인이 더 훌륭한 맛이 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와인은 아직도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코르크 마개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코르크에 번식하는 곰팡이 때문에 TCA(trichloroanisole)라는 화합물이 생겨 와인 전체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염된 와인을 흔히 부쇼네(Bouchonne) 되었다고 하는데, 엄격한 위생관리를 하는 현재에도 3% 정도의 와인은 부쇼네 상태가 된다고 할 정도이니(줄었다는 말도 있다) 꽤나 심각한 문제다. 부쇼네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딸 때의 편의를 위해, 무엇보다 단가 때문에 현재는 많은 와인에서 스크루캡을 사용한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코르크 마개를 사용한 와인보다 스크루캡을 사용한 와인이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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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쇼네된 것으로 의심되는 상태의 와인 코르크

 

 

코르크의 종류와 코르크스크루의 종류

 

정리하자면 역사적 이유, 숙성에 유리하기 때문, 그리고 사치재와 가까운 와인의 이미지 때문에 많은 와인들은 여전히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고, 우리에게 코르크를 따기 위한 고통을 강요한다. 여러분 역시 와인따개 리뷰를 보러 들어와서 대항해시대와 벨 에포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고통을 맛보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와인 코르크 마개는 몇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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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결이 보이는 것, 좀 더 평평해 보이는 것이 코르크 나무를 그대로 뚫어 만든 천연 코르크이고, 작은 조각들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코르크 조각들을 붙여 만든 인조 코르크(technical cork)다. 산소 투과에 유리한 천연 코르크가 좀 더 비싸며, 인조 코르크는 가격이 더 싸고 강도가 강해 샴페인 등에는 대부분 이 코르크가 사용된다. 이외에도 폴리에틸렌 등 플라스틱으로 코르크 마개 모양을 만드는 합성 코르크(Synthetic Cork)도 있는데, 코르크의 장점이 없으면서도 스크루캡에 비해서는 단점이 많아 점점 스크루캡으로 대체되고 있다.

 

코르크 마개를 열기 위한 코르크스크루 역시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대부분은 앞에서 소개했지만 리뷰를 위해 간단히 정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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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아-소(Ah-so), 2. 소믈리에 나이프, 3. T형 코르크스크루, 4. 날개형(만세형) 코르크스크루,

5. 전동 코르크스크루, 6. 토끼형 코르크스크루, 7. 코라뱅 시스템, 8. 테이블탑 와인 오프너

 

로, 이외에도 많은 종류가 있지만 주요한 것은 1~6 정도다. 완벽한 와인따개 리뷰를 위해서는 이 모든 종류를 다 써보아야 한다. 특히 소믈리에 나이프의 경우는 종류가 많아서 적어도 4종류 정도는 리뷰해야 한다. 기왕 리뷰하는 거 명품이라 불리우는 30만 원짜리 소믈리에 나이프도 필요하다. 그래서, 주문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김없이 죽돌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죽돌: 뭘 주문하신 겁니까?

 

불가사리: 와인 따개도 종류가 많아서요.

 

죽돌: 샤또 라기올이라는 거 30만 원인데 이것도 와인따개인가요?

 

불가사리: 그럼요, 기왕 리뷰하는 거 이정도는 해야죠.

 

여기까지 말하면서 결제를 취소하는 게 아닌가 긴장했다. 그러나 의외로 죽돌 편집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죽돌: 하하 그렇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무슨 속셈인지 몰라 잠시 어버버하는 사이, 죽돌 편집장은 말했다.

 

죽돌: 다음주까지 리뷰 기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와인따개를 사용하시려면 와인을 따서 드셔야 할 텐데, 딴지의 수준도 있고 하니 너무 싼 와인은 안 쓰셨으면 좋겠네요.

 

불가사리: 네? 아니, 와인도 보내주셔야...

 

죽돌: (뚝)

 

와인 오프너 하나하나가 배송되어 올 때마다, 집에서 와인 한 병씩을 따서 마셨다. 죽돌 편집장의 요구를 들어야 하니 하나에 2만 원은 넘는 와인을 사왔다. 그렇게 매일 같이 숙취에 시달렸고, 날씬하던 배(정말이다)에 살도 붙었으며, 무엇보다 와인 값이 원고료를 상회하게 되었다. 숙취와 지방간과 지방배, 이것은 분명 산재이다. 나는 원고료도 실제로 받지 못하고 산재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대모험은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궁극의 와인 오프너를 찾는 법부터, 와인 오프너 이용법까지 제대로 알려주는 훌륭한 리뷰가 될 것이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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