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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요약

 

미얀마에 가려 보도는 별로 안 되지만, 태국도 현재 민주화 운동 중이다. 코로나로 대규모 거리 시위는 주춤하나 여전히 산발적으로 소규모 시위는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시위의 배경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총리는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 혐의 등에 연루되어 탄핵되었다(잉락은 탁신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곧이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를 이끈 인물은 현 총리 '쁘라윳 짠오차‘이다. 국왕은 쿠데타를 승인했다. (태국에선 최종적으로 국왕이 승인하지 않으면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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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윳과 태국 전 국왕 라마 9세(푸미폰 아둔야뎃).

 

정권을 잡은 군부는 개헌을 추진했고, 성공했다. 그로 인해 막강한 제도 권력을 손에 넣었다.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쿠데타 이후 첫 총선은 5년이 지난 2019년에서야 실시되었다. 군부 정당(팔랑쁘라차랏당)이 승리했다. 

 

(국왕이 쿠데타를 왜 승인했는지, 태국 국민은 왜 총선에서 군부 정당을 선택했는지 더욱 자세한 내용은 1편 참고 링크

 

총선 후, 국왕의 승인을 거쳐 새롭게 내각을 꾸린 군부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악수를 둔다. 야당인 아나콧마이당의 대표 ‘타나턴 쯩룽르엉낏’의 하원의원직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 아나콧마이당의 정당해산까지 한 것이다. 

 

아나콧마이당은 21세기 이후 ‘친탁신 VS 반탁신’ 구도만 반복되는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대안 정당으로 떠오르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군부에겐 위협이 되었다.

 

2020년 2월 정당해산이 되며, 그동안 현 정권에 쌓여있던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세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시위가 시작되었고, 요구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의회 해산, 헌법 개정, 국민에 대한 탄압 중단”

 

이번 시위에선 과거와 분명히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젊은 세대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 운동이라 함은 탁신의 지지자들인 ‘레드 셔츠’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는데, 이번은 양상이 다르다.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시위가 진행되는 중 세계적인 스포츠음료 기업 ‘레드불’ 재벌 3세의 유전무죄 사건이 터졌다. 과속으로 운전 중 경찰관을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인데, 그동안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다가 8년 만에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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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타오르며 무너진 사회적 공정을 시작으로 경제,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문제로까지 분노의 불길이 옮겨붙었다. 시위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계속 일어나다 10월 이후부터는 코로나19 감염자 증가 등으로 인해 이전만큼 대규모 시위는 열리지 않고 있다. 한편, 정부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며 시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 기존과 다른 중요한 점이 또 있다. 태국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태국 왕실에 대한 공개 비판이 나온 것이다. 

 

 

태국 역사상 최초 왕실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다

 

2020-2021 태국 민주주의 시위 여러 특징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사상 최초로 왕실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주로 젊은 세대로 구성된 시위대는 기성세대보다 왕실에 대한 반감이 크다. 

 

시위대가 처음으로 왕실 공개비판(최초 8월 3일)을 하기 전, 몇몇 태국 언론과 외신에서도 태국 왕실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했었다. 비판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는 논조는 아니었고, ‘이러이러한 면이 있다’ 정도의 온건한 논조였다.

 

(전 국왕인 라마 9세 때는 국민적으로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이 정도의 보도도 불가능했다. 현 국왕 라마 10세는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온건하게나마 왕실에 대해 이러이러한 부분이 있다 정도로 문제점 있는 부분을 돌려서 비판적 논조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래도 직접적인 비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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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왕 부부. 현 왕비 수티다는 국왕의 네 번째 부인이다. 

 

언론에서 보도된 왕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와치라롱껀 현 국왕(1952년생)의 사생활. 잦은 결혼 및 여성 문제, 도박, 불법 사업 등에 대한 소문이 있는데, 이는 존경받는 선왕과 대비된다. 

 

두 번째, 왕실의 사치벽. 단적인 예로, 비행기광인 국왕의 욕구 충족을 위해 이미 수십 대의 왕실 소유 비행기가 있는데도 3대의 비행기를 추가구입했고, 연료비와 유지 보수비에만 연간 750여억 원이 소요된다. 사치벽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세 번째, 2019 총선 하루 전날 ‘좋은 사람’에 투표하라는 성명 발표로 대표되는 정치 개입. 국왕이 ‘좋은 사람’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쿠데타를 승인한 국왕이 지지하라는 것이 군부의 지지를 받는 팔랑쁘라차랏당(Palang Pracharat Party)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공개적으로 군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셈이 되었고, 이와 같이 왕실과 군부의 협력 관계가 공고하다는 점이 오히려 반정부-민주주의 세력을 자극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왕실개혁시위.jpg

 

언론과는 달리, 시위대는 왕실을 직접적으로 공개 비판하며 개혁까지 요구했다.

 

다음은 시위대가 요구한 ‘왕실 개혁 10개항’이다.

 

1. 국왕의 면책특권을 폐지하라.

2. 왕실모독죄(최고 15년형)를 폐지하고 박해받는 모든 개인을 사면하라.

3. 국왕의 개인 자산과 왕실 자산을 분리하라.

4. 왕실에 할당된 예산을 줄여라.

5. 추밀원(왕실 자문기관)과 같은 불필요한 왕실 기관을 폐지하라. 

6. 감사가 필요한 왕실의 자산을 공개하라.

7. 국왕이 공개적인 정치 논평을 삼가라. 

8. 국왕과 관련된 프로파간다를 중단하라.

9. 왕실을 비판한 반정부 인사들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라. 

10. 국왕이 향후 쿠데타를 승인하는 것을 금지하라.

 

태국에서 왕실의 지위는 상상 이상이다. 국왕은 국가의 가장 큰 어른이며, 왕실은 일종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다. 그러나 왕실의 실정에 실망한 젊은이들은 이번 시위에서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들의 실망감&거부감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태국 젊은 세대들은 위계 문화 전체에 저항하고 있다

 

여기서 잘 봐야 할 점은 이들의 거부감은 왕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실로 대표되는 ‘푸야이(어른) 문화’, 즉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이 일제히 표출되고 있다. 거시적 권력인 왕실과 군부 정권만이 아니라, 학교와 직장 등에서 나이와 지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직된 태국의 미시적 권력 문화(푸야이 문화)까지 모두 비판한다. 젊은 세대는 태국의 위계 문화를 거부하고 있다. 

 

‘푸야이(어른)’가 온전한 푸야이가 아닐 때 그 근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왕실과 군부를 비롯한 권력자는 물론 생활 속의 어른들 또한 진정한 어른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태국 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아무리 라마 10세의 이미지가 국내에서 안 좋다고 해도, 왕이 신적 존재인 태국에서 왕실에 대한 공개 비판, 개혁 요구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세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는 국민적 존경을 받았던 라마 9세에 대한 향수가 덜 하다. 왕실에 대해 현 국왕의 행실로만 판단한다. 그래서 왕실의 실정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민감하고 객관적으로 반응한다. 

 

 

2020-2021 태국 민주주의 시위에서 더 짚어볼 점들 

 

태국 역사상 최초로 왕실 개혁을 요구한 점과 더불어 주목되는 점은 저항의 상징이 된 ‘세 손가락 경례’다. 각각의 손가락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데 홍콩, 대만, 미얀마 민주화 세력과의 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손가락 경레.jpg

 

이 외에도 이번 시위에서 짚어볼 점들이 있다.

 

첫째, 국내외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민 절반 이상(59%)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해외 거주 태국인 집단과 외국 지지 세력, 특히 홍콩, 대만, 미얀마 등의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 세력(일명 ‘밀크티 동맹’)과 연대하고 있다. 

 

둘째, 시위 주체가 다양하다. 

 

시위의 지도부 역할을 하는 주동 세력이 딱히 없으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에 이르는 젊은 연령대와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두드러진다. (Free Youth와 같이 학생 연합을 이끄는 조직은 있으나 전체 시위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많은 하위 커뮤니티도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LGBT, 학자, 예술가, 노동자, 빈민 단체 등도 연대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 집단들은 “의회 해산, 헌법 개정, 국민에 대한 탄압 중단”이라는 세 가지 주요 요구사항에 동의하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요구사항을 주장한다.

 

셋째, 시위 방식과 매체의 변화이다. 

 

시위대는 SNS와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소통한다. 시위대는 현대식 기술매체를 활용해 집회의 사전통지 및 정보공유, 집결, 해산에 있어서 특정 지도자나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이면서 질서 있게 집회를 관리하고 있다. 

 

시위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 K-POP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 공연, 플래쉬몹, 애니메이션(햄토리), 영화(헝거게임, 해리포터)의 패러디 등 밀레니얼 세대의 표현 문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난무한다. 

 

 

 

‘라차프록(태국 국화)의 봄’이 오는 조건

 

시위는 2021년 1월 말과 2월 초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급증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 후 4월 27일에 확진자 수가 2,180명이라는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현재는 잠정 ‘휴식’ 상태이다. 물론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헌법 개정, 왕실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태국 민주주의 시위가 성공한 혁명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다시 정치적 암흑 속으로 들어갈지 현재로서는 전망을 내리기 쉽지 않다. 전망 대신 기시감을 담은 기대를 말하며, 끝을 맺고자 한다.

 

이번 시리즈 서두에 1932년 포르투갈에서 살라자르가 총리에 오르며 시작된 독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국민에게 불리한 개헌안이 국민들의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우둔하고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만을 원한 살라자르 정권은 계속 이어져 오다 1974년 독재 청산을 기치로 내건 좌파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에 의해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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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혁명군에게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고, 거리의 혁명군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독재정권은 붕괴되었다. 일명 ‘카네이션 혁명’이라 불린다. 그렇게 ‘리스본의(에) 봄’은 찾아왔다.  

 

60여 년 전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태국은 현재 정치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 코로나19와 정권의 탄압 등으로 민주주의 시위가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며, 투쟁의 횃불이 언제 다시 불타오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좋든 싫든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으며 이를 막을 순 없다. 성공한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기득권, 즉 왕실과 군부의 견고한 결탁 관계를 깨뜨려야 한다. 더불어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 즉 공정한 룰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국민을 위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선거에서 지더라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또다시 쟁취할 수 있다는 군부와 왕실의 믿음, 이 두 굳건한 믿음이 헛된 신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줘야 한다. 국민들은 언제든지 선출된 권력이 쿠데타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다는 패배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 만연한 패배감이 팽배할 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염증을 커지고 결국, 민주화 운동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수년 동안 태국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지켜보면서 기시감에 사로잡혔던 나는 또 다른 기시감을 꿈꾼다. 약 50년 전 국민들의 민심을 잃은 권력이 민심을 얻은 혁명으로 끝을 맺고 ‘리스본의 봄’이 찾아왔듯, 태국 민주주의 투쟁의 끝에도 ‘라차프록(태국 국화)의 봄’이 찾아오길 꿈꿔본다.

 

 

 

Reference 

 

(1) 김홍구·이미지, 2021, “태국 2020: 의심받는 ‘타이식 민주주의’와 정치과정의 변화,” 『동남아시아연구』 31(1). 

(2) 한유석, 2020, “태국 2019: 군부 중심의 연정체제 확립과 고령화 현상의 가속,” 『동남아시아연구』 30(1). 

(3) https://en.wikipedia.org/wiki/2020%E2%80%932021_Thai_protests 

(4) https://freedomforthai-en.carrd.co/ (what's happening in Thailand)

(5) https://newstapa.org/article/BST9Z (뉴스타파 김진혁 미니다큐: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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