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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은 비슷하게

 

정크푸드하면 떠오르는 햄버거.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최고 갑부들만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서민들에게 소고기에 흰 빵, 프렌치프라이는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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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대량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중산층’의 출현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식품 가공 산업이 발달하여 음식마저 ‘상품’이 되었다.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다. 상품들은 시장에서 거래된다. 시장은 좋은 생산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도록 부추긴다.

 

상품의 진화는 대중화에 있다. 대중화 앞에 생략된 단어는 ‘고급’이다. 고급 대중화. 모순적인 말이다. 고급은 비싸기 마련이고 대중은 값비싼 상품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상품은 일반 대중들이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들을 살 수 있게 하는 쪽으로 기획된다.

 

19세기 이전 귀족이 먹었던 소고기와 흰 빵과 햄버거가 같을 순 없다. 재료는 비슷하겠지만 상류층이 향유하는 격식은 생략된다. 격식을 차리는 것은 장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유라시아 스텝 지방을 기원으로 삼는 햄버거가 격식과는 거리가 먼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을 만나지 않았다면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있다. 1950년대 전후 시대 미국 중산층이 없었다면 지금의 맥도날드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중산층은 소고기와 흰 빵으로 유럽 귀족의 느낌을 얻고자 했고 미국에서 뻗어나간 맥도날드 매장에 줄 선 사람들은 미국의 중산층 느낌을 얻고자 했다. 여기서 고려되지 않는 건 격식이다.

 

영화, 음악 등의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이전, 음악은 귀족 문화였다. 우리가 천재라 불리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의 교양을 위해 피아노 개인 레슨을 부업으로 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귀족만의 특권이었다. 음악을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된 건 상품의 진화 덕분이다.

 

기술의 진보는 상품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MP3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CD 음질의 느낌은 간직하고 매우 저렴하게 배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P3는 프랜차이즈 햄버거처럼 어디서나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불법이든 아니든 간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면 원하는 곡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MP3가 대중화는 그것을 만든 프라운호퍼 협회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MP3는 MPEG2 Layer-3 혹은 정식 명칭인 MPEG-2 AudioBC(Backward Compatible)다. MP3는 음악을 위해 나온 포맷이 아닌 영상을 위해 나온 포맷이다. BC(Backward Compatible)이라는 건 이전 규격인 MPEG-1과 하위 호환된다. 영상 포맷의 부산물이 MP3인 것이다. CD 만한 크기에 영상과 음성을 모두 넣기 위한 DVD를 제작할 때 음성 데이터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CD는 무압축 음성데이터(PCM)로 음성을 그대로 디지털로 매핑하는 방식이다. MP3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과감히 버려버리고 CD 음질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다. 보통 음악을 들을 때 비슷한 주파수(음높이)의 악기들이 동시에 연주될 때 큰 음 뒤에 작은 음이 가려져(배음) 사람들은 이 작은 음을 잘 듣지 못한다. 이를 마스킹 된다고 하는데 MP3 같은 손실 음원에서는 잘 안 들리는 작은 음을 과감히 날려버린다. 보통 주파수영역에서 고음역이 신호는 약하지만 데이터를 많이 차지하게 된다. MP3에서 데이터 용량을 줄일수록 고음 부분의 데이터를 버린다. 128kbps 이하의 MP3를 듣게 되면 먹먹해지는 이유다. 1990년대 중반 가장 대중화된 MP3는 128kbps로 CD(1,411kbps)의 1/10 정도 되었다. 대중들은 그 정도는 ‘들을 만’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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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IMAX 카메라는 45kg이 넘는다. (우) 인터스텔라 상영관 IMAX 필름

 

디지털 VS 아날로그

 

지난 글에서 디지털 매체가 아날로그 매체보다 음질이 좋다고 주장했다. 맞지만 틀린 얘기다. 원칙적으로 세상은 아날로그이기에 디지털로 변환된 매체가 더 좋을 수는 없다. 아날로그인 세상을 아날로그인 매체로 그대로 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다 이건 ‘이상’이다. 문제는 아날로그 매체에서 있는 그대로 콘텐츠로 담는 게 결코 쉽지 않다(싸지 않다)는 것이다. 아날로그는 매체의 '밀도’에 의해 ‘질'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좋은 음질(화질)로 녹음(녹화) 하기 원한다면 테잎을 크게 만들고 속도를 높여야 밀도를 올려야 한다. 그래서 영화 필름에서는 35mm, 70mm 등으로 화질 구분을 하여 저장한다. 아날로그 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의 원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부분적으로 IMAX 필름을 고집한다. (영화 전체를 IMAX 필름으로 촬영했다간 예산을 감당 못할 것이다. 놀란 정도 되니 쓸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보다 좋다는 건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하는 매체에서 ‘질’의 비교 시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이기지 못한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앞에서 말했듯, 디지털은 원본에 대한 ‘압축’과 ‘손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에서는 데이터를 손실시킬 수 있다. 파일 일부를 삭제할 수 있고 축소시킬 수 있다. 인터넷이 아직 대중화되기 이전 1990년대 초 PC 통신 시절, 그림 한 장 받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당시 모뎀이 28,800bps 속도로 초당 3.6kB 데이터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10MB 데이터를 받기 위해서는 1시간 정도 필요했다. 가령 사진을 예를 들면 윈도우즈 기본 화면 크기인 1024px(가로) 768px(세로)의 크기의 bmp로 된 원본 그림파일이 약 2.4메가 정도였다. 사진 하나를 다운 받기 위해서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jpg라는 그림 파일이 대중화된 이유는 손실 압축으로 bmp에 비해 용량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모니터에서 jpg와 bmp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없지만 사진을 확대할 경우 jpg 파일의 경우 화질 차이가 많이 났다. 무손실 압축 그림 파일로 png가 있었지만 jpg에 비해 용량이 많이 차지하게 되어 jpg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데이터를 손실 시킬 수밖에 없었던 건 네트워크 속도가 느렸고 데이터를 담는 그릇(하드디스크 등)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줄이는 방법으로 zip 파일처럼 데이터를 손실 없이 압축하는 방법이 있다. 글자로 이루어진 텍스트 파일의 경우 알파벳, 숫자 등글자의 패턴이 일정하여 압축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음악, 영상, 그림 같은 콘텐츠 파일의 경우 압축하는 게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이 선택한 방법이 데이터를 삭제하는 손실 압축이었다. 손실 압축은 데이터 원본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jpg 파일의 경우 이웃한 비슷한 색을 삭제하여 파일 크기를 줄인다. Zip 파일의 경우 압축을 풀면 원본 파일과 정확히 일치하지만 jpg의 경우 데이터가 삭제되어 원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손실 압축의 문제점은 원본으로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파일을 줄이지 않을 경우 10배 이상 파일을 줄일 수 없기에 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의 압축과 손실 방법은 아날로그에 비해 비용을 싸게 만드는 쉬운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데이터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을 낮추는 것이 ‘압축’이고 용량을 줄여 원본을 느낌만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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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곡을 주머니 안에

 

MP3는 동영상에서 가져온 코덱이다. 동영상 안에 음성을 욱여넣기 위해 손실 압축 방법을 택한 MP3는 파일 크기를 급격하게 줄일 수 있었다. 팝송의 길이가 3~5분 정도였는데 MP3가 처음 나올 때 기준 128kbps로 1분당 1메가에 해당되어 3~5메가 정도였다. CD의 약 1/10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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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새한 MPMAN MP F20, (우) iRiver IMP-100

 

MP3 플레이어는 1998년 새한 MPMAN F10이 처음 등장했다. 저장 용량은 16~64메가였고 약 10곡 정도 들어가는 정도였다. 컴퓨터에 연결하여 MP3 파일을 교체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한 상품들은 용량이 작아 파일을 자주 교체해야 해서 사용성이 불편했다. MP3 코덱을 지원하는 덩치 큰 CDP 또한 인기가 있었다. 공 CD에는 650메가로 MP3 파일이 100곡 이상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애플, 당시 애플컴퓨터사(Apple Compter Inc.)의 잡스는 맥 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냅스터 이후 음반시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CD 판매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잡스는 시장을 들여다보자 대기업은 이 시장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은 것을 간파한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SONY의 행보는 이상해 보였다. 세상은 MP3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SONY가 MiniDisc에서 적용한 이상한 코덱인 ATRAC을 밀고 있는 게 한심해 보였다. 2001년 10월 애플은 조용히 아이팟 1세대를 시장에 내놓는다. 플래시메모리가 아닌 담뱃갑만 한 하드디스크 타입으로 크고 무거웠던 아이팟은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시장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애플이 아이팟을 만들 때 자사 기술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애플은 지금과 달리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아이팟의 실제 아버지인 토니 파델은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이었다. 아이팟은 토니파델의 기본설계,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과 마케팅 총책임자 필 쉴러의 클릭 휠 UI의 절묘한 결합으로 탄생했다. 애플은 자사 독자 음원 규격을 만들지 않고 프라운호퍼의 MP3와 AAC를 지원했다. 아이팟의 진가는 그들이 내세운 표어에 있었다.

 

‘1000곡을 주머니 안에.’

 

아이팟 1세대는 5GB(5000MB) 하드디스크를 넣었고 MP3 파일 약 1,000곡을 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1,000곡 정도면 음원 교체를 자주 할 필요가 없었다. 애플은 하드웨어 스펙을 구구절절 쓰지 않고 주머니 안에 1,000곡을 넣고 다니라는 감성적 접근을 했고 시장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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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MS Zune, (우) Sony Walkman NW-HD5

 

아이팟 1세대는 해가 지날수록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MP3 플레이어 맹주는 애플이 차지하게 된다. 윈도우의 독점적 지위를 행사했던 MS가 Zune을 내놓았고 워크맨으로 세상을 호령했던 SONY는 워크맨의 명성을 이어가고자 MP3와 ATRAC이 플레이되는 동명의 상품 워크맨을 내놓았지만 모두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애플의 MP3 플레이어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특허에 자유로운 Vorbis OGG, 90년대 공룡기업 MS에서 만든 WMA, 워크맨의 소니에서 만든 ATRAC 등이 있었지만 이런 손실 음원은 시장에서 힘을 못쓰게 되었다. AAC는 MP3에 비해 좋은 음질과 애플이 iTunes Music Store에서 판매하여 시장에 안착되었고 OGG는 특허에 자유로웠지만 기능적으로 MP3와 AAC에 가려져 빛을 못 보고 있었다. 그러다 스트림 음원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스포티파이에서 받아들여져 안착되나 싶었지만 스마트폰 등 모바일 환경에서 최적화가 어려웠다. 스포티파이도 결국 일부 기기에서 AAC를 받아들이게 된다. MP3를 잠재울 수 있는 건 손실 압축 코덱 따위가 아니었다. 한동안 왕좌는 MP3 코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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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 등 발전으로 PC에서 고음질 음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PC-Fi

 

모바일 환경에서 카세트 테잎과 CDP를 완전히 대체한 건 MP3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 2000년대에 들어 하드디스크 가격이 현저히 낮아지고 PC-Fi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컴퓨터에서 음악을 듣는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 CD와 느낌이 비슷했던 MP3 같은 손실 압축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류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애써 무시했지만 MP3는 CD 음질에 비해 못할 수밖에 없었다. AAC 256kbps와 CD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려워 좌절한다고 하지만 2000년대 대중적인 128kbps MP3는 일반적인 이어폰으로도 CD와 구분할 수 있었다.

 

PC-Fi의 주역 액티브 스피커(헤드폰과 같이 컴퓨터에 직접 연결 가능)와 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의 발전으로 MP3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CD가 스튜디오 음원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한다며 음질이 구리다고 말하게 된다. CD 규격을 만들 1970년대에는 CD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LP와 경쟁할 정도로만 음질을 완성시켰다. 그래서 채택한 규격이 16bit 44.1kHz였다. 특히 44.1kHz 주파수는 가청주파수 20kHz 영역(디지털화 하기 위해 2배의 주파수가 필요)을 간신히 잡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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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고주파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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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고주파 잡음을 잡기 위해 필터에 사용할 여유 주파수가 필요하다.

 

44.1kHz는 나이키스트 이론으로 하면 22.05kHz를 담을 수 있는 크기다. 공기 중에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20kHz보다 높은 주파수 소리가 많다. 인간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디지털로 녹음하여 샘플링이 되면서 고주파 소리가 가청주파수 영역으로 딸려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고주파 소리가 가청주파수 영역으로 들어와 녹음되면 거슬리는 잡음이 되어 인간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위신호(Aliasing Frequency)라 한다. 이 고주파 잡음을 삭제하기 위해 위신호 제거 필터(Anti-Aliasing Filter)를 하게 되는데 이 필터를 위한 여유 공간 주파수가 필요하다. CD는 인간의 가청주파수 20kHz 영역과 Anti-Aliasing Filter의 필요 마지노선(20kHz~22.05kHz)을 담은 최소한의 크기로 만든 규격이었다. (44.1kHz 규격 결정은 NTSC 미국 텔레비전 표준 방송 방식의 영향도 있다.) 결론은 CD는 에누리 없는 매우 빡빡한 기준에서 만든 규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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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는 음압에 해당되는 bit(음의 크기), 가로는 음영역에 해당하는 Hz (시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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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와 sample rate는 영상으로 보면 해상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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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이 100이 넘어가면 청력에 문제가 생긴다.

 

고음질 음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후 HDTV 등에서는 16bit 44.1kHz CD 규격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이를 24bit 48kHz까지 보다 여유롭게 확장하게 되고 음원을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이를 업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 음반 제작을 하는 스튜디오는 48kHz를 기준으로 하여 배수인 96kHz 4배 수인 192kHz로 확장하게 된다.

 

 

48kHz 배수기준으로 음원을 만들고 난 후 배포할 CD를 제작할 때 문제가 생긴다. Digital은 수로 되어 있기에 96kHz 음원을 1/2(0.5)인 48kHz로 배포할 경우 계산이 어렵지 않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CD는 애매하게 44.1kHz로 96kHz에서 음원을 변환하여 얻기 위해 0.459375를 곱해야 한다. 이는 정확한 값이 나오지 않아 원음이 왜곡될 확률이 높아진다. (음질이 나빠진다고 보면 된다.) 음반 제작사는 우리가 듣고 있는 대부분의 음원인 CD 혹은 MP3 파일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96kHz 이상에서 만든 음원을 16bit 44.1kHz로 조정하여 리마스터링을 하게 된다. (PC, Mac에서 MP3를 듣는다면 16bit 44.1kHz 규격으로 세팅하여 들을 것을 추천한다.)

 

만든 것 그대로 듣는다. CD는 스튜디오 음원이 아니기에 음원을 만든 스튜디오 원음을 그대로 듣고 싶다는 욕망이 무손실 음원 경쟁의 시작이 되었다. 스튜디오 음원을 가정에서 바로 듣고 싶다는 욕망이 시작된 것이다. 느낌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진짜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96kHz 이상 샘플링은 듣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는 전적으로 음원을 만드는 입장에서 이 규격이 나온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96kHz 이상으로 녹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재 대부분의 스튜디오는 96kHz로 되어 있으며 최근 들어 192kHz가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96kHz이 현재 업계 표준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을 예를 들어 포토샵에서 여러 사진을 가져와 편집하다 보면 특정 사진을 확대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사진을 확대할 경우 해상도가 낮으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게 된다. 스튜디오에서는 고음질로 녹음해야 하는 이유는 어려 음원을 뒤섞고 변형하게 되고 음질이 좋아야 편집하는데 있어 좋은 음질을 확보할 수 있다. 음원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음질과 음원을 소비하는 입장에서의 음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손실 음원, 고음질 음원

 

2000년 아이팟이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 무손실 음원 압축 코덱인 FLAC(Free Lossless Audio Codec)이 등장한다. FLAC은 이름처럼 손실이 없는 음원을 말한다. FLAC은 최초의 무손실 음원은 아니었지만 무손실 음원을 대중화시킨 주역이었다. 2004년 애플은 FLAC과 거의 비슷한 조건으로 ALAC(Apple Lossless Audio Codec)을 세상에 내놓는다. FLAC과 ALAC은 오디오만을 압축 알고리즘으로 원음의 최대 50%까지 압축할 수 있다. (손실 없는 음원인 wav 파일을 zip 등 파일 압축 알고리즘으로 압축하면 10% 정도로만 압축되어 원 음원 파일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FLAC은 태생이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 오픈소스로 누구나 플레이어와 소프트웨어를 저작료 없이 개발할 수 있었다. ALAC의 경우 애플이 특허를 가지고 있어 애플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손실 음원 점유율에서 FLAC이 압도적으로 높게 된다. 결국 애플은 ALAC 라이센스를 2011년 10월 아파치 라이센스로 공개하여 오픈소스로 만든다. 스튜디오에서 디지털로 제작된 음원을 그대로 PC에서 들을 수 있는 코덱으로 FLAC은 가치가 있었다. 무손실을 지원하는 서비스에서 FLAC은 업계 표준이 된다. 무손실 서비스 업계의 일인자 타이달과 독자 표준 코덱을 가진 애플은 FLAC이 아닌 새로운 코덱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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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분기 점유율 비교

 

스트리밍 시대의 음원 서비스 전쟁

 

2010년대 이후 음원 시장은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 시대로 가고 있었다. 2006년에 설립된 Spotify는 무료 스트리밍 음원시장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더니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인 디스커버리 위클리(Discovery Weekly) 등으로 대박을 터트린다.

 

다운로드 음원시장 강자였던 애플은 스트리밍 시장에서 넋 놓고 있다가 스포티파이의 기세에 놀라 2014년에 닥터드레가 설립한 beats music을 인수하고 2015년 iTunes Music Store와 별개로 Apple Music 스트리밍 서비스를 런칭한다. 다소 늦게 서비스를 개장한 탓에 애플뮤직은 점유율에서 스포티파이에 못미치게 된다.

 

2010년대 후반 비로소 음악시장은 스트리밍으로 완전 대체되게 되었다. 스트리밍 음원시장에서 차별화를 들고 나온 서비스가 스웨덴 기업 aspiro의 WIMP였다. WIMP는 2013년 10월 최초로 CD음질 Lossless 음원 서비스를 개장한다. WIMP의 글로벌 버전이 2014년 10월에 개장한 Tidal 이었다. 2015년 Tidal은 비욘세 남편인 Jay-Z에 인수된다.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은 점유율 싸움이었다. 스포티파이의 OGG 코덱과 애플의 AAC 코덱은 경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곡을 적절하게 추천해주는 기능이 주요 경쟁 이슈였다. Tidal은 여기에 프리미엄 전략을 하게 되는데 CD 음질을 넘어선 고음질 스트리밍 음원을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Tidal의 가입자 수는 대략 100~300만 정도라고 한다.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그렇지만 Tidal은 기술로 이들 서비스를 능가하려고 하였고 HiFi 매니악들이 인정하게 된다. 차별화 기술로 Tidal은 기존의 FLAC을 서비스하면서 타사 서비스와 차별화를 위해 고음질 스트리밍 음원 MQA를 지원하게 된다. 애플은 스포티파이를 늦게 대응한 것을 후회했는지 무손실 음원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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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QA를 설명하는 이미지(압축을 종이접기로 묘사)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는 영국 메리디안(Meridian Audio)에서 2014년에 처음 선보인 고음질 스트리밍 코덱으로 음질은 FLAC을 지향하고 파일 크기는 손실음원을 지향한다. MQA는 엄밀히 말하면 손실음원이다. MQA는 데이터 크기는 크고 에너지 크기는 작은 고주파수 대역(고음역)을 데이터 크기는 작고 에너지 크기가 큰 낮은 주파수 대역(저음역)에 기록하는 방법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이 잘 들을 수 없는 낮은 주파수 대역에 고주파수 음역을 밀어넣는(캡슐화 혹은 접어서 저장한다고 표현한다) 방법이다. 이는 심리음향(Psychacoustics) 기술을 이용한 손실 압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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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질 오디오 플레이어 roon 은 2018년도에 MQA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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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드디어 무손실음원을 지원한다

 

공룡의 등장과 손실음원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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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무손실 서비스

 

2021년 6월 애플은 애플 뮤직을 통해 무손실 음원과 공간 음향을 지원한다. 무손실 음원은 애플 독자 규격인 ALAC, 공간 음향은 Dolby Atmos 기술이 적용되었다. 타이달이 프리미엄 서비스로 19.99달러로 서비스를 지원했는데 애플은 기존 가격 9.99달러 그대로 유지하였다. 아마존은 애플의 발표에 바로 대응하여 무손실 음원 서비스 가격을 낮추게 된다. 국내 무손실 음원 서비스인 멜론, 벅스 등보다 애플 뮤직이 더 저렴하게 서비스하게 된다.

 

애플은 무손실 음원 발표 전에는 AAC 음질이 좋다고 여태 광고했었다. AAC를 최고 음질로 만들기 위해 직접 마스터링 한다는 iTunes Digital Master(지금은 Apple Digital Master)를 홍보했다. 이를 무색하게도 애플은 무손실 음원을 조용히 발표한다.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 애플 무손실 음원 소개 자료에서 “AirPods, AirPods Pro, AirPods Max 및 Beats 무선 헤드폰은 Apple AAC Bluetooth 코덱을 사용하여 뛰어난 오디오 음질을 보장합니다.”라고 궁색한 말을 남겼다.

 

애플뮤직에서 무손실 음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외부 DAC과 유선 헤드폰 이상이 필요하다. 애플이 지원하는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에서는 AAC 만 지원된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소니 블루투스 코덱 LDAC을 지원하여 24bit 96kHz까지 지원된다.) 홈팟 등에서 지원하는 Airplay 2 또한 현재 24bit 48kHz 까지 지원된다. 무손실 음원을 듣기 위해서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 모바일로 들을 수 있지만 편하지 않다. 애플은 HiFi 매니악을 위한 네트워크 오디오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분야에서 1인자는 Tidal이다. 애플 뮤직 무손실 음원을 듣기 위해서는 애플이 만든 제품만으로는 서비스가 안 되는 것이다. 진정한 서비스 시작은 애플 제품이 온전히 고음질을 지원할 때가 아닐까 싶다.

 

1999년 혜성처럼 등장한 냅스터로 CD 시장은 붕괴되었고 2003년 iTunes Music Store로 다운로드 음원시장이 열렸고 2010년대에 스포티파이로 음원시장은 스트리밍으로 급변하게 되었다. 애플은 스포티파이로 자존심에 타격을 입고 닥터드레의 beats를 인수하고 새로운 전복을 꿈꾸며 애플 뮤직 무손실 음원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 애플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손실 음원 시장이 끝났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음원시장에서 느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원본을 그대로 즐기는 시대가 드디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