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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는 멕시칸 샐러드가 없다

 

얼마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봤다. 백종원 대표가 하는 말이, 정작 멕시코에는 멕시칸 샐러드가 없다고 한다. 왜 이름을 멕시칸 샐러드라고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웃기는 장면이었다.

 

야구 업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아메리칸 펑고’라는 훈련. 투수든 야수든 양쪽 폴대 사이를 왕복하면서 코치가 쳐주는 펑고를 받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아메리칸 펑고 훈련을 시키는 지도자들이 별로 없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 많이 시키는 훈련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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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물어보고, 미국 전지훈련을 갔을 때 미국 코치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아메리칸 펑고 훈련을 얼마나 시키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이거였다.

 

“뭔데 그게?”

 

2011년 미국 템파로 스프링 캠프를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운동장에서 투수들 하체 운동을 시키고 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다가와 나에게 질문했다. 지금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 거냐고. 투수들 하체 운동을 시키는 중이라고 대답하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1945년까지 트리플 A에서 왼손 투수로 활약한 투수 출신인데 그 당시에는 저런 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럼 그때는 어떤 운동을 하셨죠?”

 

"러닝만 했지.”

 

또 다른 에피소드는 2012년, 처음 애리조나 텍사스 레인저스 훈련장으로 스프링캠프를 갔을 때이다. 텍사스 트레이너가 말하길, 레인저스가 30개 구단 중 러닝 훈련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때 텍사스 구단주가 놀란 라이언이었다. 놀란 라이언은 러닝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선수 출신 구단주였다.

 

과거 한국도 투수들은 러닝만 했다. 현재에도 웨이트 하지 말고 러닝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당시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며 1945년 미국 야구랑 2000년대 한국 야구랑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도 예전에는 우리와 같은 상황을 다 겪고 나서 현재의 방법들을 찾아낸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가 40년이 다 되어 간다. 일본은 70년, 미국은 13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체격조건이 일본이랑 비슷해 미국보다는 일본의 방식을 따라가야 된다고 얘기하는 지도자들, 아직 많다. 하지만 결국 일본도 미국이 겪었던 과정을 반복한다. 오랜 경험치에서 나온 결론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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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필요한 체력은 다르다

 

히딩크라는 축구 감독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16강 진출을 넘어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감독이다. 그 당시 명예시민증 같은 걸 줘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나에게 히딩크와 한일 월드컵은 생생한 기억이지만, 2021년 올해 프로야구단에 입단한 신인이 2002년생이니 요즘 어린 선수들에게는 익숙하지 낯선 이야기 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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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는 월드컵을 불과 1년 앞둔 시점만 해도, 경질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 비난을 받는 계기가 된 건 인터뷰였다. 감독이 된 지 100일쯤 되었을 때의 기자회견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3개월 정도 한국 축구 선수들과 훈련을 했는데, 한국 축구 선수들의 기술과 체력 중 어떤 부분이 더 문제인가?”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한 대답은 ‘한국 축구는 체력은 우수한데 기술과 전술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이었다. 하지만 히딩크의 대답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리고 이 발언은 평가전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두고두고 히딩크를 비난하는 근거가 되었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기술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체력이 가장 문제이다.”

 

의아해하는 기자들에게 히딩크는 “전 세계에 이렇게 양발을 자유자재로 잘 쓰는 축구 선수들은 없다”면서 한국 축구 선수들의 기술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축구는 90분 내내 뛰어다니는 체력, 정신력은 뛰어난데, 전술과 기술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유럽이나 남미의 선진 축구를 이기기 위해 모셔온 외국인 감독이 엉뚱한 소리를 하자 기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히딩크의 기준에서 축구는, 90분 동안 계속 달릴 필요가 없는 종목이었다. 경기 중 전력 질주 이후 걸으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또 결정적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하는 게임이 축구였다. ‘축구 선수의 체력’에 대해서 히딩크의 생각은 우리의 통념과 달랐던 것이다. 히딩크는 삑삑이 테스트라는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이때부터 축구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유럽 축구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는 밀리지 않게 된 것이다.

 

보통 체력이라 하면 지구력을 생각한다. 오래 달릴 수 있어야 하고, 훈련도 오랫동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보통 체력이 없다거나 떨어졌다고 한다. 오래 달릴 줄 알아야 체력이 좋다는 평가 받는다. 하지만 각 스포츠 종목마다 필요한 체력은 다르다. 축구에서조차도 오래달리기 능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각 종목마다 필요한 체력은 다른 것이다.

 

야구에서의 체력을 생각해 보자. 보통 야구 한게임 하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주 오랜 시간 경기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단 절반은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선발투수나 공격에서 주루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은 디테일하게 판단하지 않겠다. 대략 절반은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시간이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 중 타자가 삼진을 당하고 볼넷으로 진루하면 수비수들은 움직일 일이 없다. 타자가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일은 내야 땅볼을 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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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선수가 야구게임에서 필요한 체력이 이미 충분해도, 한국 지도자들은 긴 훈련 중에 선수가 힘들어하면 체력이 없다 한다. 야구를 잘하지 못하면 체력이 없어서라고 한다. 경기를 치르는데 필요한 체력이 없는 선수가 과연 있을까. 선수가 경기를 하는데 체력이 떨어져 보인다면, 경기 전 선수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다른 요인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2014년경 미국에서 야구선수들의 움직임을 분석한 칼럼이 있었다. 각 포지션마다 한 명이 시계를 들고 움직이는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평균적으로 각 포지션당 18분의 시간만 움직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18분 중에서도 100%의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동작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야구 종목의 특성에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선수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 많은 양의 러닝을 시키고, 체력 향상을 위해 기술 훈련을 엄청 한다는 야구 관련 기사, 많이 보지 않았는가. 아마추어 팀에서는 아직도 하루 훈련시간 중 1-2시간은 러닝을 한다. 당연히 선수들은 아주 힘들어한다. 무의미하게. 야구를 하지 않고 러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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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포츠서울>

 

야구 시즌을 치르다 보면 안팎으로 체력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모든 감독들이 체력관리, 체력 향상을 강조한다. 축구는 FIFA 규정상, 한 경기후 최소 48시간의 휴식이 있어야 그다음 게임을 실시할 수 있다. 그 말은 한 경기후 다음 경기를 위한 회복을 위해, 생리학적으로 48시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야구는 어떤가? 메이저리그의 경우, 1년 162게임을 실시하고 우리나라처럼 월요일마다 휴식일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 말은 한게임에서 쓰이는 에너지가 자고 일어나면 바로 회복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즌 중 야구선수들이 체력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휴식이다. 잘 쉬기만 해도 다음날 게임을 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이것만 열심히 하면 체력관리는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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