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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패배, 중국으로 ‘주권 반환’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무려 155년 동안이었다. 중국으로 반환된 건 1997년이었지만, 이에 관한 협상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중국과의 긴 협상 기간 동안 영국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순차적으로 했다.

 

①홍콩의 주권을 반환하는 협상이니만큼, 당사자인 홍콩의 대표도 포함시켜 3자 회담으로 하자.

②홍콩섬과 주룽반도는 청나라로부터 영구적으로 할양받은 영토이기에 협상 대상이 아니다.

③신계 지역만이라도 조차 기간을 연장하고 싶다. 

④홍콩을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로 독립시키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부합된다.

⑤주권은 중국에 반환하더라도, 일정 기간 경영권을 행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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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덩샤오핑과 마거릿 대처.

 

모든 제안을 거절당했다. 당시 중국 정부의 최종 결정자는 덩샤오핑이었는데, 그는 이렇게 대응했다.  

 

①원래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홍콩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고, 당연히 3자 회담은 성립될 수 없다.   

②홍콩섬과 주룽반도의 할양은, ‘난징조약’이 불평등조약이었기에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③99년간 빌려준 신계는 기한이 만료되었으니 반환해라.

④중국은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항간에서는 덩샤오핑의 기가 대처 수상을 꺾었다고 말한다. 덩샤오핑과 마거릿 대처 수상이 회담을 한 다음 날, 홍콩의 모든 신문 1면에 대처 수상의 사진이 실렸다. 그녀가 회담을 끝내고 인민대회당을 나오던 중 계단에서 실족하는 장면이었다.

 

1997년 7월 1일 밤 12시, 홍콩의 컨벤션센터,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는 ‘주권 반환 의식’이 열렸다. 150여 년의 시간이 정리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역사의 한순간이었다. 중국 대표인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감회가 복받치는 듯한, 영국의 대표인 찰스 왕세자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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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식. 악수하는 장쩌민 주석과 찰스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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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식 당일 행사. 찰스 왕세자(왼)와 크리스 패튼 총독(오)

 

홍콩의 마지막 총독으로, 임기 동안 영국을 위해서든 홍콩을 위해서든 간에 역대급으로 많은 것을 민주화한 패튼 총독은 그 광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 홍콩에게 그는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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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식에서 울고 있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는 크리스 패튼. 패튼 부인의 얼굴도 보인다.

 

그가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 홍콩 조야에는 홍콩의 마지막 총독으로 영국의 수상보다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마지막 총독은 영국 정계의 거물 패튼으로 임명되었고, 그는 결심했다.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그는 자신의 다짐을 나타내고자 역대 총독과는 다르게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지 않았고, 총독의 제복도 입지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모든 제안을 거절당한 영국은 막판으로 몰렸다. 이제 남은 것은 홍콩의 민주화라는 카드였다. 마지막 총독 패튼은 정치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입법의회 직선 의원 수를 대폭으로 늘렸다. 지역의회 의원 선거도 직선으로 돌렸다. 

 

홍콩중국인을 국무총리와 재무부 장관 자리에 처음으로 기용한 것도 그였다. 재임 기간 내내 중요한 발표가 이어졌다. 홍콩의 민주화 그것이야말로 영국의 이익을 영원히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중국 정부는 ‘천고의 죄인’이라며 패튼의 홍콩 민주화 작업을 비난했다. 패튼은 자신이 뿌린 민주의 씨앗이 씩씩하게 자라나서 홍콩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대륙을 뒤흔들 것이라는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중국 정부가 홍콩의 민주화라는 대세는 막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원래 홍콩인은 영국부속영토시민(BDTC, British Dependent Territories Citizen)의 신분이었다. 영국 연방의 시민으로서 영국 영사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패튼은 떠나면서 홍콩의 중산층 5만 명에게 영국해외시민(BNO, British National Overseas)의 자격을 주었다. 영구적으로 영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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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BNO여권. 오른쪽이 영국시민권자의 여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언제라도 영국에 올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다오’라는 주문이었다. 홍콩의 엘리트 계급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힘을 견제하고 홍콩의 민주화를 견인해 줄 것을 기대했다.  

 

패튼 그리고 영국 정부가 할 수 있는 홍콩 민주화 작업은 다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주판은 영국의 계산기를 능가했다.

 

 

정체성 충돌과 해법이 연재의 목표이다

  

전술했듯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55년’ 동안 영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식민지였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이 열다섯 번도 더 지나간 세월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나, 아직까진 분명히 홍콩은 남다른 정체성이 있고, 그것은 그 15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이나 지역이나 국가의 정체성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순간에 지워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무엇을 연구하는? 정치적인 성향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정체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관계를 정체성의 관계라고 본다. 사람과 사람, 이념과 이념, 종교와 종교는 물론이고, 지역과 지역, 국가와 지역, 국가와 국가의 갈등은 정체성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국가와 지역과 이념이라는 정체성에 관심이 있다. 또 정체성의 충돌에 관심이 많다. 나아가서 그것이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알다시피 최근까지 홍콩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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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행진. / 출처-<BBC>

 

나는 그것을 홍콩과 중국, 중국과 홍콩의 ‘정체성의 갈등’이라 생각한다. 즉 각기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 만난 것이다. 그것은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쉽게 해결될 것이었다면 시위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격렬하게 전개되었겠는가.

 

우습지만 사석에서 가끔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 지금부터 내가 ‘친홍콩’의 입장에서 말해 볼게, 끝난 다음 다시 ‘친중국’의 입장에서 말해볼게, 듣고 나서 내가 누구 편인지 자네가 판단해보게!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는 본 시리즈에서 ‘친홍콩’ 또는 ‘친영국’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친중국’이 될 것이다. 각 기사마다 평가를 안 받을 순 없겠지만, 내가 어떤 입장인지, 누구 편인지에 대한 확정된 평가는 여러분이 본 시리즈를 다 읽고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본 시리즈에서 ‘중국과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왜 충돌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할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그 해법을 알아보는 것이 이 - 홍콩의 진실에 대하여 - 연재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입장을 전달할 것이기에 시리즈 중간에 일어날 수 있는 독자들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본 시리즈의 목표를 우선 밝혀둔다.

 

 

97년 ‘주권 반환’에 대한 홍콩인들의 비유

 

다시 돌아와서, 홍콩은 식민자인 영국이 만들었다. 영국이 온전히 자신의 철학과 의지대로 식민지를 경영한 결과물이 홍콩이다. 누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할 것이고, 누구는 그것을 실패라고 할 것이다. 누구는 근본적으로 잘못 태어난 홍콩이기에 홍콩의 모든 성과는 헛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누구는 주인이 누구이든지 거주민 즉, 홍콩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냐 안 하냐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처럼 홍콩 사람들도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있었다. 문제는 155년 뒤인 1997년 소속이, 국가가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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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홍콩.

 

본 시리즈를 읽는 독자들께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홍콩을 강의할 때마다 서두에서 하는 말이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반환될 때, ‘홍콩사람들’이 자주 동원하던 비유였다. 본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이 화두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중국) 아버지 : 애비가 돌아왔단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이제 이 애비가 다 챙겨줄게!

 

(홍콩) 자식: 155년 동안 나를 안 찾았잖아요. 아버지 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아버지라고, 우리는 아버지 필요 없어요.

 

한때 중국과 홍콩 사이 단어 하나 가지고도 신경전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영국 정부는 반드시 주권 ‘이양’이라고, 중국 정부는 꼭 ‘반환’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느끼듯이 ‘이양’이라는 말에는 안 주어도 될 것을 준다는 생색이 숨어 있다. 

 

반면 ‘반환’에는 받을 것을 받는다는 당당함이 드러난다. 아무튼 1997년에 중국 정부는 홍콩의 주권을 당당하게 ‘반환’ 받았고, 지금은 ‘반환’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알다시피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은 많은 식민지를 경영했고, 홍콩은 그중 하나였다. 그냥 평범한 식민지 중의 하나였다면, 즉 식민자에 의해 착취당하다가 독립한 식민지 중의 하나였다면 이처럼 주목받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은 아름답게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름답고, 반짝인다는,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살아가기에 장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의미도 더해졌을 것이다. 오욕의 역사에 의해 탄생된 식민지를 ‘동양의 진주’라고 부르다니 이것도 가당치 않은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내가 홍콩에 가기 전부터 가진 의문이었다. 

 

 

내가 생각한 홍콩과 달랐다

 

1980년대 후반 나는 홍콩으로 유학을 갔다. 1984년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게 ‘반환’한다는 『중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몇 년 뒤였다. 홍콩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법』 제정을 두고 양국 간 치열하게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홍콩사람들이 ‘이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당시 사회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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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홍콩.

 

홍콩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쉼 없이 나의 뇌리를 자극하는 놀이였고 실험이었다. 

 

“너는 영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영국의 통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조국인 중국으로 반환되는 건 기쁜 일 아닌가?”

 

등의 질문은 나를 만나는 모든 홍콩 친구들이 감당해야 하는 숙제였다. 

 

홍콩에 도착하기 전부터 내가 기대했던 것은 영국이라는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와 타도 분위기였다.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로 곧 폭발할 것 같은 민심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놈들이 어떤 놈들인가 말이다. 2차 아편전쟁 때 청나라를 향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그 아름다운 원명원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약탈한 놈들이다. 저희들의 욕심 때문에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들었던 여름 궁전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든 놈들임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한갓 해적 같은 놈들 때문에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것이 홍콩에 처음 도착하기 전부터 한동안 가지고 있던 내 정서였다.

 

당시 한국의 젊은이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민족과 민주라는 화두에 휩싸인 교정에서 보낸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이더란 말인가. 하지만 처음 마주한 홍콩인들이나 내내 경험한 홍콩인들은 영국에 대한 분노는커녕, 오히려 영국의 통치를 받는 자신들이 곧 영국인인 것처럼 자부심이 터질듯했다. 그 자부심의 크기에 반비례하며, 홍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난 점점 위축되고 있었다. 

 

의문이 들었다. 영국놈들이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다음에 얻은 땅에서 살고 있는 홍콩중국인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타락시킨’ 동력이 무엇일까. 이들은 정말 잘 먹고 잘사는 것만 아는 배부른 ‘돼지’들인가?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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