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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에 리뷰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고작 믹스 커피. 화가 난 불가사리는 딴지를 습격하여 딴지 ‘커피 8대 천왕’과 함께 믹스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누군가 편지를 보냈다. 편지 속 초대장엔 주소만이 덩그러니 적혀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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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는 불가사리. 그리고 시작된 새로운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변의 연속! 과연 불가사리는 커피믹스 주제를 끝낼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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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 가. 들의 성

 

불가사리와 딴지 ‘커피 8대 천왕’은 힘겨운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나름의 결론을 냈다. 이에 대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독자 중에서도, 댓글을 단 사람들 중에서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딴지 내부에 스파이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어둠(?)의 집단이 불가사리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던 것인가. 기사가 공개되기 이전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 혈서...가 아닌 원두를 갈아서 쓴 (주소만 적힌) 초대장을 보냈다. 불가사리는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도전장이다!”   

 

불가사리는 초대 장소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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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지하철역. 

 

무지막지하게 긴 계단을 기어 올라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니, 간판도 없이 그림만 하나 붙어 있는 어딘가 묘한 분위기의 장소가 보인다. 이곳은 버티고개역 앞의 카페이다. 아마도 ‘스윙’이라는 이름의 카페인 것으로 보이지만, 간판이 없어서 가게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 

 

안에는 포스 넘치는 커피 로스팅 머신, 과연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주크박스, 유럽에서나 보았던 레버형 에스프레소 기계, 가게에 앤틱한 느낌을 더해주는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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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술이 보였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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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불가사리군”

 

“여기는... 술집인가요?”

 

“커피 전. 문. 가.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장소라고 할까요”

 

“그런데 왜 술만 많은 건가요?”

 

“(못 들은 척하며) 불가사리군. 여기서 전. 문. 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해도 되겠지요?”

 

그들의 정체는, 두둥! 

 

‘딴지 커피 8대 천왕’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커피 관련 현업에 종사하는, 맛에 있어서 최고를 자부하는 전문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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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준비되어 있는 커피믹스들의 모습

 

“아니, 갑자기..”

 

“여기 우리 전. 문. 가. 3인방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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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유광훈은, 오랜 시간 동안 바리스타와 커피 전문가, 강사 등으로 활동했고, 다수의 커피 대회 심사위원을 맡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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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훈 바리스타

 

그 옆에 있는 남지우는 역시 바리스타로 다수의 커피 대회에서 수상했고, ‘믹스커피 말고 아메리카노를 주시라요’라고 했던 현송월에게 평창 올림픽 당시 커피를 제공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현재는 찾기도 힘든 곳에서 비밀리에 카페(를 빙자한 술집)을 열어 커피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의 아지트를 차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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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우 바텐더...가 아니라 바리스타

 

그리고 사진에 얼굴이 나오는 것을 꺼린 임 모 씨는 카페에 와 있던 손님이라고 한다. 손님?

 

 

불가사리 : 카페 손님이 전. 문. 가. 인가요...

 

남지우 : 후훗. 우리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전문가라 하기에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불가사리 : 저분은 뭐 하시는 분인데요?

 

임 모 씨 : 저 변호산데요.

 

남지우 : 사실 오늘 오기로 하신 다른 분이 있었는데.. 딴지일보를 상대해야 한다니까 갑자기 안 오신다고 하셔서...

 

불가사리 : ...

 

남지우 : 어쨌든, 시작하죠, 테스트.

 

 

어떻게 테스트했나

 

과연 커피 전문가들답게, 이들은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테이스팅에 사용하는 용지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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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커피를 

 

-Flavor(향미, 입에 넣었을 때의 향이라 보면 된다) 

-Aftertaste(마시고 나서 입에 남는 맛, 깔끔한지 여부를 평가한다) 

-Acidity(산미, 점수가 높을수록 산미가 높은 것은 아니고 산미가 얼마나 기분 좋게 구현되었는지를 평가했다)

-Body(바디감,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감촉과 무게감이 어떠한지)

-Balance(밸런스, 얼마나 균형 있는 맛인지)

 

로 평가했다.

 

사실 기준은 훨씬 더 많았으나 믹스커피 테이스팅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기준들은 제외했다.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향 / 깔끔함 / 시큼함 / 바디감 / 균형미 정도로 나누어 평가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타당한 평가 자료인 것이, 지난번 리뷰의 근육병아리 기자처럼 모든 리뷰를 시다와 쓰다로 구분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임 모 변호사도 상당한 커피 애호가라고 하지만, 현업 종사자들인 유광훈, 남지우의 점수에는 2배의 가산점을 주었다.

 

이렇게,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현업 종사자들의 믹스커피 블라인드 테스트

 

일단 결과부터 공개한다. 지난번 테스트는 현재 국내 최정상급 카페인 ‘딴지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가 한 분 계셨지만, 그 외 사람들은 일반인의 기준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손님인 임 모 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현업 종사자들의 평가에 가깝다. 지난번과 큰 틀에서는 비슷했지만, 흥미로운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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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회사 때문에 선호하지 않았던 ‘프렌치 카페 커피믹스’가 여기서도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번에는 최하위였던 네스카페 수프리모가 간발의 차이로 2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딴지 8대 천왕’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던 쿠팡의 PB제품인 ‘곰곰 모카골드’는 여기서 압도적인 꼴찌가 되었다.

 

 

1.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바리스타들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맛이고 밸런스가 좋다고 평가했다. 불가사리는 지난번 테스트를 하고 나니 이 커피의 특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산미와 쓴맛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지만, 조금은 가벼운 특성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약간은 맛이 연하다고 보았는데,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이, 맥심 모카골드 등 다른 커피보다 한 스틱당 분량이 1.2g 정도가 부족한데, 물의 양은 비슷하게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다른 커피보다 결과적으로 가격은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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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무난하고 균형이 잘 잡혔으나 농도감이 약함(유광훈)”

 

“익숙하지만 좋은 밸런스(남지우)”

 

 

2. 네스카페 수프리모

 

이변이다. 

 

‘8대 천왕’이 최하위로 꼽았던 네스카페 수프리모가 여기서는 2등을 했고, 1등의 83점과 단 1점 차이인 82점이다. 평균이 아니라 총점임을 생각하면 거의 같은 정도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바리스타들은 이 커피에 대해 향과 맛이 강하고 입에서 농도감이 진하다고 평가했다. 불가사리가 맛보기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커피 향과 카라멜 향이 느껴지고, 산미와 쓴맛도 강하지만,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은 거의 비슷했다. 지난번 ‘드립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잘못 넣은 맛’이라는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현업 종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맛보다는 여러 가지 향미가 느껴지는 이 커피가 상대적으로 좋게 느껴졌던 것으로 보이고, 드립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 맛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을 거북스러워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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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향이 약간의 탄 맛을 가리는 느낌. 전반적으로 농도감이 강하다(유광훈)”

 

“향은 괜찮지만, 뒷맛이 느끼하고, 물맛이 난다(남지우)”

 

 

3. 맥심 화이트 골드

 

맥심 화이트 골드가 약간의 차이로 3위를 차지했다. 일반인 대상의 테스트나 현업 종사자 대상의 테스트나 일관되게 프림을 넣은 커피보다 탈지분유가 들어간 커피에 대한 평이 더 좋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다시 마신 맥심 화이트 골드는 단맛이 좀 더 튀는 느낌이었고, 분유 냄새도 더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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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느낌이 강하고 커피의 맛이 덜 느껴진다. 후미에 느끼한 맛이 느껴진다. 다른 커피에 비해 가벼운 맛이다(유광훈)”

 

“설탕물(남지우)”

 

“가장 믹스커피의 취지에 부합하는 맛. 많이 먹으면 느끼할 것 같다(임변)”

 

 

4. 맥심 모카 골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커피 공룡 맥심 모카 골드는 이번 테스트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지난번 테스트에서의 순위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데 비해 맛 자체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평가를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마셔도 무겁고 끈적한 느낌인데, 이것이 올드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 같다. 다만, 유광훈 바리스타의 경우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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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커피에 비해 산미가 높으며, 산미로 인해 느끼한 맛이 감춰진다.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것인지 느껴져 높게 평가한다. 다만 조금 촌스러운 느낌은 있다(유광훈)”

 

“맛없다. 싸구려 자판기 맛이다. 어떤 포인트가 특별히 별로라기보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없다(남지우)”

 

“신맛이 너무 세고 인위적인 향이 강하다(임변)”

 

 

5. 곰곰(쿠팡) 모카골드

 

또 다른 이변의 주인공이다. ‘딴지 8대 천왕’이 최고위로 평가했던 커피인데, 여기서는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현업 종사자들은 놀랍게도 이 커피가 ‘베트남산 커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모두 알아냈다. G7과 비슷한, 로부스타 커피의 맛이 난다는 것이다. ‘딴지 8인방’이 고구마 향, 누룽지 향 등으로 평가한 그 향이 로부스타 특유의 향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자신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국인들 다수에게는 인기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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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맛이 강하다. 로부스타 특유의 쓴맛과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혹시 베트남 커피는 아닌지?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유광훈)”

 

 

“느끼하다. 하루 두 잔 마시면 위가 불편할 것 같다.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했는지 의문이다(남지우)”

 

 

한국인에게 커피는 무엇일까

 

불가사리의 커피 모험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다. 아시는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짤막하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에 대하여 살펴보자. 

 

둘은 모두 품종 이름으로, 아라비카가 전체 커피의 60% 정도, 로부스타가 38% 정도의 생산량을 담당하고 있다. 아라비카는 향이 복합적이고 신맛을 낼 수 있으나, 병충해에 약하고 기온 관리가 까다롭다. 반면 로부스타는 향이 덜하고 맛이 투박하지만, 재배가 쉽고 대량 수확이 가능하다. 

 

당연히 로부스타가 훨씬 싸고, 대부분의 ‘스페셜티 원두’는 아라비카 원두여서, 근래는 ‘아라비카 100%’로 커피를 만드는 곳도 많다. 고급 커피라면 로부스타 원두 비율을 점점 줄이는 추세에 있다. 

 

현업 종사자들과 커피 테이스팅을 하면서 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로부스타가 다수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커피는 후식이라기보다 따로 ‘티 타임’과 ‘커피 타임’에서 마시는 음료이고, 정찬 디저트와 함께 나올 때도 커피가 주인공이라기보다 단맛의 디저트를 먹는 것을 도와주는 음료에 가깝다. 그런 이유에서 전통적인 유럽의 커피는 진하고, 쓰고, 적은 양을 마시며, 종종 달다. 

 

한편 미국의 경우 커피는 식사와 함께하는 음식의 역할이 크다. 유럽은 식사에 와인이나 맥주 등의 술을 곁들이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면, 미국에서 콜라와 커피가 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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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파리 카페의 모습, 작은 커피잔과 주전자에 담긴 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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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네스카페 광고. 아침 식사와 함께이고, 점심 저녁때도 식사와 곁들이는 큰 잔의 묽은 커피의 모습이다.

 

그런 이유에서 전통적인 미국의 커피는 주스처럼 시큼하고, 농도가 진하지 않으며,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신다. 이러한 커피를 세계적으로 ‘아메리칸 커피’라 부르는데, 이탈리아의 대표적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칸 커피 중에는 구정물 커피가 있다. 대개는 썩은 보리와 시체의 뼈, 매독 환자를 위한 병원의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커피콩 몇 알을 섞어 만든 듯한 이 커피는 개숫물에 담갔다 꺼낸 발 냄새 같은 그 특유의 향으로 금방 식별할 수 있다. 이 구정물 커피는 감옥과 소년원뿐만 아니라, 열차의 침대 차량이나 일급 호텔 등에서도 마실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커피가 음식 문화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선호하는 원두, 선호하는 로스팅 스타일과 커피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커피의 지위는 무엇일까.

 

불가사리는, 한국의 커피의 주된 기능은 ‘숭늉’을 대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커피는 따로 커피 브레이크(티 타임)를 위한 음료이거나, 아니면 음식에 곁들여 먹는 음료이다. 우리처럼 본격적인 ‘입가심’의 기능을 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고, 가끔 디저트와 나올 때는 커피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달디 단 디저트를 먹는 것에 곁들이는 음료 정도의 지위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커피가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시간은 12시 30분 ~ 1시. 즉 점심시간 직후이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따로 먹지 않고 식당을 나온 후, 디저트 없이 커피를 마시는데, 그 커피는 절반 이상이 따로 설탕이나 우유를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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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이렇듯 커피가 ‘숭늉’을 대체하기에, 사람들은 커피에서 씁쓸한 맛과 구수한 향을 찾는 것이 아닐까. 반면 화려하고 복합적인 향기나, 상큼한 산미 같은 것들은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커피가 되기 힘든 것이 아닐까. 

 

불가사리의 가설이자 뇌피셜이지만, 강배전의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사실 한국인들은 아라비카보다 로부스타를 좋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아라비카 100%에서 향을 줄이고 구수하고 쌉쌀한 맛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로부스타를 블렌딩하여 적절히 로스팅한 커피가 한국인들에게 더 선호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이미 존재했던 ‘아라비카 100’등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모두 처절하게 실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지.

 

이러한 공상을 하며, 이번에는 스틱 블랙커피 리뷰에 나섰다. 리뷰의 결과는, 엄청난 이변이었다. 

 

 

현업 종사자들의 블랙커피 스틱 블라인드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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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후덜덜

 

딴지 ‘8대 천왕’의 리뷰에서 최하위였던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가 여기서는 1등, 뒤에서 2등이었던 이디야 비니스트 오리지널이 2등, 뒤에서 3등이었던(‘비아’를 제외하면) 네스카페 수프리모가 여기서는 3등이다. 

 

거의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수준의 놀라운 결과다. 

 

특히 ‘딴지 8대 천왕’의 맛 평가 1등이었던 동서 카누 마일드로스트가 아주 큰 차이(1위와 4위의 차이가 10점인데, 4위와 5위의 차이가 22점이다)로 최하위를 차지한 것은 충격적인 수준이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

 

불가사리는, 이 제품을 80년대 저가형 인스턴트 맛으로 칭했다. 

 

아무런 향도 나지 않고, 맛은 그저 무난할 뿐이라고. 이 판단은 ‘딴지 8대 천왕’도 동일했고, 이번 테스트에 참가한 손님 임변 역시 비슷하게 평가했다. 불가사리가 다시 마셔 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번보다 훨씬 맛있게 느꼈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현업 종사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남지우 바리스타는 

 

‘오 이 정도면 혼자 있을 때 굳이 커피 내리지 말고 이걸 타 마셔도 되겠는데요?’

 

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유광훈 바리스타 역시 

 

“밸런스가 잘 맞고, 너티한 향이 아주 좋다.”

 

고 했다. 불가사리가 이들에게 ‘너무 예전 인스턴트 커피 같은 맛이 아닌가?’라 질문했는데 ‘조금 클래식한 느낌이 나지만, 굉장히 밸런스가 잘 맞아서, 적당한 드립커피 수준의 맛이 나온다’는 답을 들었다. 

 

확실히 목 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하며,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진다. 쓰고 구수한 맛, 강한 터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나, 드립커피 애호가를 비롯한 커피 구력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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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클래식한 느낌. 그러나 밸런스 굿. 적당한 드립커피 수준”

 

 

2, 이디야 비니스트 오리지널

 

불가사리가 최악으로 평가했던 이디야 비니스트 오리지널이다. 80년대 저급 인스턴트 커피의 향과 맛이 나고, 알 수 없는 한약 향인지 간장 향인지 모르겠는 향이 났기 때문이다. 다시 마셔도 여전히 최악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현업 종사자들은 이 커피에 대해 아주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괜찮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밸런스 부분에서 높게 평가하기보다는, 입에 넣었을 때의 향미(딴지에서는 ‘간장 향’으로 표현하기도 했던)가 복합적이라는 평가. 근래 커피의 트렌드를 아는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렸다. 솔직히 불가사리는 여전히 납득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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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너무 신경 쓴 치우친 맛, 그래도 아라비카의 느낌이 있음(남지우)”

 

“카카오닙스의 향, 후미에 약간 쓴맛이 돈다(유광훈)”

 

 

3. 네스카페 수프리모

 

솔직히 이 커피는, 이 카페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부터 현업 종사자들에게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을 것이라 예상했다. 불가사리는 이 커피를 ‘고집 센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 드립커피의 맛’으로 칭했는데, 여기는 ‘고집 센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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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고집 세 보이는 사람들

 

일반적으로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신맛도 이들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맛일 수 있고, 향이 대단히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향이 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커피보다는 나을 수 있다. 어쨌든 드립커피와 비슷한 맛과 향이 나는 커피이고, 이 점에 대한 호불호가 이 커피에 대한 호불호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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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는 신경을 많이 썼으나 더 저렴한 재료로 열심히 만든 느낌(남지우)”

 

 

4.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딴지에서는 최고점을 받았던 커피, 남양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커피이다. 

 

불가사리는 이 커피를 ‘커피 좋아하는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의 1,800원짜리 아메리카노’라 평가했었다. 현업 종사자들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평가를 했는데, 대부분 ‘지루한 맛’이라는 평가였다. 

 

피카추를 좋아하는 한지우.. 아니 남지우 바리스타의 경우에는 거의 최하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기도 했다. 다만 유광훈 바리스타는 꽤 높게 평가했는데, ‘어떤 방향을 가지고 만든 것인지 알겠다’, ‘부드러워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인스턴트 같지 않은 맛을 내려 노력한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

 

반면 손님 임 변호사는, 불가사리나 ‘딴지 8대 천왕’과 마찬가지로 이 커피에 최고점을 주었는데, 그 이유 또한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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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맥심에서 변한 게 없는 느낌. 음식 만들 때 고민을 좀 했으면(남지우)”

 

“산미가 날카롭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는 괜찮다. 인스턴트 같지 않은 맛을 내려 노력한 것 같다(유광훈)”

 

“산미가 있으나 가장 먹기 편하다. 밸런스도 가장 좋고, 바디감도 좋고 깔끔하다(임변)”

 

 

5. 동서 카누 마일드로스트

 

오늘 최고의 이변,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동서 카누’이다. 기본적으로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로 쓴맛이 많이 났고, 탄 향기와 구수한 향이 함께 났지만 다른 커피에 비해 매우 강배전의 커피라는 것이 쉽게 느껴졌다. 지난번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이게 ‘마일드’면 대체 ‘다크’는 어떻다는 것인가. 

 

현업 종사자들은 대체로 점수를 짜게 주었지만, 막상 나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특히 남지우 바리스타의 경우에는 ‘거칠지만, 방향성은 명확하다. 그런데 그 방향성이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평가를 했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압도적인 카페 1위잖아? 그러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유광훈 바리스타와 임변의 경우 ‘방향성은 알겠는데, 로스팅이 너무 강하고 탄 맛이 너무 튄다’는 안 좋은 평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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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아할 수 있겠다.(남지우)”

 

“탄 맛이 너무 튄다.(유광훈)”

 

 

믹스커피 대장정의 끝

 

기나긴 믹스커피 대장정의 끝을 마치며, 리뷰 순위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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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의 경우 (네스카페 수프리모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가가 일치하는 편인데, 블랙의 경우에는 거의 뒤집어 놓은 것처럼 정반대의 평가가 나왔다. 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블랙커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딴지와 현업종사자들의 일치하는 반응은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다’는 것이었다.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의견. 대개 블랙커피는 ‘동서 카누’만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커피들이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블랙커피의 경우, 어떤 것을 이상으로 삼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방향성이 있어서 여러 가지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이 평소 드립커피에 익숙한지 아니면 에스프레소에 익숙한지,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커피의 맛이 향인지 산미인지 구수한 맛인지 등을 생각하면서 불가사리의 리뷰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각자 자신 나름의 ‘궁극의 믹스커피’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 모험은 어디로?

 

기나긴 믹스커피 리뷰를 마쳤다. 

 

이게 뭐라고 대체, 4회나 기사로 쓸 일인가 싶기는 한데, 여전히 댓글과 쪽지로 ‘결과를 납득할 수 없으니 다시 테스트해보자’, ‘이러이러한 커피도 있는데 테스트 안 하시나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분의 믹스커피에 대한 열정을 잘 알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불가사리는 커피 전문가가 아닌 별로 아는 게 없는 소비 모험가일 뿐이고, 믹스커피라는 주제는 불가사리가 하고 싶은 주제(아파트, 자동차, 오디오 등)와 심히 거리가 있는, 죽돌 편집장의 음모로 하게 된 주제에 불과하다는 점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꾸벅.”

 

지난번 와인 따개 특집으로 간 질병과 숙취에 시달렸던 불가사리는, 커피 특집을 거치면서 카페인 과다에 시달려 조증 환자 같은 상태가 되었고, 무엇보다 자식이 귀해졌다. 절대 술과 커피를 흥청망청 마시느라 아내와 사이가 멀어져서가 아니라 다 커피 때문이고 딴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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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7. 15. 조선일보 기사. 물론 현재 의미 있는 연구는 아니니 커피로 피임을 한다거나 하는 시도는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 딴지의 등골을 빼서 집안을 일으켜야 할 때가 왔다. 건다, 전화.

 

“편집장님, 이번에는 정말 아내가 납득할 수 있는 주제를 해야 합니다. 술이니 커피니 이런 건 안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무슨 주제가 좋을까요?”

 

“에어프라이어 어떨까요?”

 

“아 그거 좋네요! 리스트를 보내주세요. 후훗”

 

과거의 경험이 있는지라, 죽돌 편집장의 마지막 웃음소리가 맘에 걸리긴 했으나, 일단 불가사리는 부푼 마음으로 2박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아침마다 목욕재계와 인터넷 폭풍 검색 후 에어프라이어 리스트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부푼 마음으로 딴지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틀 뒤, 딸과 아내와 함께 놀이터에 있는 불가사리에게 음습한 벨소리가 울렸다. 역시나 그였다. 죽돌 편집장. 

 

“아이고, 불가사리님 죄송합니다. 총수님이 에어프라이어 리뷰는 너무 흔하니 나중에 하자고 하시네요.”

 

“아니 제가 리뷰하면 다른 리뷰랑은 다르죠! (딸에게) 응 잠깐만 아빠 통화 좀”

 

“네네, 제가 최대한 빠르게 에어프라이어 주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뭘 할까요?”

 

“(옆에서 보채던 딸이 넘어졌다) 여보, 얘 넘어졌어! 대일밴드 어딨어?”

 

“아, 대일밴드요? 알겠습니다.”

 

“아 그게 아니...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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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죽돌... (부들부들) 다시 한 번 복수를 다짐하는 불가사리.

 

그렇게 다음 주제는 흔히 ‘대일밴드’라 불리는, 일회용 반창고 리뷰가 되겠다. 살다 살다 이런 걸 리뷰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지 않은 세계가 어디 있으랴. 

 

불가사리는 ‘일회용 반창고’에 대하여, 언제나처럼 여러분에게 쓸데없는 지식을 자세히 알려 드리고 지나치게 진지한 리뷰를 성심껏 제공해드릴 것이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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