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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BM을 만든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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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가 '생존에 대한 절박감'이란 걸 느낄 수 있는 게 북극성의 개발이다. 핵보유국 중에서 SLBM을 만들고, 보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뿐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만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북한이 끼어들었다.

 

SLBM을 만든다는 건 상대방에게,

 

“우리 건들면 같이 죽는다!”

 

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기습적인 공격에 의해 지상에 있는 ‘알려진’ 핵무기가 제거되더라도 바다 속에 있는 주머니칼이 언제든 튀어나와 제2격을 날릴 수 있다는 거다. 이는 역으로 말해서,

 

“기습하지 마!”

 

라는 웅변일 수도 있다. 북한으로선 절박했을 거다. 툭하면 나오는 참수작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외과수술 같은 폭격이야기, 걸프전쟁, 테러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압도적인 제공권 장악과 스텔스기의 맹활약. 까놓고 말해 북한은 미국을 상대할 카드가 없다. 그나마 믿을 게 핵무기와 탄도탄이다. 그런데 이게 박살난다면?

 

벼랑 끝 전술로 생존을 도모해가던 북한은 언제고 상대방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

 

“참수작전 한 번 해볼까?”

“순항미사일 수백발 날리고, 가지고 있는 탄도탄 다 날린 다음에 특수부대 투입해 볼까?”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질 만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털어 만든 유일한 대항카드가 핵인데, 그걸 잃어버린다면 다음 수가 없다. 때문에 북한은 SLBM에 모든 걸 걸고 덤벼들었다.

 

핵무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사인을 보내야 한다.

 

“너희들 눈에 보이는 핵이 다가 아니야. 우리는 너희들이 찾지 못하는 핵도 가지고 있어!”

 

라는 신호인 거다. 북극성 시리즈의 존재이유다. 신포급 잠수함이나 그들의 SLBM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치 않다. 주목해야 하는 건 그들이 그걸 개발했고, 성능이 어떻든 간에 실물을 보여줬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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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본 이들의 마음에 ‘혹시나’란 생각을 품게 했다면, 그리고 그 '혹시나'가,

 

“북한이 보복수단, 제2격을 가지고 있다.”

 

라는 생각을 만들어 놓으면 전략적인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이나 한국은 기습적인 선제타격을 옵션에 올려놓기 부담스러워진다.

 

(물론, 북한영해로 들어가 북한의 전략잠수함을 감시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북한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도 대잠수함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탐지 수단도 없고, 설사 탐지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공격할 수단이 없다)

 

어쨌든 북한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핵추진 잠수함 건조(현재 설계연구를 끝냈다)와 SLBM 발사성공을 선언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꼭 필요했을 거다. (설계연구를 끝낸 것과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기술력이 있다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SLBM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도산 안창호급에다 수직발사대를 심고, SLBM 기술을 확보했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상식이 있다면,

 

“SLBM 탄두가 뭘까?”

 

라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현무-2B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미사일이라는데, 아직까지는 탄두는 재래식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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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의미가 있겠냐는 거다. 한국 땅에 무수히 깔리고 깔린 게 현무 시리즈 미사일이다. 그걸 바다로 옮겨서 쏜다는 거다.

 

재래식 탄두면 무게가 아무리 나간다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전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전략무기가 미사일과 잠수함이다(최고의 비대칭무기). 그런데, 이 두 개의 결합인 SLBM의 탄두가 재래식 탄두라면? 가치가 반감될 거다. 누가 봐도 마음속에서는,

 

“SLBM의 탄두는 핵이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우리 국방부도 핵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준비하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해봄직 하다. 겨우 6발, 나중에 가도 10발 밖에 탑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1발의 위력을 끌어올릴 생각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미사일과 최고의 궁합은 핵이다. 그리고 잠수함이라는, 지구상 최강의 은밀성을 자랑하는 플랫폼에 장착되는 미사일이다.

 

북한의 SLBM을 상대하기 위해 한국도 SLBM을 만들었는데, 탄두가 재래식이라면 뭔가 가다만 느낌이다. 낭비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한국은 북한에게 대응하는 모양새로 SLBM에 대한 뉴스를 내보냈다.

 

SLBM 기술 확보를 폄하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물속에서 미사일을 쏘아올린다는 것. 콜드 론칭(Cold Launching), 그러니까 압력으로 공중에 띄운 후 점화시켜 발사시키는 기술은 꽤 난이도가 높다. 물속에서 수면 위로 미사일을 쏘아올린 다음 발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역으로 말하면 북한도 이 콜드 론칭 기술을 확보했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의 기술력을 만만하게 볼 게 못된다.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차원 더 높은 전략무기를 가지게 됐다는 건 사실이다. (한국 국방부가 뭔가를 잔뜩 감추고 있다가 보따리를 하나씩 풀고 있다는 의문은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런 보따리는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속되는 의문은 '우리도 북한처럼 가는 게 아닐까'다. 김정은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말했듯 한국군도 착착 타임테이블에 맞춰 뭔가를 준비해 나가는 느낌이다.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여론을 미리미리 환기하고, 관련 인원들을 위탁교육 시키고 있는 상황. 미리미리 SLBM을 만들어 놓고, 수직 발사대를 심어놓고는 그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우리도 핵탄두를 달아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구라도 다음 스탭이 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만 하다. 우리도 핵탄두를 달아야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 말이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탄도탄이 가지는 은밀성과 기습의 효과는 충분히 주목해 볼만하다. 그러나 재래식 탄두라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핵무장을 말하고, 핵 보유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침이 있을 것이고 자연스레 동아시아의 핵도미노 러시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건 '근본적인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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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P News)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한국은 핵이 없다.”

 

국방부가 북한 핵탄두 1발의 원가를 산출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F-15K 5대 가격 정도였다. 겨우(!) F-15K 5대로 이 정도의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거다. 핵무기의 가성비가 이 정도다.

 

이미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위를 점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의 수도권을 코앞에서 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핵무기다. 특히나 핵무기의 경우는 상대할 수단이 매우 제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을 상대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건 난감한 문제다.

 

북한의 SLBM을 상대하기 위해 한국도 SLBM을 만들었다는 논리구조는 허점이 있다. 북의 SLBM은 핵을 단 SLBM이고, 한국은 재래식 탄두다. 오해가 있을까 말하지만, 한국의 SLBM 기술 확보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북한과 1대1 대응으로 보기엔 모자라는 의미다. 이 기술이 한국의 전략적 카드를 하나 더 늘렸고,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 유효한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쉬운 건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이란 카드가 가지는 전략적 우위다. 핵 앞에서 어지간한 재래식 무기는 그 빛이 바래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도, 우리가 그 핵을 막기 위해 킬체인이나 KAMD같은 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것도, 한쪽은 핵을 가지고 있고 한쪽은 핵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대칭성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SLBM이란 말이 나올 줄은 20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는데, 한국과 북한 모두 SLBM 기술을 확보하고, 자기들의 잠수함에 수직발사관을 심는 상황이 됐다. 한반도가 마지막 냉전지대란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