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노가다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러 경로를 통해 꾸준히 받는 질문이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노가다 일이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하겠다는 사람의 절박함과 열정을, 내 모르지 않는다. 나 또한 벼랑 끝에서 택한 직업이 노가다였으니.

 

그럼에도 그 절박함과 열정만으로는 쉽지 않다. 괜히 3D가 아니다. 제대로 한 번 부딪혀보려면, 알아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노가다꾼으로 살면서 받아온 질문을 정리한 건설노동자 입문 지침서, 노가다 길라잡이다. 

 

vbv.JPG

 

노가다꾼 적합도 테스트

 

① 나는 평소에 힘 좀 쓴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② 나는 체력과 지구력이 제법 좋은 편이다.

 

③ 나는 일상적인 근육통 정도는 견딜 수 있다.

 

④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다. 상사가 수시로 분노하고 쌍욕 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⑤ 나는 친구나 가족, 심지어 자식이 내 직업을 창피하게 여겨도 상관없다.

 

⑥ 나는 외모에 신경 안 쓰는 편이다. 피부가 새카매지거나 급격하게 노화해도 괜찮다.

 

⑦ 나는 수시로 직장을 옮기거나 대기발령 상태가 되는 고용불안을 견딜 수 있다.

 

⑧ 나는 일하다 찢어지거나 부러지거나 때에 따라 손가락 정도는 잘려도 참을 수 있다.

 

⑨ 나는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상은 노가다꾼이 되면 일상적으로 겪거나 겪을지도 모르는 여러 어려움과 조건이다. 해서, 일부러 좀 ‘쎄게’ 리스트를 뽑아봤다.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노가다판에서 4,926명이 죽었다. 연평균 492.6명이다. 주 6일 근무 기준, 매일 두 명꼴로 노가다판에서 죽어 나간다. 열정 만으로 버티기엔 쉽지 않은 일터다. 그만큼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단 얘기다.

 

노가다꾼에게 필요한 자격증은 무엇인가

 

"노가다하려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가?"

 

이 질문도 참 많이 받는다. 공통으로 꼭 필요한 자격증(은 아니고, 이수증)은 딱 하나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 노가다판에서 일하려면 예외 없이 취득해야 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이수증이다. 시험이 없단 얘기다. ‘안전보건교육포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역별 전문교육기관과 교육 일정이 상세히 나온다. 해당 기관 가서 4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니 교육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수증을 발급해 준다.

 

자격증이 꼭 필요한 공정도 있다. 굴삭기, 지게차, 크레인, 덤프트럭 등 주로 중장비를 다루는 토목 공정에서 일하려면 관련 자격증이 필수다.

 

간혹, 학원에서 이론 수업과 실습 과정을 밟고 오는 사람도 있다. 냉정히 말해 별 도움도 안 될뿐더러 현장에서도 그런 건 잘 인정 안 해준다. 학원 다닐 시간에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는 게 차라리 빠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노가다꾼은 기본적으로 일용직이다. 오늘 하루 일해 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당연히 채용공고, 서류 접수, 입사 시험, 면접 같은 거 없다.

 

wwedsd.JPG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인력소로 새벽 5시 30분까지 가면 된다. 갈 때 주민등록증과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 안전화 꼭 챙겨야 한다.

 

들어가면 아저씨 몇 명이 의자에 앉아 졸고 있을 거다. 당황하면 안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정수기로 가준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휙휙 탄다. 호로록 호로록 마시면서 인력소 사장 옆으로 스윽 간다. 여기서 너스레 한 번 떨어주면 좋다.

 

“아휴~ 요새 일이 좀 있나? 개미인력(어느 지역을 가든 개미인력은 무조건 있다.) 다녔는데 거기는 요즘 일이 영 없어요.”

 

그러면서 책상 위에 주민등록증을 툭 올려주면 된다.

 

하하. 농담이다. 너무 초짜 티 내지 말란 얘기다. 인력소에 따라 ‘쌩짜’에겐 일을 안 주는 경우도 있다. 보내봐야 어버버하고 욕만 먹다 올 게 뻔하니까.

 

인력소는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종의 맛보기다. 잡부로 한동안 일하면서 노가다가 과연 나랑 맞는지,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이랄까. 실제로 노가다판 오는 상당수가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간다. 반대로 잠깐 머리 식히러 왔다가 의외로 너무 잘 맞아서 아예 눌러앉는 경우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인력소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공정과 현장을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가다라는 게 토목부터 전기, 설비, 형틀, 철근, 타설, 미장, 조적, 도장, 창호, 타일, 방수, 조경 등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평생 잡부 할 거 아니면 결국 저 가운데 하나는 배워야 한다. 어떤 기술이 내 적성에 맞을지, 잡부로 이 현장 저 현장 다니면서 한 번 둘러보는 거다.

 

그렇게 잡부로 열심히 하다 보면 기술 배울 기회는 자연스레 찾아온다. 노가다판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회를 형성하는 곳이다. 열심히만 하면 어련히 밀어주고 땡겨주고 끌어준다.

 

나 또한 딱 그 코스를 밟았다. 인력소 잡부로 일하다가 하청 직영 잡부가 됐고, 거기서 열심히 하다 보니 형틀목수 오야지 눈에 들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노가다도 인맥이다

 

"인력사무소는 도저히 못 나가겠어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도저히 인력소 나갈 용기가 없다. 사실 이런 내성적인 사람은 노가다가 어울리진 않는다. 그래도 굳이 해봐야겠다면 방법이 있긴 하다.

 

이 방법을 소개하려면 우선 노가다판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위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노가다꾼은 일용직이다. 비정규직 nono~! 정규직 nonono~!!! 일용직이다. 애초에 소속감이라는 게 잘 없다. 그래서 사람 들고나는 일이 아주 흔하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현장으로 떠나거나, 오늘 오전까지 열심히 하던 사람이 점심시간에 오야지랑 한판 붙고 오후에 쫓겨나는 일? 이 바닥에선 아주 흔하다.

 

바꿔 말하면 한자리 만드는 것도 우습다는 얘기다. “그 회사는 도대체 신입사원 언제 뽑는데?” 같은 개념이 노가다판엔 없다. 오늘이라도 당장 오야지 ‘오케이’ 사인만 떨어지면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 그럼 오야지는 언제 ‘오케이’ 하느냐. 8할 이상이 지인 추천이다. “아는 동생인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이게 전부다.

 

그러니까 인력소 가기 싫은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자. 친구의 아빠, 아빠의 친구, 사돈의 팔촌, 팔촌의 사돈, 친구의 선배, 선배의 친구 가운데 분명 한두 명쯤은 노가다꾼이 있을 거다. 혹은 건설사 직원이라도 한 명 정도는 분명 있을 거다.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 사람이 안 되면 그 사람이 아는 또 다른 노가다꾼이라도 소개해줄 거다. 기술 배우고 싶다고 당당히 얘기하면 된다. 나이가 좀 젊다면 모셔갈지도 모른다. 노가다판에서 젊은 사람은 아주 귀한 인력이다.

 

최후의 수단

 

인력소 나갈 용기가 없고, 주변에 사돈에 팔촌까지 싹 털어봐도 관련 업종 종사자도 없다면, 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다. 노조에 가입하는 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에 가입하면 각 지역본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신입조합원 교육 및 대기 절차를 거친 후, 현장으로 연계해준다. 우리 지역의 경우 건설노조 산하에 형틀, 철근, 시스템, 타설 등의 공정팀이 있다.

 

지역본부 사무실 찾아가서 노가다도 안 해봤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노가다는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거다.

 

나는 노조도 싫다!!~! 휴. 진짜 마지막 방법은 온라인이다. ‘골조인’이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내가 알기로 노가다 관련 온라인 플랫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골조인’에 들어가 보면 수시로 구인구직 글이 올라온다.

 

최근에는 인력소 온라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어플도 하나 생겼다. ‘가다’라는 어플이다. 간단한 가입 절차를 거치면 지역별, 직종별 일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첫 출근을 하는 당신에게

 

당신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첫 출근을 하게되었다면, 일단 환영한다.

 

우선은 작업복과 좋은 안전화를 꼭 챙겼으면 좋겠다. 요즘은 날이 더우니까 생수 한 병 정도 준비하면 좋다. 혹시 모르니 주민등록증과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도 챙기는 게 좋을 거 같다. 때에 따라 통장 사본을 달라고 하는 곳도 있다. 이점도 염두에 두길.

 

제일 중요한 건 저녁 든든히 먹고 일찌감치 푹 자는 거다. 위에서 잔뜩 겁주긴 했지만, 노가다판이라고 다를 거 없다. 여기도 그냥 보통의 밥벌이 현장이다. 최상의 컨디션과 적극적인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면 “에이 X팔,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하고 나오면 된다. 일용직인 것도 서러운데, 그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암.

 

어쨌거나, 건투를 빈다. 부디 몸 건강하시길!



f5a4659954ce55a6f16ba7d867ec0c1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