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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독립기념일 즈음해서 한국에서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 잠수함 발사 탄도탄) 발사를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통 이런 경우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게 정상인데, 한국이 미사일 발사 성공을 보도하니 기분이 묘했다.

 

(실제로 미국 독립 기념일 기념으로 북한이 폭죽놀이를 하는 건 거의 연례행사 같은 일이다. 올해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생각해서인지, 코로나 시국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저냥 넘어갔다. 대신 한국에서 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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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폐기 된 후 한국군의 무기들이 갑자기 성능 개량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SLBM 발사 성공도 비슷한 맥락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마사일 사거리 지침이 개정되자마자 얼마 안 돼 현무 4 미사일을 쏘아 올렸을 때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2.

자, 문제는 이 SLBM이란 녀석이 어떤 녀석이길래 다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는 거다. 이게 좀 무시무시한 무기체계인 건 맞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녀석은 우리나라의 ‘전략적 방향성’을 결정 지어줄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해군 잠수함사령부가 요원들을 선발해 모 대학 원자핵공학과에 위탁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4년에 한국형 핵잠수함 원자로의 기본 설계를 완성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이미 한국은 결정권자의 의지만 있다면,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된 거다.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핵추진 잠수함과 핵탑재 잠수함은 다르다. 이건 동력원을 핵에너지로 쓴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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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문제는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이다. 이 3,000톤급 디젤 잠수함의 미래를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벌써 1번함인 도산 안창호 함에 VLS(vertical launching system : 수직발사장치) 6개를 심었다(Batch-II 부터는 10개씩 심을 예정이다). 여기에는 현무-2B를 기반으로 한 SLBM을 장착할 예정이다. 사거리가 500킬로미터라는데, 이건 더 들어봐야 한다. 해군이나 국방부의 말을 다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SLBM이란 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대단한 무기체계인 건가?”

 

라는 질문이 나올 거 같은데,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3. SLBM이란 무엇인가 

 

우리 군에서 계획 중인 ‘합동화력함’이란 배가 있다. 

 

“배에다가 미사일 수십발을 쟁여 놓자.”

 

“왜 그래야 하는데?”

 

“미사일이란 게 전략무기잖아? 그럼 적들도 제일 먼저 이 미사일들을 노릴 거 아냐.”

 

“그렇겠지?”

 

“그럼 1차로 지상에 있는 미사일들이 당하면, 우리도 보복무기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이때를 대비해서 배 한척에다 미사일을 잔뜩 달아놓고, 해상에서 대기시켜 놓는 거지. 그리고 여차하면, 여기서 미사일을 날리는 거야!”

 

이 합동 화력함에 대해선 찬반이 명확히 갈린다. 군사 쪽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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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90년대 미국에서 시도하다가 접은 아스널쉽(Arsenal ship)이잖아?”

 

란 말이 바로 나올 거다. 해군 항공대의 힘을 빼기 위한 대표주자처럼 부각된 함종인데(계획만 했었다), 500발의 미사일을 단 채로 가다가 적국을 타격할 일이 있으면 미사일을 쏟아붓는다는 개념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항공대나 항공모함 운영유지비용보다는 싸게 먹힐거란 판단을 내렸지만, 이 함종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췄다. 우선 이 500발이나 되는 미사일을 다는 것 까지는 어떻게 넘어가겠는데, 만약 이 함정이 격침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냐는 거다. 자체 방어무장도 빈약한 상황에서, 대공, 대함, 대잠의 방어막을 쳐야 하는 거다. 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저기 미사일 많이 달린 녀석부터 박살낸다! 저것만 제끼면 우린 안전하다!”

 

라고 생각할 거다. 즉, 최고의 공격 목표가 된다는 거다. 우리나라 합동 화력함의 문제점이 바로 이거다.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이 합동 화력함은 피할 곳이 없다. 

 

바다 위에는 엄폐물이 없지 않은가? 레이더로 바로 탐지 가능하다. 게다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한 방 잘못 맞으면 그 비싼 미사일이 몽땅 수장되는 거다. 원래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다 담는 게 아니다. 미사일 같은 전략병기는 되도록 분산 운용하는 게 유리하다. 

 

그렇다면, 이걸 보다 안전하게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바다 속이다. 

 

4. 가장 은밀한 곳에서 쏘아 올리는 가장 무서운 무기 

인간이 전장으로 삼고 있는 땅, 바다, 바다 속, 하늘, 우주 이 다섯 개의 공간 중 가장 은밀한 곳이 바다이다. 가시광선은 물론, 전자파까지 어지간한 건 다 묻어버리는 게 바다의 힘이다. 이런 곳에서 숨어 있다가 미사일을 쏜다면? 적은 발견하기 어려울 거다. 

 

이렇게 나온 게 바로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 잠수함 발사 탄도탄)이다. 냉전 시기 인류를 구원한 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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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태평양사령부의 SLBM 시험 발사 장면

출처/미 해군태평양사령부

 

아까도 말했지만,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자신의 핵무기들을 분산 운용했다. 폭격기를 핵 투발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 대륙간탄도탄(ICBM)을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잠수함에서 핵무기를 발사하는 SLBM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게 바로 핵무기 3대 전력이다. 

 

이 3대 전력 중 가장 은밀하면서 무서운 게 SLBM이다. 핵폭격기나 ICBM도 무서운 건 매한가지지만, 이게 어디 있는지는 작정하면 찾아낼 수 있다. ICBM이나 대륙간폭격기 같은 건 기지만 발견하면 기습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아니, 발견을 다 못해도 좋다. 아예 작정하고 수 천 발 이상의 핵무기를 발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군 기지란 기지에는 다 발사하고, 미사일 사일로나 이동식 발사대가 있을 만한 곳에 핵을 다 쏘는 거다. 이럴 경우 잘 하면 적의 핵전력을 다 붕괴시킬 수 있고, 안 되더라도 적의 핵전력을 갉아 먹을테니,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된다. 

 

“아예 미친척하고 수천 발을 쏘아 올려봐?”

 

이런 유혹에 빠질 만하다. 이걸 막아준 게 SLBM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류가 전장으로 삼은 곳 중 가장 은밀한 곳이 바다 속이다. 물속으로 들어간 잠수함을 찾는 건 아군도 힘들다. 하물며 적군이 영해를 넘어와 전략잠수함을 찾는 건 힘든 일이다. 

 

물론, SLBM에도 약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물속에서 쏘는 거니 대륙간탄도탄(ICBM)보다 그 정확도가 약간 떨어진다는 거다. 그러나 어차피 핵탄두를 달고 쏘는 것이고, 제1격은 대륙간 탄도탄들의 몫이고, SLBM은 보복무기 성격이 강했기에 냉전시절 전략잠수함들은 본국에 핵공격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즉시 적국의 대도시를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정확도가 높은 ICBM은 적의 전략자산들을 타격하는데 동원했고, SLBM은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졌기에 대도시 같은 곳에 보복용으로 활용됐던 거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 된 게 기술이 발전되면서 SLBM의 정확도도 올라갔기에 큰 의미는 없다. 대륙간 탄도탄이 12,000킬로미터 정도 날아가는데, 요즘 SLBM은 기본 8,000~12,000킬로를 날아간다. 미국의 SLBM인 트라이던트 II는 12,000킬로미터를 날아가는데, 원형공산오차가 120미터 안쪽이다. 핵탄두를 단 미사일이 100미터 안쪽의 오차를 보인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 정확도를 보이기 때문에 영국은 가지고 있는 핵무기 체계를 모두 폐기하고, 오로지 SLBM으로만 무장하고 있다. 영국도 미국의 SLBM인 트라이던트 II를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SLBM은 적의 공격의지를 막아내는 최고의 안전장치였던 거다. 그랬기에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의 전략잠수함들이 바다 속으로 기어들어가 전략초계를 했던 거였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나 <붉은 10월호> 를 보면 그 과정이 잘 표현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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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나다!

딴지일보 독자들이라면 이미 다 봤겠지만. 

 

자, 문제는 말이다. 이 SLBM이란 게 한반도 땅에 등장했다는 거다. 2014년부터 북한에서 북극성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거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골프급 잠수함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물론, 잠수함으로 구입한 게 아니라 고철로 사들인 거다. 러시아 역시도 제 정신이 박혀 있는 존재였기에 주요 전자장비나 무장은 다 제거했지만, 북한이 이 골프급으로부터 수직발사관 기술 같은 걸 배웠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SLBM 개발에 있어선 여러 설이 있다. 골프급을 개조했다거나, 골프급에서 기술을 얻어와 독자적으로 신포급을 만들었다거나 등등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건 북한이 골프급을 수입했던 사실이 있다는 거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이를 갈며 SLBM을 만들었다. 바로 <북극성>의 탄생이다. 몽당연필 디자인에 동체에 ‘북극성’이라고 이름을 박아넣은 걸 보면, 김정은의 노림수가 너무도 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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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케 생겼다 

 

폴라리스(Polaris : 북극성)은 1960년대 미국이 세계 최초로 실용화한 수중발사 SLBM이며, 이후 20여년간 운용한 미국의 대표적인 SLBM이다(영국이 이걸 사가서 운용했다). 그런데, 북한이 자신들의 SLBM에 북극성이란 이름을 붙인 건... 누가 봐도 그 수가 뻔히 보였다. 이걸 중2병이라 불러야 할지, 관종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북한도 SLBM이란 게 있다는 건 확인이 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