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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 정보 전달이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

 

골프를 칠 때 라운딩 하는 동안 캐디의 도움을 받는다. 캐디가 하는 일은 보통 클럽을 닦아주고, 가져다주고, 코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왼쪽은 해저드고 오른쪽은 OB입니다. 오른쪽은 보이는 것보다 넓어요"

 

이런 정보를 보통 골퍼들이 티박스에 올라가기 전에 알려준다. 첫 번째 티샷을 하는 골퍼가 티를 꽂고, 공을 올려놓은 다음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는다. 이때 누군가 장난이든 고의든 소위 ‘야지’를 넣는다. 보통 하는 장난으로는, 캐디가 얘기했던 정보를 다시 읊어준다.

 

"캐디님 왼쪽이 해저드에 오른쪽이 OB 맞죠?"

 

이런 ‘야지’를 들으면 티샷을 준비하는 골퍼는 짜증을 내거나 티샷을 실수하거나 한다. 물론 아주 잘 치는 골퍼는 상관없겠지만. 사실 뒷사람은 캐디가 알려준 정보를 다시 한번 얘기한 거 밖에 없다. 하지만 티샷 준비하는 골퍼는 엄청나게 짜증을 내거나 티샷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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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정보를 전달하면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스포츠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대기타석에 있는 선수에게 다가가서 얘기하는 타격코치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선수들에게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쳐라"

 

"몸 쪽 공 조심해라"

 

"바깥쪽 슬라이더 던지고 체인지업 던진다"

 

등 많은 정보를 주고 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당연히 선수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게임 시작 전 전력분석 미팅 시간을 가진다. 전력분석원이나 타격 코치가 상대할 투수에 대한 정보를 선수들에게 알려준다. A라는 선수가 던지는 구종, 구종별로 구속은 어느 정도 나오는지 등등. 이미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었음에도 게임 중 다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 거의 모든 팀에서.

 

선수들은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상대할 투수를 어떻게 공략할지 나름 계획을 세우고 타석에 들어선다. 게임 전 전달받은 정보와 그동안 본인이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수립된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집중하고 있는 선수에게 또다시 지도자가 정보를 주입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아주 혼란스럽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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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A라는 투수가 있다. 그가 던지는 구종은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이다. 타자 B가 더그아웃에서 생각한다. 예전의 경험에 따르면, A 투수는 직구 타이밍에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커브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상대하는 것이 계획을 세우고 대기타석으로 가나. 그때 타격코치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던지니까 알고 있어"

 

"커브는 원바운드가 많으니 조심해"

 

이러면 원래 선수가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확률적으로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어진다. 타격코치들도 선수 시절 이렇게 얘기하는 타격코치들을 보통 싫어했을 것이다.

 

예전 한 외국인 선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한국 코치들은 게임 중에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많은 정보를 계속 얘기하는데, 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코치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냐?"

 

대답은 이랬다.

 

"게임전에 정보를 충분히 주고받았다고 코치와 선수가 서로 믿는다"

 

그때 난 깨달았다. 왜 우리나라 코치들은 정보를 계속 얘기하는지.

 

얘기를 안 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선수는 불안해하지 않는데, 코치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코치가 불안해진다. ‘타자가 아까 얘기했던 정보를 알고 있을까?’ 이 걱정이 많은 말을 하게 만든다. 또한 게임 중 얘기할 정보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게임전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불안함으로 티샷 하기 위해 서있는 골퍼에게 ’야지‘ 넣듯이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코치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코치들이 꼭 불안감 때문에 과한 정보 전달을 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게임 중 선수들에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구단 프런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타자가 이렇게 못 치는데 타격코치는 하는 거 없이 왜 맨날 가만히 있냐"

 

코치는 선수들이 물어볼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그래야 좋은 지도자다. 선수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는 굳이 전달할 필요가 없다. 처음 가는 골프장에서 캐디가 얘기해 준 정보가 생각나지 않으면 티샷 하기 전에 다시 묻듯, 선수들도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부족한 정보가 있으면 타격코치에게 투수에 대한 정보를 다시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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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부진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야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유소년팀 감독들은 대부분 기본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프로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각 레벨의 지도자에게 지금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기본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프로 입단 전까지 야구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던 선수들이 프로만 오면 기본기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모든 단계의 지도자가 기본기를 강조하는데 왜 성인이 되어서까지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내가 내린 답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모든 선수들이 기본기가 충분히 있거나 아니면, 기본기는 향상되는 게 아닌 것이다. 어떤 프로야구선수가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난 강력하게 얘기한다. 그 선수를 스카우트한 스카우트와 프런트는 전부 사표를 써야 된다고. 어떻게 기본기도 없는 선수를 계약금까지 줘가며 스카우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모든 선수들은 기본기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공을 던지고 받고, 수비를 할 때 자세를 낮추고, 타격을 할 때는 기본적인 타격의 순서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대체 왜 그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냥 야구를 못하면 기본기가 없다고 여기는 생각의 관성이다. 선수들이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하거나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선수의 ‘기본기 부족’이 가장 쉬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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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저 - NEWSIS>

 

야구는 실패가 많은 종목이다. 그래서 보통 야구를 실패의 스포츠라고 부른다. 좋은 타자의 기준을 보통 0.300의 타율로 평가한다. 3할 타자는 정말 대단한 평가를 받지만, 그의 타율이 3할이라는 의미는 7할은 실패했다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7할의 실패의 원인을 찾다 보면 무슨 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때 기본기란 말이 잘 나온다. 이 7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인을 계속 찾으면 슬럼프가 길어진다. 7할의 실패의 원인에는 너무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7할의 실패의 원인을 아무리 잘 찾아도 4할 타자가 될 수 없다. 야구는 그런 종목이다.

 

실패의 원인은 무수히 많다. 멘탈적인 문제, 체력 및 컨디션적인 문제, 기술적인 문제 등등. 우리는 항상 기술적인 문제를 먼저 찾기 때문에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이 선수의 현재 마음 상태가 어떤지, 몸에는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컨디션은 정상인지, 가정에 문제가 있어 야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인지 같은 것들을 체크하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 기술적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런 순서만 잘 지켜도 선수들은 큰 스트레스 없이 코치와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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