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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 : 딴지 편집부가 이런 곳입니다

 

본 글을 쓰기에 앞서, 필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연재를 강제하는 딴지 편집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매번 어떻게 해서든 글을 맺어 원고를 보내고 있지만 편집자는 'To be continue'를 교묘하게 끼워 넣어 연재를 지맘대로 늘리고 있다.

 

"분명 처음에 당신들이 청탁한 내용은 '미국에 거주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코로나 시대의 미국 변화상'을 단타로 스케치 해달라는 거 아니었냐. 왜 자꾸 상의도 없이 일을 벌이냐"

 

고 텔레그램, 보이스톡, 이메일 등 이역만리에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편집부에 항변하고 있지만,

 

"난 모르는 일이다. 편집장에게 따져라." (근육병아리)

"전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지않는돌고래)

 

이딴식으로 나온다. 아니, 무슨 검사들도 아니고.. 앞으로 딴지 편집부가 대한민국 검찰을 비판하는 기사를 올리면, 니들이 더하다고 악플을 수놓을 것이다.. 김웅웅웅ㅠ

 

암튼, 내 의지와는 1도 상관없이 시작된 연재물이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자. 언젠간 놔주겠지..

 

아메리칸 스탠다드

 

2001년, 미국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이때 받았던 미국에 대한 인상은 좋았다. 그게 아마 내가 미국으로 다시 유학을 오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해 정착하게 된 계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받았던 좋은 인상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아메리칸 스탠다드.'

 

잔디가 깔린 쾌적한 주택에서 사는 평범한 중산층들. 아무 깡시골에 가더라도, 깨끗하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던 화장실들.

 

10억이 넘는 아파트들이 멋들어지게 서있고 고속도로 휴게소나 지하철 화장실들이 호텔처럼 삐까번쩍 해진 지금 한국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어린 내 눈에 비친 미국은 간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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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진 여유였다. 내 아버지는 헤비 워커홀릭이었다. 한국에 계셨을 때는 주말에도 늘 일을 하시거나 경조사를 챙기셨다. 그러나, 미국으로 파견 나오셨을 때는 평일에도 오후 4시면 퇴근하셨다. 미국 주정부 공무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칼퇴를 한다. 아무도 눈치 보면서 야근하지 않고, 주말이라고 친목 등산이나 테니스를 치지 않는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다들 먹고산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명목적으로 유효하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여전히 좋은 환경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물질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더 빨라진 인터넷과 이전에는 없던 아이폰을 가지고서,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을 한다. 미국은 이러한 기술진보의 혜택을 누리는 단순 이용자가 아니라, 혁신을 이끌어온 선도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전보다 빈곤해졌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증발한 아메리칸드림

 

빈곤이란 상대적인 감정이다. 한때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은 독보적으로 높았다. 다른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복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현대적인 집을 지었다.

 

미국정부는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젊은이들을 위해 대대적인 경제활성정책을 내놓았다. 그중에는 참전 군인에게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이 있었다. 빚내서 성장한다는 미국의 경제모델은 이때부터 확립되었다.

 

새로 지어진 집에는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당시로서는 최신이던 가전제품이 놓였다. 일본과 독일이 전후 경이적인 경제성장으로 주목받는 것에 비해, 같은 시기, 미국 경제가 누렸던 경제 호황에 대한 기억은 많이 희석되어 있다.

 

전후 미국은, 정말로 위대한 국가였다. 그 위대함이란, 최신 전투기나 우주로 쏘아진 아폴로호에만 담겨있었던 것이 아니다. 평범한 미국인들이 사는 집, 그리고 타고 다니는 차로 대변되는 생활수준 속에 미국의 위대함이 있었다. 아메리칸드림. 한국이나 중국 같은 곳에서 웬만큼 잘 사는 것보다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에 가서 자리 잡는 것이 낫다는 열망이 담겨있는 단어였다. 불과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미국인들이 누리는 생활수준은 그만큼 월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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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홀로집에>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은 사라졌다. 더 이상, 세계시민들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보고서, 무작정 미국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전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이 요즘 현타를 느끼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개고생해서 산 미국 주택을 처분해도, 본인이 예전에 살았던 서울 아파트를 다시 살 수 없다. 이민 와서 아등바등 지내며 보낸 시간이, 그 노력이 왠지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제조업의 몰락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높으신 분들은 물론 여전히 위대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굴리거나, 기술 변화를 선도한다. 덕분에 미국이란 나라는 여전히 강대국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미국인들은 이제 본인들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자본과 기술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남겨진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더 이상 본인들이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던 트럼프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래서 먹혀들어간 것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위대해지는지, 다시 위대해지는 것이 가능은 한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소외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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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미국인들의 소외는 자본의 논리가 만들었다. 실질 임금, 노동이 갖는 경제적 가치가 하락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체 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초기만 하더라도,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려면 많은 노동자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아직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화 기술과 설비는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시게 발전했다. 웬만한 단순노동은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정확하다. 생산되는 제품 또한 대량생산 위주의 철강에서, 기술집약적인 전자제품으로 다변화하였다. 로봇암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현대적 공장에서, 엔지니어를 제외한 인간의 중요도는 점점 줄어든다.

 

여기에, 세계화 문제를 추가해보면 아메리칸들은 더 답이 안 나온다. 가뜩이나 기술발전으로 단순노동에 대한 수요는 감소했는데, 그 줄어든 수요 대부분을 중국 등이 흡수해버린다. 미국의 제조업은 그렇게 몰락했다.

 

파레토의 재림

 

제조업 붕괴 속에서도 미국 경제를 지탱한 것은 서비스업이다. 미국은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여, 기술혁신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퉁치고 넘어가기엔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조업에서는, 다수가 생산에 직접 참여한다. 가장 생산 기여도가 높은 공장장이나,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견습공의 급여 차이 또한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반면 서비스업에서는, 절대다수가 생산과 무관한 일을 한다. 가장 고용효과가 높은 일자리는, 월마트 같은 소매점과 맥도날드같은 패스트푸드점이다. 대다수는 이미 생산된 제품을 옮기거나 고객을 응대하는 단순 서비스를 행할 뿐,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제품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다. 서비스업의 꽃인 금융권이나 테크에서도, 실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코드를 짜는 직원들의 숫자는 놀랍도록 적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확대될수록, 대다수 미국인들은 생산과정에서 소외되고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소득격차로 반영된다. 스타 펀드매니저, 스타트업 창업자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같은 회사의 단순 서비스직 직원들은 박봉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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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서 시작해서 빚으로 끝난다

 

노동의 가치는 하락했지만, 중산층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미국 학부 졸업생들의 평균 학자금 대출액은 3천만 원이 넘는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에서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결국 많은 신입사원들이 자기 연봉보다 많은 채무를 달고 사회생활은 시작한다. 여기에 집값, 생활비, 양육비가 추가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허들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데, 노동을 통한 소득은 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빚을지는 것 말고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

 

미드에도 잘 나오지만, 미국인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주택담보대출, 유치원비, 병원비 등을 모두 감당하면서 살기가 벅차다. 그래도 부족하면, 대출을 받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학자금, 자동차, 주택융자대출 등등. 빚에서 시작해서 빚으로 끝난다. 미국인의 삶을 가장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말이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이 장시간 노동과 빚에 시달리면서 팍팍해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뻑갔던 삐까번쩍하고 여유 넘치는 미국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여전히 위대할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의 삶은 위대하지 않다.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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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P>

 

재난은 강자에게 관대하다

 

자본의 논리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기술발전을 통해 노동을 대체하고, 노동을 덜 중요하게 만들려 한다. 그게 더 이익이 되니까.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주입한다. 구성원들이 더욱 많은 것을 욕망하고, 이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소비해야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가니까.

 

이러한 자본의 논리를 상기하지 않고서는 코로나 기간 동안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미친 듯이 오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다수 국민의 삶이 힘들어진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테크와 금융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핵심인력들은 재택근무를 해도 충분히 높은 생산성을 유지한다. 따라서, 경제는 붕괴되지 않았다. 

 

테크와 금융은 멀쩡한데도,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미친 듯이 돈을 풀었다. 정책결정자들은 괜찮은 소수가 아니라 힘들어진 다수를 보고 정책을 짜는 게 맞으니까. 이에 따라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낮춰주고, 금융자산을 대대적으로 매입해주었다. 중앙정부도 재난지원금을 왕창 뿌렸다.

 

그 결과, 원래도 괜찮았던 테크와 금융은 엄청난 버프를 받게 된다. 재난상황은 신기술이 채택되는 속도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여기에 연준과 정부가 풀어낸 엄청난 돈은 고스란히 자산 가격의 상승을 발생시켰다.

 

코로나 사태의 악랄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코로나는 약자에게는 무자비하고, 강자에게는 관대하다. 원래 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더 살기 힘들어졌지만, 원래 여유 있던 사람들은 코로나로 오히려 덕을 입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약자는 점점 더 안전선 밖으로 내몰린다. 내몰리는 약자를 위해 지원책을 확대할수록, 가진 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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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코로나 후폭풍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집값은 10% 이상 상승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 다시 그 이상 상승했다. 불과 일 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 20% 이상 올랐다. 미국의 평균적인 주택 가격이 3억이라 할 때, 6천만 원가량 오른 셈이다. 주택을 보유한 국민과 보유하지 못한 국민 사이에, 평균적으로 그 정도의 격차가 발생한 셈이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미국은 코로나 사태 기간 동안 최저임금이 올랐다. 적게는 몇천 원, 많게는 만 원쯤. 만 원이라고 쳐도, 6천만 원만큼 늘어난 집값을 감당하려면 무려 6천 시간 더 노동을 해야 한다. 6천 시간이면, 주당 40시간 노동한다고 할 때 무려 3년 이상이 걸린다. 늘어난 최저임금을 고스란히 저축한다 해도, 내 집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이상 늦춰진 것이다. 여기에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까지 반영하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이보다 훨씬 크게 벌어졌을 것이다. 

 

현대 미국 경제 그리고 대부분 선진국의 가장 큰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집, 비트코인, 주식 등 자산의 가격이 너무 올라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큰돈을 버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투자다. 자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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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강제적으로 올리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본의 논리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는 점점 덜 중요해져 간다. 임금을 일괄적으로 올려버리면, 자동화 기술의 도입 속도만 더 빨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요즘 패스트푸드 매장에 가보면 키오스크 도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렇다고 기술의 도입 시기를 늦추자니, 세계 경제에서 혼자만 도태될 뿐이다.

 

자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금리를 미친 듯이 올려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땐 진짜 헬게이트 그랜드 오픈이다.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수두룩해질 테니까. 적어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획기적인 개선책이 보이질 않는다. 

 

안다. 하면 할수록 쓰면 쓸수록, 노 답인 이야기다. 그리고 비단 여기 아메리카 대륙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도 풀어내야 할 시험범위가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는 언젠간 공존의 방법을 찾아가겠지만, 코로나가 촉발시킨 사회경제적 위기는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

 

진짜 코로나 사태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두렵다.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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