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434ccdc0f3efec06f6ce0de3c065dedd.JPG

폐차한 뉴코란도

 

18년을 함께 해온 하얀색 뉴코란도를 폐차한 것은 2021년 겨울을 앞두고였다. 함께 한 젊은 날이 아쉬워, 달에 다녀올 만큼 오래오래 타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에 살포시 다녀오시면 좋겠다. 1편링크, 2편링크)

 

정든 차를 떠나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 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조기폐차 지원금도 나오고, 고철값도 받을거라 했다. 친환경 자동차를 구매하면 저공해차 구매보조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18년을 동거동락해온 차를 떠나보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움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환경과 미래를 위해 전기차를 타는 모습을 그리며 ‘아주 잠깐’ 행복회로를 돌려봤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는지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기 폐차비 100만 원과 고철값 43만 원.

 

코란도를 폐차하고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그게 전부였다. 새 차 값은 고사하고 계약금이라도 낼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추가로 150~20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친환경 ‘신차’를 구매할 경우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신차의 가격은 나 따위가 구매하겠다고 덤빌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지원금 200만 원 더 받으려고 4천만 원 짜리 신차를 계약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빈대 잡겠다고 초가집에 불지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비싼 차들을 나오자마자 턱턱 사는지 정말 놀라웠다. 나만 모르는 뭔가 뾰쪽한 수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인쇄소도 가야 하고, 작가미팅도 해야 하고, 지역 서점도 가야 하고, 도서전에 책도 날라야 하고, 전시회 짐도 날라야 하고… 이 모든 일을 매일매일 무리 없이 소화해주었던 게 나의 코란도였다. 사람들 머릿속에 은근히 존재하는 소위 ‘자동차 계급도’에서도 ‘찦차’라는 특이한 포지션을 지킴으로써 운전자의 ‘하차감’도 그냥 ‘오프로드 매니아’ 정도로 퉁쳐서 지켜주던, 눈물나게 유용하고 고마웠던 차였다. 도대체 150만 원도 안되는 돈으로 어디가서 그만한 차를 마련한다는 것인가.

 

난감했다. 폐차를 무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첫 번째 선택: 신차의 꿈, 새 차의 꿈

 

144DE8264B90787E2B.jpg

 

기억하시는가?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도 제일 크고 힘센 익룡을 지배하는 토르크 막토(토르크와 교감하는 사람을 토르크 ‘막토’라고 부른다)가 되고 나서야 나비족에게 인정받는다. 만일 그가 작고 약한 익룡을 꼬셨다면 나비족이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까?

 

누가 그랬다. 남자에게 자동차란 경제력과 사회적 신분을 말해주는 ‘물건 중의 왕’이라고. 크고 아름다운 탈 것이 자기의 능력과 신분을 대변해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범세계적 국룰임에 틀림없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크고 비싸고 좋은 자동차를 구매하고 스스로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대관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어떤 ‘사회적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말라비틀어진 통장 앞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통장을 뒤져 빚을 지지 않고 가용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예산이 500만 원임을 확인하고서는, 선택의 폭이 ‘그나마’ 존재할 중고차 시장으로 눈이 돌아갔다. (할부나 리스 등도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방법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새 차를 살 여력도 안됐지만, 처음부터 자동차에 수천만 원을 쓸 ‘의지’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고차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 산타페나 쏘렌토같은 SUV가 쓰임새가 좋겠지? —> (비쌈)

 

- QM3나 스포티지 같은 준중형 SUV는 어떨까? —-> (작고 비쌈)

 

- 가끔 가족들하고 여행이라도 다니려면 카니발 같은 미니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 (훨씬 더 비쌈)

 

- 코로나가 끝나면 책을 가지고 지방 도서전에도 다녀야할 텐데 렉스턴스포츠 같은 픽업트럭은 어떨까? —-> (그것도 엄청 비쌈. 만만한 건 코랭이 만큼이나 오래됐던데, 그거 샀다간 곧 또 폐차할 걸.)

 

- 성공의 상징 그랜져는 어떨까. 10년 정도 된 차는 잘하면 예산 맞을 거 같던데. —-> (10년 된 중고 그랜져 사면 성공한 거냐? 수리비 때문에 파산하는 거 아니냐?)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하다. 중고차의 가격이 비록 신차에 비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중고차임을 감안하고 보면 또 마냥 저렴해보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값이라면 한등급 높은 차였으면, 가능하다면 운행거리도 적었으면, 하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뿐인가, 어쩌다 싸게 올라온 차를 보면 마음이 끌리다가도 중대결함이 있거나 혹 사고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났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마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허구한날 애꿎은 검색조건만 이리저리 바꿔가며 방황하고 있었다.

 

 

두 번째 선택: 새로운 선택지

 

딱히 사고 싶은 것은 없는데, 꼭 사야만 하는 난생 처음 겪는 상황이 생각을 여러 갈래로 만들고 비비 꼬아서, ‘이럴 거면’과 ‘이왕이면’의 늪에 담궜다 건졌다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실현 가능성도 0에 수렴하는 말도 안되는 갈등의 상황을 헤매고 나니, 단순하게 생각하고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제의 본질은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자랑할 크고 아름다운 ‘토르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일터와 쉼터로, 필요한 곳에 내 몸뚱이와 책을 옮겨줄, 싸고 편리한 이동수단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차들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대신에 번뜩, 몇몇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머리에 들어왔다.

 

모닝, 레이. 그리고 스파크.

 

그렇다, 경차면 충분할 것 같았다. 마음을 먹고 나니 타인의 이목에 대한 자기 검열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린 내가, 오직 목적에 충실한 아주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바로 아내에게 성숙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자랑하고 칭찬의 찬사를 기다렸다.

 

나중에 들었는데, 아내는 좀 오래됐더라도,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소나타 정도의 중형 세단 정도를 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제 중년이 된 남편이 그래도 남들 눈에 너무 없어보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거저거 눈치 빤해진 아이들의 마음도 좀 헤아렸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금이나마 안전한 차를 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남편이 오십 먹도록, 중고차 한 대 사는 것도 망설이는 것이 안타까웠으리라.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다. 고민스러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친구나 가족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조율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런데, 조언과 상관없이 어쨌든 결론에 이르게 된 자신의 생각이 나름대로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점점 그 생각이 확고해지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분명해진다.

 

나도 그랬다. 형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만큼, 꼭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결국 동의해주었다. 대신, 적절한 옵션이 장착된 차를 골라 가능한 편히 탔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주었다.

 

 

내 차를 고르다

 

내친김에 아내와 함께 자동차를 구경하러 근교에 있는 중고차 시장에 들렀다. 전시된 차들은 새 차라고 해도 믿을 만큼 깨끗하고 반짝거렸다.

 

적절한 편의사양에 어느 한 곳 찌그러지거나 긁힘도 없는 깨끗한 모닝이 눈에 들어왔다. 막 세차를 했는지 실내에서는 향긋한 냄새도 났다.

 

541581f9300341890cd7125513d9bee839fb1d9039d9f908355b27e7753ce2ae7515577c9c3d8e2711be96a583caf29cee38f3900ec57e6a8e199ace09a81f07cc10442629add08bb6f24d742f8b0a0a57157f6fa050722190a1431fc84aa883.jpg

 

알아보니 출고된 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새 차인데다가 가격도 예산 내였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이 차로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담당 매니져도 퍽 친절하고 상냥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특정 중고자동차 시장에 관한 흉흉한 소문은 그냥 괴소문일 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성능 기록부 한 번 떼보시고, 계약해서 오늘 바로 타고 가시죠?”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담당 매니져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렇게 하자고 상담 테이블에 자리잡고 커피를 마시며 성능기록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성능 기록부를 가져오는 담당 매니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이 차는 하지마시고, 다른 차로 보시죠?”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매니져가 내민 성능기록부를 보니, 왼쪽 문, 왼쪽 휀다, 지붕, 오른쪽 문, 오른쪽 휀다까지 모두 판금수리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무지 깨끗하던데, 많이 고쳤나 보네요?”

 

매니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차, 한 번 구른 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보험 기록이 1회 밖에 없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정 마음에 드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다른 차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알고도 그 차를 살 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알겠다고, 좋은 차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왔다. (솔직하게 차를 평가해주고 수렁에 빠지지 않게 조언해준 그 매니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동호회 물건을 찾아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그래도 차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관리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 비교적 좋은 차를 만날 확률이 높고 직거래를 하면 조금이나마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차종별로 동호회에 가입하고 장터에 올라와 있는 차들을 훑어봤다. (차를 아끼며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을 보니 십수 년 전 뉴코란도 동호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장터에 들어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동호회를 통해 차를 사고파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고 골라 차주에게 연락했다.

 

차는 적산 거리 약 6만km 남짓의 2015년식 흰색 오토매틱 더 넥스트 스파크였다. ABS, 스마트크루즈, 차선이탈 방지장치, 하이패스룸미러, 전방 추돌 경고장치, 심지어는 정차시에 자동으로 시동을 껐다켜주는 ‘오토스탑앤고’ 기능까지, 코란도를 타면서는 생각도 못했던 온갖 첨단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차를 보여주러 나온 차주는 조카뻘 되어 보이는 키가 아주 크고 훤칠한 청년이었는데, 직장이 인천공항이라고 했다. 출퇴근용으로 주로 차를 썼고, 아버지가 새 차를 사주시기로 하여 이 차를 처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차도 마음에 들었고, 차를 파는 차주도 믿음직스러웠다. 마음을 굳혀 계약을 했고, 함께 구청에 가서 이전 작업을 마쳤다. 경차 혜택으로 취등록세가 50만 원까지 면제라서 이전 등록에 들어간 총 비용은 인지세 4천 원이 전부였다. (만세!)

 

함께 구청에서 이전작업을 하는 동안, 차주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친구 이야기, 친구들과 차를 타고 여행 다녀온 이야기 등등 차와는 별 상관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연히 한 사람을 사귀게 된 것 같았고 그 인생의 일부에 깊이 자리했던 무언가가 내게 오는 것 같은, 그래서 좋든 싫든, 짙든 옅든 우연이 결국 인연으로 연결되는 것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언제든 차에 관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연락달라며 명함을 주었다. 나도 그에게 언제고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면 그림책을 선물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나와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헤어지는 것으로 기분 좋은 거래를 마쳤다.

 

차에서 내리기 전, 그가 대시보드 위에 잠시 손을 얹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차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것이리라. 나의 새 차가 된 이 녀석에게 마지막까지 애정을 보여준 그가 고마웠다. 역시 중고 거래는 사연이고 기분이다.

 

 

내돈내산 경차 시승기

 

경차를 사서 타고 다닌지 벌써 반년이 넘어간다. 이제 웬만큼 차에 익숙해졌고 내 차 같은 느낌이 든다.

 

슬슬 단종 얘기도 나오고, 현대 자동차에서 20여 년 만에 다시 경차(경형 SUV란다.)를 출시한다는 뉴스도 나온 이 시점에 출시된 지 10년이 다 된 스파크 시승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때 자동차 리뷰어(보조)도 했었다고 슬금슬금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고 싶었다.

 

주행 질감이 어떻고 파워트레인이 어떻다는 기술적인 이야기는 이미 다른 리뷰에 많이 있으니, 쉰 살 먹은 아저씨가 타면서 느낀 ‘느낌 위주의 경차 시승기’를 정리해볼까 한다. 혹시 나처럼 경차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는 미세하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우선 스파크의 장점을 짚어보자.

 

t2.daumcdn.jpg

 

첫째, 귀엽다

 

나는 자동차야말로 궁극의 디자인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가장 먼저 보이는 요소가 디자인이고 이에 따라 차의 이미지, 곧 상품성이 먼저 좌우된다. (80년대에 개발된 엔진을 달고도 2000년 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뉴코란도가 그 좋은 예가 되겠다.)

 

이런 관점에서 스파크의 디자인은 경차의 특성을 잘 살렸다. 단점은 감추고 장점을 더 크게 부각시킨, 잘 된 디자인으로 칭찬하고 싶다. (모닝의 디자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쩐지 비슷한 것 같더라니…)

 

spark.jpg

 

물론, 영화 <트랜스포머>에 출연했던 1세대 스파크(M300)는 얘기가 좀 다르다. 그 녀석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얼굴이 너무 커서 가만히보면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당시 적용했던 미터 클러스터 디자인(계기판이 꼭 오토바이 계기판처럼 생겼다.)은 젊은 취향을 겨냥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차를 저렴해보이게 만드는, 경차의 단점을 오히려 크게 부각시킨 잘못된 디자인이라고 지적질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산 더 넥스트 스파크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계기판으로 속도와 RPM같은 주요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LCD 정보창을 삽입하여 부가적인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헤드라이트와 테일 라이트도 일부러 꾸미려하지 않고 정직한 선으로 디자인되어 한결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작에 비해 얼굴이 더 작아지고 예뻐졌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차체의 비율도 좋아져서 무난한 해치백의 디자인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뒷문 손잡이가 창틀에 숨겨진 것을 불편하다고 못마땅해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뒷문의 사용 빈도가 적기 때문에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거니와 손잡이를 창틀에 숨김으로서 얼핏 날렵한 3도어 해치백의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경차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절묘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차 지붕이 내 가슴팍 쯤 와서 차가 참 귀엽고 앙증맞다. 과연 차가 배나온 중년 아저씨와 잘 어울리는지는 묻지 마시라. 어차피 차는 자기만족으로 타는 거니까.

 

둘째, 첨단기능이 다 들어있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18년 만에 차를 바꿔본 자의 쓸쓸한 경험에서 느껴진 장점이라는 것을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쉐보레의 차는 차종에 따라 LS, LT, LTZ 혹은 프리미어 등으로 나뉜다. 경차를 사기로 마음 먹었을 때 아내는 ‘경차를 사겠다면 가급적 편의장비가 많이 장착된 최고급형으로 하라’고 조언했고, 말 잘 듣는 남편인 나는 LTZ모델로 구매했다. 그중에서도 ECO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더 친환경스러운’옵션이 더 붙어있는 차였다.

 

IMG_7368.JPG

 

예컨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범퍼 아래로 에어댐(이라고 하기엔 좀 부실한 플라스틱 판)이 붙어있고, 뒷문에도 스포일러가 달려있으며 저항구름성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는데, 기능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른 스파크와 비교해서 스타일이 좀 달라보이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IMG_7367.JPG

 

최고급 모델이라 그런지, 웬만한 중형 세단에 달려있을법한 안전장치와 편의장치는 다 갖춰져 있었다. 앞, 뒤, 옆으로 에어백이 둘러있고, 열선이 깔려있는 인조가죽시트, 자동으로 접히는 사이드 미러, 사각지대경고 시스템, 스마트키(무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건다!), 앞유리에 비치는 헤드업디스플레이 타입의 전방충돌경고 장치, 스마트 크루즈, 차선이탈 방지장치, 휴대폰과 연결해서 카플레이가 가능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하이패스 단말기가 달린 룸미러까지.

 

IMG_7366.JPG

 

IMG_7365.JPG

 

IMG_7363.JPG

 

심지어는 ECO모델이라 오토스탑 앤 고 기능도 들어있다. 정차 중 연료를 아끼려고 시동을 자동으로 껐다가 출발하려고 액셀을 밟으면 바로 시동이 걸리는 기능이다. 삐까뻔쩍한 기능들이 너무너무 경이로와서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이전에 타던 차에는 이런 기능들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없어도 차가 굴러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이런 편의장치들이 운전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초라하고 불편할 것이라는 경차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을 깨부셔 준 넌, 감동이었어.

 

셋째, 모두의 예상대로, 경제적이다.

 

취등록세 50만 원까지 면제라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사실 이 건은 차를 살 때까지도 체감이 안됐는데, 이전등록 할 때 딱 4천 원만 내고 보니 혜택이 피부로 다가왔다.

 

또한, 기름값 부담이 덜하다. 운전습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체가 작고 가볍다보니 비교적 연비가 잘 나온다. 기름탱크가 작아서 4만원 정도면 가득 채울 수 있는데, 경차사랑카드를 발급받으면 1년에 20만 원까지 유류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 주차장 50% 할인의 혜택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할인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이 막 생긴다.

 

넷째, 주차가 편하다.

 

좌우 공간이 별로 없는 좁은 길도 날렵하게 빠져나갈 수 있고 차체가 짧다 보니 회전 반경이 작아 주차하기도 쉽다. 웬만한 주차장에는 경차전용 공간이 있는데,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 주차하려고 주차장을 빙빙도는 일이 별로 없다. 한 번은 주차난이 극심하기로 소문난 경기도청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도 경차전용 주차장이 따로 있어 다른 경차들과 함께 동지애를 느끼며 쉽게 주차했다.

 

다섯째, 친구들이 밥을 사준다.

 

차를 타고 나가면 친구들이 어쩐 일인지 다들 밥을 사려고 한다. 대개 친구가 한 번 사면 다음엔 내가 사는 게 인지상정인데, 굳이 밥을 사주겠다며 나한테는 돈을 못 내게 한다. 건수만 있으면 쏘라던 넘들이 ‘요즘 그림책 만든다더니, 힘들지?’ 하는 거 보면 차의 영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럴 땐 그냥 잠시 쓸쓸한 표정 지으며 ‘뭐, 나만 힘드냐, 다들 힘들잖아.’ 하고 열심히 밥을 먹는다.

 

여섯째,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마음이 아주아주 편해졌다.

 

유지비용 가볍고 주차도 편하고, 돈 쓸 일도 줄어들고, 차가 작아 문을 열고 타고 내릴 공간이 많이 확보되어 문콕의 위험도 줄어드니, 어딜가도 마음이 가볍다. 덕분에 신경 쓸 일이 줄어 운전하는 시간이 즐거워지고 차 안에서 느긋하게 순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전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이제 단점을 짚어보자.

 

첫째, 안 껴준다.

 

고속주행을 할 일이 별로 없는 시내주행에서 스파크의 순발력은 탁월하다. 배기량은 1,000cc가 채 못되지만, 눈부신 기술의 발전 덕에 출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기아 자동차의 레이 1세대 라인업 중에는 터보 모델도 있었다. 진짜로.) 게다가 자동차 중량도 910kg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운전을 해보면 정말 가볍게 치고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배기량이 작으니 굼뜨고 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 모양이다.

 

서로 웃는 얼굴로 양보하며 함께 길을 가는 명랑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둘째, 주행 소음이 있다.

 

도로를 달릴 때 바닥 쪽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무척 크다. 원가절감의 영향인 것 같은데, 문제는 원가절감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같다는 것이다. 내장마감이 조금 덜 고급스러운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으나 본네트나 실내 바닥 쪽에도 흡음지 한 장 안 붙어 있다는 점은 실망스러웠다. 동호회 사람들 중에선 흡음재를 따로 사서 DIY로 방음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긴 하더라. 조용해졌다는 후기를 보면 부럽긴 하던데, 늙고 힘빠진 나는 그냥 시끄러운대로 계속 탈 것 같다.

 

아, 원가절감하니까 한 가지 더 생각 나는 것이 있다. 실내등이 앞좌석 쪽에만 있고 뒷좌석 쪽에는 없어서 뒷좌석에서 뭘 찾으려면 휴대폰 플래시를 켜야한다. 그나마 불이 들어오는 앞좌석 실내등도 밝기가 호롱불 수준이라 침침하고 불편하여 LED 전구로 교체했다. LED전구 따로 사보니 그거 얼마 안하더구만. (잘하다가 꼭 사소한 걸로 점수 잃더라.)

 

셋째, 아이들이 타기 싫어하는 눈치다.

 

비 온다고 데려다 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버스 타고 간단다. 아... 경차 산다고 했을 때 아내가 걱정하던 게 이거였다. 아닌 거 같아도 애들도 눈치 빤하고 알 거 다 안다. 겉모습이 중요하게 느껴질 나이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나이엔 그게 중요했었으니까.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어차피 애들도 이제 많이 커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나이가 됐기도 하고, 또 이 차는 내가 혼자 타고 다닐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뭐, 그런대로 괜찮다. 다만, 아빠가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언젠가 아이들도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배우는 날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생각나는 단점은 이정도인 듯 하다.

 

오십줄에 들어 경차를 타보니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IMG_7364.JPG

 

계급과 서열을 정하고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은 예로부터 힘겨루기를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 온 인간의 본능이다. 물리적 싸움으로 힘겨루기를 했던 과거에는 파괴력이 더 센 긴 칼이나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좋은 말이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반면,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지금은 좋든 싫든 돈이 곧 힘이요,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러운 물건이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경험이 유전자 속에 남아 오늘날 고급 제품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온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혹은 원칙같은 것으로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고급스러운 쪽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덜 고급스러워도 싼 쪽을 선택한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고, 그 생각에 따라,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서로 다른, 그러나 최선의 선택을 한다. 세상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번 선택의 순간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고 그 선택에 만족한다. 선택에 있어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은 없다. 선택은 그저 생각의 차이, 취향의 문제이며, 더도 덜도 아닌 각자의 가치관의 차이가 투영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