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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애버트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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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아베 신조와 토이 애버트는 서로의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이 되면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가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토니 애버트가 총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거다(채 2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자유당 신임 투표에서 통신장관이었던 말콤 턴불이 치고 나온 거였다. 그 결과 44 대 54로 패하게 됐고, 애버트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거다.

 

아베 신조에겐 파트너가 날아간 거였다. 게다가 그 이전에 이미 일본 소류급을 단독 입찰로 사는 게 아니라 경쟁 입찰로 가겠다는 전화를 받은 상태라 독일과 프랑스 등등이 달라붙은 상황. 소류급의 미래에 암운이 끼게 됐다.

 

(소류급의 객관적인 성능은 둘째 치고, 당시 일본의 무기 판매에 대한 상식이 상당히 부족했다. 국제 사회에서 무기 판매는 한 국가가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미친 듯이 덤벼들어야 될똥말똥인데, 일본은 너무 느긋했다. 반세기 이상 해외에 무기를 팔아 본 적이 없는 국가의 한계였다)

 

여기에 호주 노조와 조선소들이 들고일어났다.

 

“직도입이 웬 말이냐! 노동자들 다 굶겨 죽일 거냐?”

 

“라이센스 생산 아니면 너희들한테 투표 안할 거다!”

 

노조들과 조선소들이 들고일어나자 직도입은 어느새 라이센스 생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라이센스 생산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게, 기술을 도입해도 그 기술을 소화할 만한 능력이 안 된다면 기술은 없느니만 못한 게 된다. 기본적인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최신 기술을 가져와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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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어찌어찌하다가 프랑스의 쉬프랑급이 선정됐다(핵잠인데, 추진체계를 디젤로 교체한 거다). 사업 초기엔 핵잠에 대한 이야기가 살짝 나오기도 했다. 그 큰 땅덩어리와 영해를 생각한다면 디젤보다는 핵잠이 맞다. 물론, 농축우라늄이란 물건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예민한’ 존재이기에 쉽게 말할 수 없지만, 핵잠에 대한 이야기가 사업 초기에 나온 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디젤과 핵잠의 차이를 말해야겠는데... 디젤 잠수함의 경우는 디젤을 때워서 발전기를 돌리고, 그렇게 만든 전기를 충전해서 잠수함을 굴리는 거다. 디젤 잠수함의 경우는 소음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충전을 위해서 수시로 바다 위로 나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디젤 기관을 돌려서 충전해야 하는데, 내연기관을 돌리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 공기를 얻기 위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 한다. 반면 원자력 잠수함은 그냥 원자로만 때면 된다. 공기가 필요한 거도 아니니까 주구장창 바닷속에 있을 수 있는 거다. 속도도 더 빠르고, 에너지도 무한대이고... 다만 좀 시끄러운 게 문제지만 요즘은 그것도 많이 개선돼 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잠수함을 핵잠이라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호주는 디젤을 선택했고, 그렇게 ‘어택급 잠수함’ 12척을 건조하는 50조짜리 사업이 위태위태하게 시작됐다.

 

1. 잠수함 날아가다

 

이 잠수함 사업은 시작부터 위태로웠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계속 말들이 나왔다. 척당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애초 사업의 모태가 돼 준 쉬프랑급의 2배 이상인 3조 원 대의 잠수함이 나오게 된 거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이 사업은 단순히 잠수함을 사 오는 게 아니라 호주의 선박 건조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조선 사업 기반을 닦는 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즉,

 

“잠수함 1척을 사는 게 아니라, 잠수함을 만드는 공장을 같이 짓는 거다!”

 

라는 거다. 프랑스는 단순히 잠수함을 파는 게 아니라 호주의 선박 건조 능력을 끌어올리는 사업에 뛰어든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거였다.

 

호주 노동계와 조선 산업계에서 딴지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국민들과 야당들은,

 

“아니, 뭔 놈의 배 한 척이 3조가 넘어가? 지금 항공모함 만들어?”

 

“방산비리 아냐? 어디서 남겨 먹은 거야?”

 

“기껏 만들어 봤자 디젤 잠수함이잖아! 이거 실전배치 될 때쯤이면 다 고물 돼 있을 거 아냐!”

 

등등의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점을 안고 시작하지 않았나? 그런데, 2021년 9월 16일 호주가 프랑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우리 디젤 잠수함 안 만들 거임. 미국이 핵잠 준다고 했음. 프랑스 미안, 우리 핵잠 할래.”

 

프랑스로선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났을 거다. 온갖 비아냥과 수모를 참아가며 여기까지 왔건만 뒤통수를 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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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시드니에서 당시 말콤 턴불 호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AFP>

 

2. 미국 마음대로

 

원래 호주는 내심 핵잠수함을 가지고 싶었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이게 어려웠던 건데, 영국과 미국이 통 큰 결단(?)을 내린 거였다. 프랑스의 빡침과 별개로 호주에게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는 건 정치적으로 상당히 큰 문제가 된다. 이유는 간단한데, 핵잠수함 추진 원자로에 고농축 우라늄(HEU)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은 핵 보유국인 P5국가(미, 중, 러, 프, 영)과 인도 정도만이 보유하는 이유다.

 

(인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아닌 나라 중 유일하게 핵잠수함을 가진 나라가 됐다. 바로 아리한트급이다)

 

그런데 미국이 대놓고 NPT의 예외 국가를 만든 거였다.

 

이 부분은 상당히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세계의 경찰국가인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었고,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엄청난 제재를 하지 않았던가?

 

“이란 놈들이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고농축 우라늄을 몰래 만들고 있다! 이놈들 때려잡자!”

 

이랬던 게 미국이다. 그런데, 호주에게는 선뜻 고농축 우라늄 기술을 주고,

 

“이걸로 핵잠 굴려라.”

 

라고 한다면 이걸 세상이 어떻게 바라볼까? 이런 이중 잣대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2006년 NPT 미 가입국인 인도에게 핵 기술과 핵 물질을 건넨 게 미국이었다. 물론, 인도가 핵보유국이고, 중국을 턱밑에서 견제할 국가이기는 하지만... 이건 좀 그렇지 않은가?

 

툭 까놓고, 이란이나 한국이

 

“우리도 핵잠 굴리려고 고농축 우라늄 좀 살게요.”

 

이러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호주는 되고, 이란과 한국은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문제가 애매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호주에게 핵잠수함 기술을 건네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욕먹는 거보다 중국 엿 먹이는 게 더 중요하다.”

 

라고 판단한 거였다. 중국이 남태평양으로 빠져나오는 모든 길목을 막아서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 덕분에 프랑스는 X 됐고, 일본은 씩 웃었으며, 한국은 눈만 껌벅이고 있다.

 

(프랑스는 괜히 한국과 친한 척 하고 있다. 우리나라한테 핵잠수함 기술 주겠다며 다가오는데,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저농축 우라늄으로 굴리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기에 농축도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어 한미원자력협정을 피해가며 핵잠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애저녁에 이미 나온 상황이다. 이때 모델이 된 게 프랑스의 쉬프랑급이다. 이래저래 호주-프랑스-한국이 엮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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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