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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과 청력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주저 없이 청력을 포기하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분야를 경험해 보기 전엔 그랬습니다. 

 

사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더 힘드냐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둘 다 힘들죠. 하지만 보통 비장애인들에게는 "시각장애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청각장애인이 되는 것"보다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해도 볼 수만 있다면 그래도 나름대로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다면 이건 인생 끝이다. 이런 식의 생각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의 의도는 무엇이 더 힘드냐 비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장애 모두 살아가는데 많은 제약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청각장애가 사람의 인생에 안겨주는 제약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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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실제로 옆에서 보면 참 안쓰럽습니다. 내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못 보고 손이나 지팡이로 더듬거리는데,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어요. 비장애인에 비해 제약을 겪고 있는 상황이 한눈에 보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길을 가다 시각장애인을 보면 도와주려 한답니다.

 

그러나 실제 시각장애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맙긴 하지만 혼자서도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과잉 친절이 부담스럽다고도 합니다. 

 

 

사회는 청각 장애인에는 친절하지 않다

 

청각장애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가지 말라는데 가거나 어떤 행동을 하라는데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왜 말 안 들어?" 

 

별로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나옵니다. 이와 함께 

 

①지금 열 받게 하려는 건가? 

②지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라는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③혹시 이 사람이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인가? 

 

로 바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 참 ①번과 ②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아무래도 둘 다 아닌 것 같다 싶을 때 ③번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①, ②번으로 목소리를 올리고 씩씩거리다가 ③번으로 옮겨가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친절 모드로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무안해하면서 그냥 슬그머니 빠져나오려 합니다, 즉 더이상 상대하지 않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친절 모드로 들어간 사람일지라도, 실제로 청각장애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거기다가, 선천적 농인 혹은 언어발달 이전 유아기에 청각손실을 겪은 사람의 경우 제대로 된 음성이 나오지 않지요. 다들 매체를 통해서 들어본 간접경험이 있을 겁니다. 단어가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정상청각인들은 이런 소리를 내는 청각장애인을 겪으면 일단 그들의 지능을 의심하고 혹시 저능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참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나서야 '아, 이 사람이 저능아가 아니구나' 깨닫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하고 바로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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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중에도 똑똑하고 교육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로부터 '저능아는 아니다' 정도의 취급 만을 받으며 실제 능력에 비해 굉장히 저평가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각장애가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 지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선천적 농인들은 정상청각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사회구조적인 편견과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머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요즘에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포용력이 커졌고, 기술적으로도 어느 정도 장애를 보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보청기, 인공와우), 옛날보다는 덜합니다만 선천적 농인들의 커뮤니티는 꽤 공고히 존속해 왔습니다. (바꿔 말하면 정상청각인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한 장벽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천적 농인이 아니고 즉 정상청각인이었다가 후천적으로 청력손실을 심하게 겪어서 장애등급을 받게 된 경우, 상당수가 청각장애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애로점,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힘들어지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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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나서 맘 편하게 수다 떨기도 힘들고, 가족들과 대화하기도 힘들어지집니다. 일상대화야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대화는 필담으로만 가능해지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요즘에는 얼굴 맞대고 앉아도 서로 카톡 문자로 주고받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니 조금 낫긴 하겠지만... 

 

이들의 경우 위의 선천적 농인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청력손실, 청각장애라는 것의 특성상 선천적과 후천적 사이에 워낙 큰 벽이 있어서, 나이 먹고 청각손실을 입었다고 갑자기 수어를 배우고 농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그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기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맺으면서, 경험을 못 해본 비장애인으로서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둘 다 경험해 본 사람 얘기를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그중 끝판왕. 역사에 남은 인물로 헬렌 켈러가 있지요.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Blindness separates people from things; deafness separates people from people.”

(보지 못하면 주변 사물로부터 단절되지만, 듣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단절된다.)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