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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딴지일보에 처음 글을 쓴 게 2000년인가, 2001년인가 그 무렵이었을 거다(그래 나 고인물이다!). 난데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그때부터(처음 글을 쓰던 시점부터) 꼭 언급하는 책이 한 권 있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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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나 중국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교수의 “거대한 체스판”을 언급하면서, 그가 했던 말.

 

“조만간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다.”

 

란 핵심 메시지를 줄기차게 인용했었다. 이 얇은 책 한 권에서 한국 관련 언급은 별로 없었다. 그 얼마 없는 분량에서 한국을 위한 실질적 조언이자 충고, 그리고 핵심 내용은 이 한 줄로 모두 갈음할 수 있다.

 

20여 년 전, 거대한 체스판을 읽으면서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일부 학자들은 미국적 세계화가 끝이 보인다며, 브레진스키의 논리를 거부하지만...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면, 그 논리를 펼치기에는 아직 부족하단 걸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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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커스(AUKUS)의 등장은 이제까지 보여준 ‘대중국 포위망’과는 전혀 다른 ‘선언’이다. 쿼드(Quad)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적어도,

 

“내가 널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야.”

 

“내가 널 경계하고, 싸움을 준비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네가 받는다면, 그건 네 느낌일 뿐이야.”

 

같은 느낌이었다. 즉,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대놓고 싸우자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커스는,

 

“그래, 씨발 네 모가지 따려고 준비 중이다 됐냐?”

 

라고 선언을 한 거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미국이 중국의 목을 따겠다고 준비하는 동맹들의 모양새다. 중국 근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의 목을 따러 갈 수 있는 ‘믿음직한’ 동맹(동맹이라 쓰고, ‘꼬붕’이라고 읽어야겠지만)이 몇이나 될까?

 

1. 호주의 선택

 

호주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야, 이거 정말 절묘한데? 이렇게 가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슬슬 불안감이 들어야 할 거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제1의 수출국이 중국이다. 그러나 안보는 미국과 함께 하고 있다. 그렇다. 호주와 한국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미국으로부터 은근한 ‘권유’를 받아왔다.

 

“야야, 저 중국 놈들이랑 언제까지 같이 놀 거야? 저것들 속이 시뻘게! 저거 빨갱이 맞다니까!”

 

“아니 그래도... 빨간색이라도 결제는 잘 해주는데...”

 

“야, 목숨이 중요해, 돈이 중요해? 지금 죽고 사는 문제가 펼쳐지는 마당에...”

 

“그,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호주는 과감히 미국 손을 들어줬다.

 

“그래, ㅆㅂ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그동안 친구 먹었던 미국! 2차 대전 때 쪽바리 새끼들 치고 들어올 때 우리 도와줬던 USA! 쿼드도 하고 파이브 아이즈도 하고... 그래 죽으나 사나 미국이다! 돈 좀 못 벌면 어때? 친구가 더 중요하지! 그래 친구야! 우리 같이 떼놈들 뚜까 패자!”

 

“흑흑...캥거루...아니 아니, 호주야! 그래 난 네 우정을 의심해 본 적 없어! 그래, 이참에 저 떼놈들 뚜까 패자. 난 널 믿었어 친구야!”

 

여기까지 보면, 호주와 미국의 아름다운 우정(?!), 그리고 경제와 안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며 비장하게 글을 마쳐야겠지만,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다. 지정학적으로 호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뉴질랜드는 이번에 왜 잠잠 한 걸까? 같은 파이브 아이즈 국가이면서 같은 앵글로 색슨이며, 그래도 미국과 함께 하는 국가인데 왜 빠져 있는 걸까?

 

2. 뉴질랜드의 선택은 왜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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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군사적으로 봐도 좀 이상한 국가이긴 하다. 이 나라는 공군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공군에 전투기가 없다. 대잠초계기나 수송기 정도가 몇 대 있을 뿐이다. 원래 전투기가 좀 있었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이웃나라 호주에 팔아버렸다. 이게 웃긴 게 호주와 뉴질랜드는 세트 메뉴다. 전쟁나면 같이 묶여서 안작 군단(Anzac :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을 만들어서 참전하곤 했다. 1차 대전 때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갈리폴리 전투(가서 떼죽음 당하고), 2차 대전 때는 그리스 전투부터 시작해서 같이 편성돼 움직였고, 6.25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최근엔 동티모르 사태 때도 세트 메뉴로 같이 움직였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친구가 아니라 거의 형제라 보는 게 맞을 거다(사촌 정도? 호주에 사는 뉴질랜드 사람이 얼마이던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지간하면 세트 메뉴로 같이 움직인다. 그런데, 미국이 뉴질랜드를 보는 시선이 좀 그렇다. 까놓고 말해 뉴질랜드와 미국은 사이가 좀 그렇다.

 

1984년에 뉴질랜드가 난데없이 미국 뒤통수를 친 거다.

 

“야, 너네 핵항공모함이랑 핵잠수함 우리나라 못 들어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 이제 비핵화 할 거야. 그런 줄 알아?”

 

“...이 미친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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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에 체결한 태평양 안전보장 조약Australia, New Zealand, United States Security Treaty). 소위 말하는 앤저스 조약(ANZUS Treaty)이란 게 있는데, 미국, 호주, 뉴질랜드가 뭉친 지역 안보조약이다.

 

“양키!”

 

“캥거루!”

 

“키위!”

 

“우리 셋이 모여 태평양을 방어한다!”

 

이랬다가 뉴질랜드가 뒤통수를 치자 미국이 열을 제대로 받아서

 

“씨바 안보조약이고 나발이고, 너랑 나 갈라서자.”

 

“좋을 대로 해라!”

 

이렇게 돼서 둘이 틀어진다(안전보장 조약만이 틀어진 거다. 이런 껄끄러운 관계가 그나마 좀 개선된 게 2010년 되면서부터다. 글타고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뉴질랜드는 중국에 대해 쓴소리도 하면서, 나름 균형자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속내에는,

 

“씨바, 그래도 중국이 우리 물건 많이 팔아주는데...”

 

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럼 호주는?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경우도 앞에서 말한 대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었다. 그런데 호주는 중국을 버리고 미국에 몰빵을 쳤다.

 

“와, 캥거루 이것들 그렇게 안 봤는데 상남잔데?”

 

이걸 보면서 우리도 호주처럼 몰빵을 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면... 그건 너무 단선적으로만 국제정치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야겠다.

 

3. 호주가 믿는 구석

 

“씨바 코로나 19를 퍼트린 건 중국 놈들이다!... 라고 말하는 건 아냐! 그렇지만, 그 발생 원인은 조사해 봐야지!”

 

이랬던 게 2020년이었다. 이때 호주 ‘깡다구’ 하나는 제대로 있다고 전 세계가 호주의 입을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중국은 바로 빡쳐서,

 

“이 미친 캥거루 시키들이... 앞 주머니를 다 찢어버릴까 보다... 확! 그냥 앞으로 호주산 쇠고기, 보리, 와인 같은 거 수입규제한다!”

 

... 가 됐다.

 

이렇게만 보면 호주가 돈보다는 명예와 의리를 택하는 거 같은데 아니다. 사실 호주의 대중 수출 규모는 지난 5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수입도 42% 이상 증가했다). 이미 벌만큼 벌어서 배가 불렀다? 아니다. 호주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였다. 당시 언론이나 유튜브를 보면 중국이 작정하고 호주 석탄을 사지 않아서 호주가 말라죽을 것 같이 말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똥줄 타는 건 중국이고, 호주는 느긋하다. 다만, 품목이 석탄은 아니다.

 

호주가 중국의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철광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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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철광석 광산

 

중국 철광석 수입액의 60%는 호주에서 들여온다. 세계의 공장이자, 자원의 블랙홀인 중국. 중국은 세계 최대의 철강 생산국이지만, 그러려면 원자재가 되는 철광석이 필요하다.

 

이건 정말 신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 호주 다음으로 철광석을 많이 생산하던 브라질은 댐 붕괴사고로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쏟아지면서 난리가 났다(피해 보상 규모만 6조 1천억 원 수준의 대재앙이었다). 이 때문에 철광석 생산량이 급감했다(이게 2015년 일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의료 시스템이 부족했던 브라질은 손놓고 앉아 있어야 했다. 이때 중국이 생각했던 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 인도도 철광석 있어!”

 

중국이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던 인도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인도 역시 의료 시스템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죽어나자빠지고, 갠지스 강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 된 거다. 이 상황에서 다급해진 중국은 마지막 희망인 ‘기니’에 모든 걸 걸었다.

 

“우리가 괜히 일대일로를 한 게 아냐! 투자한 만큼 뽑아먹어야지! 아프리카 기니에 100억 톤 이상 철광석이 매장된 걸로 추정되는 시만두 광산의 채굴권을 확보해 놨다구! 이제 호주 눈치 안 봐도 돼! 이색희들 그래, 철광석으로 우리 목줄을 쥐고 흔들어보겠다고? 내가 만만한 놈으로 보였나 본데... 박살을 내주마!”

 

“저... 그게... 좀 어려울 거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왜?”

 

“저...기니에서 쿠데타가 터졌답니다.”

 

“......”

 

2021년 9월 6일 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 절묘한 타이밍. 이건 예술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중국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기니에서 쿠데타가 나자마자,

 

“중국은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는 것에 반대하며, 알파 콩데 대통령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한다.”

 

라며 공식 논평을 냈다. 그것도 중국 외교부 명의로 말이다. 이거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여주는 상황이다. 그리고 열흘도 안 된 9월 15일 영국, 미국, 호주가 나란히 손잡고는,

 

“응, 우리 셋이 모여서 중국 엿 먹일 거야. 우리 셋이 깐부먹기로 했어. 음...팀 이름은 오커스야. 어때 죽이지?”

 

이랬던 거다. 브라질의 댐 붕괴, 코로나 19, 그리고 아프리카의 쿠데타가 호주의 용기를 한 껏 북돋아 준거다. 호주는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다.

 

“중국 저놈시키들이 무역 제재다 뭐다 한참 난리 쳐도, 당분간 우리 철광석 없이는 못 살 거야. 수입제재? 2020년 5월 12일 기준으로 철광석이 얼마였냐?”

 

“톤당 91달러 정도 했습니다.”

 

“지금은?”

 

“톤당 240달러 근처에서 놀고 있습니다.”

 

“캬! 아름답다. 중국 놈들이 와인이니 석탄이니 수입제재 하든 말든, 철광석만 쥐고 있으면 돈은 계속 벌리는 거야. 오케이! 이 참에 미국쪽에 붙어서 핵잠수함도 뽑아내자구!”

 

이제 알겠는가? 호주는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란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도 호주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 한국은 어떨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