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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론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론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사기 대출이나 신종 채무 떠안기기 수법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유부남의 결혼생활에 대한 가설이다. 즉, 어떤 남자들에게 결혼은 설거지라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다.

 

논리구조를 정리해보자면 이런 것 같다.

 

놀아볼 만큼 놀아본 여자들이 연애에서는 만만한 호구, 직업에서는 성능에 문제가 없는 ATM인 남자와 결혼하는데 이때 남편은 아내의 전 남자친구들 대신 설거지를 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에 해당하는 유부남들은 감히 잘난체하거나 행복해하지 말라.

 

이런 종류의 못된 농담은 전부터 있었고 한국에만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설거지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고찰(?) 하는 등 담론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접근하는 현상이 특이하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대부분이 미혼 남성인 설거지론자들은 어째선지 화가 나 있는데 주로 유부남들에게 화를 낸다는 점이다. 그들은 '설거지하는 호구'를 공격하고 조롱한다.

 

설거지론이 과연 맞다고 치자.

 

그러면 자신들은 설거지를 피했으니 화 날일이 없고, 따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설거지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부남은 호구다. 즉 피해자라는 얘기인데, 어째서 피해자를 구박하는가?

 

정말 이론대로 그들이 불쌍한 존재면 그냥 불쌍하게 여길 일이지, 조롱과 뭇매를 놓을 일이 뭐며 그게 어째서 정당화되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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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성의 이유 

 

해서 생각을 해 봤다. 결혼이 어려워진 시대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다. 이제 결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성공한 젊은이들만의 특권이다.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결혼의 계급성은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계급적 분노도 더 명확해진 게 아닐까. 

 

부모의 지원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그런데 결혼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모는 애초에 육아와 교육에도 더 많은 자원을 제공했으므로, 결혼하는 자식의 직업도 평균보다 한결 좋다.

 

결혼할 때 보통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문화에 대해 젠더 갈등의 정치적인 얘기는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 글에서 남자가 집을 해오는 게 맞냐 틀리냐 하는 것엔 아무 관심이 없다. 아무튼 그러한 현상만 놓고 보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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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취업난과 집값 폭등이 겹치면 대부분의 결혼 적령기 남자는 결혼시장의 실패자가 된다. 실제로 결혼율과 출산율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젊은 남성층은 '자신들에게 실패자가 될 것을 강요한 민주당 정권에 분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과 출산이라는 특권을 가진 귀족층에 분노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피해자'에 대한 공격성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혐오의 종합선물세트

 

설거지론은 어떻게 봐도 신 포도(결혼, 아내)론으로 보인다. 저 포도는 실 거야. 그런데 단순한 신 포도는 아니다. 

 

설거지론은 혐오의 종합선물세트다. 여성 혐오든 남성 혐오든, 혐오가 있다는 건 나쁜 일일 순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설거지론의 혐오는 가히 전 지구적이며 우주적이다.

 

여성 혐오 : 여성이 그릇으로 취급된다. 노는 건 근육존잘남과 하고 결혼은 돈 잘 버는 순진남과 하므로 아주 속물적인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유부남 혐오 : 당신들은 설거지나 할 뿐이다.

 

인싸남 혐오 : 유부남에게 설거지를 '던지기'하는 놈들이다.

 

섹스 혐오 : 여성은 순결하거나 경험이 없을수록 좋다.

 

미래의 유부남 혐오 : 호구 유충일 뿐이다.

 

미혼남 혐오 : 설거지할 능력마저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혐오의 결론이자 토대는 자기혐오다.

 

나는 저런 호구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사실 나도 언제든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공포다. 왜냐하면 '나'는 순순히 호구가 될 수 있을만한 경제력을 꿈꿀 뿐 여성이 '놀아나고 싶은' 매력의 소유자가 못 되며, 나만 바라봐주는 첫사랑이자 조강지처를 만난 행운아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거지론의 결말

 

혐오의 결론은 무저갱처럼 어둡기만 하다. 기술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간단하다. 고등학생 때 첫사랑을 만나서 10년간 연애하다가 결혼하면 된다.

 

철학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코스믹 호러다. 세상에는 의심과 이용, 적대만이 가득하며 인류는 잘못 설계된 종자다.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과 선천적 재능을 고려해보건대 '나'는 아마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영화 <나비효과>의 결론이 딱 이렇다.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거듭한 끝에 태아였던 때로 돌아가 탯줄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설거지론은 못됐다. 왜 저러는지 이해는 가지만 나쁜 건 나쁜 거다.

 

그런데 설거지론이 만약 정치권 이슈로 확대되면 진보진영과 386지식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들은 드러난 분노의 나쁜 양태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분노의 본질을 봐야 한다. 우리같은 장삼이사가 아니기에 그들은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에 책임을 느끼고 본질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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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해보겠다.

 

진보진영의 권위자들은 높은 확률로 젊은 남성층을 훈계하거나, 설거지론을 그들이 틀려먹은 증거로 사용하는데 그칠 것이다. 이것은 이대남과 영원히 결별하자는 또 하나의 신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