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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추천30 비추천-3

 

 

 

아주 빼어난 명작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잘 만든 영화를 뒤늦게 발견하고 주목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이경규 씨가 제작한 세 번째 영화였던 <전국노래자랑>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개봉했을 때에는 그닥 흥미가 없었는데 언젠가 OCN에서 방송해주는 걸 보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죠.

 

스토리는 별 게 없습니다만 배우 김인권의 탁월한 연기는 새삼 혀를 내두르게 했고,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오래된, 친숙한 프로그램이 지방에 내려와 그곳 사람들의 흥미와 바람과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잔잔한 재미를 주었죠.

 

영화를 보다가 폭소를 터뜨린 대목이 있었습니다. 실제 송해 선생님이 MC역할로 출연하는데, 한 꼬마가 예선을 거치지 않았지만 잠시 후면 그 곁을 떠날 할아버지께 노래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송해 선생님은 그를 허락하고 PD에게 부탁합니다. 하지만 PD가 원칙을 내세우며 깐깐하게 나오자 송해 선생님이 호통을 치죠.

 

"○PD, 전국노래자랑 몇 년 했어?"

 

완강하던 PD가 바로 꼬리를 내리자, 송해 선생님이 호통으로 밟아버리죠. "나 몇 년 했어!"하고 기선제압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물색없이 웃었습니다. 맞아. 멍청한 PD가 감히 송해 선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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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이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쥔 것은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1980년 11월 9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수 이한필이나 뽀빠이 이상용 등 여러 MC를 거친 뒤 1988년에야 마이크를 잡으셨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전국 노래자랑과 다른 MC를 매칭하지 않습니다.

 

일본 NHK에도 거의 똑같은 포맷의 방송이 있는데, 이건 정말 '노래자랑'의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일종의 '우리 동네 J팝스타' 느낌으로, 가차없는 심사와 가창력 위주로 선정되는 방송. 그런데 우리 전국노래자랑은 다르죠. 처음부터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전혀 다른 정서의 프로그램이 된 것은 송해 선생님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분이 나와서 수더분하고 편안하게 진행해주니 사람들의 긴장은 풀릴 대로 풀리고, 있는 대로 끼를 발휘하게 마련이었죠. 송해 선생이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쥔 지도 33년이 넘었으니 그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은 가히 실록을 쓰고도 남을 겁니다.

 

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송해 선생님의 한 세기는 도서관 몇 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도서관 중 가장 크고 우람한 것은 '전국노래자랑' 도서관이겠지요. 특집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적인 프로그램 이름을 달고 평양에서 녹화를 뜬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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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노래자랑' 2013/08/15 방송

 

월남민인 것이야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독 북한 당국이 송해 선생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던 건 유명한 얘기죠.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전쟁 중 북한에서 일어난 최대의 양민학살 사건인 신천군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당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게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송해 선생은 황해도 재령 사람이고 그 사건과 관계가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평양판 전국노래자랑이 이뤄지지 못할 상황에 처했는데 KBS가 '송해 없는 노래자랑은 의미가 없다'고 밀어붙여 끝내 성사됐다는 전설을 전해 들은 바 있습니다.

 

한때 TV를 켜놓고 살던 시절에는 "빰빠라 빰빰 빰빠 빠라라빰라빰 빰빰빰" 하던 전국 노래자랑 타이틀 음악을 듣고, "밥 먹자"를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대에 올라섰던 사람들의 열창과 해프닝, 익살과 끼를 감상하며 딩동댕동에 박수 보내고 땡 소리에 배를 쥐었던 풍경은 오래도록 우리 뇌리에 남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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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송해 1927>이던가요. 부디 건강하셔서 송해 선생의 생애가 한 세기를 꼬박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그 인생 100년은 글자 그대로 우리나라의 한국 현대사, 방송사, 영화사, 콘텐츠사의 벽돌책 몇 권으로 남을 테니까요.

 

 

 

추신: 송해 선생의 전국노래자랑, 그 사연들을 한 번 짤막하게 엮어 봤습니다. 심심한 분들, 놀러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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