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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인세로 망한 미팅 

 

투고 원고 중에 이따금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다. 그의 글이 그랬다. 당시 위로와 쉼이 절실하던 내게 시의적절한 글이었다. 연락해 미팅 날짜를 잡았다. 저자와 편집자, 두 부끄럼쟁이가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더랬다. 미팅이 끝나고 그에게 “좋은 글을 써 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나에게 “꼭 함께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각박한 편집자의 삶 가운데 드문드문 이런 장면이 있다면 좋겠다 싶은, 훈훈한 만남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라 쓰고, 사장님의 변심이라 읽는다)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다. 그의 원고에 진심이었던지라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꾹꾹 눌러 담아 장문의 메일을 보냈더랬다. 출판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원고나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인세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듣도 보도 못한 인세를 제시했었다. 통상 10%를 상식선으로 인식한다. 10% 아래로 제시하는 출판사는 정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있다. 나 역시도 편집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한 자릿수 인세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요즘은 워낙에 출판사 사정이 어렵기 때문인지 8-10%, 6-10%, 7-12% 등 인세의 범주가 다양하게 언급되긴 한다. 

 

당시 제시한 인세는 차마 누구에게 밝히기조차 민망한 수치였다. 사장님은 우리 회사의 열악한 사정과 그가 신인 작가라는 점, 원고의 성격상 일러스트를 장마다 삽입해야 하는 등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품을 고려했을 때 “이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를 올릴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장님은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도 납득시키는 것이 편집자의 능력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오로지 사주(社主)의 처지에서만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해서 제작비를 절감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직원 월급도 겨우겨우 맞추는 회사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1쇄를 다 팔아도 본전을 찾기 힘든 현실을 고려했을 때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신인 작가의 절박함이든, 무엇이든, 최대한 이용해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은 회사 운영자의 마음도 이해간다. 그리고 회사를 나오면 모를까, 사주가 주는 월급을 받는 나로서는 그를 욕할 입장이 못 된다. 

 

“저자 인세, 네 월급에서 뗄 거 아니잖아!” 

 

이러면 나로선 할 말 없다(월급 가지고 농담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다. 기분 나쁘다). 

 

바나나를 든 사장_Photo by pixabay.webp

 

10%라는 마지노선에서의 전쟁 

 

우리 회사와의 일이 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신이 신인이라 “그 정도도 과분하다”고 대답했었다. 그가 다른 출판사로부터 (그럴 리는 없으리라 믿지만) 또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하다못해 기분 나쁜 티라도 냈으면 좋겠다.

 

“10% 미만으로 인세를 제시하는 출판사는 거르라”

 

라는 한 작가의 제안에 따르는 것은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계약이 결렬될 수도 있고 관계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작가들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그런 제안을 하는 출판사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작가가 인세를 듣고 불쾌해하면 출판사에서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건 어딜 가나 똑같다. 

 

작가의 인세를 깎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가에게 인세가 1-2% 더 간다고 해서 엄청난 차액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내 본 분들은 알 거다. 인세 10%에 1쇄를 완판해도 들어오는 액수가 너무 적기에. 처음엔 대부분 우리네 소박한 월급에 준하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상상하지만 현실은 거기에 반도 못 미칠 거다). 이런 현실에서, 출판사는 말한다.

 

“작가에게 가는 거, 적은 돈이 아니다.”

 

이 말은, 말장난 같지만 이렇게도 읽힌다.

 

“많은 돈도 아니다.” 

 

연예인 저자의 경우 20% 인세로 계약하는 것도 봤다. 앞에서 얘기한 일 같은 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세 자체를 안 주기 위해 판매 부수를 숨기거나, 중쇄를 찍어도 작가에게는 비밀에 부치는 일 말이다. 갑자기 많은 돈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걸 다 줘야 하나 싶은 나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할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아는 편집자는 이전에 다녔던 출판사에서, 중쇄를 찍는다는 기쁜 소식을 작가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출판인 오픈 단톡방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그런 식의 인세 떼먹기 사례를 종종 접한다. 관행처럼 일반화된 모습은 아니리고 믿는다. 몇 달 전, 일부 출판사들의 그러한 문제가 폭로되어 공론화되기도 한 만큼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쁜 마음을 제어하는 환경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다권의 책장_Photo by unsplash.jpg

 

한 권의 책이 만들어져 독자에게 노출되기까지 드는 비용 및 각종 부대비용을 고려했을 때 출판사가 순수하게 남길 수 있는 이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출판사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세를 깎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득을 추구하는 사업적 선택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에 대해, 너무 떳떳해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를 차린 사람들은 적어도 돈을 위해 회사를 차리진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면 출판업이 아닌 다른 길을 찾지 않았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출판업계는 오래전부터 큰 불황이었으니까. 이 업계가 어려운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출판사를 차렸다면 적어도 ‘책’ 자체에 대한 사랑과 목적의식이 있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순진한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사랑한다면 작가에 대한 애정과 존중은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편집자는 낭만을 말하기 전에 숫자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낭만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니까 편집자로선 망한 거겠지? 

 

추신: 재미있게도, 출판업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는데, 출판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1인 출판사가 많다. 기존 출판사를 다니며 더러움과 치사함을 곱씹던 직원들이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차린 출판사들(하물며, 나 같은 사람도 취미로 출판사 차리는 상상을 하지 않나). 그럴듯한 계획이나 성공의 확신이 있어서 차린 회사는 당연히 아닐 터. 그냥 그들은 책을 떠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수많은 출판사 사장님들이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차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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