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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설핏 눈을 떴다. 3월이라곤 해도 초입이라 아직 날씨는 쌀쌀했다. 입은 바짝 마르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과음한 탓이다.

 

더듬거려 머리맡의 폰을 찾아 열었다. 문자나 부재중 전화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단톡방 알림 숫자는 터질 듯 했다. 왜들 그렇게 말들이 많은지 대충 짐작은 갔다. 아무래도 새벽 3시쯤 뉴스에 뜬 화면 자막 때문일 게다.

 

“윤석열 후보 당선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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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합성입니다

 

빤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TV를 틀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삶을 소개하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선거기간 내내 언론의 마이크 앞에 서지 않았던 윤 당선인의 아내 김건희 씨가 어제 새벽 집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던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냥 그랬다. 비통하지도 않았고 딱히 슬픈 감정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그냥 약간의 한숨과 함께 공허한 감정 정도가 들었을 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왜 졌을까. 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이제껏 지켜 본 선거, 특히 대선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분열하는 쪽이 항상 졌다. 민주당 일부 열성 지지층들은 끝까지 이재명을 외면했다. ‘이재명을 찍느니 남경필을 찍겠다’는 정서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각종 지표에서 보여지듯 대장동 의혹도 컸으리라. 특검이 도입됐고 아직 사법적 판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특검의 기소 과정에서 이재명의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뭔가가 더 있겠지”라는 사람들의 의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있는 사실은 증명할 수 있어도 없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정권교체 여론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당시처럼 “모기가 콧잔등을 물어도 노무현 탓”이라는 마타도어는 먹히지 않았다.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유지했다. 다만, 이 나라는 세종대왕이 5년제 단임 대통령직에 취임해도 임기 말엔 정권교체 여론이 높을 것이란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온 국민이 장르소설 매니아라서 그런 분위기였을 뿐이다.

 

언론도 한몫한 건 분명하다. 혹자는 또 “언론 탓”이냐며 한심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겠지만 ‘악의’를 가지고 덤벼들어 이슈를 끌고 가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는 선출직 공무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진창일, 정은혜, 문희철 기자가 2021년 10월 22일 쓴 “대통령 발표 뒷배경 허전하자 과학자들 병풍으로 동원”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이란 직은,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부 수반이자 외교에서 국가를 대표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인공위성발사체 실험의 성과를 축하하고 국민에게 보고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오랜기간 노력해 온 실험의 주체인 과학기술자들이 대통령 뒤에 늘어선 것은 그 행사의 주역이 바로 그들이었음을 드러내는 의전 양식이다. 이건 무슨 봉천동이나 가리봉동에서만 통용되는 고스톱 룰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일종의 ‘룰’인 거다. 아무리 개나 소나 다 하는 기자 나부랭이라고 해도 ‘의전’의 ABC 정도도 모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초등학교만 정상적으로 다녔어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런 식의 타이틀을 뽑고 기사를 썼다는 것은 ‘무지’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악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정경심을 대하던 언론의 태도와 김건희를 대하던 언론의 태도를 비교하며 그 정파성을 성토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정파성’ 즉, 플레이어로서 국힘을 응원하기 위해 그런 행태를 벌인 게 아니다.

 

(대선 후보로 나서기 전의) 윤석열이나 김건희는 대중 앞에 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는 지에 대해 옳은 소리, 바른 소리를 한 적이 없다. 그러니 고발을 사주하고 경력 따위 위조한 것이 백날 드러나봤자 대중이 느낄 배신감이나 괘씸죄가 없다. 반면에 조국은 세상을 향해 공개적으로 입바른 말을 해왔으니 언론에서 조금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척해도, 배신감이나 괘씸죄가 상당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다. 대중에게 자극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즉, 언론은 정파성으로 움직인 게 아니다. 오로지 상업적 이유였을 뿐이다. 클릭 수가 담보되는 장사였다는 말이다. 옐로우 저널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힘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원래 그런 애들’의 힘인 거다. 곽상도가 50억을 해먹었건, 윤석열이 검찰권력을 사유화했건, 김건희가 경력을 위조했건, ‘원래 그런 애들’이니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새삼스럽지 않으면 ‘뉴스거리’가 안된다. 국힘당이 노동자들의 사회적 죽음에 대한 강력한 예방책을 강구하고 재벌이 아닌 소상공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1.7% 종부세 대상자가 아닌 98%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비로소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이 제 아무리 180석으로 역대 최고의 민생입법안 발의와 국회 통과를 주도했어도 차별금지법 통과 못 시킨 죄 하나로 퉁쳐지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TV토론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 또한 이재명의 완승이었다. 윤석열은 토론 도중 방언이 터지지도 않았고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거나 바지를 내리지도 않았다. 그냥 멀쩡히 앉아서 한국어로 차분하게 원론만 얘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언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윤석열 선방”이라 평가했다. 그렇게 TV토론은 무승부가 되었다. 하긴, 돌이켜보면 박근혜가 토론을 잘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근소한 차이였다 한들, 어쨌거나 패배했다. 윤석열이 어떠한 리더십으로 어떤 정치를 펼칠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중앙일보 이정재 기자가 2017년 4월 13일에 쓴 “한달 후 대한민국”이란 칼럼에서 “이건 그냥 상상이다”라고 시작하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좌파대통령”인 문재인을 패스하고 북한 폭격에 나설 수 있지 않겠냐는 안보장사질을 해처먹은 것처럼 똑같이 천박한 짓거리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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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복기와 이를 토대로 한 전망이 필요했다. 그래서 딴지일보 최고의 필력을 가진 마사오에게 전화했다.

 

“형. 나야.”

 

마사오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들떠 있었다.

 

“죽돌, 축하해! 윤석열 후보님께서 대통령 되셨잖아. 이제 한 5년 딴지 장사 잘 되겠네? 큭큭”

“웬 극존칭? 윤석열이 되면 형한테 뭐 좋은 게 있어?”

“박근혜 때 겪어보고도 몰라? 실력으로 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지. 줄을 잘 타고 빽을 잘 쓰면 나 같은 무능력한 서민도 크게 한몫 땡길 수 있는 기회의 시대가 열린 거 아니겠냐고!”

 

‘이 버러지 같은 새끼는 대체 언제쯤이면 인간이 될까’란 생각이 스쳤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알았고,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전망, 써줘야지.”

“오케이. ‘정의와 공정의 새 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타이틀로 A4, 3페이지 분량 간다.”

“이, 일단 원고 읽어보고 나서 판단할게.”

 

내가 아는 마사오는 ‘적폐의 카나리아’다. 기가 막히게 적폐의 냄새를 잘 맡고 예민하다. 실력이 아닌 이간질과 아부, 중상모략이 삶의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성이 개쓰레기여도 나이 50이 될 때까지 맞아죽지 않고 근근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마사오가 신이 난 거 보니, 그의 시대가 열리긴 열렸나 보다. 미우나 고우나 20년 가까이 옆에서 본 형인데, 아무쪼록 잘 되어서 윤석열 시대에 크게 한방 터트리길 마음 속으로 빌었다.

 

아무리 3월 초라지만 유난스레 쌀쌀하다.

 

 

추신: 본 기사는, "3주 후 대한민국", "한 달 후 대한민국" 등 한국 문학계에 벼락맞은 능이버섯 옻닭같은 충격을 주시매 불멸의 명칼럼이란 바로 이런 거쉬다, 를 가르쳐주신 중앙일보의 이 모 칼럼니스트에게 바친다.  

 

추신2: 본 기사는 딴지일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빙의해서 쓴 거다. 정말이다. 손바닥 안에 '빙'자를 쓰고 썼다. 해서 해당 기사로 고소나 고발을 할 경우, 김창규(실명으로 고소바람) 편집장에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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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