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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 널리 회자되는 말 중에 '선거는 결국 구도 싸움'이라는 얘기가 있다. 인물이나 캠페인(+공약, 정책 등 포함)보다 어떤 구도에서 치러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뜻으로 결선투표 없이 오직 최다득표자 1명을 선출하는 우리나라의 대선에는 그러한 영향이 더 크다고 보인다.

 

선거 때마다 거듭되는 후보들 간의 단일화 논의 또한 결국은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후보를 찍기보다 싫어하는 후보를 피하기 위한 유권자들의 표심도 구도에 영향을 미친다. 당선 가능성 높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 또한 구도 중심의 대선과 유관(有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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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20대 대선이 35일가량 남은 현시점에 개혁진영의 이재명과 보수진영의 윤석열이 양강 구도를 이룬다. 그리고 중도보수 안철수와 진보 심상정, 정치혐오 층을 겨냥한 허경영 등이 추격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각 진영의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치러진 총 6번의 대선 결과를 통해 유권자들의 성향은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어떤 구도가 필승의 방정식이었는지를 분석해 봤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이자면 선관위 제공 전체 유효투표수 대비 후보자별 득표율을 %로 표기하되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고 편의상 3% 이상 득표한 후보만 기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아울러 현재 더불어민주당에 대응하는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통합당의 후보는 푸른색으로, 국민의힘에 해당하는 민주자유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의 후보는 붉은색으로 표시했고 보수계열 제3세력(통일국민당, 국민신당, 이회창, 국민의당 및 바른정당)은 녹색으로,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개혁 성향의 후보(신정당, 민주노동당 및 창조한국당, 정의당)는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즉, 붉은색과 녹색을 합치면 '보수', 푸른색과 노란색을 합치면 '개혁' 세력의 총합이 된다.

 

1990년대 '보수와 개혁의 6 대 4 구도'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오늘날 국민의힘의 원류가 되는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고, 계파 간의 치열한 투쟁 끝에 김영삼이 대권 후보가 되었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은 김영삼의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이 후보로 나서 마지막 양 김 대결이 성사되었다. 아울러 양당 구도에 싫증 난 중도성향 유권자들을 겨냥해 현대그룹의 총수 정주영(통일국민당)이 등장했다. 3자 구도가 될 듯 보였던 이 선거는 선거 막판 터진 '초원복집 사건'으로 인해 보수·영남 세력 표심이 김영삼에게 결집하며 대략 200만 표 정도로 당락이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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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계를 은퇴했던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계에 복귀했고, 김종필과 손을 잡으며 마지막 대선에 도전했다. 한편 보수진영에서는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김영삼 정권의 개혁성을 상징하는듯했던 이회창이 후보가 되었으나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발목이 잡힌 사이에, 이인제가 독자 출마를 선언하며 또다시 3자 구도가 되었다.

 

DJP 연합으로 보수·충청 세력까지 껴안은 김대중과 달리 같은 당내에서 경쟁하던 이인제마저 포용하지 못한 이회창은 막판 맹추격전을 벌이며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는 집요한 네거티브로 이인제 지지층의 사표방지심리를 공략했으나 끝내 1.5%P 정도의 차이를 극복 못 하고 2인자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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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김대중이 나선 3자 구도'라는 점을 제외하고 크게 유사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번(1992, 1997)의 선거에서 보수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 합계는 58%, 개혁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 합계는 40%에 수렴하고, 그 오차는 놀랍게도 고작 0.05~0.33%P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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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보수 VS 개혁이 6:4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 하에서 개혁 성향 유권자들은 전부 김대중을 찍었지만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대략 2:1 정도의 비율로 분열되며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다.

 

2000년대 '반이회창이냐 반노무현이냐'

 

보수 세력의 분열로 인해 고배를 마신 이회창은 5년 동안 절치부심, 공천학살을 통해 한나라당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고 총선과 지방선거, 재 보궐선거 등에서 연전연승하며 와신상담의 기회를 노렸다. 상대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민주당은 이인제를 영입하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노무현을 후보로 내세우며 정권 재창출을 꾀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둘 다 싫다는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을 겨냥해 월드컵 열풍을 타고 정주영의 아들 정몽준이 제3 후보로 나서며 한때 돌풍을 일으켰으나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패하며 1971년(박정희 VS 김대중) 이후 31년 만에 양자구도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앞서 살펴본 '보수 : 진보 = 6 : 4' 공식에 따르면 이회창이 압승했어야 되겠으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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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이긴 하겠으나 이러한 결과는 ANTI 대 ANTI의 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이는데, 이회창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게 '반(反)DJ 정서' 덕분이었다면 '노무현 + 정몽준 단일화'는 선거 흐름을 반DJ에서 반이회창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내가 예뻐서라기보다 이회창이 싫어서 찍은 것 아니냐'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구도라는 차원에서 이해하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이후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5년 동안 탄핵소추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의 인기가 떨어짐에 따라 여당 정치인들마저 차별화를 노리고 탈당 후 새로 정당을 차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동영 후보가 선출되었지만, 개혁 세력마저 전부 통합하지 못해 창조한국당(문국현), 민주노동당(권영길), 민주당(이인제) 등으로 각개약진하기에 이른다.

 

반대로 보수는, 박근혜와의 치열한 경선 끝에 이명박을 선출했고 이회창이 갈라져 나오긴 했으나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일방적으로 진행된 선거다 보니 선거운동 과정 동안 딱히 특기할만한 점도 없었으나, 선거 막판 소위 BBK 동영상이 불거지며 이명박 후보가 잠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또한 반MB 정서를 결집하기 위한 당시 여권의 몸부림이었으나(당시 보수층 인사인 이장춘 전 대사가 이명박에게 BBK 명함을 받은 적이 있다며 정동영 지지를 선언했던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결과는 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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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BBK로 상징되는 반MB 정서가 기권 또는 다수 후보들에게 분산되면서 효과적으로 결집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2002년 노무현(48.91%)과 2007년 이명박(48.67%)의 득표는 48%대 후반에서 0.34%P 정도의 오차로 수렴하는데, 두 사람의 득표율이 각각 반이회창, 반노무현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2010년대 '보수 : 개혁 = 52:48'

 

5년간 삽질을 거듭한 이명박이 물러나며, 보수진영을 접수한 박근혜가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고, 이합집산 끝에 다시 모인 민주통합당에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을 후보로 내세웠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중도를 겨냥한 제3후보(안철수)가 등장했으나, 문재인과의 단일화로 투표용지에서 사라졌고 10년 만에 1대1 양자 대결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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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정부가 출범했다. 4년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많은 재앙이 끊이지 않던 끝에 박근혜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탄핵당했고, 더불어민주당으로 전열을 재정비한 개혁 세력에선 문재인이 다시 한번 출마했다.

 

보수진영에선 탄핵 책임을 둘러싼 논란 끝에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후보가 되었지만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던 유승민이 바른정당을 만들어 갈라서는가 하면 한때 개혁 세력인 것처럼 보였던 안철수가 문재인에 대립각을 세우며 보수로 전향(?)하기도 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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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출마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번의 선거지만 소름 돋는 사실 한 가지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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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세력은 52% 언저리에서, 개혁 세력은 47~48%에서 0.65%~0.67%P 정도의 오차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12년까지 15년 동안 대략 보수는 6%P 정도가 줄고, 개혁 세력은 8%P 정도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앞서 6번의 대선을 살펴본 결과 대략 두 번씩, 즉 10년 주기로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2020년대를 여는 이번 대선은 앞서와는 또 다른 패턴으로 전개될 수도 있겠으나 현행 선거제도의 특성 및 역대 선거 결과,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양상에 비추어 봤을 때 보수 VS 개혁의 진영대결 및 특정인에 대한 반감을 기초로 한 혐오 투표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48% 전후로 추산되는 개혁 세력과 52% 전후로 추정되는 보수진영의 파이를 누가 얼마나 결집하느냐, 반윤석열 정서와 반이재명 정서 중 어느 쪽이 48% 후반대에 도달하느냐에 따라 승부의 향방이 갈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내일 첫 대선 4자 토론 달아오르는 토론 정국_출처 YTN.jpeg

2월 3일 저녁 8시 대선 후보 4명이 참가하는 첫 TV토론이 있다

출처 - <YTN 영상 캡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48%를 얻고도 떨어진 후보는 2012년 문재인뿐인데 이 선거가 보수·개혁 양 진영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건곤일척의 승부였다는 점, 산술적으로도 48%를 얻고 낙선하려면 3위 이하 후보의 총합이 4% 미만이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이번 선거의 매직넘버도 48%대에서 형성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남은 대선 동안 후보 등록과 TV 토론을 전후로 한 안철수와 심상정의 지지율 변화, 앞으로 거세질 이재명·윤석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 속에서 누가 48%에 도달할지 염두에 두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