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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전 뭐 어쩌다 보니 백수가 되었습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던 액수가 0이 되고, 나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노트북 새끼가(얘는 새끼라고 불러도 됩니다) 5년을 향해간다고 급격하게 망가지기 시작하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디다.

 

부자가 되고 싶다. 근데 노동은 싫으니 최대한 적은 일회성 노동으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싶다'

 

제가 일전에 부업도 해보지 않았습니까? (링크

 

블로그에 후기를 가장한 소설도 써보고, 리본도 접어 보았는데,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나쁘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더라고요. 이번엔 시간 대비 효율도 있고 지속적으로 수익도 얻을 수 있는 부업을 좀 해보자고 생각했읍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게 BL웹소설이었는데요, 제가 BL 소설을 쓰고, 그걸 조아X 같은 사이트에 무료로 연재한 뒤 이북으로 만들어 리디X스 같은 데서 파는 것보다 재취업을 하는 게 빠르겠더라고요. 최소 5년 전부터 BL소설로 남의 돈을 벌어먹겠다고 생각했는데, 여태껏 2편 정도 분량밖에 쓰지 않은 걸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수 있었죠.

 

다꾸가 시작한 불씨

 

전성기는 조금 지났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다꾸, 즉 '다이어리 꾸미기'라는 게 유행입니다. 보통 다이어리를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3일 이상 작성하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저 같은 거렁뱅이는 3일 만에 때려칠 것이 분명했기에 도전조차 안 했던 종목인데, '다꾸'라는 이름 아래 다이어리 꾸미는 게 유행을 하니 어째서인지 다이어리를 사게 되더랍니다. 문구점이나 서점에 가면 다이어리 용품이나 다이어리를 꾸미는데 필요한 소품(스티커, 엽서, 마스킹 테이프 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저만 안 하면 손해인 것 같잖아요?

 

저도 이렇게 다꾸라는 명목 아래 온 동네 스티커와 엽서를 사대서 지갑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나라가 허락한 마약을 시작했습니다. 다꾸를 안 하면 0원 아니냐고요? 세간에서는 이런 걸 TMI라고 합니다. 전 안 물어봤거든요.

 

a-다꾸.jpg

차마 제 다이어리는 보여줄 수 없었읍니다

 

다꾸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이란 걸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INFP에게서 상상을 없애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나도 스티커나 엽서를 팔아볼까...'

 

보통 다꾸할 땐 스티커를 많이 씁니다. 스티커를 대충 붙여도 잘 꾸민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고, 못난 글씨도 눈에 좀 덜 보이는 등 상쇄가 되거든요. 엽서도 비슷한 효과를 줍니다. 맨 앞이나 중간중간에 엽서를 붙여놓으면 뭔가 감성충도 된 것 같고 괜히 유럽 분위기도 나고 그런답니다(태어나서 유럽 딱 한 번 가봄).

 

이처럼 다꾸하는 인간들은 스티커와 엽서를 많이 쓰는데요, 꼭 다꾸를 하지 않더라도 이것들을 사 모으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의 취미생활 같겠지만, 놀랍게도 이게 다 어른의 소비 영역입니다. 카톡 이모티콘을 이것저것 사 모으는 주변 사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어요. 꼭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욕을 할 거라면 돈이라도 주면서 하라는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른들의(?) 스티커와 엽서는 메이저 캐릭터 빨이 99.9%에 달하는 어린이 것과 조금 다릅니다. 물론 귀여운 캐릭터가 들어가면 장땡이긴 하지만, 꼭 메이저 캐릭터가 아니어도 되고, 아니, 무엇보다 캐릭터가 아니어도 됩니다.

 

어린이: 로보X폴리 스티커(혹은 엽서) 살래!

 

어른이: 저거 귀여워! 살래! X7

 

이런 느낌입니다. 로X카폴리, 뽀로X 등 캐릭터에 중점을 두는 어린이와 다르게, 어른이들은 그게 무슨 캐릭터든, 무슨 브랜드든, 그냥 귀엽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삽니다. 그 당시 봤을 때 귀엽고(혹은 이에 준하는 만큼 마음에 들고),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면 구입하고 마는 것이지요.

 

딱히 캐릭터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고, 판매창구 또한 동네 문구점에서 대형 서점까지 다양하니, 일개 개인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마음에 드는 스티커나 엽서를 제작한 뒤 유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카톡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쉬워요. 꼭 춘식이가 그려져 있어야, 잔망루피가 그려져 있어야 이모티콘 사는 거 아니잖아요. 굉장히 초면이어도 맘에 들면 사잖아요. 스티서나 엽서도 결이 비슷해요.

 

그렇다고 하면, 내가 그 일개 개인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것으로 생각이 미치기 마련입니다. 저는 일련의 흐름에 따라 팔이피플로 전직하기로 했어요.

 

본격적 팔이피플의 서막

 

먼저 컨셉을 정해야겠지요.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참신한 게 필요했어요. 스티커, 엽서 장사하는 백만 사장들은 동물 캐릭터를 주로 그리는데, 저도 이걸 따라 하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면서도 신선한 부분이 있어야 남들 눈에 잘 띄지 않겠어요? 보아하니 동화 컨셉, 계절 컨셉 등 다양한 걸 도입해, '잠자는 숲속의 챙타쿠', '여름을 즐기는 챙타쿠' 같은 컨셉으로 스티커나 엽서를 만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이 부분도 표ㅈ, 아니, 벤치마킹 해야지 않겠습니까?

 

-동물 캐릭터

 

-컨셉(ex. 디X니 공주 컨셉)

 

제가 양띠니까 동물은 양으로 정했고요, 컨셉도 어렵지 않게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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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사이버펑크 2077>

 

"사이버펑크"라고 들어들 보셨나요? 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사이버펑크 2077>고요, 가장 좋아하는 애니는 <공각기동대>입니다. 사이버펑크 컨셉의 스티커 및 엽서를 만들면 귀여움과 특이함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다만 문제는 미술 8등급 받던 예나 지금이나 그림 실력이 똥망이라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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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2077>의 주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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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

 

이건 다 오른손이 잘못했습니다. 얘는 정말 저에게 왜 이러는 걸까요. 아무래도 캐릭터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팔이피플을 완전 포기할 것이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저의 돈에 대한 집념은 생각보다 무서운지(근데 거지임), 떠올리고 말았던 겁니다. 저에게 무려 '포토샵'이라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요. 딴지 편집부에서 포토샵 기계로 분했던 과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는데, 왕서방이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이버펑크가 전면에 튀어나옵니다. 다 사이버펑크 특유의 직선적인 이미지 때문입니다. 마천루, 휘황찬란한 간판, 네온 사인. 이거 다 직선으로 해결 가능하다 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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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는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게임 <사이버펑크 2077> 中

 

직선은 모다? 기계가 제일 잘 그린다. 포토샵으로 사이버펑크의 전경(?)을 엽서로 만들고, 네온사인을 스티커로 만들면 딱이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이거저거 쓱싹쓱싹 만들어서 재화로만 만들면 벌써 부자가 되었다,라는 전개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제작을 해보겠어요

 

하지만 하늘 아래 완벽한 창작은 없습니다(흔한 변명). 오마쥬, 벤치마킹 등 듣기 좋은 단어로 포장하며 베낄, 아니, 참고할 사진들을 모으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노리는 건,

 

-사이버펑크 컨셉이면서,

-곡선이 들어가지 않고,

-그림 실력을 크게 요하지 않아야 함(명암이 많이 들어간다던가)

 

이 정도인데, 여기에 전부 부합하는 건 픽셀 그림인 것 같았어요. 픽셀은 선과 네모로 이루어져서 저 같은 몹쓸 손을 가지고 있는 애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거든요. 어디까지나 오마쥬와 벤치마킹을 위해 구글에 "pixel cyberpunk"라고 검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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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걸 조금씩 표ㅈ, 아 그러니까 참고해서 적당한 오마쥬와 벤치마킹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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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A에서 이만큼

 

(모방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린 건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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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B에서 또 요만큼 떼옵니다

 

(모방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린 건 맞음22)

 

이런 식으로 그림A에서 20%, 그림B에서 20%, 그림C에서 30% 떼오고, 창작도 손톱만큼 얹어주면 무언가 하나 탄생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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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게 만들어집니다(엽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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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간판 컨셉 스티커에여

 

밥아저씨 같은 전개에 당황하셨겠지만 대충 시간을 쓰면 어떻게든 됩디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건 처음부터 '인쇄될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쇄할 때 잘려나갈 것을 대비해 가로세로 2mm씩 여분을 두어야 하고, 컬러 모드를 RGB가 아니라 CYMK로 해야 합니다. RGB로 해놓으면 화면에서 본 거랑 인쇄했을 때와 색상이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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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엽서가 될 파일 몇 개, 스티커가 될 파일 몇 개를 만들고 난 뒤 인쇄소에 맡깁니다. 인쇄소 찾는 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포털에 “엽서(스티커) 제작” “소량제작” 등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업체들이 나옵니다. 조금 큰 사이트들은 제작 가이드를 올려주니까, 잘 모르겠다 하면 보고 따라 하면 됩니다.

 

참고로 많은 인쇄소가 기업(혹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해서 한 템플릿 당 1000장부터 인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장 미만으로 제작할 경우 '소량제작'이라고 검색하는 쪽이 좀 더 이득일 것 같네요.

 

저는 장사가 잘 될 거라고 크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 템플릿 당 50개씩만 만들기로 했어요(보통 10개 단위로 인쇄해주는데 가끔 1장도 해주는 곳도 있습니다). 저에게 손절 가능한 가격이 10~15만 원이라 대충 그 안에 맞더라고요. 시작도 전에 손절을 생각하냐고요? 원래 거지들은 막 쓸 줄만 알 지 장기적인 투자에 대해선 무지합니다.

 

각 업체마다 엽서 가격이 다르고 스티커 제작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업체를 둘러보면서 가격을 비교해보는 게 좋습니다. 전 이 시대의 가성비충답게 신규 가입 쿠폰을 주는 3개의 업체에 엽서 8종과 스티커 N종(낱개로 판매할까 고민 중이기 때문에 우선 N개로 표시)을 골고루 분배해서 주문했습니다. 엽서는 크기와 종이 종류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생기고, 스티커는 크기와 종이 종류, 칼선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생깁니다. 여기서 칼선은 재단선이라는 뜻입니다. "이대로 니 종이가 잘릴 거란다"라고 안내하는 선이기도 하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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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토끼 스티커를 인쇄한다 했을 때, 토끼 바깥으로 2mm 정도 칼선을 만들어줍니다. 스티커 인쇄 시 저 칼선에 따라 재단선이 생기고, 스티커 이용자는 손쉽게 저 모양대로 스티커를 떼어낼 수 있습니다. 

 

라고 하니 벌써 단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A6(105mm X 148mm) 사이즈 스티커를 50장 인쇄하는 걸 기준으로 했을 때, 칼선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단가가 2배 정도 차이 납니다(심지어 칼선도 내가 만들어야 함). 스티커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단가가 마구마구 올라가겠죠? 그러니까 스티커 3-4천 원에 판다고 뭐라하지 마십쇼. 아주 양심적인 가격이라 안 합니까.

 

네? 저요? 스티커 하나 만들다 파산할 수 없어서 과감하게 칼선을 포기했습니다. 책임 방기 아니냐고요? 원래 인생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법입니다. 직접 잘라서 쓰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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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맘대로겠지만 쓰는 건 아니란다

 

이제 진짜 부자가 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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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_ok_koto

 

https://www.instagram.com/chae_ok_koto/?hl=ko

 

우선 판매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개설했습니다. 은근슬쩍 영업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물을 시간에 모르는 척 들어가서 팔로우를 하시겠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엽서와 스티커 친구들을 들고 동네 감성 카페에 갔어요.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라올 것 같은, 인테리어 좋고 분위기 좋은 카페인데요, 동네마다 꼭 사진 찍기 좋은 카페가 하나는 있어요(#동네이름+카페 검색하면 한두 개는 걸립니다). 보통 의자는 불편하고 사람은 많지만 저 같은 백수들은 아무도 없을 시간을 골라 갈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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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는 평일 오전 카페에 도착한 저는, 초기 투자다 생각하며(그냥 배가 고팠을 뿐) 와플을 시킨 뒤 감성샷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 찍은 것치곤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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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찍긴 했습니다만 다시 거기 안 가면 됩니다

 

사진 찍고 포스팅까지 했으면 이제 진짜 판매뿐입니다. 원래는 팔이피플의 정석에 따라 "구매 문의는 DM"으로 하려 했는데 제가 인스타그램을 생각보다 잘 몰라서 DM을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모르겠더랍니다. 고민을 하던 중, 친구가 "취미 삼아 만든 네이X 스토어팜이 소소하게 장사가 되더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연 600만 원 이하의 판매자는 개인판매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말에, 당장 스토어팜을 개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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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이드라인을 따라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가게 이름하고 주소 정도만 미리 생각해두면 일사천리에요. 가격도 무료이니 문 열어놓고 손 빠는 것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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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처럼요. 스토어팜 열어두고 페이지 만든다고 주문이 금방 들어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 개설한 지 1주일이 되어가는데 주문이 0에 수렴합니다. 연 600만 원 이상의 판매자가 되어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게 꿈이었는데, 연 600원도 못 팔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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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store.naver.com/chae_ok

 

원가는 얼마고 판매가 되면 몇 퍼센트의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며 네이버에는 얼마나 떼어주는지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것보다 파산 신고가 먼저일 것 같습니다. 

 

제가 수익이란 걸 창출할 수 있는 계절은 오는 걸까요? 날씨도 모자라 지갑까지 추운 겨울날입니다…

 

추신: 수입은 다음편에 공개하겠습니다. 설마 4번 부업 시도해서 4번 다 망하진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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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