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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사람들도 사생활은 있었습니다. 사생활 중에서도 제일 사적 영역인 성생활도 있었구요. 그래서 우리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들의 성생활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글을 몰랐던 대부분의 평민들은 성생활을 떠나 남긴 기록 자체가 별로 없고, 유교적 선비정신이 중요했던 양반들은 기품있고 점잖아 보이는 체통이 중요한지라 성생활에 관한 기록을 자체적으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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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양반 중에도 일기 속에 솔직하게 자신의 성생활을 솔직하게 고백한 이도 있고, 직접적으로 고백하진 않았지만, 성생활의 흔적을 남겨놓은 이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양반들의 성생활은 어땠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양반들의 성생활을 엿보다

 

지난 글에서는 전방인 회령으로 발령받아 집을 떠난 무인 박계숙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유부남인 박계숙은 유혹을 참다 참다 못 참고 금춘이란 기생과 뜨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양반 남성이 여행길, 혹은 부임지에서 ‘우연 같은 만남’을 통해 그들만의 로맨스를 펼쳐가던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훗날 박계숙의 아들 박취문(朴就文, 1617~1690)도 똑같이 회령으로 발령받게 되는데요. 박취문은 왕성한 성욕을 자랑했습니다. 1644년 12월 11일부터 1645년 10월 25일까지, 박취문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여성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의 동침 상대는 기생, 여종, 주막집 주인 등 신분을 가리지 않았고, 대체로 일회성 만남에 그쳤죠. 

 

그중에서도 박취문이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여성은 설매라는 방기(房妓)였습니다. 

 

(흥미진진한 1편의 내용을 자세히 ‘링크’)

 

 

1645년 5월 11일 ~ 10월 19일 - 『부북일기(赴北日記)』

 

일기1 : 술기운을 틈타 설매 집에서 그녀의 남편 몰래 잤다. 

 

일기2 : 밤에 설매를 누각 꼭대기 층으로 데리고 가서 잤다.

 

일기3 : 설매가 남편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나를 찾아왔길래, 크게 꾸짖어 보냈다. 나를 보고파서 저지른 그녀의 행동이 너무나 마음 아프구나.

 

방기란, 나라에서 공무원을 위해 ‘내려준’ 국가 공인 기생입니다. 혼례를 치른 정식 남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박취문은 ‘임자 있는 몸’과 남편 몰래 불륜을 저지른 것이죠. 심지어 이러한 행위가 적절치 않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스릴 넘치는 ‘내로남불’에 박취문을 비롯해 적잖은 양반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가슴을 앓곤 했죠. 정조 시기의 무관, 노상추(盧尙樞, 1746~1829)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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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일기 中

 

1795년 1월 5일 -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밤에 거처로 돌아오니, 옥매가 와 있었다. 이 기생과 같은 여자들은 때가 되면 숲으로 떠나는 새들과 같다. 진지하게 마음을 주고 만나고 싶어도, 그녀들은 그 누구에게나 마음을 준다. 게다가 옥매는 본래 남편도 있으니, 내가 그녀를 걱정하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하지만 기생들은 항상 남편을 숨기면서 “정이 들었다”라는 말을 하니, 사내대장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역시 전방으로 발령된 군관 노상추는 옥매라는 방기와 1년 넘게 관계를 유지하는데요. 때마다 ‘임자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공허함에 괴로워합니다. 어느 날엔, 옥매가 노상추를 찾아왔으나, 그녀의 남편이 노상추의 옆에 있어 아무 내색도 못 하고 가슴앓이를 하죠.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그는 이 모든 게 ‘남편을 숨기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기생들 때문’이라며 화살을 돌립니다.

 

확실히, 양반과 기생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를 모셨던 기생을 후손이 다시 만날 때 각별히 대하는 일도 종종 있었죠. 비록 정실 혹은 측실부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또한 선대의 인연이라며 반가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양반들은 이상하게도 부인과 정을 나눈 기록은 거의 적지 않았습니다. 양반에게 도대체 기생이 어떤 존재였길래, 이들의 ‘자유로운 성생활’에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기생과의 유희 끝에는 아내와의 부부싸움이

 

그 단서는, 양반과 기생, 그리고 양반의 부인이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선조 때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은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근무하던 중, 자신이 여색을 멀리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편지를 아내에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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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 칭찬받겠지? 나 스스로 갬동쓰~

 

그에 대한 아내 송덕봉의 답장이 일품입니다.

 

1570년 6월 12일 - 『미암일기(眉巖日記)』

 

당신, 편지에 뭐 “날 위해 여색(女色)을 참았다.”라면서 엄청 생색내더군요. 아니, 군자(君子)가 행실 거지를 다스리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어떻게 아녀자를 위해 그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똑바로 배웠다면 성욕을 절제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굳이 편지를 보내서 자랑할 건 또 뭐랍니까?

 

아무래도 당신에게는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하면서, 남이 그 고결한 행동을 알아주길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저는 의심스럽군요. 고작 3, 4개월 동안 홀아비 노릇 좀 했다고 생색을 내다니, 낼모레 60살이 되는 사내에게는 오히려 양기를 보존해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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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번 꺼냈다가 호되게 바가지 긁혔습니다. 왜냐하면, 전과가 있었거든요. 20여 년 전, 유희춘은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는데, 그곳에서 15세 연하의 첩과 함께 삽니다. 아내 송덕봉은 홀로 시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른 뒤, 첩과 알콩달콩 지내는 유희춘을 가만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유희춘과 첩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서, 직접 그 먼 곳까지 찾아갔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이때의 일은 송덕봉에게 큰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유희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일은 다시 언급됩니다.

 

1570년 6월 12일 - 『미암일기(眉巖日記)』

 

그래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홀로 지내는 게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제가 옛날 어머님의 초상을 치를 때,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고, 당신은 그저 만 리 밖에 유배지에서 통곡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죠. 그때, 남 부끄럽지 않게 장례를 치른 사람이 누구였죠? 바로 저였습니다. 삼년상을 치른 뒤 온갖 고생 끝에 당신의 유배지까지 찾아 간 사람 또한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베푼 이 정도 정성은 되어야, ‘잊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송덕봉은 글과 학문이 당대의 석학으로 불렸던 남편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학식 있는 여성이었고, 그 집안 또한 명문가였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최고의 아내였죠. 

 

그런데 스스로 ‘여색을 멀리하며 살았다’라던 유희춘 역시도 집을 떠나면 종종 자신만의 로맨스를 찾아 나섭니다. 양반 남성들이 객지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아름다운 글귀를 써낸 사례는 많지만, 자신의 부인을 위해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른 기록은 극히 드뭅니다.

 

‘가족끼리는 로맨스는 하지 않는다’라는 걸까요. 그들의 로맨스 대상, 더 정확히 말하면 성생활의 대상은, 아름다운 육체를 소유한 ‘젊은 여성’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와의 합방은 로맨스라기보다, 재생산을 위한 ‘생산직 업무’에 가까웠던 거죠. 그나마도 아내의 나이가 중년을 넘으면 생물학적인 사랑의 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

 

심지어 아내와 가까이 살아도, 사교 모임 때문에 종종 기생집을 찾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부부싸움이 대판 벌어지죠.

 

유희춘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의 일기에 그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문건은 잘 나가던 관료였지만, 역모 사건에 휘말려 고향 성주로 유배를 가는데요. 유배지에서의 입지가 워낙 탄탄해, 틈만 나면 지역의 힘 좀 쓴다는 사람들과 사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문건이 기생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반복되자, 아내 김돈이(金敦伊, 1497~1566)는 그야말로 개빡칩니다. 

 

1552년 11월 21일 - 『묵재일기(默齋日記)』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화를 내면서 욕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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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먼 곳으로 간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고 기생이 잠든 남의 집에서 잘 수가 있어? 이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노친네가 할 짓이야? 어떻게 된 게, 남편이란 사람이 아내가 속상해서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건 신경도 안 쓴단 말이냐고!”

 

라고 쏘아댔다. 그 말을 듣자 듣자 하니까 나도 참을 수 없어 몇 마디 쏘아붙였다.

 

<계속>

 

 

 

 

편집부 주

 

독자 여러분의 성원 덕에 

필자의 책,<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새로 나온 후속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절찬리 판매 중이다. 

 

안 사줄 것 같이 하다가 기사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주문하는 샤이 독자 여러분 덕에 

필자는 눅눅한 골방에서 

조금 덜 눅눅한 골방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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