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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TV토론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이 많다.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의 승부가 몇 퍼센트 득표율 차이로 갈릴 것인가 예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TV 토론이 극히 일부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뿐일지라도 바로 그 ‘일부’가 승부를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다면? 

 

게다가 이번 대선 TV 토론은 법이 정한 네 차례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개별 토론의 주목도는 더욱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대선 후보 TV토론은 중도 유권자와 (비교적) 정치 저관여층을 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 고관여층과 일찌감치 지지후보를 결정한 유권자들에게 TV 토론은 프로스포츠 라이벌전과 같다. 인터넷 댓글창과 커뮤니티에서는 응원전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 팀이 하는 태클은 처죽일 놈이 되고 우리 팀이 가하는 백태클은 그럴만 했다로 보이기 쉽다. 물론 경기장을 찾은 응원단의 기세는 승부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깻잎 한 장 차이 대선에서 지지자들의 쟁기력(얼마나 밭을 잘 가는가!)은 당락을 좌우할 수 있고, 그런 쟁기력은 기세와 사기에 달려 있다.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여론조사 결과다.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인은 중도 유권자의 응답이다. 

 

대선 후보 TV 토론의 관전평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1.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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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KBS>

 

 

예상대로 대장동 관련 질문이 줄을 이었다. 예측 가능한 공격이었으므로 답변 또한 전략적으로 준비된 답변이 나왔다. 이재명 후보는 스스로 그렇게 말했듯, 그간 있었던 국정감사와 인터뷰 등, 같은 의혹을 제기당한 숱한 자리에서와 대동소이한 답변을 내놨다.

 

‘어떤 지자체도 공공환수를 시도하지 않았다.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이 막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100% 환수를 하지 못하고 일부 환수한 것에 국민들께 사과한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사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최대한 무의미한 피로감을 덜고 대통령 후보에 어울리게 정책 토론을 하겠다는 뜻이 전해진다. 다만 대장동 관련 윤석열 후보의 주도권 토론 마지막 질문에 역공격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의견은 갈릴 수 있겠다. 이재명 후보는 ‘결과적으로 정영학, 남욱 같은 이들이 조 단위 이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를 당한 것인지 본인이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도 사업 리스크를 감안하여 설계한 것인지’ 묻자 윤석열 후보의 저축 은행 비리 무마 의혹, 윤석열 후보 부친과 김만배 가족의 부동산 거래, ‘내가 입만 뻥긋하면 윤석열 후보는 죽는다’고 말한 김만배의 녹취록을 거론했다. 즉, 드러난 사실관계를 말했다.

 

다만 이 부분은 보기에 따라 핵심을 찔리자 답변을 회피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만약 토론을 보는 중도 유권자의 일부라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감점 요인이다. 헌데 이재명은 왜 실점을 감수한 공격한 택했을까? 잃을 점수보다 가져올 점수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터진 김만배 녹취록 관련 뉴스의 보도량이 기대에 못미쳐서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봤다면 주목도가 높은 TV토론에서 후보가 직접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 에너지 관련 질문에 앞서 ‘RE100’이나 ‘EU택소노미’를 지식 점검하듯 물어본 것은 다소 아쉽다. 원전 확대를 사명처럼 주장하는 대선 후보가 EU택소노미를 전혀 모른다는 건 황당한 일이다. 학습과 준비가 부족한 윤석열 후보의 약점을 공략한다는 의도도 충분히 이해한다. 유권자에겐 상식이 아니나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총괄하는 동시에 수출입에 극도로 의존하는 국가의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이라면 상식이어야 한다.   

 

다만 정치 저관여층이나 중도 유권자 가운데 시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RE100과 EU택소노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라면 모르기 어려운, 특히나 서민 경제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상식이라면 그런 방법이 통할 수 있다. 청약 만점을 모르는 건 손가락질 당하지만 RE100은 상대적으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류의 전문용어 지식 점검이 혹시 다음에 이어지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 다음판에선 전문 용어는 정책 이해도를 묻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편이, 현재 이재명의 급에 더 맞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이재명은 그 레벨까지 왔으니까. 

 

혹자는 이재명 후보 특유의 시원시원함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허나 그는 애당초 대선 토론에서 얻을 수 있는 가점이 별로 없다. 다자토론에서는 더욱 그렇다. 잘해야 본전인 판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선뜻 손을 내밀어주지 않고 있는 중도 유권자들에게 유능한 대통령, 정책적으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한 한 판이었다. 

 

2.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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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KBS>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아직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유권자. 이번 TV 토론을 대하는 입장은 서로 달랐지만 적어도 한 가지 면에 있어서는 같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윤석열 후보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아무쪼록 별 탈 없이 무사 통과하기만을 바랐을 거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거하게 똥볼 몇 번 차주길 기대했을 거다. 

 

결과적으로 1차 TV토론을 시청한 윤석열 후보 지지층은 ‘이 정도면 잘했다’고 자평할 것이고, 이재명 후보 지지층은 ‘역시나 수준 이하’라고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윤석열 후보가 치명적 실수를 했나’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까. 감히 예상컨데 ‘그건 아니’라는 답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인물 경쟁력 보다는 정권 교체 구도에 기대 선거를 치르고 있는 윤석열 후보측에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다.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청약 점수 만점을 틀리게 대답했고, 본인 공약과 관련한 기본적인 용어조차 금시초문이니 알려달라고 되묻기도 했다. 상대 후보의 날선 질문에 애써 쿨하게 웃어보였으나 누가 봐도 쿨해보이지 않았다(... ...). 용각산을 하나 챙겨드리고 싶을 정도로 토론 초반부터 계속 목을 긁는 소리를 냈다.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정책 비전을 녹여 공약으로 풀어낸 느낌이라면 윤석열 후보는 소화 되지 않은 주입식 정보를 그대로 외워서 늘어놓는 인상이었다. 대통령 후보로서 고민한 시간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방했다. 그는 역대 유력 대선 후보 가운데 토론 기대치가 가장 낮은 후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몇몇 언론이 나서서 그의 선방을 주장할 것이기도 하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 같은 건 안했으면 좋겠지만 뭐,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러려니 하자.  

 

아.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 현정부 인사들에게 ‘개전의 정’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법정에서 피고인에게나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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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생활을 하도 오래해서 쓰던 말버릇이 무의식 중에 나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고 반대한 무리에게 범죄자 낙인을 찍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순간 떠올랐다.

 

3.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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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KBS>

 

포지션의 이점을 확실히 누렸다. 양강 후보는 서로를 때렸고 심상정 후보는 양강 후보를 번갈아 때렸다. 안철수 후보는 그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았다. 주도권 토론자는 반드시 두 명 이상의 후보에게 질문해야 한다는 룰이 없었다면 제대로 된 질문을 거의 받지 못할 뻔했다. 윤석열 후보는 주도권 토론에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이재명 후보에게 쏟다가 룰 때문에 마지 못해 안철수 후보를 향해 ‘님은 이거 어떻게 생각하심?’이라고 물으며 질문을 때웠다.

 

안철수는 토론에서 상대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 아찔할 정도로 취약했던 후보다. 지난 대선 당시 TV 토론을 수놓은 주옥 같은 명짤들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TV토론에서는 대응할만한 공격이 아예 없어서 점수를 까먹을 일도 없었다. 얼마나 점수 까먹을 일이 없었는지 토론 중간 중간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더듬으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셨다.

 

질문이 들어오지 않은 덕에 발언 시간도 남아돌았다. 남들이 공격과 방어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안철수 후보는 TV토론을 정책 홍보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중도 유권자들에게 얼마간 점수를 딴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만약 안철수 후보가 남은 세 번의 TV 토론에서 계속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안철수 후보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2강 1중의 1중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을 경우에만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공언한대로 20% 지지율을 달성해서 TV토론장에서 벌어지는 날선 공방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 한 이런 씁쓸한 평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도 질문이 들어오지 않으니 본인이 나서서 토론을 진행하는 면모까지 과시했던 점이 포인트. 연금 개혁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여담으로, 윤석열 후보에게 질문하다 곁다리로 다른 후보들에게도 짤막하게 던진 질문에 심상정 후보가 장황하게 대답하자 ‘아까운 내 시간 다 잡아먹네’라고 말하는 듯한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던 안철수 후보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4.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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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KBS>

 

우리나라 대선 TV 토론에서 진보정당의 대선 주자가 맡아왔던 롤을 거의 그대로 수행했다. 윤석열 후보의 안보 공약을 두고 그게 바로 안보 포퓰리즘이지 않느냐고 비판했던 점, 이재명 후보에게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에 지나치게 성장 위주 공약에 치중하고 있지 않냐고 비판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다음 대선의 TV토론에도 정의당 대선 후보가 출연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우려되는 바이다. 

 

 

마치면서

 

첫 번째 TV 토론이 끝났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전 대선 토론에 비해 비교적 정책 토론에 가깝게 치러졌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지난 대선 토론을 아사리 판으로 만들었던 그 분의 부재가 한 몫 단단히 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토론이 끝난 후다. TV 토론 만큼이나 중요한 게 토론 후의 펙트 체크다. 토론장에서 나온 후보들의 발언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체크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보통은 언론이 맡아서 한다는데 과연.

 

대선을 거듭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토론 룰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유권자들의 판단에 TV 토론이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TV토론이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 않길 바라는 쪽이 있는 한, 쉬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나서야 바뀔 일이다.

 

자, 다음판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