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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랑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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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儒者)의 나라

 

유자(儒者)들이 세운 나라이다. 대대로 하늘을 공경하여 순리에 따랐으며 안으로는 수신(修身)의 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큰 나라 중국을 극진히 사대했으며 아래로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교화하여 밭 갈고 씨뿌리며 살도록 만들었다. 덕(德)과 예(禮)를 모르는 천한 것들이 지엄한 유자의 도를 따르도록 솔선수범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히 유자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그런데 세상이 급변하니 바다 건너 천한 것들이 무(武)와 이학(理學)을 숭상하여 오로지 살상(殺傷)의 힘만을 믿고 우리 유자의 나라를 침범하였다. 고얀 것들이다. 

 

그들이 철갑선에 거대한 화포를 싣고 다니며 힘을 뽐내고, 배 위에서 비행기를 띄워 폭탄을 투하하는 무식을 자랑할 때, 시류의 변화에 영합하지 않고 초연히 지조를 지켜 도(道)의 숭상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약간의 소총수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애시당초 힘의 우열을 논할 거리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오직 하늘의 벌이 있을 뿐이니 1910년, 백성들이 피를 흘리지 않게 총 한 방 쏘지 않고 나라를 넘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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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당시 대한 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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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본 20000톤급 전함 사쓰마

출처-<더위키>

 

항공모함 호쇼.PNG

세계 최초의 본격 항공모함 호쇼

출처-<Wikiwand>

 

 

조선의 심벌, 황 진사

 

천한 것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현실 속에서 곤궁하지 않은 백성이 있겠는가. 그러나 굶주림 속에서도 물질을 탐하지 않고 공자님의 도를 추구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심벌’이다.

 

“조선의 심벌요?” 나는 반쯤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은즉, 숙부님도 따라 웃으며, “그렇지, 심벌이지.”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심벌’이란 말에 마음이 솔깃해진 나는 등산하려던 신발을 끄르기 시작하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우연한 기회에 소중한 것이 오는 법이다. 숙부님의 말에 이끌려 따라간 것이 ‘나’가 바로 ‘황 진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되니 말이다.

 

“아 이분이 김 선생 조카 되시는 분이구랴.”하고, 거무추레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나이 한 육십 가량 된 영감 하나가 방구석에서 육효를 뽑다 말고 얼굴을 돌리며 어눌한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는 하도 살아갈 지모(智謀)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 보았노라 하면서, 반가운 듯이 삼촌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의 까닭 없이 벗겨진 이마 밑의 두 눈엔 불그스름한 핏물 같은 것이 돌고 있었다. 

 

‘살아갈 지모가 나지 않’는 다는 것은 곧 곤궁함을 뜻하는 것이리라. 범인(凡人)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할 것이다. 그런데 황 진사는 육효를 뽑고 있었다. 육효란 무엇인가. 바로 3천여년 전 중국 주나라 초기에 출현한 점치는 책인 주역의 도구이다. 주역에 대한 황 진사의 준엄한 평가를 들어보라.

 

과연 그 이지러진 네 귀마다 넓적넓적한 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주역책임에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역책은 왜 하필 전대에 넣어서 두르고 다니느냐고 물은즉, “아, 공자님께서도 역은 삼천독을 하셨다는데 그랴.”하고, 된소리를 질러 놓고 나서, 다시 조용히 음성을 낮추어, “아, 여북해 지략의 조종이오? 조화의 근본 아니오?” 하였다.

 

암울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전대 속에 주역책을 넣어 늘 몸에 지니며 공자의 길을 따르는 고귀한 자, 그가 바로 황 진사이니 어찌 ‘조선의 심벌’이 아니겠는가.

 

 

위대한 문벌(門閥)의 후인(後人), 화랑의 후예 황 진사

 

유자에게 있어 예(禮)란 무엇인가. 공자는 예를 실천하는 인간에게서 인(仁)을 발견하였고 이것을 인간의 조건이라 하였다. 이것이 곧 예교(禮敎)인 것이다. 

 

황 진사에게 있어서 예란 곧 삶의 지고지선한 가치였으며, 그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를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에게는 아무리 세상이 변할지라도 이 전통적 관행이 최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다.

 

내가 잠자코 의아한 낯빛으로 그를 쳐다보려니까, 그는 어느덧 오연(傲然)한 태도를 가지며 위엄 있는 음성으로,

 

“거, 쇠똥 위에 개똥 눈 겐데 아주 며, 며, 명약이유.”한다.

 

나는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허어, 어떻게 귀중한 약인데 그랴!”하며, 그 물이 도는 두 눈에 독기를 띠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민망해서 “대개 어떤 병에 쓰는 게죠?”하고 물은즉,

  

“아, 거야 만병에 좋은걸, 뭐.”하고 나를 흘겨보고 나서,

  

“거 어떻게 소중한 약이라구... 필요할 때는 대, 대갓집에서도 못 구해서들 쩔쩔매는 겐데, 괘니...” 

 

“거, 아침밥 자시고 남았거든 좀......”하며,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띠고 고개질을 하는 양은 조금 전에 흙가루를 내놓고 호령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그를 방에 안내한 뒤, 나의 점심밥을 차려 내오게 하였더니, 그는 밥상을 받으며 진정 만족한 얼굴로, “이거 미안하게 됐소구랴.”하였다. 

 

이것이 황 진사의 예이다. 옛 조상님들 말씀에 틀린 것이 있는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고 하였다. 개똥도 이리 귀한 것일진대 황 진사가 내민 것은 무려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이었다. 주린 배 앞에서 고통스럽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이는 황 진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황 진사는 굶주림 앞에서도 예를 잃지 않았다. 한 끼 끼니를 부탁하기에 앞서 귀하디 귀한 명약을 먼저 내민 것이다. 황 진사와 범인(凡人)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이 예라 할 것이다.

 

황 진사의 이 고귀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개인주의로 살아가는 만연한 현대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나’보다는 ‘가문’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종류이다. 조상들은 항상 자신의 누구의 후예인지를 가슴에 새기고 살았으며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는 모든 시도에 목숨을 걸고 맞섰다. 천한 신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문벌(門閥)’인 것이다.

 

다만, 삼촌을 통해서 그의 시골이 충청도 어디란 것과, 그의 문벌이 놀라운 양반이란 것과, 그의 조상에는 정승 판서 따위가 많이 났다는 것과, 그 자신도 현재 진사 구실을 한다는 것과, 그의 머릿속은 자기 가벌에 대한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들이었다.

 

황 진사가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본인 자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가벌에 대한 자존심이었다. 또한 범인은 따라할 수조차 없는 그의 행동들 역시 정승 판서의 피가 혈관 속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품위와 예절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대대로 이어져 온 조상들의 유산인 것이다. 귀족과 평민의 차이가 극복될 수 없는 이유이다.

 

황 진사의 조상이 물려준 피는 ‘나’와 ‘삼촌’과 ‘숙모’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결한 것이었다. 인간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 앞에서 종종 실수를 하게 된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저녁때 황 진사가 온 것을 보고, 숙부님이 “일재, 여기 젊고 돈 있는 색시가 있는데, 장가 안 들라우?”하고 물어본즉, “아, 들면야 좋지만 선생도 아시다시피 천량이 있어야지.” 하는 그의 얼굴에는 완연히 희색이 넘쳤다.

 

그의 얼굴에 희색이 넘침을 보신 숙모님은, 돈이 없어도 장가를 들 수 있다는 것과 장가만 들게 되면 깨끗한 의복에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을 일러 주신즉,

 

“아, 그럼야 여북 좋갔수? 규수 나이 몇 살이고......? 집안도 이름 있구......?”

 

그는 연방 입이 벌어져 침을 흘리며 두 눈에 난데없는 광채를 띠고 숙모님께로 대드는 판이었다.  

 

“과부래야 이름이 아깝지, 뭐. 이제 나이 삼십도 다 못 된걸......”

 

비록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곤궁한 삶을 사는 황 진사였지만 그는 고귀한 가문의 전승을 위해 19살 정도의 처녀를 원하고 있었다.

 

언젠가 숙모님이 그의 맘에 제일 드는 규수의 나이와 이름을 물었더니, 하나는 열아홉 살이고 하는 갓 스물인데, 열아홉짜리는 성이 오 씨고, 갓 스믈짜리는 윤 씨라 하였다.

 

“열아홉 살?” 듣던 사람이 놀라니, “아, 자식을 봐야지유.”하였다.

 

아, 다음의 추상과도 같은 가르침과 분노 앞에서 범인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당찮은 말씀유...... 흥, 과, 과부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그는 곧 호령이라도 내릴 듯이 눌허게 부은 두 볼이 꿈적꿈적하며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황후암(黃厚庵) 육대 종손이유.”하고 다시,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갈 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그는 분함을 누르느라고 목소리에 강한 굴곡이 울리었고, 낯에는 비통한 오뇌의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아, 아무렴 그랴 그렇지, 거 어디라구, 함부루 어림없이들...... 황후암이 누구며 황익당이 누군데 그랴?” 얼굴을 펴고 이렇게 높은 소리로 외쳤다.

 

천한 것들에게 고귀한 유자의 나라를 빼앗기니, 감히 황후암 육대 종손에게 과부를 천거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이를 말세라 한다. 그러나 말세 속에서도 예를 잃지 않으며, 공자님의 뜻을 따르고,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되새기며, 현실을 초월하여 우뚝 서 있으니, 우리는 황 진사를 가리켜 지사(志士)라 하고, 그의 뜻을 지조(志操)라 하며 숭상한다. 황 진사의 이 드높은 지조는 황후암의 육대 종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아, 이럴 수가......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그렇다. 황 진사는 황후암의 육대손이고 황후암 선생의 조상은 신라적 화랑이었으니, 황 진사는 곧 ‘화랑의 후예’인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그저 머리를 수그리면 될 뿐이다. 그리고 비록 범인들이지만 황 진사의 삶을 흉내라도 내 보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나’의 황 진사에 대한 흠모의 길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다. 어두운 시대에는 고귀한 자들이 핍박과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자 ‘아Q’를 보라. 신해혁명이라는 격변 속에서도 ‘정신 승리’라는 현실 초월적 메타인지로 우뚝 서신 분이다. 그 역시 끝내는 형장의 이슬이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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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좌)와

조선의 화랑의 후예 '황 진사'(우)

 

머리가 더부룩한 거지 아이 몇 놈과, 아편 중독자 몇과 그 밖에 중풍장이, 앉은뱅이, 수족 병신들이 몇 둘러싼 가운데에 한 두어 뼘 길이쯤 되는 무슨 과자 상자를 거꾸로 엎어 놓고, 그 위에 삐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그 옆의 똥그란 양철통에 흙빛 연고약을 넣어 두고 약 쓰는 법을 설명하는 위인이 있다.

 

“여러분, 여기 계시는 이분은 우리 조선에서 유명한 선생이올시다.”

황 진사는 검정색 색안경을 쓰고 점잖게 먼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선생께서는 또 이 방면에 연구가 대단히 깊으실 뿐 아니라...”

 

이때 일제 순사들이 왔고 황 진사와 약장수 일행은 곧 연행되었다.

 

아까 연설을 하던 작자는 빈 과자 상자에 마른 두꺼비와 고약통을 담아 가슴에 안고, 황 진사는 점잖게 두 손을 두루마기 옆구리에 찌른 채 순사를 따라 건너편 파출소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천하고 또 고얀 놈들이다. 유자의 나라를 빼앗고 황 진사를 연행해 간 놈들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이런 놈들에게는 하늘이 벌을 내릴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유물(遺物)로 지탱하는 인생에 대한 애도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병리 현상이 유물(遺物)에 대한 집착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부심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거창하게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끌어 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아에 지배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아와 현실이 부조화를 일으킬 때, 인간은 자아를 설득할, 또는 만족시킬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현실을 벗어나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 어딘가에 존재했던 빛나는 순간을 찾아내고, 자신이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려 현실에 투사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을 오늘의 것으로 재포장한다. 이것이 유물로 지탱하는 삶이며 알 수 없는 자부심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한때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수해주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명문가의 후손인 황 진사가 그 어떤 성취도 없이 추레하게 늙어가는 것 모두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음식점 키오스크가 당황스러울 때, 찬찬히 사용법을 읽기보다는 발로 걷어차는 노인네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대략 70만년 전 구석기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BC 6000년경 신석기 시대를 맞이했다. 69만년 동안 인간이 일으킨 변화란 ‘뗀석기’를 ‘간석기’로 바꾼 것이다. 우리는 지금 69만년간의 변화보다 10년의 변화가 더 큰 시대에 살고 있다. 

 

만약 지금 나의 인생이 시대를 좇기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시대를 자신의 인생이 살아내기가 버겁다고 생각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과거의 유물로 도피하여 황 진사로 나이를 먹을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대응 방식을 찾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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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매트릭스4>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천 년 전 조상의 영광을 되살려 스스로 만족해하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든 각자가 선택할 일이라는 말이다. 방금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 만 35세의 나이로 UFC 챔피언에 도전했던 정찬성과 그의 장렬한 패배를 기억할 것이다. 챔피언 볼카노프스키가 시합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내가 늘 말하는 게 있다. ‘지금 아는 건 다음 달만 되면 불충분한 지식이 된다.’ 주변을 보라. 모두가 성장한다. 난 그저 모든 영역에서 (지금보다) 딱 한 걸음만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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