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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기공 형님들이 바로 붙일 수 있도록 한참 유로폼(규격화된 거푸집의 일종)을 정리하고 있는데 텔레그램 메시지가 날아왔다. 발신인 죽돌 편집장.

 

좋아요를 몇 천 개나 받고 있으며 퍼지고 있는 SNS의 내용은 이렇다.

 

1) 2020-2021년 건설된 아파트는 걸러야 한다.

2) 자재값 폭등 탓에 철근 콘크리트를 덜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다. 

4)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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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링크

 

죽돌 :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네요.

 

사무엘 : 그런가요?

 

죽돌 : 네.

 

사무엘 : 그렇군요.

 

죽돌 : 네.

 

아리까리한 대화를 잠시 주고받다가 다시 일에 집중했다. 일단 오늘 과업을 안전하게 끝내는게 우선.

 

점심 먹고 나서 잠깐 휴식하는 와중, 죽돌 편집장이 던진 이야기가 생각났다. 동료 형님들에게 죽돌이 보낸 사진을 보여줬다. 그들의 반응은 대략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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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파트 현장은 철근 넣고, 감리가 검침하고, 거푸집 붙이고, 다시 감리가 검침해야 콘크리트 타설을 할 수 있다. 거기다 타설을 할 때도 레미콘 회사별, 타설한 층 별로 날짜를 기입해 굳힌 다음, 그걸 갖고 강도 실험을 한다. 이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공시체라고 한다. 이거 안 만들면 안 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올리는 곳이라면 아예 이 강도를 실험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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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장의 공시체들

 

규모가 작다고 이 과정이 생략되는 것도 아니다. 쬐끄만 건물이라고 해도 안전진단은 다 해야 사용 허가가 떨어진다. 사실 관련 규정들을 충실히 지켰다면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같은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일이 벌어졌다면 설계 변경하면서 구조 계산 같은 것은 엿 바꿔 먹었다는 말이다. 시공 과정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부터 각종 법령과 규정들도 개무시했어야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개무시, 일어나기 힘들다.

 

개소리의 공구리

 

다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지사. 문제는 이 불안을 갖고 장사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만드는 형틀 목수들에겐 황당한 풍경이다.

 

퇴근 후 며칠간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래 즈음의 이야기가 불안이 확산되는 연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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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 9일자 기사, 출처 링크

 

 

작년에 크레인 기사들이 파업했던 것은 맞다. 내 기억으론 이틀인가 사흘인가 했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게 아파트 현장에서 크레인이 안 돌아가면 모조리 사람 손으로 날라야 한다. 꽤나 따뜻하던(!) 날씨에 거푸집을 사람 손으로 백 장쯤 올려 몸이 아주 뜨끈했었다. 이걸 받아치기라고 하는데, 목수 연장 다 차고 할 짓은 아니다. 그걸 며칠했으니 기억 못 할 리가.

 

아마 이 기사도 비슷한 공포에 힘을 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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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정확하겐 겁나게 굵은 철근 한 종의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 철강업체와 건설사가 공급계약을 할 때, 몇 달 단위로 끊어서 계약한다. 헌데 중간에 값이 너무 올라 철강 업체에서 공급을 안 하겠다고 배째 모드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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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있는 현장 사진 함 찍어왔다

 

문제의 철근은 위 사진처럼 옮겨지는 다발의 세로 부분으로, 대충 두루마리 휴지심만 하다. 하지만 이것도 대충 해결됐다. 레미콘 노조도 금방 합의했고. 쟁의가 발생하는 건 대대적으로 보도하지만 쟁의 종결은 대충 생까는 보도 관행이 건설업계를 다룰 때도 적용되고 있으니 검색이 잘 안됐을 게다. 그러니 화정동 붕괴 사건에 충격 먹은 상태에서 기사 검색을 했는데 이런 것들이 주루룩 걸리면 겁먹을 수밖에.

 

중앙일보의 밑장 빼기

 

만약 언론사들이 이런 기사 바로 뒤에 연관 기사로 쟁의 종료 기사를 붙여주면 사람들이 겁먹을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일, 기대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언론사들의 상당수는 부동산 재벌 아니면 건설사가 낑겨 있다. 초대형 광고주이기도 하고. 기자 밥그릇 주인님들이 부동산 재벌이거나 건설사들인데 주인님에게 칼끝을 겨냥하는 용자가 나올 리 없다.

 

난 그분들의 다양한 행태들을 꽤나 오래전부터 봤다. 몇 년 전, 조선소 용접공들이 너무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회사가 어려울 때 구조조정에 협조적이지 않다고 온갖 레거시 미디어에서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조선소를 나온 용접공들 중에서 일부는 이민 가버렸고, 상당수는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여기에 눌러앉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조선업 경기 회복의 사인이 켜지니 그분들을 비난하던 매체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기사 쓰고 있다. 일감 없다고 몰아내는데 앞장서 놓고 몇 년 뒤엔 일이 많은데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라니. 사람이 몇 년간 생체 능력을 셧 다운할 수 있는 폐어 같은 존재인가.

 

이제는 그 타깃이 우리가 된 것 같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사실 꾸준히 줄어왔다. 대부분 제조업 정규직들이었는데, 그분들이 은퇴하고 있는데 신규 고용은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조직률이 높아지고 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겪다 보니 일단 노조의 보호 울타리로 몰려들고 있는 거다. 조합원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면 뭐 이런저런 문제들도 늘어나는 법이다. 사람이 만드는 조직인데 착한 사람들만 모일 리가 없잖는가?

 

그래서 중앙일보의 <나는 고발한다>는 시리즈를 꽤 기대하고 봤다. 참여하는 건설노동자가 "할석"하시는 분이라고 하기에 특히. 현장 용어로 뿌레카(Hammer breaker)라고 하는 묵직한 연장을 들고 우주복 같은 방진복에 가스마스크 쓰고 일하는 분들로, 진폐증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 "할석"은 건설노조 조합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틀 목수와 철근 파트가 뭔가 말이 안 되는 짓을 해놓으면 작업량과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파트이기도 하다. 즉, 업계를 잘 알고 있고 귓구멍 열고 들어야 하는 비판을 하실 수 있는 분들 되겠다. 그런데 2월 7일의 처음 글은 좀 황당했다.

 

"광주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 사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왜 벌어졌을까. 나는 일자리 나눠 먹기에서 온 책임감 붕괴라고 본다. 진짜 노동자가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책임감을 느껴온 현장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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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링크

 

일자리 나눠먹기는 나중에 좀 길게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지만, "진짜 노동자가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책임감을 느껴온 현장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라는 구절로 가면 고개가 모로 돌아간다.  

 

안전의 야바위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감리가 바로 따라붙는다. 철근 넣고 감리가 검침 하고, 거푸집을  붙이고, 다시 감리가 검침을 해야 콘크리트 타설을 할 수 있다. 책임감 없이 일했다면 일단 감리에서 빠꾸먹는다. 현장 용어로 '데나오시(재시공)'이다. 이거 몇 번 반복되면 노조팀이라 하더라도 짐 싸서 현장 떠나야 한다. 이게 책임감 없는 노동자의 자세인가?

 

지난 기사(광주 화정 아이파크 참사 보도에 이의 있습니다: 목숨이 달린 일엔 게으르지 말자)에서도 썼지만, 알루미늄 거푸집 만지는 형틀 목수가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가졌거나 한국인이라고 한다면 일당 35만 원을 받는다. 화정 아이파크가 35만 원 받는 이들을 고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동종업계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내용이다. 뭔 이야기냐면 노조에 가입된 이들이라면 철근 정도나 해당사항이 있을까, 다른 파트에선 해당사항이 없다. 형틀은 대부분 지하 시설만 만들고 시스템 폼 연결하게 되면 그 현장을 떠난다. 지상 30층 위에서 벌어진 참사의 원인이 지하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구조설계나 구조공학자가 말을 해야지 "할석"의 영역은 아니지 않나?  

 

노가다 짬이 나랑 비슷한 분 눈엔 뭔가 다른게 보였나 보다. 그 분이 안 썼다면 편집자의 가필일 터인데, 뭐, 그렇다면 딱히 신기하진 않다. 용접기 좀 만져본 사람이라면 조선소 정규직 용접공들의 실력은 신의 경지로 이해한다. 그런 신의 경지에 다다른 분들을 하찮은 사람들로 취급하셨던 분들이 우리인들 사람 취급할까.

 

업계를 좀 아는 분들은 저 위의 게시물을 보고 금세 비웃을 수 있겠으나, 사실 언론이 이 모양인데 불안이 전염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결론을 말하자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에 공학적으로 문제가 있긴 아주 어렵다. 건물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시장은 심리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현직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면 뭐 하나. 저런 불안을 가중시키는 기사가 검증도 없이 떼로 쏟아지면, 게다가 후속 보도도 하지 않으면(아마도 고의적으로) 사람 심리는 거기 따라가기 마련인데 말이다. 

 

언론중재법 이전에, 안전을 가지고 밑장을 빼는 기자들에겐 정말 무시무시한 사회적 오함마를 내려쳐야 할 방법을 마련해야한다.

 

그 어떤 야바위보다, 악마적이다. 판돈이 사람 목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