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노무현
양 김 분열로 노태우가 당선된 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5공 청문회가 열린다. 증인들을 앉혀놓고 억센 부산 사투리로 조목조목 따지며 궁지에 몰아넣는 노무현의 실력은 지금 봐도 웬만한 법정 드라마 먼치킨 변호사 이상이었다. 그렇게 소년 마사오의 눈에 노무현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결행했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불끈 쥔 주먹을 치켜올린 노무현은, 권력에 따라 합종연횡을 일삼는 정치판에 참으로 기괴한 존재였다. 당연하겠지만 앞으로 그가 그려갈 드라마가 얼마나 강렬할는지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5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대중에게 깻잎 한 장 차이로 진 이회창이 재도전에 나섰다. 대선이 있던 해 여론조사는 열이면 열,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는 민주당 후보는 단연 이인제였다. 그 밑으로 두어 계단 아래에 2~3%대 지지율의 군소후보 노무현이 있었다. 대한민국 그 누구도 노무현이 민주당 후보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
마포 노사모 정모에 부지런히 나갔다. 배우 문성근 씨가 근처 대학에 강연을 온다기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정의’가 이기는 꼴을 현실에서 보고 싶었다. 제 권력욕을 위해 시민을 학살하고 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보를 이용하고 그 권력에 기생해서 온갖 이권을 약탈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힘없고 빽 없는 서민-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세상을 끝장내는 길이라 믿었다. ‘그놈이 그놈’인 정치판에서 노무현은 군계일학이었고 대단히 유니크한 존재였다.
롤러코스터였다. 민주당 경선 광주 승리를 기점으로 돌풍이 불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거짓말처럼 민주당 대선 후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곤 이른바 ‘YS시계’ 사건으로 역풍이 불어 지지율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친다. 노무현을 향한 대중의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잘 드러내는 해프닝이었다.
후단협과 정몽준은 노무현에게 대중이 제시한 고난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를 차례차례 극복해 대중의 환호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대선 전날, 모래내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TV에서 노무현의 대선 광고를 봤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배경음악으로 멘트를 이어가던 노무현은 끄트머리에 “이회창, 권영길 후보님. 수고하셨습니다.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누가 들어도 명백한 대선 승리 선언이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피가 끓었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당선 직후 노사모에 둘러싸인 노무현 당선인이 연설하는 걸 봤다. 노무현이 지지자들에게 물었다. “나는 대통령이 되었는데 여러분은 이제부터 뭘 할겁니까?” 사람들이 구호 외치듯 연호했다. “감시! 감시! 감시!” 그 순간 당황한 눈빛의 노무현 표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얕은 한숨을 쉰 뒤 이야기했다. “감시하고 비판할 사람은 여러분 말고도 널렸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지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못 지켰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말이 설화의 시작이었다면 ‘종부세 폭탄’이란 레토릭이 마지막 장이었다. ‘아방궁’ 논란(?)은 확인 사살이었다. 그는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끊임없는 언론과 여론의 극악스러운 린치에 시달리며 철저히 무너져 갔다. 길을 가다가 개똥을 밟아도 “이게 다 노무현 탓”이란 말은 국민스포츠가 되었다. 그렇게 정권이 넘어갔다.
퇴임 후 “야~ 기분 좋다~”고 외치며 함박웃음을 짓던 노무현은 수입 쇠고기 협상에서 촉발된 광우병 파동 와중에 “저 많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느냐?”는 이명박의 한마디에 정국 돌파의 번제가 된다. 결국 사기로 드러난 NLL 대화록 논란과 대통령기록물 관리라는 어처구니 없는 꼬투리를 시작으로 주변을 탈탈 털었던 이명박 정권하의 검찰은 그를 박연차 게이트로 엮어 소환하기에 이른다.
노무현 없는 13년
아마도 주말이었을 게다. 전날 술을 잔뜩 먹고 세상 모르게 자빠져 자고 있었다. 아침 7시였던가.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뉴스 봤어? 노무현 죽었대!” 뭔 미친... 하며 TV를 틀었다. 술이 확 깨더라. ‘망연자실’이란 게 어떤 기분인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운구차가 지나가던 숭례문 YTN 건물에서 종이 꽃가루가 뿌려졌다. 나도 도로 한쪽에 서 있다가 다가가 운구차에 슬쩍 손을 댔다. 화장하는 순간을 뉴스로 봤다. 현장 생중계 뉴스 화면에서 “이명박 개새끼! 복수할 거야, 이 개새끼!”라는 누군가의 울부짖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버텼다. 이명박도 임기가 끝났다. 상대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다. 그리고 이쪽은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자 ‘친구’, 문재인이었다. 그야말로 보수 대 진보의 진검승부이자 총력전이었다. 애초 이런 대진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 여겼다. 지독히도 비상식적이었다. 독재자 박정희의 망령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종의 정치적 절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졌다.
4년 후,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박근혜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아니, 그들은 충분히, 그리고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저지른 거다. 당연한 거다. 살면서 정치의 효용성을 그다지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TV 연속극 보듯이, 올림픽 중계 보듯이 즐겼을 뿐이다.
그리고 반대로, 내 삶에 정치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 진지했고 심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김대중과 노무현과 이명박과 박근혜를 겪으며 미쳐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게다.
김영삼에겐 관대한 잣대가 김대중에겐 엄격했다. 노무현에겐 가차 없던 매질이 이명박과 박근혜를 향할 땐 전봇대로 상징되는 실용과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로 대체되었다. 박근혜의 친중 액션은 패션 외교로 상찬되지만 문재인의 미-중 등거리 외교는 중국몽이 되었다.
이 땅에 메르스가 퍼졌을 때 “살려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사진으로 도배하던 언론이 문재인의 방역엔 사사건건 도끼눈을 뜨고 시비를 걸었다. 이건 정말이지, 맨정신에 버틸 재간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서서히 미쳐갔다. 노빠가 문빠가 되고 그도 모자라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외치게 되었다.
급기야는 문재인이 무오류설의 신격화되기에 이른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잘못했네, 라고 혀 몇 번 끌끌 차도 될 일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쉴드를 치고 우긴다. 욕을 하고 싸운다. 저주를 퍼붓고 모욕하길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명박 때부터 종편과 일베를 키워 자신들의 토대를 착실히 쌓은 저들은 영악하게 움직였다.
일테면 ‘광우병 파동’을 좌빨 좀비의 준동으로 모는 논리가 그렇다. 36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를 먹으면 정말 광우병에 걸리는 것이 팩트냐고 묻는다. 그런 거짓 선동에 놀아난 무지성을 비웃는다. 그들의 논리 어디에도 애초 반대 세력의 ‘대미 굴욕 협상’이라는 근원적 문제 제기는 없다. 이는 마치 지하철에 앉아 있는 임산부 앞에 서서 면전에 대고 “섹스했네! 섹스했어!”라고 외치는 꼴과 같다. 그래 놓고 “그것이 팩트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높은 데시벨로 박근혜의 패션 외교에 찬사를 보내던 종편은 같은 입으로 김정숙이 샤넬에 협찬받은 옷과 국내 디자이너의 호랑이 장식 브로치에 ‘의혹’을 걸며 악을 썼다. 아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 문제를 들고나와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이 ‘의혹’이라고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묻지 않은 김건희의 슬리퍼와 안경테가 단돈 몇만 원짜리라며 서민 코스프레에 열중한다.
친일 이력부터 시작해 그간 도덕적 명분에서 판판이 깨지던 저들에게 불현듯 기회가 왔다. 안희정과 박원순과 오거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성범죄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진보의 위선’과 ‘내로남불’은 저들에게 전설의 신검이 되었다. 그 화룡점정을 조국이 찍었다.
조국 일가를 수사하는 과정은 이쪽에서 김대중 때부터 겪어왔던 트라우마를 들쑤시기에 차고 넘쳤다. 기시감 따위가 아니었다. 복사판도 아니었다. 더욱 대놓고 노골적으로 죽이려 드는 업그레드 버전이었다. 그저 버튼이 눌린 따위가 아니다.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지진 거다. 문빠들은 발작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발작에 상처받은 일군의 무리는 등을 돌리고 윤석열의 깃발 아래 모였다(진짜 코미디인 건, 이 판국에-비록 한 줌 밖엔 안되지만 어쨌거나-문재인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을 찍는다는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 부동산값 폭등과 법무부-검찰 간의 지루한 육탄전으로 인해 일반 대중들은 지쳐갔다. 그리고 또 졌다.
2022년 5월을 감내하는 법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희한하게도 2번 찍은 애들이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를 대하는 태도는 우스운 점이 많다. 내 손으로 뽑은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내세울 비전과 희망 따위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오죽하면 아직도 문재인과 민주당을 욕하는 거 빼곤 아무 소리도 못 하지 않는가. 필시 그들은 윤석열 임기 내내 그렇게 고립되어 말라죽을 것이다. 난 여기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결정적인 점이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노무현을 잃었지만, 문재인은 씩씩하게 잘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깃발은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지기는커녕 우뚝 솟아 저 높은 곳에서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게다가 바로 갖다 쓸 이재명이라는 깃발도 있다. 진짜 대회전은 이제 시작이다.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
그는 성공한 첫 전 대통령이 될 수 있기를 시민들께 부탁했다
나는 ‘노무현의 명과 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콕 집어 이건 ‘빛’, 이건 ‘그림자’라고 따지지 않겠다. 내가 구분하지 않아도 읽는 이들에게 알아서 어느 부분은 노무현의 ‘빛’, 어느 부분은 노무현의 ‘그림자’로 읽힐 것이다. 내가 종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거 하나다.
노무현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울고 웃고 싸우고 악수하고 멱살을 잡고 어깨동무하는가. 노무현이 살아생전 했던 어록을 무슨 경전 읽듯이 암송할 필요는 전혀 없겠다. 결국엔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는가. 난 그동안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되기 위해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갖추려다 보니 겪은 시행착오 말이다. 그 결과가 바로 윤석열 정부 아니겠는가.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나는 그 첫걸음이 바로 노무현과 문재인을 잊고 지내기라고 생각한다. 일요일마다 찾아가는 예배당이 아니라 마을 입구에 무심히 서 있는 장승 같은 존재 말이다. 너무 당연해서 어떨 땐 있는지도 몰랐던 존재. 절실히 급하게 필요할 땐 치켜들고 진격하지만,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마을회관 앞에 걸려 있는 깃발.
13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내일도 노무현의 연설 동영상을 보면 눈물이 주르르 흐르겠지만 인제 그만 내 안의 분노는 내려놓겠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심한 듯 웃으며 지낼 테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살 거다. 윤석열 따위 때문에 울고불고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노무현 13주기를 심드렁히 맞으련다.
저들을 ‘심판’하지 않으련다. 멍청하다고 욕하지도, 침을 뱉지도 않으련다. 13년을 그렇게 해봤는데 별반 소용이 없더라. 그냥 웃으며 지낼 거다. 아님 말고란 생각으로 조곤조곤 설득해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조용히 돌아서서 내 갈 길을 갈 거다. 그렇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투표할 거다.
노무현이 임기 중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역사에 남을 업적을 쌓기 위해 어느 분야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김대중 정부의 손길이 이미 닿아 있더라. 결국 난 김대중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이 내용이 어느 잡지에 실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가 이를 프린트해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받아든 김 대통령은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읽고 매우 흐뭇해했다고 한다. 내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다.
다른 건 다 잊고 이 에피소드 하나만 소중히 품고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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