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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서거 13주기를 맞았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 기일을 맞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딴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다뤘지만,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정리한 기사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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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하여,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때부터 2009년 5월 23일 서거까지 454일 동안 대한민국에 일었던 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022년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초반부터 순탄치 않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명박취임식.PNG

 

취임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을 떠나 실용'을 수 차례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깍듯이 대우하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초대 내각 구성부터 홍역을 앓고 있었다.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재산 축소와 세금 탈루 의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강부자 내각',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취임식 전날(24일)에는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으며,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수많은 장관 부적격 의혹으로 온갖 시비에 휘말렸다.

 

남주홍 후보자의 경우 ‘이념적 편향성 논란, 부인과 자녀의 이중국적 및 재산신고 누락, 부인의 부동산 투기, 교육비 이중공제 의혹’ 등으로, 박은경 후보자의 경우 ‘3년간 45건의 부동산 거래가 있을 정도의 부동산 투기(경기 김포의 절대농지 소유 등) 및 위장전입 그리고 편법증여(자녀 결혼 축의금만 1억 3000만 원) 의혹’ 등이 그 이유였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도 재산 신고 시 분양권 매매 누락 등 대부분 부동산 관련한 의혹을 달고 있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마저도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할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를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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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귀향을 반기는 봉하마을.

출처-<부산일보>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PNG

봉하마을에 돌아온 노 대통령.

 

2008년 2월 27일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그리고 이날 다른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일제히 열렸다. 또 한 번 시끄러웠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롯데캐슬에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송파구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 받은 사실에 대해 

 

"여의도는 살만한 곳이 못 되고, 자연친화적이지가 않다. 살만한 곳이 아니라서 송파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고 했다. 

 

골프회원권 2개에 대해서는 

 

“그건 싸구려입니다.”

 

라고 했다. 하나는 당시 시가로 2억 원이 넘고, 다른 하나도 근 1억 원에 달했다. 

 

노동 현장에 투신했다고 하는 이영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40억 원 대의 재산에 부인 명의로 된 강남 64평 오피스텔이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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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좌)과 이영희 전 노동부 장관(우). 

 

유인촌 문화부 장관 후보자는 140억 원에 달하는 재산에 대해 

 

"배우 생활 35년에 140억 원의 재산은 벌 수 있다. 배용준을 한 번 봐라.“

 

고 항변했다. 

 

정종환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 역시 부동산 투기와 허위경력, 증여세 누락이 논란이 되었다. 

 

2008년 2월 28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청문회에서 재산 형성 과정이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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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좌)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우) 

 

한편, 이날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특검 조사를 받았다. 비상장사인 삼성 에버랜드가 느닷없이 전환사채 40억 원을 발행하고, 이재용이 이를 매입해 주식으로 전환했다. 에버랜드 대주주가 되고, 에버랜드 대주주가 됨으로써 삼성 주요 기업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재벌 편법증여의 단면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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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조사를 받으러 가는 당시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

 

하지만 특검은 이후 이재용 전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2008년 2월 29일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당시 통합민주당(열린우리당 후신)이 원내 최대 다수당이었지만 당론을 결정하지 못한 채 의원 '자유투표'에 맡겨버렸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한나라당은 4·9 총선에 출마할 공천자 64명을 1차로 공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을 비롯해 친이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친박계가 대거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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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 전 악수하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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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되는 한승수 국무총리.

출처-<국무총리실>

 

한편 이날 취임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을 시장에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며 정부가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할 것임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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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폐기된 참여정부의 업적, 변화된 한일관계, 교육정책의 변화

 

2008년 3월경

 

노무현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2,800여 권 분량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그대로 창고에 처박혔다. 안보위기, 자연재난, 보건위기 등 국가가 당면할 수 있는 모든 재난에 가정해 만든 매뉴얼이었다. 이때 사라진 매뉴얼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찾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와 각종 재난을 맞이했다. 이 매뉴얼을 다시 찾아낸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2008년 3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3.1절 기념사를 통해,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다.“

 

"한일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나아가야 한다.“

 

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후 일왕을 만나 고개를 숙이는 장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현장에 방문해 묵념을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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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초대 방통위원장에 최시중을 내정했다. 최시중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그룹인 '영포라인'이기 때문에, 야당은 방통위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내각 구성에서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낙마한 3명의 장관 후보자 외에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온갖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 국적자인 딸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올려놓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했으며, 논문 중복 게재, 84평 오피스텔 임대소득 누락, '신앙심이 부족해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황당한 내용의 종교 편향 기고문 등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김성호 국가정보원 후보자는 '삼성 떡값'을 수령한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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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좌)과 김성호 전 국정원장(우).

 

2008년 3월 6일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시험만 치름)를 강행했다. 일부 전교조 교사 등은 시험을 거부했다. 초등학교부터 학교 간 석차가 매겨지고, '학교 순위를 떨구는' 부진한 어린이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교실부터 '문제집 풀기', '마킹 연습'이 일상화되었다. 중학교 교실에서는 '0교시', '야자'가 부활했다. 

 

2008년 3월 초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자 의혹이 계속 나왔다. 전국을 돌며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으며, 아들 군 면제, 기자 시절 전두환과의 친분 등이 구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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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출처-<연합뉴스>

 

2008년 3월 10일

 

이명박 정부는 경제운용방향을 밝혔으나 공약인 '7% 성장' 대신 '7% 성장이 가능한 경제'로 수정했다. 이어 규제개혁, 감세 등을 통한 성장동력 강화를 내걸었다. 이날 국토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지원할 '운하 지원팀'을 발족했다. 

 

2008년 3월 12일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며 참여정부 출신 문화 인사들의 퇴진을 요구했다. 전날에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공기업 인사들은 임기가 남았더라도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 특검에서는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불러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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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김용철 전 팀장은 삼성그룹에서 국세청과 금감원, 국회, 검찰 등 다양한 정부기관과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담당한 임원 30여 명의 명단을 특검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친박연대 탄생, 백골단 부활, 세계 경제 침체 시작

 

2008년 3월 14일

 

한나라당 내 공천 내분은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친이계 140명, 친박계 40명이 공천을 받았다. 김무성 등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박근혜는 항의의 뜻으로 칩거를 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일부 친박계열 인사들은 탈당 후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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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8년 3월 15일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가 검사 시절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았고, 삼성물산이 분양한 갤러리아펠리스에 특혜 분양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청은 이날 업무보고를 통해 과거 '백골단'의 부활을 알렸다. '시위현장 체포전담반'을 운용하고 물리력 위주 시위 대응을 천명했다.

 

2008년 3월 16일

 

미국 월가의 우량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부도위기에 몰린 끝에 JP Morgan에 헐값에 인수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자 경제 침체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장률에 집착한 이명박 정부에 경고를 알리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17일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을 넘어서면서 물가 상승과 수입의존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채산성 악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은 수출 중심 성장을 위한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유류세 10% 인하를 단행했으나 불과 일주일 만에 기름값 상승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유류비, 통신비, 고속도로 통행료, 사교육비, 약값, 보육비 등을 조정해 ‘서민생활비 30% 인하’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 

 

 

대운하 사업 준비,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탄생, 기무사 및 언론 장악 시작, 친재벌 정책 

 

2008년 3월 20일경

 

경찰과 국정원 요원으로 이뤄진 팀은 한반도 대운하 반대 교수들을 탐문하고 사찰한 것이 알려졌다.

 

2008년 3월 23일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 결과에 대해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고 일갈했다. 이는 총선 때 막강한 파급력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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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뉴라이트 계열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공개되었다. 친일 성향 교과서로 일본 극우 교과서와 별 차이점이 없었다.

 

2008년 3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삼성 로비 의혹을 받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과 부동산 의혹이 쏟아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했다. 

 

2008년 3월 27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북한은 개성공단 남북교류협력사무소의 남측 당국자 11명을 철수시켰다. 다음날인 28일에는 9개월 만에 서해상으로 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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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

출처-<오마이뉴스>

 

이날 국토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내년(2009년) 4월 착공하기로 하고, '한반도 대운하 특별법' 제정을 통해 환경영향평가나, 타당성 검토, 문화재 조사 등 모든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기로 했다. 

 

기무사 인사도 이날 이뤄졌는데, 사령관과 참모장을 포함해 기무사 경력이 없는 외부 인사로 채워졌다. 이는 청와대가 직접 기무사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읽혀졌다. 기무사는 훗날 국정원과 함께 댓글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2008년 3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가 이날 있었다. 보고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재계에 백지수표를 쥐여줬다.“

 

고 평가했다. 출자총액제한 폐지,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완화, 공정위 직권조사 및 현장조사 최소화, 기업결합심사 완화, 부채비율 제한 폐지 등 지주회사 설립 조건 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모두 재벌이 바라던 바였다. 

 

 

잇따른 선거 개입과 거대 보수정당 출현

 

2008년 3월 29일~31일

 

정종환 국토부 장관, 이재균 국토부 2차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잇달아 인천을 방문했다. 이 외에도 총선 경합지역에 정부 관료가 잇따라 현장 방문을 빌미로 방문해 지역 선심성 발언을 쏟아냈다. 

 

시민단체의 한반도 대운하 반대 집회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불법 집회’로 규정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월 4일, 이례적으로 정부에 '선거중립 준수 요청' 공문을 국무총리실로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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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4월 5일,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 출마한 서울 은평구에 들러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을 격려하고 돌아왔다.

 

2008년 3월 31일

 

이날 주요 언론에 박근혜 전 대표 사진이 실린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 연대의 총선 광고가 실렸다. 부산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한나라당은 영남권에서 박근혜 바람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2008년 4월 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 특검에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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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경영권 불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등과 관련한 주요 의혹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고 응했다. 이런 질문과 답변도 오갔다.

 

기자 :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범죄집단으로 몰리는 상황에 누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건희 회장 :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옮긴 여러분(기자)들이 문제가 있지 않으냐 생각한다. 

 

2008년 4월 5일

 

온라인 필명을 '노공이산'으로 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마을에서 봉사자 등과 방치된 단감 과수원 단지에 장군차 6,000그루를 심었다. 이는 훗날 봉하마을과 김해의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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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차밭을 가꾸기 위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어린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2008년 4월 9일

 

총선 결과 한나라당이 153석, 통합민주당이 81석, 자유선진당(이회창)이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문국현) 3석, 무소속 25석이 당선됐다. 범보수세력이 약 200석에 달하는 결과였다.

 

총선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언론 장악, 친 재벌 정책 등을 과감하게 펼치려 하였으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목이 잡히게 되었다. 촛불이 켜진 것이다.

 

촛불시위.jpg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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