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0.05.27 목요일


로그스


 


 


 


 선거 국면이고 형세도 불리하고 하니까, 정치공학적인 글 하나 써보자. 이 글은 장기적으로 볼 것 없이, 오로지 천안함 사건과 지방선거에만 집중한다.



1. 에이즈 시약과 조건부 확률


 


 





 


 


 한 과학자가 99%의 정확도를 가진 에이즈 테스트 시약을 개발했다. 그는 시약을 가지고 나가서 거리에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바로 에이즈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 양성. 그렇다면 테스트 결과가 잘못됐을 확률, 그러니까 실제로는 그 사람이 에이즈 보유자가 아닐 확률은 얼마인가?

  1%?

  아니다. 그 확률은 전체 인구에서 실제로 에이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훨씬 더 높아진다.

  예를 들어, 전체 인구에서 에이즈 보유자의 비율이 1000명 중 한 명, 즉 1/1000이라고 가정해보자. 인구 100,000명을 대상으로 에이즈 시약 테스트를 했을 경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양성 반응
 음성 반응
 에이즈 보유자 (A)
100명 X 99% = 99명

 (B)
100명 X 1% = 1명

 에이즈 미보유자 (C)
99,900명 X 1% = 999명

(D)
99,900명 X 99% = 98,901명


 



  10만명을 테스트 했을 경우 양성 반응이 나오는 사람은 모두 1,098명(A+C)이다.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에이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99명(A)뿐이다. 따라서 양성 반응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이 실제로는 에이즈 보유자가 아닐 확률은 1%가 아니라 999/1098(A/A+C), 즉 91%에 다다른다. 반대로 시약 테스트가 정확히 에이즈 보유를 판별했을 확률은 겨우 9%다.

  시약의 정확도는 99%인데, 어떻게 그 시약을 통해 양성 반응 나온 사람이 실제 에이즈 보유자가 아닐 확률은 91%인가?

  그것은 "양성 반응 나온 사람이 실제 에이즈 보유자일 확률"이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건부 확률이란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을 조건 혹은 전제로 한 확률이라는 말이다. 전체 100,000명 중 시약이 에이즈 보유 여부를 제대로 판명한 사람은 99,000명(A+D)으로 99%의 정확도를 자랑하지만, 조건부 확률은 오로지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작은 정확도를 가지게 된다.

  자꾸 숫자가 나와서 머리가 아플 수 있으므로 조금 시각을 바꿔서 설명해보자. 그 사람이 양성 반응이 나온 원인은 둘 중 하나다: 1) 에이즈 보유자이기 때문, 2) 시약 테스트에서 오류가 났기 때문. 양성 반응이라는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과 2)중에 어느 설명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져봐야 한다. 시약의 정확도가 99%이기 때문에 2)일 확률은 충분히 낮은 확률이지만, 1)일 확률은 훨씬 더 낮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약 테스트 오류의 가능성이 훨씬 높게 나온다. 시약이 오류가 날 절대적인 확률이 낮다는 점에만 집중하게 되면, 오류 가능성을 실제보다 훨씬 더 낮게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위 문제를 풀어봐서 알겠듯이, 조건부 확률은 매우 착각하기 쉬운 개념이다. 그건 인간이 원인을 근거로 결과를 예측하는 데 익숙한 반면에, 결과를 근거로 원인을 추정하는 데 취약한 사고과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건부 확률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많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본인은 천안함 사건에 있어 야당과 많은 야당 지지자들이 조건부 확률의 늪에 빠졌다고 본다.


2. 천안함과 조건부 확률


 






  몇몇 야당 인사들과 상당수의 야당 지지자들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건 어뢰 공격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의문들이다. 제기되는 대표적인 의문으로 물기둥이 없었다, 물고기 떼죽음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상자가 없다, 당시 서해에서는 한미합동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것 등이 있다. 물론 정부의 초기대응 미숙과 정보 통제, 정치적 의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뭐, 다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다.

  보자. 이미 제기된 의문들을 포함하여 북한 잠수정이 내려와서 함정을 두 쪽내고 흔적도 없이 되돌아갔다는 상황 자체는 상당히 일어날 가능성이 낮고 믿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이 "천안함이 북한 어뢰로 침몰되지 않았다"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 이미 천안함은 침몰했기 때문이 다. 여기서 상황은 조건부 확률로 변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확률은 "북한 잠수정이 내려와서 함정을 두 쪽내고 흔적도 없이 되돌아갈 확률"이 아니라, "함정이 침몰했을 경우, 그 원인이 북한의 공격일 확률"이다. 이게 무슨 말장난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에이즈 시약의 예로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자. 에이즈 시약이 오류를 낼 확률은 1%에 불과하지만, 양 성 반응이 나왔을 경우에 그게 오류일 확률은 91%다. 마찬가지로 "북한 잠수정이 내려와서 함정을 두 쪽내고 흔적도 없이 되돌아갈 확률"은 그런 시나리오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낮지만, "함정이 침몰했을 경우, 그 원인이 북한의 공격일 확률"은 꽤나 높다. 그리고 그 높은 정도는 침몰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원인이 얼마나 가능성이 높은가에 달려있다. 즉, 어뢰설의 가능성은 그 자체의 확률이 아니라 다른 가능한 원인과의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사람들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어렵다는 사실만 고려함으로써 어뢰설을 공공연히 소설에 가까운 시나리오로 규정해왔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이들은, 조건부 확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조단은 어뢰설을 뒷받침 할 만한 나름대로의 물증을 제시했다. 물론 여전히 의문들은 남아 있고, '1번'글씨 드립이 코믹하기는 하지만, 다른 가능성있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는 좌초설에 비해 어뢰설의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어뢰설에 가장 회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스웨덴 조사단이 이번 증거를 보고 어뢰설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어뢰설에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좌초설을 대입했을 경우 나오는 의문보다는 그 크기가 훨씬 적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안함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3. 천안함의 딜레마

  가카는 천안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아주 제대로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5월 20일 합조단 조사 발표와 생뚱맞게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한 24일 가카의 대국민 담화로 23일의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샌드위치 시킨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문제는 조건부 확률의 함정에 빠졌었기 때문에 야당의 스탠스가 상당히 어정쩡해졌다는 점이다. 지금와서 어뢰설을 선뜻 인정하자니 그 동안 어뢰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게 우습게 되어버리고, 선거 국면에서 가카와 보조를 맞추기도 껄끄러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어뢰설을 계속 부정하고 의혹을 제기하자니 어뢰설의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 부담스럽고, 어뢰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람들의 표를 잃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얘기가, "어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의혹은 있고, 만약 맞으면 가카 책임이다" 정도다. 그래서 어뢰라는 건지 좌초라는 건지 가카 책임이라는 건지 북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건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다. 야당이 천안함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선거는 1주일 밖에 안 남았고, 천안함에 휩쓸린 수도권에서는 다른 이슈들이 힘도 못 써본 채 여당 후보와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신중한 접근을 취했어야 했다. 정부의 대응방식이나 정보공개에 대해 비판하면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어뢰설의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재빨리 입장을 정리하여 북한에 1차적인 책임을 묻는 동시에 위험이 상존하는 군사분쟁지역에서 멍청하게 당하고 범인 흔적도 못 찾은 가카의 무능함을 물었어야 했다. 또한 이러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가카의 개념없는 망국적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야당만의 명확한 대북정책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엔 조건부 확률의 함정에 너무 깊게 빠졌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렇게 늦지 않았다. 야당은 일단 선거의 최고 쟁점으로 떠올라 버린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지금이라도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해야한다. 계속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면 가카의 북풍놀이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놀아날 수 밖에 없다. 1)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산뜻하게 인정하고, 2) 1차적으로 북한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청하며, 3) 동시에 가카의 안보무능을 날카롭게 후벼파고, 4) 대안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요즘에 3)번만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는데, 그런 대응은 국민들에게 안보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늦었지만, 1), 2)번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3), 4)번에 돌입하는 게 더 이상의 피해 확산을 막고 카운터 어택을 날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어떤 이들은 이제와서 북한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그게 뭐가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한다고 보수표가 야당으로 넘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보수표가 야당으로 넘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보수층의 결집을 약화시키는 것 또한 유의미한 결과다. 야당이 천안함에 대한 시각을 명확히 정리하고 가카와 대비되는 안보, 대북정책을 제시하는 순간, 천안함은 정책이슈로 변하고 동시에 반가카 전선도 명확해 질 것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어물쩡 넘어가기엔 너무 선거가 코 앞이다.



 

트위터 : rogs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