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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노짱

2010-05-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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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월요일


산하


 


 


아득한 옛날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노예 집단은 나라를 세운 후로도 오랜 동안 강성한 이웃들에게 즈려밟히기 일쑤였다. 블레셋은 물론 허다한 이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때로는 정복했다. 그 가운데 홀연 이스라엘 군 앞에 나타난 키 3미터가 넘는 거인  골리앗은 이길 수 없는 적의 강성함과 같았고, 넘을 수 없는 벽의 높이의 상징과도  같았다.

  골리앗이 사십일 동안 나한테 덤빌 놈 나오라고 부르짖는 동안 이스라엘 군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왕조차 누구에게든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어찌어찌 맞상대하여 생채기라도 내고 죽을 수 있는 상대다 싶으면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나설 용사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골리앗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인 거인이었다.  사람 하나 몸무게만한 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거인 앞에서 이스라엘은 공포에 질렸고 스스로를 체념해 버리고 있었다.  툭하면 이집트로 돌아가 노예살이나 하자고 모세에게 부르짖던 그 조상들처럼.  
 
 다윗이 전장에 이른 것은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식량을 전하라는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그에 맞서 볼 듯한 언사를 입에 담자 골리앗 앞에서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던 형들이 다윗에게는 호통을 친다. "네가 왜 여길 왔어? 들에 양떼는 어쩌고?  (너 따위가 뭘 한다고) 제잘난맛에 사는 악동같은 녀석아. 네 눈에 전쟁이 구경거리로 보이냐?" 골리앗에 감히 맞서지 못하는 자가 맞서려는 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소리지른다. "이 덜떨어진 녀석아. 네가 뭘 안다고."  

  이런 형들의 멸시와 사울 왕이 내어주는 갑주를  모두 물리치고 다윗은 맨몸에 돌팔매 도구를 들고 골리앗에게로 나선다. 골리앗은 다윗을 짐승의 먹이로 하겠다며 가소로와했지만 돌 한 방이 그 이마에 정통으로 명중하면서 수십일 동안 이스라엘을 혼비백산케 했던 거인은 맥없이 쓰러지고 그의 머리는 신속하게 몸뚱이에서 분리되고 만다.  



 




 


 


알다시피 다윗은 이후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는 왕이 되었다. 아들 솔로몬은 길이 남을 부귀영화를 누렸고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환호 속에 예루살렘 입성을 감행했다. 솔로몬 시대 정했다는 그의 상징 다윗의 별 육망성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기에서까지도 꿋꿋하게 빛난다. 이스라엘 뿐이랴. 다윗과 골리앗은 헨젤과 그레텔, 콩쥐와 팥쥐만큼이나 우리에게도 친숙한 동화 속의 한 세트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어느 초대형 교회 목사님은 자신을 다윗이라  불러 달라고  부탁하지 않으셨던가.  (골리앗 앞의 소년 다윗보다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알몸을 욕심 내던 무렵의 다윗과 닮지 않았는가 하는 흉측한 추측을 하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누구냐 키득거리는 자가. )  

   골리앗을 죽인 것은 다윗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그야말로 한 부분에 불과하며 그는 호호백발이 되어 "처녀들을 품어 그 기를 받을" 만큼 즉 망측할 정도로 오래 살았다. 하지만 다윗이란 언제나 나에게,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소년 다윗일 뿐이다. 왕관을 쓰고 왕홀을 쥔 다윗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되 돌팔매를 휘두르며 거인에게 도전하는 양치기 소년의 이미지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것은 넘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벽, 당할 수 없다고 체념하던 상대에게 불가사의한 도전장을 내민 용기의 전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에 도전했던 다윗이기에 그토록 오랜 전설로 전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이후의 인류 역사에서 다윗과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되 다윗의 후예라 불러 마땅한 이들은 수도 없이 배출되었다.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골리앗은 있었지만 항상 승리하지는 못했다. 때로는 골리앗의 창에 꿰어져 그 피로 땅을 적시고 살은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다윗도 있었다.  용감하게 도전했으나 무모하게 끝을 맺은 다윗도 있었다.  이길 것 같지 않으나 악착같이 나서야 했던 다윗도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매정하게 스토리를 변경하거나 심술궂은 역설을 선보인다. 3천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골리앗의 후예는 처절한 다윗으로, 다윗의 후예는 살벌한 골리앗으로 환생하여 마주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윗의 피를 이어받고 다윗의 별을 휘감았다고 하여 자동으로 다윗의 후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다윗의 별은 과거의 골리앗보다 백배는 무겁고 골리앗의 창 보다 천 배의 위력을 가진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나부끼며 우리 시대의 다윗을 덮친다. 그 옛날 다윗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 트럭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도 엄마 치마폭에 숨지 않을까 싶은 저 작은 아이는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진다.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을 꼬마라고 모르랴.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해 주겠다."고 위협하던 그 옛날의 골리앗처럼 저 탱크는 아무리 상대가 어린 아이라 해도 '적대적인 행동을 계속할 경우' 기관총을 긁어댈 수도 있다는 괴물임을 꼬마라고 모르랴. 그러나 다윗은 탱크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쳐다보기조차 두려운 벽 앞에서 주춤대지 않는다. 그냥 숨어 있으면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건만 그 비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옛날 다윗의 형제들처럼 "너 따위가 뭘 한다고....." 따위의 비아냥에도 발목잡히지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며 네가 우리를 침범하고 짓밟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상식을 선포하고 고수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욕하고 있는" 골리앗에 분노했던 것처럼.   


 


 





 


작년 5월 23일 수십 미터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를 꺼뜨린 불길같던 사내를 느꺼운 마음으로 뇌리에 떠올린다. 그 '동업자' 안희정의 회고에 따르면 민주노총에서조차 "서울대(는 커녕 대학도) 안나온" 사람이라고 배척당했던 고졸 출신의 사시 합격자. 도무지 말도 안되는 고문에 온몸이 시커멓게 된 학생들을 보며 인생의 경로를 바꾸었고, 수은 중독으로 죽어간 노동자의 이야기를 국회에서 절절히 쏟아부으며 "당신 자식들이 그렇게 죽었다고 생각해 보라 말이야."라고 절규하던 국회의원. 골리앗보다 더 거대하고 탱크의 금속성보다 더 차가운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돌 몇 개 주머니에 넣고 육박하여 달려들었다가 몇 차례나 찢어발겨졌던 정치인.  


 


적어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는 완벽한 이 나라의 다윗이었다. 지금도 그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다시 읽으면 가슴이 뛰고 피가 더워진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역사와 사회에 드리워져 있던 기만과 폭압의 골리앗, "말 많으면 빨갱이"로 무장하고 "모르는 게 약이다"의 갑옷을 입고, "니들이 별 수 있니?"라는 높이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금성철벽같은 골리앗에게 날리는 진실로 통쾌한 돌팔매였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였습니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가 이뤄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나하고 싸울 자 있으면 나오라고 골리앗이 외칠 때 숨죽였던 이스라엘 군대처럼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하지' 말고 한 번 떳떳하게 맞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산다고 사람이 사는 행색이냐고 부르짖었던 우리 시대의 다윗의 돌팔매에 사람들의 염원이 실렸고 도저히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골리앗은 머리가 터져 땅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옛날 다윗은 잽싸게 골리앗의 칼을 빼어 골리앗의 목을 잘랐지만, 그래서 저 위에 붙여놓은 그림에서처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 궁금해하는 듯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흔들었지만 한때 대한민국의 젊은 가슴들 (이건 생물학적인 젊음이 아니다)에 불을 당겼던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지 못했고 기력을 회복한 골리앗에게 반격을 당했고 끝끝내는 지독하기까지 한 복수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 옛날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몰살당했다는 소식에 그 옷을 찢으면서 노래했다. 


아, 용사들은 쓰러지고,

무기는 사라졌구나.


 



 나도 작년 5월 23일 이후 장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읊조리고 있었다. 아 그는 스러지고 그가 꾸던 꿈, 상식이 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꿈도 사라졌구나. 골리앗은 이마의 상처를 말끔히 없앤 채 다시금 누가 나와 대적할 것이냐, 나에게 대항하던 노무현의 최후를 똑똑히 보았느냐 을러대면서 장성같이 버티고 섰고 너희도 나같은 거인이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회유에 난쟁이 군병들조차 골리앗 편으로 몰려갔다. 골리앗의 키는 더욱 커졌고 그 무기는 더욱 가공할만한 것이 되어 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어느 역사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은 있었다. 골리앗의 위세가 하늘을 찔러도 땅에서 솟아나는 다윗이 있었고 그 힘이 미약하여 "너같은 넘이 무슨 전쟁이냐?"라는 타박을 들을지언정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또 다윗의 피를 받았다고 하여,  다윗의 유물인 칼을 들고 다윗의 상징인 다윗의 별의 깃발을 들었다고 하여 다윗의 후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윗들의 가장 큰 유산은 그들이 발휘한 용기였지 그들의 명망이 아니었다.  그들의 용기를 받아안지 않고 명망에만 기대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다윗이 될 수 없으리라.   운좋게 이길지언정 다윗의 승리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으리라.  

 노무현이 쓰러진 지도 1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의 전장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시청 앞 지하도를 지나면서 나는 "6.2 복수할 거야."라고 주먹만한 글씨로 쓰여진 인쇄물을 보면서 흠칫 놀랐다.  복수하려고 선거하나? 혼잣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생면부지의 한 처자가 앙칼진 주먹같은 말을 내뱉는다. "복수하려고 선거할 수도 있지 뭐?"  


 


그 자리를 엉거주춤 피하면서 머리가 무척 복잡했다. 적어도 복수라는 이름의 돌팔매로는 이제 산더미같이 커진 골리앗의 이마에 충격을 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하나요, 어차피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쫓을 수는 있되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이길 수는 없듯이, 복수라는 이름의 갑주를 사람들이 반길 것인지 거추장스러워할 것인지가 의심스러웠던 것이 둘이요, 대체 무엇으로 복수할 것인가, 노무현의 후예들이 당선증을 받는 것이 진정 노무현의 복수가 될 것인가 미심쩍었던 것이 셋이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갈 것을 결심하기 이전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율은 지금의 진보신당 정당 지지율과 막상막하를 다투었다. 하지만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 역사"를 한 번 이뤄 보자는 노무현의 호소는 갑갑한 사람들의 물꼬를 텄고 거센 물줄기로 분출하여 마침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켰던 것이다.   적어도 그때의 노무현은 당시 그 앞을 가로막았던 골리앗에게 효율적인 그만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대안이었고 그의 삶을 통해서 지켜온 가치였으며 까짓것 깨지면 어떠랴 한 발 한 발 나설 수 있는 용기였다.  

 2010년의 새로운 싸움판에서 나부끼는 '복수'의 깃발과 '노무현의 별'에서 나는 유감스럽지만 대안을 읽지 못하고 무슨 가치를 구하는지 모르며 가장 결정적으로 그 용기로부터 감동을 구하지 못한다. 적어도 이 싸움판에서는 자칭 다윗의 후예들에게서는 다윗을 보지 못한다.  

  오히려 "너 같은 놈이 왜 싸움판에 얼쩡거리느냐.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는 독설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자신만의 돌멩이를 주머니에 채우고 있는 이들에게서 나는 그 옛날 다윗과 8년 전 노무현이 보여 주었던 광휘의 불씨를 발견한다. 한 줌도 안되는 진보의 대표 선수이면서도 진보를 숙주삼아 그 개체수만 늘렸던 에일리언들에게 쫓겨나서 (이 에일리언들은 정말로 변신에 능하다. 요즘 하는 것 보면 기도 안찬다 정말) 사망에 가까운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진보정당 사람들, 특히 서울 시민으로서 나는 노회찬 후보에게서 다윗의 돌팔매 소리를 듣고 노무현의 사자후를 꿈꾸게 된다.   

 내가 좋아했고 표를 찎었고 내 생애 처음으로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쏘았던 것은 노무현이었다. 왜 그랬을까. 부산에 가서 만판 떨어지고 아이들과 강아지를 상대로 유세를 하면서도 "허허 뭐 그럴 수도 있지." 웃으며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모습이 좋아서였다. "니 장인은 빨갱이다."라는 유치하지만 잔인한 공격 앞에서 "우리 장인은 시각장애인인어서.... 니라니라 " 하는 변명도 아니요 "사실과 다르다"는 발뺌도 아닌 "그럼 내 마누라를 버리라구?"라고 되물었던 그 통쾌함에 열광해서였다. 


 


 오늘 누구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한단 말인가. 그 삶을 존경해 마지않으나 TV 토론 한 번 없이, 경선도 없이 후보 자리에 안착하셨던 한명숙 후보나 대구로 주민등록 옮겼다가 웬만한 귀신도 모르게 다시 경기도로 돌아오신 유시민 후보나 FTA의 전도사  송영길 후보에게서는 나는 도무지 봉하에 묻힌 그 남자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2008년 민주노동당의 주류 세력이 북한에 당원들의 정보 보고서를 갖다 바친 작자들을 두고 "징계도 못하겠고 조사도 못하겠다"며 뻗대는 바람에 민주노동당이 깨지던 날, 8년간 후원회비를 바친 정당의 슬로건이 "일하는 간첩들의 희망"으로 둔갑을 하는 꼬락서니를 똑똑히 지켜보고 씩씩거리며 나왔을 때 어두운 현관에서 마주친 것은 그보다 더 어두운 표정의 노회찬 후보였다. 


 


 딱 한 번 수인사를 한 처지였지만 걱정도 되고 맘도 심란한 터라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머물기는 어렵게 됐다고 침통해 했다. 항상 미소를 달고 살던 호빵맨의 표정이 그렇게 구겨진 것은 처음 봤었거니와 무슨 말이 떠오르지도 않아서 걱정 반 위로 반의 말을 건넸다.  "힘드실 텐데요."  그러자 호빵맨은 다시 결연한 미소와 수줍은 홍조로 부활했다.  마치 초등학생처럼 그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언제는 안 힘들었습니까?" 

  2008년 4월 총선이 있기 두 달 전이었다.  나름의 지명도를 쌓으며 13번의 여론조사 내내 1등을 달릴만큼 유력한 국회의원 후보였던  노회찬 의원은 그렇게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자신이 최소한 정당 지지율 2퍼센트는 올려 놓았던 근거지로부터 걸어나왔다. 그리고 낙선했다.   

 지지율이 2퍼센트건 3퍼센트건 자신의 원칙과 대안을 제시하려 애쓰는 노회찬 후보에게 나는 8년 전 노무현 후보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작은 돈을 부칠 것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가 좌절에 굴하지 않기를,  "너같은 듣보잡이.... 고졸이....물정 모르고 설렁탕 한 그릇 안사주는 녀석이.....'라는 입초시에 시달렸으나 꿋꿋이 이겨냈던 노무현처럼, "2퍼센트에... 분열주의자에.... 우리가 지면 네 책임....."이라는 희한한 비난을 퍼부어대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미소를 보여 주면서 역경을 헤쳐 나가기 바란다. 


 


그래서 또 하나의 우리 시대의 다윗..... 그리고 또 하나의 '노짱'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