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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시간 들여서 흑우로 사는 이유

 

지금까지는 업자(게임회사) 입장에서 과금 모델을 설명했다. 왜 그들이 이딴 식으로 게임을 운영하고, 어떻게 돈을 뽑아가는지 말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MMORPG를 하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과금러들은 계속해서 게임에다가 돈을 쓴다. 게임회사를 욕하면서도, 자신을 스스로 흑우라고 비하하면서도, 계속 게임에다가 돈을 쓴다. 이제부터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왜 과금하게 되는지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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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혹우→흑우

출처-<링크>

 

MMORPG 유저들은 캐릭터의 스펙을 올리기 위해 과금한다. 캐릭터의 성장을 도와주는 버프(캐시 아이템, VIP 시스템)를 구입하거나, 사냥터의 티어를 올려줄 수 있는 장비, 펫 등을 뽑는 식이다. RPG 게임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위쳐 3나 엘든링 같은 패키지 게임에는 과금을 통한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 혼자 모험을 즐기는 세상(싱글 플레이)에서,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 게이머들은 과금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순히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를 느끼려고 과금을 한다는 것은 반만 맞는 얘기다. 천문학적인 과금이 이뤄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형 MMORPG 내에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MMORPG 내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약육강식”의 세계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MMORPG에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PK(Player Killing) 시스템이 존재한다. PK 허용 구역에서는, 유저 간의 자유로운 PK가 가능하다. 상대방에게 교전 의사가 없거나 죽여야 할 정당한 사유가 없더라도,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죽인다. 이것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형 MMORPG적인 세계관이다.

 

약한 자는 PK가 허용되지 않는 안전 지역에서만 사냥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경험치와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상급 사냥터들은 대부분 PK 허용 구역이다. 레어 아이템이나 재료를 획득할 수 있는 월드 보스 생성 지역 또한 PK가 허용된다. 이런 상급 사냥터와 월드 보스를 독점하는 것은, 강한 문파·혈맹에 소속된 강자들이다. 반면, 약자들은 초식동물처럼 안전 사냥터에서 효율이 안 나오는 사냥을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자와 강자 간의 스펙 격차는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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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P(Player Versus Player)와 같은 경쟁

그리고 이어지는 과금

출처-<엔씨소프트 리니지M>

 

스타크래프트·LOL이 다른 점

 

상대 경쟁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온라인게임에는 상대 경쟁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유저들 간의 경쟁이야말로, 여러 플레이어가 함께 플레이하는 온라인 게임만이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재미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칫 반복 사냥으로 지루해질 수 있는 MMORPG에서, 상대 경쟁은 게이머들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문제는, 상대 경쟁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한국형 MMORPG 내에서 이뤄지는 상대 경쟁은, 불공평하며 자기 파괴적이다. 이는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타크래프트나 LOL은 대표적인 상대 경쟁게임이다. 지금도 프로 데뷔를 희망하는 연습생들은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무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는 MMO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대전 게임들은 출시 초기가 가장 재밌다. 게임 출시 초반에는 게이머들의 게임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고수와 하수 간의 실력 격차가 크지 않다. 모두가 좁밥일 때는 게임을 갓 시작한 뉴비도 어쩌다 한두 판 이겨볼 수 있다. 원래 싸움은 좁밥 싸움이 재밌는 법이다. 그래서 게임 출시 초기에는 유저 수도 많고, 일반 라이트 유저들도 재미있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 출시된 지 시간이 지나면, 하수와 고수 간의 실력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상위 유저들의 플레이 타임이 누적될수록, 게임 운영의 노하우와 피지컬이 생기 때문이다. 반면, 플레이 타임이 적은 라이트 유저들의 실력은 정체된다. 이때부터, 왕초보들은 공방에 들어가면 무조건 진다. 아직도 베틀넷에 가면, “1:1 왕초보만”이라는 방제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방의 방장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못하는 플레이어를 수십 년째 애타게 찾는 고인물들이다. 오랜만에 스타 복귀한 유저는 공방에서 열판 해도, 한두 판 이기기가 힘들다. 좌절을 느낀 초보들은 대부분 게임을 접는다. 반면 게임을 계속하는 고인 물들의 실력은 나날이 개선된다. 실력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가면, 이들 게임은 직접 하는 게임이 아니라 남이 하는 걸 TV나 트위치로 보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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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넷 왕초보 보존 법칙

20년이 흘렀는데도...

출처-<링크>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나 LOL의 룰 자체는 공평하다. 스타 래더 점수가 올라간다고 더 많은 일꾼·미네랄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거나, 롤 티어에 따라 챔피언의 데미지가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들 게임은 매 경기 승패가 정해지고, 이전 경기의 결과가 새로운 게임 내 밸런스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든 유저는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시작하며, 이론적이나마 승리할 수 있는 동등한 확률을 갖는다. 실력에 의해 발생한 격차는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프로게이머들의 전성기는 짧은 편이다. 그만큼 천상계 유저 간의 경쟁은 치열하고, 새로운 고수들이 계속해서 출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냉면 같은 와우

 

MMORPG가 다른 게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스펙에 의한 격차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스펙은 캐릭터의 레벨·아이템·전투력 등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스펙은,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만들어진다. 일정 수준 이상 스펙 차이가 벌어지면, 저스펙 유저는 무슨 짓을 해도 고스펙 유저를 이길 수 없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게임을 해왔느냐, 많은 돈을 썼느냐 등에 따라서 사실상 승패는 정해져 있는 셈이다. MMORPG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스펙에 의한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얻는 경험치, 재화, 아이템은 계속 ‘축적’된다. 고스펙 유저들은 상위 사냥터에서 게임에서 얻는 경험치, 재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저스펙 유저는 하위 사냥터에서 효율이 안 나오는 사냥을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을 사냥한다고 했을 때, 고스펙 유저가 저스펙 유저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MMORPG를 많이 안 해본 사람들이 흔히 갖는 의문 중에 이런 게 있다. 어차피 계속해서 센 아이템이 업데이트될 건데, 왜 미친 듯이 돈을 써서 현존하는 최고의 장비를 맞추려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핵과금러들도 지금 엄청난 돈을 들여 구입하는 아이템이, 나중에는 쓰레기가 될 거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과금을 하는 건, 당장 일반 유저와 격차를 벌려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금을 통해 얻어낸 현재의 우위를 스노볼링 하면, 나중에 가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압도적 격차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핵과금러는, 신규게임이나 서버가 출시되면 모든 패키지 아이템을 일단 지르고 본다. 초반 스퍼트가 상대 경쟁 게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펙에 의한 격차는 모든 MMORPG에 존재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방식은 게임마다 완전히 다르다. 갓겜이라 부르는 와우는, 만렙의 기준이 일단 매우 낮다. 퀘스트만 열심히 수행해도 금방 만렙을 찍는다. 만렙 이후부터는, 레이드나 투기장 같은 콘텐츠를 통해서만 스펙을 올릴 수 있다. 이들 콘텐츠의 특징은, 각 유저의 실력(컨트롤, 게임 센스, 공략이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스펙은 일시적인 것으로, 확장팩(시즌제라고 볼 수 있다)이 출시될 때마다 사실상 초기화된다. 

 

정리하자면,

 

1) 만렙 달성이 쉽고

 

2) 만렙 이후부터는 실력에 의해 스펙업해야 하며

 

3) 이렇게 만들어진 스펙의 격차는 확장팩이 출시될 때마다 사실상 초기화된다(지난 확장팩에서 획득할 수 있는 최고 스펙 아이템보다, 새 확장팩에서 퀘스트템으로 주는 잡템의 성능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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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사업가도 아내 몰래 즐긴 갓겜 와우

출처-<링크>

 

돈으로 사는 스펙

 

와우의 스펙 경쟁이 순한 맛이라면, 한국형 MMORPG의 스펙 경쟁은 마라 맛이다. 한국 게임 개발사들은 스펙에 의한 격차를 게임의 한 부분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BM(비즈니스 모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사들은 게임 밸런스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펙을, 유저들에게 돈을 받고 판다. 뽑기로 획득할 수 있는 변신 아이템은 캐릭터의 공격 속도를 올려주고, 펫 아이템은 획득하는 경험치를 증가시켜주는 식이다. 상대 경쟁을 통해 우위를 정하는 MMORPG에서, 이들 아이템의 보유 유무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MMORPG는 “이기려면 돈을 지급해야 하는” 페이투윈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형 MMORPG의 스펙 경쟁의 가장 큰 특징은, 상한치가 없거나 아주 높게 설정되어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MMORPG에는 만렙 달성의 기준이 매우 높게 설정되어있다. 높은 만렙 달성 기준은, 유저들이 많은 시간을 단순 반복 사냥하는 데 쓰도록 강제한다(이는 사냥 시간이 곧 스펙이던, 과거 정액제 시절의 잔재인 것 같다. 한국 게임들은 서양 게임들에 비해 유독 사냥을 통한 성장을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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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to Win, 이기려면 돈을 지급해라

출처-<일요시사TV>

 

그나마 자동사냥이 도입된 이후에는, 직접 사냥에 대한 부담은 감소하였다. 그 대신 24시간 동안 컴퓨터로 자동사냥을 돌리는 것이 국룰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자동사냥 중에도 상대 유저로부터 PK를 당할 위험은 늘 존재한다. PK를 당해 죽은 캐릭터는 마을로 강제 귀환하고, 자동 사냥은 중단된다. 유저가 직접 조작하여, 부활한 캐릭터를 사냥터로 옮겨놓기 전까지 경험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자동사냥 중인 적대 진영 캐릭터를 척살하는 것은, 매우 유효한 견제 수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는 24시간 자동 사냥을 돌리는 도중에도, 수시로 본인 캐릭터가 죽어있진 않은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랭커들은, 일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시간과 관심을 게임에다가 써야 한다.

 

게임 개발사들이 돈을 받고 스펙을 판매하기 시작한 뒤로부터, 과금은 스펙을 향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사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등급의 아이템을 출시해왔다. 이를 통해 게임 개발사들은 지속해서 유저들에게 새로운 목표(숙제)를 제시하고, 계속해서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 같은 메이저 게임에서 상위권 유저가 되기 위해선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 이상을 게임에다가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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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어느 핵과금러

출처-<링크>

 

 

 

천문학적인 과금 유도의 이면에는, 지급 의사가 있는 고객으로부터 최대의 과금을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BM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유저들이 스펙업을 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데 있다. 아무리 미친 가격이 매겨진 아이템이라고 하더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살 사람은 산다. 어려운 것은, 유저들이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아이템을 꼭 사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데 있다.

 

유저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여 과금을 유도한다는 BM 측면에서, 한국 게임 개발사들은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진일보를 이루었다. 대부분 게임은 과금 패키지를 세분화하여, 다양한 과금 성향의 유저층으로 소비를 유도한다. 컴플리트 가챠 같은 복잡한 뽑기 시스템은, 미친 과금을 강제하는 대신, 완성됐을 때는 사기적인 성능을 보장한다. 이는 과금 능력이 충분한 핵과금러로부터 막대한 과금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반면, 초보자 패키지나 시즌 패스 등은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을 제공한다. 이런 혜자 패키지들은 과금 능력이 적은 중소과금러들에게조차 안 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도록 유도한다. 효율적인 패키징의 핵심은, 과금 성향과 무관하게 각자가 쓸 수 있는 최대 금액의 결제를 유도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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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리트 가챠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

빙고 판처럼 정해진 몇 개의 뽑기 대상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야

보상을 지급하는 상품을 뜻한다.

정작 일본에서는 사행성 조장 때문에 폐지하였다.

출처-<링크>

 

경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경쟁(전쟁)으로 푼다

 

상품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에 돈을 써야 할 이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국형 MMORPG는 상대 경쟁을 통해 유저들에게 스펙업의 동기부여를 해왔다. 초기 PK 시스템이 유저 개인 간의 경쟁을 유도했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다. 이후 등장한 대규모 공성전은 혈맹·문파 단위의 전쟁을 구현함으로써, 상대 경쟁의 스케일과 정도를 더욱 강화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통치자들이 애용해온 정치적 수단이다. 전쟁은 상대 집단에 대한 적개심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소속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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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엔씨소프트>

 

MMORPG에서 전쟁은, 유저들이 스펙업을 추구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대규모 집단전은 구성원 모두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핵과금러는 최전선에서 라인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역활을 수행한다. 중소과금러는, 상대방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고기 방패나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조공의 역할을 수행한다. 각기 다른 역활이 주어졌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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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4일 리니지W 첫 공성전에

8만 명이 참여했다

출처-<링크>

 

우리 팀 핵과금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상대 진영의 핵과금러이다. 모든 패키지를 구매하는 상대편 핵과금러를 감당하려면, 우리 팀 핵과금러도 모든 패키지를 구매해야만 한다. 무리를 하는 핵과금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중소과금러들도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과금을 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무리해야만 하는 구조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똑같이 무리하는 상대방을 당해낼 수가 없다. 참 족같은 싸움이다. 그런데도 이 싸움을 그만둘 수 없는 건, 오랜 전투를 치러오면서 형성된 전우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스펙업을 멈춘다는 것은, 다른 전우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펙업 경쟁을 촉발한 것은 상대 경쟁이지만,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우리 편과의 관계 때문이다. 유저들의 다양한 관계(경쟁, 협력)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과금으로 유도한다는 것이 한국형 MMORPG의 핵심이다. 

 

그 안에는 정치질·친목질·분쟁·명예욕·권력욕과 같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자극하는 양념들이 찐하게 스며들어 있다. MMORPG를 하다 보면, 짠맛·매운맛·단맛·독한 맛과 같은 인간사의 모든 맛을 체험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하면, 와우 같은 게임은 왠지 모르게 슴슴한 평양냉면 같다. 와우는 분명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 만들었고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한국형 MMORPG에 길든 유저가 봤을 땐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와우에는 강자가 약자를 철저하게 짓밟는 부조리함이나, 힘을 바탕으로 타인 위에 군림한다는 ‘독한 맛’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MMORPG 속에는 그 나름대로 재미가 존재한다는 점은 이번 글을 통해 잘 설명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부터 알아볼 것은, 왜 한국형 MMORPG가 유독 한국에서만 먹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국형 MMORPG가 추구하는 재미가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경쟁과 스펙 경쟁에 길든 한국인들에게, 한국형 MMORPG가 추구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은 친숙할 뿐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유저들에게는 디스토피아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미친 세계일 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나는 한국형 MMORPG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부분을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편이 마지막이다. 

 

<계속>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 독자분들 상정해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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