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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아 다시 욱일기까지 왔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범기(戰犯旗)라며 분노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전범기란 말 자체가 나온 게 얼마 안 된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온 것도 한국이란 소리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이걸 그렇게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전범기 논란에 관해서는 뉴스톱의 다음 기사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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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링크 : [팩트체크] 욱일기는 전범기? '전범기'는 없다

 

기사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자위대가 쓰는 욱일기는 일본 파시즘의 상징(Japan facist symbol)을 계승한 것이다. 그렇다고 욱일기가 하켄크로이츠와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이 많은 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욱일기가 이런 인종청소를 상징한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욱일기와 욱광문양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다. 경과가 어찌 됐든 욱광문양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욱일기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장기간 없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자 해외에서도 관심이 생겼지만 욱일기기가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를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부 국가에서만이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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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광(햇살)문양을 적용한 전 세계 깃발들

출처-<위키피디아>

 

1. 관함식과 국기

 

해군의 군함은 법적으로 그리고 국제관례를 근거로 국가의 영토로 간주한다. 우리가,

 

"그래봤자 배아냐?"

 

라고 생각하지만, 군함은 한 국가의 주권과 독립을 상징한다. 대한민국 군함은 외국의 영해를 포함하여 배타적 경제수역(排他的經濟水域, Exclusive Economic Zone)·군도수역(群島水域, 여러 섬의 맨 끝을 이은 선 안의 수역)·내수 등에 정박 또는 체류 시에도 이 법적인 지위를 유지한다. 이건 거의 모든 주권국가에 허용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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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피디아>

 

군함의 상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해했을 거다. 자, 그렇다면 이 배가 외국에 나갔을 때는 어떨까? 정확히 말하자면, 타국의 국가에 들어가 항구에 정박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군함이라는 거 알려야 하니까 그래, 우리 국기 달자."

"아... 해군기도 달아야지. 이 배가 대한민국 해군 소속이라는 거 알려야 하니까."

 

이렇게 해서 선수기(Jack : 배의 앞머리에 올리는 깃발. 소속 국가를 의미한다)와 함미기(Ensign : 함미 깃대에 게양하는 군함기)를 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인데...

 

"야, 그래도 남의 나라 왔는데, 예의상 쟤네 분위기는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손님이 예의와 염치가 있어야지. 그래 기분이다. 쟤들 국기도 하나 달아주자."

 

이렇게 해서 정박한 나라의 국기를 마스트(mast, 돛을 달기 위하여 배 바닥에 세운 기둥)에 달아주는 관례가 있다. 이건 예외적인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해군들끼리 지켜야 하는 상식 중에 하나다. 물론 안 할 때도 있다. 

 

"쟤네 왜 여기 깃발 안 달았대?"

"쟤들 원래 사이 안 좋잖아. 신경 쓰지 마. 한두 번 저러냐?"

 

법적으로 꼭 지켜야 할 규약이 아니기에 상대 국가의 깃발을 다는 건 대충 뭉개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이 여는 관함식에 우리나라 군함이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는 마스트에 일장기를 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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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일본 해상자위대 국제관함식 당시

한국 해군이 보냈던 대조영함

출처-<해상자위대 유튜브 캡처>

 

자, 문제는 이게 아직 이야기의 본론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욱일기’다.

 

2. 문제는 욱일기

 

일본 배에 달리는 함미기. 그러니까 자위대기가 바로 욱일기다.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 해상자위대는 창설 당시부터 구 일본 제국 해군 출신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군국주의 일본 해군이 사용했던 욱일기를 그대로 끌고 왔다. 즉, 일본 해상 자위대가 어딜 가든지 남의 나라 항구에 가면 이 욱일기를 계속 달고 다닌다는 거다.

 

"국제사회와 협력해 전범기를 없애야 한다!"

 

라고 말하는데, 이걸 하려면 적어도 욱일기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다른 국가와 공유돼야 한다. 문제는 이게 또 ‘국제정치’ 앞에서 무력화되기 일쑤라는 거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2008년과 2011년에 해상자위대 함정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은 욱일기를 내렸다.

 

"너네 우리 영해 들어오려고? 그럼 그 깃발 내려야 할 걸? 아니면 재미없다."

 

이때는 일본도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2019년 4월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 때, 일본 해상자위대는 당당히 욱일기를 달고 관함식에 등장했다.

 

이때 한국도 빡쳐서,

 

"야! 너네가 욱일기 허용하면 내 꼴이 뭐가 되냐?"

"너네는 뭐 우리한테 잘한 거 있구?"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60주년 때는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제일 큰 군함이었던 독도함과 강감찬함을 보내면서 나름 중국해군의 면을 세워줬다. 70주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신형 호위함인 경기함 한 척만을 보냈다. 이런저런 이유란 중국과 한국이 사드 때문에 군사적으로 신경전을 벌인 것, 그리고 70주년 관함식 1년 전에 있었던 제주 국제 관함식 때 중국 해군이 배를 안 보낸 것 등이다... 국제정치란 게 이렇게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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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호위함 경기함 항해모습

출처-<해군>

 

3. 양쪽 다 뾰족한 수는 아직 없다

 

욱일기가 공식적인 해상자위대의 군함기인 이상 이걸 달지 말라고 해도 일본이 호락호락 말을 듣진 않는다(앞서 중국같이 힘으로 깔아 뭉갤 때는 또 가능하긴 하다). 해서 한·일 양국이 모두 참가하는 관함식 같은 행사 때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계속 연출될 거란 얘기다.

 

"깃발 그거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안 돼?"

 

그냥 슥슥 지나가면 끝날 거 같은데, ‘복병’이 또 있다. 대함경례다. 해군 출신들은 다 안다. 간단히 말해서 지휘관의 계급이 더 높은 군함에 경례하는 거다. 멀리서 배가 보이면, 그 배의 함장 기수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대함경례를 위한 준비를 했던 경험이... 해군들은 있을 거다. 이게 우리나라만 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해군이 공유하는 전통이다. 

 

관함식 사열을 할 때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지나가면, 대함경례를 주고받는다. 욱일기에 경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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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함 장병들이 최영함을 향해 

대함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해군작전사령부>

 

욱일기가 존재하는 해상 자위대와 마주치면 난감해진다는 거다. 이 경우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해상자위대가 욱일기를 포기하는 경우

둘째, 욱일기를 우리가 인정하는 경우

 

해상자위대가 자신들의 깃발을 욱일기에서 다른 걸로 바꾸면 모든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그러나 지금도 입에 거품 물고(자위대법에 근거한 깃발이라며 생난리를 친다), 난리를 치는 터라 불가능할 거 같다. 

 

또는, ‘스토아적인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꿔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중국 해군이 그랬던 것처럼 눈 감아 버리는 거다. "저건 욱일기가 아니다. 저건 욱일기가 아니다..."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다. 물론 두 번째 방법은 우리나라의 민족감정을 생각한다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영화 <군함도>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욱일기를 칼로 자르는 걸 보면... 이게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분명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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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코자 밧줄을 만들려고 욱일기를 찢는 장면,

이라지만 류승완 감독의 장면 연출 의도는 뚜렷하다

출처-<영화 '군함도'>

 

3. 외교에서 (욕이 아닌) 전략이 필요한 때다

 

이래저래 계속되는 신경전과 꼼수가 난무하다가 외교적으로 잠잠해지면 타협책이 나오고, 외교적으로 험악해지면 다시 으르렁거리면서 노려보며 윽박지르던 게 이 ‘깃발’ 논쟁이다. 이건 현재로선 정말 답이 없다. 서두에서 말했듯 군함이란 게 법적으로 국가의 영토 개념이다. 군함에 달린 깃발은 주권의 상징이 됐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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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70주년 관함식(2022년 11월 개최)에 

초청받은 한국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일본 관함식 참석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 판단하겠다고 했는데, 그 ‘종합적’이란 단어에는 참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군함이 영토의 개념이고, 깃발이 주권의 상징이다. 섣불리 움직이기가 미묘하다.

 

해서 이럴 때야말로 국력이 보이고, 행정부 최고 권력자의 외교 실력이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판단을 어떻게 할까. 국가의 주권을 상징하는 걸 앞에 놓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란 걸... 이해는 하고 있겠지? 그럴 거로 생각한다. 종합적인 검토사항 중에 대한민국 주권의 상징도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할 거라고 믿어보자. 오는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