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독일에 대한 영국의 반감

 

영국 양아치.PNG

 

“Hey! You China? China China” 

(헤이! 너 중국인(치나)? 치나 치나)

 

“So, … Are you German? Are you German!!”

(그러면, 넌 독일인이니? 독일인이냐고!! 띠바아아아알!!!!)

 

‘치나’는 차이나(중국)를 비하하는 말이다. 지금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더 엄격해져 직접적으로 이런 발언하는 게 많이 줄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지하철을 타면 이와 같은 발언을 하는 이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사람을 보면 다 중국에서 온 사람 취급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쌓였던 분노가 폭발하며 더 이상 당하기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되갚아줘야겠다는 심보로 했던 말이 “그래 넌 독일인이니? 독일인이냐고!!”였다. 하필 독일인이냐고 했던 이유는 영국인들이 독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찬성 목소리가 높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독일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감이다. 대체로 이런 반감을 갖고 있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으로 본토가 폐허가 되는 경험을 했다지만, 불과 몇십 년 전, 수백 만의 특정 인종을 학살하고 유럽 전체를 곤경에 몰아넣었던 장본인이다.”

 

“그런 독일이 현재 유럽연합이니 뭐니 하며 유럽이 하나인 것처럼 아젠다를 외쳐대며, 자신들이 EU의 리더인 듯 행동한다. 맨날 인권을 운운하며 난민을 더 받아야 한다고 떠들어대니 얼마나 꼴 보기 싫고 아이러니한가.” 

 

메르켈.jpg

출처-<블룸버그>

 

독일과의 축구 대결에 목숨을 거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반독일 정서 때문이다. 때문에 “너 독일인이지?” 혹은 “너 독일인처럼 생겼다”라는 말은 영국인에게 심한 욕이나 다름없다. 그땐 그랬다. Are you German! 이라고 말을 듣고, 그 영국인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던 이유도 이런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영국인은 독일이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정말 싫어한다. 

 

 

독일계 왕족, 엘리자베스의 꼼수

 

전두환 같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닌 이상, 작고하면 ‘과’보다는 ‘공’을 치켜세워준다. 인도적인 차원이다. 죽음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에 대한 도리라고 여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서방의 모든 언론이 엘리자베스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공적을 치켜세우느라 정신없다. 그런데 뚝심 있는 그녀에게도 약점이 있었다(뚝심 관련 내용은 이전 편 기사 링크). 혈통에 대한 열등감이다. 

 

유럽 왕족들은 과거부터 다른 나라 왕족, 제후들과 혼사를 통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순수혈통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영국 왕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몸엔 여러 민족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 

 

그런데 영국 내에서는,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았기에 다른 민족의 피가 섞이는 건 이해하더라도 게르만 민족과 섞이는 것만은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존재해왔다. 지금이야 선진국 소리 듣지만, 국가라는 기틀이 가장 늦게 마련된 후발주자이기도 하거니와(독일은 1871년에서야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 국가가 됨) 문화이나 철학도 느즈막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무시하는 것도 있다. 

 

빌헬름 1세(좌)와 비스마르크(우).PNG

독일 제국을 통일한 빌헬름 1세(좌)와 비스마르크(우)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혈통을 타고 올라가면 하노버 왕조가 나온다. 1714년 스튜어트 왕조의 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여왕의 먼 친척인 조지가 영국의 왕이 되며 ‘조지(George) 1세’가 된다. 

 

 

스튜어트 왕조.PNG

스튜어트 왕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하노버 왕조.PNG

하노버 왕조

출처-블로그<연우의 세계>

 

조지 1세.PNG

조지 1세

 

 

즉,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조지 1세가 왕이 된 게다. 이를 시작으로 영국의 하노버 왕조는 빅토리아 여왕이 또 독일 사람(작센)과 결혼하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로 이름이 바뀌며 이어졌고, 그 가계가 현 윈저 왕조로 이어진다. 

 

작센부르코타 가계.jpg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

 

과정으로 보나 결과로 보나 현 윈저 왕조는 독일의 하노버와 작센코부르크고타를 통해 이어져 오고 있으니 독일 혈통인 셈이다. 게다가 엘리자베스의 남편인 필립공 또한 몰락한 그리스 왕가의 혈통으로 자랑스런(?) 혈통이 아니다 보니 혈통에 대한 그녀만의 열등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열등감을 잘 나타내는 사례가 바로,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다. 다이애나가 찰스와 결혼했을 때가 20살이었다. 혼사가 오가고 찰스와 연애(?)를 하기 시작한 시점은 18, 19살이었으니 갓 미성년을 벗어난 시점이다. 게다가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유급까지 했던 어리숙한 꼬마 숙녀였다. 개인의 능력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내던 인물은 아니었던 거다.

 

다이애나 결혼식식.jpg

 

그럼 이런 보잘 것(?) 없던 다이애나를 그리도 빨리 며느리 삼으려던 엘리자베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다이애나는 영국의 전통 왕족인 스튜어트가의 후손이다. 친가는 스펜서 백작 가문(House of Spencer)이고, 외가는 퍼모이 남작 가문(House of Fermoy). 혈통으로만 보면 다이애나가 진정한 영국의 왕가다. 자신의 자손들에겐 진정한 영국 왕족의 피를 이어주고 싶었던 거다. 

 

 

예상치 못한 다이애나의 인기로 인한 위협

 

다이애나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다이애나의 결혼식 중계는 전 세계를 강타 냈고, 영연방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기가 엄청났다. 본진인 영국 내에서마저 찰스는 고사하고 여왕인 엘리자베스보다 인기가 많았으니, 인기로 보자면 다이애나가 여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다이애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날 뉴스 속보로 보도될 정도로 영향력 또한 어마어마했다. 영연방 국가 순회를 갔을 때도 왕세자빈이 된 다이애나에게 쏟아졌던 박수갈채와 찬사는 같이 갔던 찰스뿐 아니라 엘리자베스에게도 위협적이었다. 

 

다이애나 인기.jpg

다이애나 인기2.jpg

 

“엘리자베스가 물러나고 찰스가 왕이 되면 좋겠다. 그래야 다이애나가 왕비가 될 것 아니냐”

 

이런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때였다. 혈통에서 밀리는데 인기에서도 밀리는 상황, 열등감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이었을까? 버킹엄궁에서 다이애나가 받았던 멸시와 천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순한 열등감이나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결혼 적정기라 보기에도 한참 어린 숙녀를 점 찍어 세자빈에 앉혔던 것엔 분명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다이애나의 대중적 인기와 사랑, 플러스 자신의 안위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한 왕가는 다이애나가 스스로 자포자기 하도록, 혹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위장시켜야만 했다. 

 

엘리자베스 찰스 다이애나.jpg

  

너무 다이애나 편만 드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이 주로 말하는 건 그녀의 염문설일 것이다. 맞다. 다이애나가 많은 유부남들과 염문설에 휩싸여 논란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곱게만 크고 아직 세상 물정 잘 모르는 20살의 어린 다이애나가 왕실에 시집온 후 마주한 상황은 남편 찰스가 결혼 전부터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애인(현 왕비 카밀라)과 만남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찰스-카밀라의 눈속임에 넘어가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적도 여러 차례 있었으니, “우리의 결혼은 복잡했다. 둘이 아니라 셋이었으니”라는 다이애나의 인터뷰로 알 수 있듯 그녀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정상적이니 않은 상황이었는지, 그녀가 얼마나 고충을 겪었을 것인지 짐작케 한다. 

 

찰스 카밀라 1997.jpg

1997년 찰스와 카밀라

 

또한 찰스는 다이애나가 해리 왕자를 낳았을 때, 

 

“내 자식인데 어떻게 머리색이 빨간색이야! 내 자식 아니야!”

 

라며 이제 막 출산한 아내에게 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진 후 나가서 친구와 골프를 쳤다고 한다. 이런 찰스의 태도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해리가 골칫덩이로 성장하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결국 엘리자베스가 가졌던 혈통에 대한 열등의식은 자식에게 대물림되어 찰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결혼 전 “챠밍 찰스”로 불리며 후계 순위 1위였던 찰스는 결혼 후 인기와 인지도 모두 아내에게 밀리며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되었다. 거기서부터 오는 열등감으로 더 불륜에 열중(?)한 건 아니었을까. 

 

혈통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열등감이 남긴 건, 엄마를 일찍 여윈 손자들, 왕위를 버리고 떠난 자신의 큰아버지(에드워드 8세)처럼 이혼녀와 결혼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70살이 넘어서야 겨우 왕위에 오른 그 아들은, 앞으로 계속 그 왕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가 되어버렸다. 

 

 

다이애나의 죽음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의혹을 낳게 했다. 아직도 그 사고가 누군가의 고의인지, 아닌지, 여전히 미지수이다.

 

찰스와 이혼 후, 다이애나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는 ‘도디 알 파예드’(Dodi Al-Fayed)다. 그는 1997년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당시,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인물로 아랍계 부호이자 런던에서 가장 고가의 물건들만 취급한다는 헤롯 백화점의 소유주 모하마드 알 파예드의 아들(Mohamed Al-Fayed)이다. 즉, 재벌 2세다. 

 

zj커플 사진.jpg

다이애나와 도디

 

그는 다이애나의 교통사고 당시 옆자리에서 함께 숨졌는데, 당시 왕가에서는 다이애나와 알 파예드의 관계가 단순한 만남이 아닌 것을 직감했고, 왕족에게서 아랍계 자손이 태어나게 되는 상황에 굉장한 불쾌감을 가졌다 한다. 

 

때문에 영국 왕실에 의한 타살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왔다. 엘리자베스의 남편인 필립공은 이전에도 비슷한 일에 연루된 적이 있었는데 혹시 아내이자 여왕을 위해 그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니냐는 등 왕실이 일을 벌인 것이라는 숱한 의혹을 낳기도 했다. 

 

실제로 영국 왕실은, 도디와 다이애나의 관계가 알려진 이후부터, 도디 개인을 넘어 알 파예드 집안에 대해 굉장한 불쾌감과 적대감을 나타냈었는데, 그의 부친인 모하마드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백 억에 대한 세금을 영국 정부에 수년 간 납부했음에도 끝까지 영국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결국 모하마드는 아들이 죽고 난 두, 헤롯 백화점을 카타르의 한 회사에 매매하고 영국을 떠났다.

 

지금도 다이애나는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다. 비록 그녀의 행실이 본이 되지 못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지만, 어린 나이에 왕실에 시집 가, 온갖 고초를 겪으며, 남편에게도 버림받은, 혈통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된 어린 소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영국인들은 여전히 갖고 있다. 많은 영국인들이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엘리자베스와 찰스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엘리자베스는 다이애나가 죽은 뒤, 추모장에 모습을 드러내 – 원칙적으로 여왕은 신하의 추모장에서 추모를 할 수 없음 - 이례적으로 조문을 하고 장례식에서도 목례를 하는 등 (여왕은 목례를 할 수 없음) 전통을 깨고 어떻게 해서든 민심을 달래 왕실을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쩌면 이러한 그녀의 감(?)이 지금까지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묵념.PNG

다이애나 추모장에서 목례하는 엘리자베스 

 

하지만, 감(?)이 없는 찰스는 이후에도 카밀라와의 관계를 더욱 돈돈히 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끝끝내 자신과 불륜관계에 있던 카밀라와 2005년 결혼, 더욱 국민적 미움을 샀다. 영국 국민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의 수장과 시민들조차 이들이 왕위를 물려받기를 꺼려했던 이유다. 엘리자베스의 서거 후, 어쩌면 영연방이 깨질 수도 있다, 군주제가 막을 내릴 수도 있다 등 추측이 나오는 건 이런 연유도 있다.  

 

다음 편에선 찰스가 왕이 되면서 커먼웰스(영연방)에 대한 불행한 미래가 점쳐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 디벼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