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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 2 주 사이에 전사 혹은 포로가 된 러시아군을 살펴보면, 이들은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건 물론이고 아예 싸워 본 경험도 없는 사람도 있다.”

 

-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 中 발췌

 

푸틴이 동원령을 발표하자마자 러시아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원령 2주 만에 20만 명을 징집했고, 이들은 최소 훈련(1~2주) 시간만 채운 채 전선으로 내보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의 병력 부족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거다. 이러다 보니 웃지 못할 촌극이 이어지고 있었다. 러시아 시민권을 미끼로 내미는 고전적인 모병 활동은 기본이고(적어도 미국 국적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사할린 쪽에서는 냉동 도미나 연어 같은 물고기를 참전자 가족에게 지급하겠다는 말이 나와 비웃음을 사고 있으며, “나는 내 영혼에 살인죄를 씌울 수 없다. 나는 그 누구도 죽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며 자살한 래퍼가 등장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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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령에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반 비탈리예비치 페투닌

출처 - 링크 

 

무차별적인 징집 때문에 러시아 내부의 민심이 극도로 나빠졌고, 푸틴도 한발 물러나야 했다.

 

“야야, 상황이 다급해서 그런 거 같은데... 애들이 일 처리를 미숙하게 했네. 미안 미안, 내가 검찰 총장한테 잘 말해놨어. 불법 동원한 사례를 조사해서 잘못 징집된 애들은 돌려보내고 앞으로 위반 사례 나오면 철저하게 대응하라고 했어.”

 

부분 동원령 때문에 러시아 내부는 한바탕 홍역을 앓아야 했다. 당장 동원령이 ‘불평등’하게 집행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시골의 소수민족에게 집중됐다는 통계가 나오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푸틴에게 적대적인 인사(야당 인사)를 끌고 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행정적인 미비로 인해 면제자, 장애인들마저도 징집되는 경우도 나왔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푸틴이 다급하게 진화에 나서야 했다. 뭐 여기까지는 동원령에 관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동원령 이후에 발생할 문제다.

 

동원령이 가져올 여파

 

우리나라도 예비군을 대대적으로 편성하고 있기에 예비군에 대해서는 익숙하다. 그러나 예비군이 동원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이들은 거의 없을 거다(강릉무장공비 사건 때 동원을 피하기 위해 옆 동네로 주소지 바꾸고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거다). 동원령을 내린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어제까지 멀쩡히 출근하고 점심 사 먹고, 저녁때 소주 한잔 걸치던 ‘사회인’을 군대로 다시 끌고 간다는 거다. 좀 있어 보이는 경제용어(?!)로 정리해 보자면,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라는 거다. 동원령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 나라는 평시에 운용하는 군대의 숫자가 10만 내외이다. 이 병력으로 사방에 포진해 있는 이슬람 국가들과 맞서 싸울 순 없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전쟁 방식이 뭐냐면, 전쟁 분위기가 나면 동원령을 때려서 단기 결전으로 전쟁을 끝낸다는 거다. 실제 운용하는 병력이 적기에 예비군을 동원해 병력을 부풀린 다음 빨리 전쟁을 끝낸 뒤에 이 병력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거다. 아니면? 나라의 경제가 엉망진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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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4차 중동전 때 이집트가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해 이스라엘을 긴장하게 만들고 동원령을 내리게 해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동원령을 내리는 걸 주저하게 만든 이유가 이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가 동원령 선포에 신중했던 이유가 이거 한 번 잘못 내렸다간 날아가는 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동원령 때린다는 게 그냥,

 

“아, 예비군 동원했구나.”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동안의 전비 때문이더라도 러시아의 2023년 예산은 무조건 적자 편성해야 한다. 당연히 세금은 인상될 것이고, 부족한 전비를 메우기 위해 국채 또한 대규모로 발행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 국채의 20%를 해외 투자자들이 사 갔는데, 이번 전쟁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러시아 국채를 사기는 어려워졌다(거래가 차단됐으니 말이다). 그렇다는 건 국내에서 이 국채를 다 사 가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길어진 전쟁 때문에 앞으로 최소 2년간 러시아가 대규모 증세를 해야 한다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이미 러시아가 소득세를 대규모로 올릴 거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전기나 상수도 요금도 ‘바짝’ 오를 거란 말들이 나오고 있다(가장 손쉽게 올릴 세수들이 말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동원령’이다. 당장 동원령 때문에 올해 러시아의 GDP가 0.5% 이상 떨어질 거란 말이 나오고 있다. 사회에서 멀쩡히 일하고, 돈 써야 할 사람들을 군대로 끌고 간 거다. 당장 러시아 기업들은,

 

“동원 제외 대상 기업을 확대해 줘! 아니, 씨바 돈은 벌어야 할 거 아냐! 당장 일하는 애들 빼가면 어떻게 해?”

 

라면서 정부에게 자기 직원들은 빼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잘 기억해 둬야 할 거다. 전쟁 나면 우리도 겪을 일들이다). 이렇게도 안 되니 직원들을 빼내서 일단은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심지어 전세기를 구해서 단체로 직원을 탈출시키고 있다). 이렇게 러시아 국외로 빠져나간 인원들만 20만 명이 훌쩍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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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동원령 선포 직후, 러시아-조지아 국경의 탈출 행렬

출처 - AP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게 이렇게 무리하게 끌고 간 예비군들이 전선에서 어떤 드라마틱한 활약을 할 수 있냐는 거다. 어렵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이들은 잘해 봐야 점령지에서 경계를 서는 게 다일 뿐. 이들을 데리고 공세 작전을 펼치는 건 어렵다. 이런 병력 부족을 깨달았던 건지 발트해에 배치해 있던 러시아 제6군의 병력을 뺐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크다.

 

칼리닌그라드. 예전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가 옛 명칭이었다(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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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표시)

출처 - 구글

 

냉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별문제 없었는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떨어져 나가면서 소위 말하는 월경지(越境地)가 됐다. 이게 별거 아닌 땅덩어리 같지만, 러시아에게는 사활이 걸린 땅이다. 발트해로 나아갈 수 있는 부동항이 있고, 밑에는 폴란드, 위로는 발트 3국을 압박할 수 있으며 호시탐탐(?!) 러시아를 놀리는 NATO를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소련 시절부터 칼리닌그라드는 전략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수십 년간 이곳에 엄청난 병력을 주둔시켰다.

 

얼마 전까지 러시아 6군의 육군과 공수부대 3만 명과 상당수의 해, 공군을 전진 배치해놓고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길어지더니... 얼마 전에 이곳에 있던 병력의 80%를 빼서 전선으로 돌렸다. 현재 칼리닌그라드에는 6천 명 정도의 병력만이 남았다. 러시아의 병력 부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러시아 내부의 상황이다.

 

“위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거짓말로 긍정적인 보고만 하는 게 문제이다. 국방부가 나쁜 소식을 은폐하고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의 발언 中 발췌

 

그동안 친정부적인, 아니 친 푸틴적인 이들이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칼을 뽑아 들었다는 게 아니라 논조와 발언 수위가 미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언론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들이 동원령으로 틀어진 민심의 풍향을 읽은 거다.

 

“씨바 대놓고 푸틴 욕할 순 없고... 군대나 욕하자!”

 

이런 느낌이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남은 카드는 무엇일까?

 

푸틴의 마지막 버튼

 

지난 10월 7일은 푸틴의 칠순 잔칫날이다. 농담 삼아,

 

“야, 푸틴이 칠순 잔치 기념으로 폭죽 쇼하는 거 아냐?”

 

라고 말했었는데, 다행히 푸틴이 그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건 아닌 거 같다. 지금 러시아는 핵 어뢰를 쏘겠다느니, 전술핵을 쏠 수도 있다느니 하면서 온갖 폼을 다 잡으며 핵실험을 하겠다고 앉아 있다. 자, 문제는 러시아가 지금 과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다.

 

2020년 러시아(정확히 말하면 푸틴이)는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를 정리한 게 있다.

 

“우리가 핵무기를 쓰는 경우는 다음 4가지 경우야.

 

첫째, 러시아나 우리 동맹국이 핵무기나 대량살상 무기로 공격받았을 때,

둘째, 러시아나 우리 동맹국이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

셋째, 러시아가 핵무기 공격받았을 때,

넷째, 러시아가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때.

 

깔끔하지? 우리 핵 함부로 쏘는 그런 양아치 나라 아냐.“

 

라고 정리한 거다. 자, 고민해 보자.

 

“지금 러시아가 핵무기를 쏠 상황일까?”

 

억지로 끼워 맞춰보자면 4번째인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 욱여넣을 수 있다. 모양새가 빠지지만,

 

“우크라이나 새끼들이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있다!”

 

라는 전제하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거다. 자, 문제는 푸틴의 핵무기 발사 명령을 받은 러시아 총참모부가,

 

“오케이 발사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발사 버튼을 누르냐는 거다. 그동안 러시아 군부는 푸틴에게 절대 충성을 말해왔고(아닌 경우 숙청을 당했다), 푸틴 말을 잘 따라왔지만... 핵무기 발사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러시아 군부의 쿠데타설이 솔솔 흘러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말 핵을 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거 쐈다가는 어떻게 될지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핵무기를 1~2발 쏜다고 우크라이나가 물러서겠냐는 거다.

 

“(군사적으로 유의미하게) 우크라이나 저놈들 박살 내려면 핵 1~2발 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술핵을 있는 대로 가져와서 터트려야 해!”

 

핵무기는 정치적인 무기다. 핵무기가 그 위력을 가장 크게 발휘할 때는 ‘창고 속에 감춰둘 때’이다. 핵무기는 쏘는 순간 그 위력이 반감하는 무기다. 핵은 쏘는 무기가 아니라 보유하는 무기다. 그런데, 이걸 일단 쏘게 되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당장 러시아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인도와 중국도 이 핵은 용인하기 어려울 거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유럽이다. 지금도 러시아에게 날 선 칼을 들이미는 상황에서(얼마 전 EU는 8차 제재까지 들어갔다) 핵을 쏜다? 다음은 없다. 핵무기 사용을 용인하는 순간 지구는 난장판이 될 거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으로 돌아설 거다. 정치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한 발 정도 떨어뜨린 다음에,

 

“자 봤지? 후퇴해! 물러나! 안 그러면 다 털어 넣는다!”

 

라고 협박해 봤자 우크라이나가 물러설 리 없다. 1발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러시아가 핵을 쏘는 순간 명분은 완전히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 또한 러시아가 핵무기를 쐈는데, 이에 대해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어려워진다(최소한 정권이 바뀌는 정도이고, 크게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안보 체제들이 흔들릴 거다). 즉, 핵이 발사되는 순간 미국도 무조건 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걸 잘 알기에 핵을 함부로 쏘기가 어려운 거다.

 

푸틴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미친 척하고 칠순 기념으로 폭죽쇼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간 내외적으로 수많은 압박에 직면한다. 그 압박을 견뎌내고 쐈다면, 그 결과는 명확하다.

 

푸틴이 지금 자리를 지키지는 못할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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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