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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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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소담출판사>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2013년 1월, ‘간첩 혐의’로 구속된 탈북민 출신의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 씨가 법정에 섰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죄가 있다고 하면, 있어야 했다. ‘만들어진 죄’의 첫 번째 공식은 ‘가족 건드리기’다. 그의 여동생 유가려 씨의 증언이 검찰 측의 핵심 증거였다. 그러나 유가려 씨는 자신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밝혔다. 그 증언은 국정원으로부터 6개월간 이어진 감금, 폭행, 회유, 협박 끝에 하게 된 허위진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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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씨와 동생 유가려 씨

출처-<민중의소리> 링크

 

심지어 2심에서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들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공문서가 위조된 것임이 드러난 것이다. 2심에서도 유우성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반성과 사과’가 아닌 ‘보복 기소’를 선택했다. 국가 권력에 찍힌 개인이 받아야 하는 처벌이었다. 검찰은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유우성 씨는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지만,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라는 명목으로 검찰로부터 다시 기소를 당했다. 본 사건과 관계없는 ‘별건 기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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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시사인> 링크

 

결국 이 사건은 유우성 씨에 대해 국가 폭력이 시작된 지 약 10년이 지난 2021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의 판결로 최종 마무리 되었다. 2021년 10월 14일 대법원은 검찰이 별건 기소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를 기각했으며 검찰의 보복 기소를 인정했다. 대법원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며 유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것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 인정돼 공소 기각이 확정된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첫 사례였다. 부패한 권력의 정치적 조작질에 대한 ‘법적 승인’이 난무했던 우리 사회의 사법 역사로 볼 때 참으로 드문 사례였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일까. 이 사건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이시원’은 2022년 5월, ‘윤석열 당선자’에 의해 ‘청와대 공직 기강 비서관’으로 임명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권력은 패배하지 않는다. 또다시 권력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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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링크

 

 

오세아니아란 제국의 통치체제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능력

 

‘오세아니아’를 강철같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당’의 핵심 슬로건이다. 핵전쟁과 혁명 이후 1984년, 지구는 세 개의 대제국으로 재정립되었다.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그리고 ‘동아시아’가 그것이다. ‘오세아니아’는 위대한 당의 지도하에 수년째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다.

 

오세아니아에서 쓰는 언어 이름은 ‘신조어’이며, 통치자는 ‘빅 브라더’이다. 빅 브라더는 유일하고도 위대해서 그 무엇도 그의 통치로부터 예외일 수 없는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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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4' 

 

‘신조어’는 당의 이념인 ‘INGSOC(영국사회주의)’를 언어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그 언어의 목표는 생각의 범위를 좁히는 데 있었다. 사상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면 ‘사랑과 욕정’ 같은 ‘사상 범죄’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자유롭다(free)’의 사용이다. 신조어에서도 ‘free’는 남아 있지만 그것은 ‘이 개는 이가 없다.(free from lice)’같은 문장에서만 사용될 수 있었다. ‘과거어’처럼 ‘정치적으로 자유롭다, 지적으로 자유롭다’ 같은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중심도시인 런던의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위대한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다. ‘텔레스크린’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가능한 기기로 모든 소리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탐지 가능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24시간 내내 텔레스크린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텔레스크린에 없는 유일한 기능은 ‘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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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지켜보는 빅 브라더

 

오세아니아의 인구 구성은 세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진 극소수의 ‘핵심당원’이 있고 그들의 손발이 되어 집사 역할을 하는 ‘부당원’이 있다. 그리고 85%를 차지하는 절대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있다. 그들은 일종의 ‘불가촉천민’으로서 오세아니아의 모든 정책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더러운 판자촌에 살았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이자 인생의 낙은 ‘술과 복권’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텔레스크린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와 동물은 자유로웠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는, 대중이 자유를 감당하거나 진실을 대면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보다 강한 사람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체계적으로 기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역을 꿈꾼 윈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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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원 ‘윈스턴 스미스’의 근무지는 ‘진실부’이다. 진실부는 뉴스와 오락, 교육, 예술을 다루는 부서였다. 오세아니아의 정부는 네 개 부처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을 맡고 있는 ‘평화부’, 법과 질서의 유지를 담당하는 ‘다정부’, 경제를 담당하는 ‘복지부’ 그리고 ‘진실부’가 그것이다.

 

윈스턴은 진실부에서 ‘기억 구멍’을 담당하고 있었다. 기억 구멍이란 없어져야 하거나 알 필요가 없는 과거의 사실들을 지우는 장치이다. 예를 들어 당이 초콜릿 배급량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발표가 실린 모든 자료를 기억 구멍에 집어넣어 소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정된 내용으로 다시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기억 구멍을 담당하는 윈스턴에게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과거어’의 구사 능력 그리고 ‘골드스타인’의 주장이었다. 골드스타인은 빅 브라더와 거의 같은 지위를 가진 당 지도자였다. 그는 ‘혁명은 배신당했다’고 외치며 빅 브라더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언론, 출판, 집회, 사상의 자유를 외쳤다. 골드스타인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불가사의하게 탈출에 성공해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기억들이 윈스턴에게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윈스턴은 도시 빈민가의 ‘채링턴 씨’가 운영하는 중고 상점에서 금지된 ‘자유거래’를 통해 낡았지만 예쁜 일기장을 샀다. 그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텔레스크린 쪽을 향해 낙천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나마 유일한 텔레스크린의 사각지역으로 가 공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빅 브라더를 타도하라’는 문장으로 한 장을 채우곤 했다.

 

그는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진실을 말하는 외로운 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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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자기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알고 있었다.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비밀스럽게 행동해도 누구도 예외 없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체포와 심문, 그리고 재판과 처벌.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상상이었다. 체포가 아니라 ‘증발’이었고, 처벌이 아니라 ‘소멸’이었다. 그들은 원래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다른 이의 기억에서조차 그들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위기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고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동지를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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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라더를 찬양하고 골드스타인을 저주하는 ‘헤이트 프로그램’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대형 텔레스크린 앞의 모든 사람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광기 어린 표정으로 빅 브라더를 외치고 있었다. 윈스턴은 그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1-2초 정도의 짧은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하여 본심을 드러냈다. 바로 그 순간, 핵심당원 오브라이언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안경을 고쳐 쓰던 중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윈스턴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브라이언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마치 두 사람의 마음이 열려 서로의 눈을 통해 생각이 흘러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메시지였다. 섬광이 사라지듯 그 찰나의 순간이 사라지자 오브라이언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윈스턴은 예전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닐지도 몰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브라이언이었다.

 

“우린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겁니다.”

 

본능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윈스턴은 점차 오브라이언이 자기편이라 생각했다. 그는 가끔 오브라이언을 위해서, 오브라이언에게 보내는 일기를 썼다. 그것은 일기였지만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기에 편지와도 같았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에게 말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자유는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에 동의하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

 

 

윈스턴을 염탐하는 열성당원 줄리아와 반전

 

윈스턴은 두려웠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창작과’ 소속의 젊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녀의 허리에는 ‘반섹스 청년연맹’의 상징인 진홍색 장식띠가 둘러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전적인 당의 신뢰를 받고 있음을 뜻했다. 젊고 예쁜 열성 당원. 그것은 첩자나 이단의 적발자에 적격인 조건들이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윈스턴은 불길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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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예감은 곧 확신이 되었다. 윈스턴은 무모했다. 그는 벌써 두 번째 지역 센터의 저녁 집회에 빠지고 프롤레타리아 거리를 산책했다. 그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이었다. 신조어로는 ‘혼삶’이었다. 그리고 일기장을 산 채링턴 씨의 중고 상점을 또다시 찾아갔다.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그는 온갖 과거의 물건들을 감상했고 상점의 2층 방까지 둘러보았다. 벽에 멋진 동판화가 걸려 있는 낡고 아늑한 방이었다.

 

윈스턴은 그 2층 방에 세를 얻어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는 진정한 휴식을 즐기는 자신을 떠올렸다. 잊었던 감정, 행복감이 그를 감쌌다. 그러나 이 모두가 해서는 안 될 생각들이었고, 곧 자신의 무모함과 부주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게 앞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친 것이었다. 

 

그녀가 윈스턴을 염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열성 당원인 그녀가 당원들의 거주지로부터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거리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가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윈스턴은 자살을 준비했다. 밤마다 텔레스크린 속의 여자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뾰족한 유리 조각처럼 자기의 뇌에 박히는 느낌을 받으며 자살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그들에 의해 뼈는 부러지고, 이는 깨지며, 머리는 피에 젖어 소멸되는 것보다는 자살하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고 한 오브라이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러나 곧 그의 얼굴은 빅 브라더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갔다.

 

진실부의 복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팔이 부러졌는지 오른쪽 팔에 팔걸이 붕대를 하고 있었다. 둘이 좀 더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발에 무엇이 걸렸는지 갑자기 비틀대다 넘어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순간 윈스턴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돕기 위해 다가갔다. 그녀의 성한 팔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고마워요, 동지.”라고 말하며 다시 기운차게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1분의 절반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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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의 심장이 무서우리만큼 큰 소리로 두근거렸다. 짧은 순간, 그녀가 그의 손에 쪽지를 쥐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읽고 싶은 유혹을 억제해야 했다. 텔레스크린의 감시는 화장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윈스턴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쪽지를 각종 서류 종이들과 함께 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쪽지를 펴 읽었다. 쪽지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숨어서 하는 금지된 사랑

 

팔로 감싸 안은 여자의 허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는 여자의 몸을 돌려 가슴과 가슴이 맞닿도록 했다. 그녀의 몸이 금방이라도 그의 몸속으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그에게 키스를 하고 있다. 그녀, 줄리아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내 사랑’이라고 속삭였다. 윈스턴은 그가 잊었던 것, 또는 누군가가 제거한 것, 그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사랑의 힘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살아났고 눈부신 햇빛 속을 나는 새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모든 금지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윈스턴은 왜 당이 오르가슴을 없애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포옹은 전투였고 절정은 승리를 의미했다. 그것은 당에 가하는 일격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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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윈스턴에게 용기를 선사했다. 윈스턴은 그간 꿈으로만 여겼던 채링턴 씨 가게의 2층을 얻었다. 텔레스크린 없는 프롤레타리아 거리의 그 방은 둘의 낙원이었다. 단 한 번, 윈스턴이 그토록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쥐가 나타났을 때를 빼고는. 줄리아는 포옹으로 쥐로 인해 공황에 빠진 윈스턴을 달래주었다. 

 

과거에만 존재했을 휴식, 벽에 걸린 동판화를 보며 그 어떤 강박감도 없이, 그저 침대에 누워 바깥의 평화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가능했다.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만 같던 시대의 재현이 줄리아와는 가능했다. 

 

 

오브라이언에게 운명을 맡기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자신과 오브라이언 사이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저 이상한 친밀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그저 오브라이언과 직접 맞닥뜨려서 자신이 당의 적이라고 공표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말도 했다.

 

윈스턴은 목표가 생겼다. 그는 반드시 줄리아와 결혼에 성공하든가 아니면 함께 자살을 할 것이라 결심했다. 지금 둘의 행복이 결코 오래 갈 수 없음을 둘 모두 알고 있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윈스턴은 결단을 내렸다. 둘은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을 찾아갔다. 오브라이언이 사라진 골드스타인과 그의 지하 군대를 둘과 연결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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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당원답게 오브라이언의 집은 화려했고 그는 텔레스크린을 끌 수 있는 특권도 있었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윈스턴은 자신이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말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오브라이언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겼다.

 

“우리는 모종의 음모가 있고 당에 반대하는 모종의 비밀 조직이 있으며 당신도 그 일에 관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도 거기에 가입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도박은 성공했다. 오브라이언은 둘이 내민 손을 잡았다. 윈스턴의 추측이 적중한 것이다. 윈스턴과 줄리아, 둘은 그들만의 은신처인 채링턴 씨 가게 2층 방에서 처음으로 ‘미래’와 ‘희망’이라는 단어들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예전의 둘은 죽었고 새로운 둘이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미래는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둘은 행복감에 들떴다.

 

“우린 죽은 겁니다.” 그가 말했다.

 

“우린 죽었어요.” 줄리아가 고분고분한 어조로 따라 말했다.

 

“너희들은 죽은 거야.” 그때 등 뒤에서 금속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윈스턴은 내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줄리아는 얼굴이 노래졌다. 그 쇳소리는 벽에 걸린 동판화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살기 위해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 줄리아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동판화가 떨어지며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동판화가 떨어진 벽에 텔레스크린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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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이미 시작 안에 들어 있었다.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난 오브라이언

 

그곳은 공간은 있지만 시간은 없는 곳이었다. 창문은 없었고 하얀 불빛은 꺼지지 않았기에 윈스턴은 도무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몇 날, 몇 주간을 고문받았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고문은 윈스턴을 동물로 만들었다. 윈스턴은 고문 끝에 자신이 흘린 피로 범벅이 된 바닥을 짐승처럼 기어 다니다 몇 번이나 기절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었고 빨리 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고문의 총책임자는, 오브라이언이었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이 말한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나자’고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윈스턴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무언가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다이얼을 손에 쥔 오브라이언이 서 있었다. 

 

오브라이언이 다이얼을 살짝 돌리자 무시무시한 고통이 윈스턴의 온몸을 찢었다. 고통에 몸은 뒤틀렸고, 관절들은 서서히 뜯겨져 나가는 듯했다. 등뼈가 부러질 것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자신의 척추골이 끊어져 척수액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곧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이얼의 눈금은 100까지 있는데, 자신이 방금 돌린 것은 40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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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자신의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며 이것이 몇 개냐고 물었다. 윈스턴이 네 개라고 말하자 그는 다섯 개로 보라고 했다. 윈스턴은 거절했고 다이얼은 60, 70, 75로 올라갔다. 윈스턴은 울면서 애원했다. 그리고 기절했다. 윈스턴이 기절하면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와서 그의 맥박을 재고 이상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면 고문은 다시 시작되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그가 ‘닦아야 할 얼룩’이며, 자신은 윈스턴을 ‘텅 빈 인간’으로 만들 것이라 말했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라고 했다. 윈스턴은 거울로 자신의 벗은 몸을 본 순간 비명을 질렀다. 거울 속에는 다 빠진 머리털과 이빨을 가진, 무릎보다도 얇은 허벅지에 회색 피부가 늘어진 가죽처럼 몸을 감싸고 있는 늙은이 하나가 서 있었다. 척추는 깜짝 놀랄 정도로 꺾어져 굽어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곧 빠질 듯이 덜렁거리는 윈스턴의 앞니 하나를 잡았다. 곧 윈스턴의 턱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지나갔고 그의 앞니는 감방 저편으로 날아갔다. 윈스턴은 눈이 아플 정도의 하얀 조명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추하고 너절한 한 다발의 뼈에 지나지 않았다. 윈스턴에게 오브라이언의 손가락 네 개는 이제 더 이상 네 개가 아니었다. 오브라이언의 명령에 따라 그것은 다섯 개가 되었고 여섯 개가 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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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권력, 우리가 밤낮으로 투쟁해서 구해야 하는 권력은 사물에 대한 권력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권력이라네.”

 

윈스턴은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 브라이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윈스턴을 회복시켰다. 좋은 음식을 줬고 치료를 해줬다. 윈스턴이 자신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느낄 때였다. 윈스턴은 그들이 건네준 흰 석판에 몽당연필로 다음과 같이 썼다.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 권력은 곧 신이다.

 

오브라이언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윈스턴에게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빅 브라더에 대한 본심을 말하라고 했다. 윈스턴은 거역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윈스턴은 그에게 빅 브라더를 증오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브라이언은 이제 마지막 단계를 밟을 때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간수들에게 윈스턴을 ‘101호’로 데려가라고 말했다. 윈스턴은 101호에는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오브라이언이 대답했다.

 

“모두가 다 알고 있지. 101호실에 있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라네.”

 

 

마지막 과정, 101호

 

101호는 그간 윈스턴이 경험한 감방 중에 가장 컸다. 그는 녹색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의자에 묶여 있었다. 고개조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철사 우리가 있었고 그 속에는 쥐들이 있었다. 어린아이 정도는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먹어 치울 정도로 덩치가 거대한 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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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듯했다. 한 마리는 위아래로 펄쩍펄쩍 뛰었고, 늙은 쥐는 뒷발로 서서 분홍색 앞발을 가로대에 걸치고 미친 듯이 냄새를 맡고 있었다. 윈스턴은 필사적으로 공포감과 싸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제 곧 자신의 머리가 철사 우리 속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미친 듯이 몸부림쳤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한순간 그는 정신을 잃고 짐승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고통은”하고 그가 말했다. 

 

“그 자체로는 늘 부족하다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을 견디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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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딱 ‘한 사람’, 그 사람만이 이 벌을 옮겨가게 할 수 있었다. 오직 윈스턴만이 아는 방법이었고, 오브라이언이 원하는 방법이었다. 윈스턴은 몇 번이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걸 줄리아에게 하세요! 줄리아에게 해요! 내가 아니라! 줄리아한테! 당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치 않아요. 그녀의 얼굴을 뜯어내고 뼈까지 발라내 버려요. 내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말이에요!” 

 

 

40년에 걸친 투쟁이 끝나다

 

윈스턴은 모든 일을 용서받았고, 그의 영혼은 눈처럼 순결해졌다. 윈스턴은 공개 재판 피고석에서 모든 것을 자백했고 그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연루시켰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뛰어다니거나 환성도 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윈스턴은 따뜻한 햇살 속을 걷는 듯한 행복감을 느끼며 흰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오랜 시간 바라 마지 않던 총알 하나가 그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윈스턴은 고개를 들어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빅 브라더였다. 그는 저 인자한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삶을 살았던 자신을 후회했다. 순간 그의 두 눈에 술 냄새가 베인 두 줄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제 40년에 걸친 그의 투쟁이 끝난 것이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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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으로부터 내 인생을 지키는 방법

 

권력이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봅니다. 한국은 세계 6위로 평가되는 군대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찰은 12만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검사도 2,200명이 넘습니다. 마지막으로 곳곳에 수많은 구치소와 교도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추상적인 개념으로의 권력이 아닌 실질적인 힘을 갖춘 권력의 모습입니다. 

 

만약 이 거대한 권력이 누군가의 인생에 작정하고 부당하게 개입한다면, 그 인생은 사자 무리 속에 던져진 어린아이와 같을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개인도 권력에 맞설 힘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권력 앞에서 개인의 인생은 손만 대도 부서져 버릴 아주 얇고 투명한 유리막 같은 것입니다.

 

소설 ‘1984’는 거장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에릭 아서 블레어)’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는 평생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굳이 사회주의 앞에 ‘민주적’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스탈린’의 현실 사회주의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권력이 각 개인의 인생에 관여할 때, 개인들의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또 얼마나 비극적인 모양으로 바뀌는지, 그는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굳이 ‘구 소비에트 연방’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났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간첩 조작 사건이 그 사례입니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광복 이후부터만 따져 보아도 권력의 횡포 앞에서 이지러진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권력 앞에 잔인하게 무너진, 소설 ‘1984’ 속 ‘윈스턴 스미스’의 인생을 소개하면서, 읽는 내내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이유입니다. 윈스턴의 인생이 결코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 소련’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고,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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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노동운동가였던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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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김문수

출처-<중앙일보>

 

“오웰은 지배 계급에 의해 운영되는 집단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망각하고 지배자를 위한 권력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 뉴욕타임스 -

 

우리 사회를 포함하여 어떤 선진적인 민주 사회일지라도 권력의 위협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주 사회의 권력을 포함하여 모든 권력은 모순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나온 것이지만 동시에 시민들은 권력의 통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통치 대상이 없는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나’와 ‘우리’ 모두입니다. 그래서 더욱 권력은 무섭고 그 앞에 놓인 개인의 인생은 약하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거대하고 막강한 권력 앞에서 소중한 내 인생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지킬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지 고민해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해결책’이 아닌 ‘방법’에 대한 고민입니다. 해결책이야 중학교 사회 관련 책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누가 나 대신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탐욕적인 것은 없습니다.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조지 오웰은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는 시민 모두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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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브레이크뉴스>

 

우리가 좀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좀 더 참여적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이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나와 우리의 삶을 지켜내고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제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말을 했지만, 이미 알고 있고 이 당연한 걸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투표하는 것’,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하는 것’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스무 번째 인생을 소개하며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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