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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과 ‘일본회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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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든 아베는 전전과 전후를 통튼 일본 헌정사 최장수 총리다.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은 1년 만에 단명했지만, 2012년 12월 (민주당으로부터 총선에 대승하며) 시작된 제2차 아베 내각은 7년 8개월간 장기 집권했다.

 

고이즈미 아베 AFP.PNG

출처-<AFP>

 

사실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의 후광으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할 수 있고, 고이즈미 정권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서서히 국수주의적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한 (보수 방류) 모리 요시로(재임 2000.07-2001.04) 다음에 들어선 정권이다. 

 

“일본은 신의 나라다.”

 

라는 등의 망언을 하며 비난받다 1년 만에 단명한 모리 정권의 뒤를 이은 고이즈미는 총리는 재임 기간(2001.04-2006.09),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아소 다로(麻生太郎),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등을 주요 각료로 중용, 이들이 차세대 강경 보수 세력의 주류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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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요시로

 

이런 고이즈미 내각의 뒤를 이어 들어선 게 제1차 아베 내각이다. 아베 내각이 들어서며, 강경 보수 세력에 의한 개헌 주장은 더 탄력을 받았고, 개헌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움직임과 여론 형성이 진행됐다. 이들은,

 

“아름다운 일본을 되찾는다.”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일본 사회의 주류로서 자리를 잡아나갔다.

 

물론 정치 수법이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결국 전전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며 군국주의가 전면 등장, 전체주의 국가체제를 다져가는 약 90년 전 일본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암튼 강경 보수 세력 즉, 개헌 강경론자들이 득세하게 되면서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와 언론계 등에서도 개헌에 대한 논의와 주장이 확대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일본 개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최근이지만, 일본 내에서 개헌 주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아베 정권이 등장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존재가 또 있다. 

 

1997년 결성된 우익단체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의 보수 우익 성향 단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현재 자민당 내 강경 보수라 불리는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자민당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죽은 아베도 물론이다. 이들이 세력을 키워가며, 일본 사회는 국수주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물들여 갔다. 대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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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일본회의 설립대회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이 성립한 이후, 한일 관계는 과거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우호적 이웃나라가 아니라 견제와 대립의 상대가 되었다. 대북한 정책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더 강경하게 북한 체제에 대한 비난과 제재를 반복해갔고, 강경 우익 세력들은 더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개헌을 위한 조건은 갖추어졌다?

 

강경 보수 세력이 목표로 삼는 것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통한 안보 체제 강화이다.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헌법 제9조인 게다.

 

속내야 당장 9조를 헌법에서 삭제하고 싶겠지만,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발의가 되고, 양원에서 발의가 되더라도 (다행히)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확보해야 비로소 개헌이 이뤄진다. 매우 높은 허들이다. 

 

문제는 또 있다. 단지 의석만을 확보했다 해서 국민투표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이 승리한 데다가 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들의 선전으로 개헌 세력은 양원에서 2/3를 넘는 의석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헌법 개정이 단순히 찬반으로만 몰고 갈 수 없는 사안이다. 

 

개헌은 말 그대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헌법에는 제9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전 편에서 언급했듯, 개헌의 방향은 여러 가지가 주장되고 있다. 강경 보수 세력 내에서도 제9조에 대한 입장은 비슷할지 몰라도 다른 사안들에 대한 입장은 제각기 다르다. 

 

물론 가장 관심 있고 신중한 사항은 제9조다. 향후 일본이라는 나라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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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개헌에 대한 진짜 여론은

 

90년대 이후, 개헌 여론이 높아지면서 각 언론사는 정기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그 자료를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개헌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나 의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 절차.PNG

일본 개헌 절차

출처-<서울신문>

 

1. NHK 여론조사

 

현재 단순히 개헌에 ‘찬성’이냐 ‘반대’냐 묻는 질문에는 찬성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올해 5월 3일 헌법기념일 75주년을 맞아 NHK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순위

1. 어느 쪽도 아니다 : 42%

2. 개정할 필요가 있다 : 35%

3. 개정할 필요가 없다 : 19%

 

전쟁의 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를 개정할 필요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찬반이 팽팽하게 갈렸다.

 

1. 개정할 필요가 있다 : 31%

2. 개정할 필요가 없다 : 30%

 

NHK는 이 질문들에 대해 2018년부터 똑같은 문구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를 보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비율이 점차 증가, 필요 없다는 비율은 점자 감소함을 알 수 있다.

 

헌법 개정의 필요가 있다 

 

-2018년 : 29%

-2020년 : 32%

-2021년 : 31%

-2022년 : 35%

 

헌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

 

-2018년 : 27%

-2020년 : 24%

-2021년 : 20%

-2022년 : 19%

 

‘개헌 찬성 혹은 반대’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1. 일본을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니까 : 57%

2. 나라의 자위권과 자위대의 존재를 명확히 해야 하니까 : 23%

3. 프라이버시 권리나 환경권 등 새로운 권리를 규정해야 하니까 : 9%

4. 미국에 강요당한 헌법이니까 : 6% 

 

반대로, 

 

헌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 

 

1.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를 지키고 싶다 : 61%

2. 이미 국민들에게 정착해 있으니까 : 16%

3. 기본적 인권이 지켜지고 있으니까 : 15%

4. 아시아 각국 등과의 국제관계를 손상시키니까 : 3%

 

일본 헌법 9조.jpg

 

헌법 제9조 개정에 대해서만 특정해서 찬반을 물었을 땐 다음과 같았다.  

 

찬성 (매년 증가)

 

-2020년 : 26%

-2021년 : 28%

-2022년 : 31%

 

반대 (매년 감소)

 

-2020년 : 37%

-2021년 : 32%

-2022년 : 30%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헌법 제9조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1. 자위력을 갖는 것을 헌법에 분명하게 규정해야 하니까 : 64%

2. UN을 중심으로 한 군사활동에도 참가해야 하니까 : 20%

3. 자위대도 포함한 군사력을 포기하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니까 : 8%

4. 해외에서 무력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 4%

 

반대로, 

 

헌법 제9조를 개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1. 평화헌법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문이니까 : 70%

2. 개정하지 않아도 헌법 해석 변경으로 대응할 수 있으니까 : 15%

3. 해외에서 무력행사의 제어가 없어지니까 : 9%

4. 아시아 각국 등과의 국제관계를 손상시키니까 : 4%

 

NHK와 마찬가지로, 올해 4월 헌법 75주년을 맞아 아사히 신문에서 실시한 개헌 여론조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2. 아사히 신문 여론조사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가? 

 

1. 있다 : 56% (작년 45%)

2. 없다 : 37% (작년 44%) 

 

2013년 이후 우편조사를 시작한 이래 개헌 찬성 응답 비율은 역시 최고 퍼센트를 기록했다. 

 

역시 헌법 제9조에 특정해서 물어봤을 땐,

 

개정 찬성 : 33% (작년 30%) 

개정 반대 : 59% (작년 61%)

 

개정 반대 여론이 많긴 하나, 이 조사도 역시 찬성은 증가, 반대는 감소 추세다. 

 

아사히 신문은 개헌을 포함해서 7가지 분야를 선택지로 제시하고, 정치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그중 ‘헌법(개헌 또는 호헌)’이라는 응답은 2%로 선택지 중 가장 낮게 나타났다. 

 

또한 아사히 신문은 제9조 관련 질문으로 현 제9조의 내용(구체적 내용은 이전 편 참조)은 그대로 둔 채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새로운 항만 추가하는 개헌 방식에 대한 찬반을 물었는데, 

 

1. 찬성 : 55%

2. 반대 : 34%

 

였다. 

 

이 외에도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반격하는 ‘전수방위’라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대해, 

 

앞으로도 유지해야 한다 : 68% (작년 69%)

재고해야 한다 : 28% (작년 25%) 

 

로 나타났다. 비핵 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에 대해서는 ‘유지해야 한다’가 77%, ‘재고해야 한다’ 19%로 크게 차이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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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이상 NHK와 아사히 신문 여론조사를 통해 현재 일본인들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께서는 이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어쨌든 개헌은 될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종종 개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부분 반대 여론이 많다는 결과를 중심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살펴본 최근 두 조사를 보면, 일본인들에게 개헌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현행 헌법이 시행 75주년을 맞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개정이 없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점령군에 의해 ‘강요된 헌법’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며 평화 헌법을 유지 고수해 온 일본 사회의 저력 또한 놀라운 부분이 있다. 물론 강요된 헌법을 자주 헌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늘 있어왔지만,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전전에 대한 반성과 전후 민주주의 국가를 구현하겠다는 동력이 기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감히 단언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더욱 힘이 커진 강경 보수 세력들은 전전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 비난하고, 아름다운 일본을 되찾겠다며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이란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러한 사회 흐름은 곧 일본 내 평화를 희구하는 양심적 시민 세력의 배격을 의미하고, 주변국과의 마찰&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일본 내 강경 보수 세력의 찬동과 연계를 이끌어 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제 일본의 평화 헌법도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일본의 헌법은 다시 태어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그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와 개헌 내용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는 앞으로 남겨진 과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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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일본 헌법기념일(5월 3일).

도쿄에서 호헌 세력이 집회를 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은 매해 헌법기념일에 각지에서

호헌과 개헌 세력들의 집회가 여럿 벌어지고 있다.   

 

자민당이 제시하듯, 제9조를 유지하며 ‘자위대’의 존재를 새로이 추가하는 개정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맞추어 새로이 요구되는 환경권이나 프라이버시에 관한 권한 등의 새로운 항목이 추가될 수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관심이 높아진 ‘긴급사태선언’과 같은 조항 등을 새로이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중 단연 핵심은, 일본이 재무장을 하는 보통국가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웃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는 우리는, 전혀 관심 갖지 않다가 개헌이 된 후에서야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보다, 평소 이에 대해 관심 갖고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새로 태어나는 이웃아이(일본 헌법)가 어떤 모습, 어떤 인성을 갖춘 청년으로 성장해나갈지 관찰하고 경계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학 박사)

 

 

 

 

편집부 주

 

30여 년간 도쿄에 살며 일본 정치를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헌모 교수가

재일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일본정치 현장과

일본 우경화의 현주소를 진단한 책이다.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와 어떻게 우경화가

독주할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집어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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