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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윈윈

 

인류 최초의 철갑선과 철갑선 전투!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고, 북군과 남군은 4시간 내내 포격전만을 벌였다. 12문의 9인치 함포를 가진 버지니아(남군)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거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당시 버지니아는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함 여기저기에 고정식 포곽을 놓고 함을 거치만 해 놓은 형태였고, 모니터(북군)는 당대 최강의 함포였던 11인치 포 2문을 회전식 포탑에 넣은 상태였다. 화력으로는 버지니아가 압도적이지만, 이 화력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모니터가 밀리지 않았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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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튼 로드 해전

출처 - 링크 

 

즉, 버지니아는 포문 수는 많았지만, 포가 고정돼 있어서 한꺼번에 투사할 화력이 제한돼 있었다. 모니터는 포탑을 돌려 가며 화력을 모두 투사할 수 있었다. 조금 부족한 포문의 수는 11인치라는 화력의 크기로 커버했던 거다.

 

지루한 포격전이 계속 이어졌지만, 둘 다 서로에게 결정타를 먹일 순 없었다. 그러다가 버지니아가 이런 포격전으론 승부를 볼 수 없다고 판단, 늘 그래왔듯이 충각 전술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덤벼든다. 몸통 박치기로 끝장을 보려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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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박치기 잘할 것 같이 생겼...

 

4천 톤이 넘어가는 배수량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작전. 모니터는 버지니아의 1/4도 되지 않았기에 충각 공격이 먹힐 것이란 판단이었다. 문제는 버지니아의 부족한 선회능력과 상대적으로 재빠른 모니터의 기동성이었다. 역시나 버지니아가 들이받으려 할 때마다 모니터는 여유 있게 이를 피했다.

 

이런 와중에 버지니아의 포탄이 모니터의 조종석을 파손시켰다. 지휘관과 조종사가 포탄의 충격과 나무 파편에 의식을 잃었고, 결국 모니터는 잠시 전장을 이탈하게 된다.

 

이걸 본 버지니아는 자기가 이긴 줄 알고 그대로 미네소타함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려 했으나, 역시나 얕은 수심과 간조 때문에 제대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버지니아는 공격을 포기하고 기지로 귀환했다.

 

이렇게 버지니아가 기지로 귀환하자, 황급히 지휘관을 교체하고 재보급을 마친 모니터가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사라진 상황. 이렇게 되자 좀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 전투에서 모니터의 북군이 이겼다!”

 

“아니, 우리 버지니아의 남군이 이겼다!”

 

서로 승리를 주장하게 된 거다.

 

 

허무한 침몰

 

이런 경우는 전쟁사를 찾아보면 비일비재한 일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버지니아와 모니터의 이후 운명에 대해 이야길 해봐야겠다.

 

안타깝게도 두 척의 배 모두 그 끝이 좋지는 않았다. 버지니아는 호기롭게 북군 진영을 헤집고 돌아다닌 거까지는 좋은데, 그 뒤는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모니터에게 연타를 맞는 바람에 장갑이 많이 상해 근 한 달 가까이 배를 수리해야 했다. 그동안 경제력과 공업력이 앞서 있었던 북군은 봉쇄 전단을 강화했고, 이 봉쇄선을 뚫지 못한 남군의 버지니아는 어떻게 정박을 할 수도 없고 얕은 수심으로 갈 수도 없게 된 처지에서 남군의 손에 스스로 폭파되어 수장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럼 모니터는? 1862년 3월 9일, 모니터는 버지니아를 추격하려고 했지만, 링컨 대통령의 엄명으로 발이 묶인다.

 

링컨은 대통령령으로 모니터는 가능한 교전을 피하면서 버지니아의 발만 묶으란 지령을 내렸다. 버지니아가 봉쇄함대를 뚫지 못하면 북군의 승리였다. 즉, 북군은 그냥 버티기만 해도 이긴다는 거다. 괜히 나서서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 햄튼로드 전투로 모니터에 대한 평가는 급상승했다.

 

“에릭슨 씨,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능력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니터의 승무원들도 모두 당신의 발명품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당시 모니터의 엔지니어가 에릭슨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 그대로 모니터의 주가는 연일 폭등했고, 결국 동형함을 신나게 찍어내게 된다. 그러나 정작 모니터, 그 자체는 불운했는데, 워낙 건현이 낮아서 큰 바다 같은 데서는 전복될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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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호

 

(모니터에는 펌프가 있어서 들이치는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물 위에서 겨우 45센티 떠 있었던 게 모니터였다. 이 정도면 반잠수정이라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모니터는 1862년 12월, 바다에서 예인되던 도중 16명의 수병과 함께 수장되고 만다. 햄튼 로드 전투가 있었던 그해에 이 전투의 주인공이었던 버지니아와 모니터가 침몰되고 만 거다. 그것도 전투가 아닌 이유로 말이다.

 

패러다임을 바꾼, 아이언쉽

 

그러나 이들 철갑선. 특히나 모니터가 남긴 유산은 이후 해군 역사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아니, 모니터 때문에 해군의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모니터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혁신적인 개념을 설계에 반영했다.

 

첫째, 철갑 대 철갑이 전투를 치렀다는 점.

 

둘째, 완전 증기 추진을 구성했다는 것.

 

셋째,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포탑을 얹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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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나 버지니아 모두 나무 기초에 철갑을 두른 형태로 제작됐다. 철갑을 두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간단히 말해서 강력해지는 포탄의 공격력을 상대할 방어력이 생겼다는 의미다.

 

대포의 위력은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었지만, 나무로 만든 목선의 방어력은 한계가 있다(나무를 계속 두껍게 쌓을 수도 없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재 자체를 바꿔야 했다. 문제는 범선 시절의 철판을 씌운다면 배가 너무 무겁고 느려지게 된다.

 

그런데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대두되는 혁신이 바로 완전 증기 추진이다. 당시 대다수의 배들은 돛과 증기를 함께 쓰는 기범선의 형태였다. 모니터는 돛대를 없애고 증기기관으로만 움직이는 마스트리스(Mastless)설계를 채택했었다. 물론, 선구자 격인 배 몇몇은 돛을 없앤 마스트리스 설계를 채택하곤 했기에 모니터만의 특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여기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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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 해군의 마스트리스 포탑 선박

출처 - 링크 

 

당시 대다수의 마스트리스 선박들은 돛과 증기를 함께 쓰는 기범선에서 돛대만 제거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모니터와 싸운 버지니아도 메리맥에서 돛대를 제거하고, 철판을 씌운 형태였다. 즉, 버지니아도 기범선에서 돛만 제거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모니터는 처음부터 마스트리스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선체 중앙에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포탑을 설치할 수 있었다. 배 위에 포탑을 두고 거기에 포를 넣어두면 원하는 방향으로 포탑을 돌려서 포를 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전에는 돛대가 있어서 쓰기 어려웠던 방법이었다. 증기선이 보급되니 굴뚝만 피하면 전후좌우 맘대로 쏠 수 있게 된 거다.

 

이 포탑 부분은 정말 중요한데, 범선 시절 때도 뱃머리에 작은 포를 달아 선회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범선에는 돛, 밧줄 같은 장애물이 많아서 큰 포를 달 수 없었다. 그래서 선체 측면에 포를 달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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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모니터는 전 세계 해군 관계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전달해줬다. 당시 모니터와 버지니아, 철갑선끼리의 전투는 런던과 파리 등에 곧바로 전달됐고, 세계 언론과 해군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 전투를 관전한 각국의 무관들도 허탈한 표정으로 앞으로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뀔 거라며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왜 그런 걸까? 이 해전의 교훈은 간단하다.

 

버지니아가 장비한 9인치 함포가 모니터의 단단한 드럼형 포탑을 뚫지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 모니터가 장비한 당대 최강의 함포인 11인치 전장포조차 버지니아의 4인치 장갑판을 뚫지 못했다는 건, 당시 ‘함포’로는 버지니아나 그보다 단단한 모니터의 8인치 포탑을 뚫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걸 달리 말하자면, 전 세계 해군들이 보유하고 있는 목조함들은 순식간에 고물이 됐다는 걸 의미한다. 철갑함은 피해 없이 목조함을 때려잡을 수 있지만, 목조함은 철갑함을 잡을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모니터가 처음 나왔을 때 ‘뗏목 위에 치즈 상자를 올려놓았다.’ 라며 온갖 비아냥을 받았지만, 이 뗏목 위에 올려놓은 치즈 상자를 늘리고, 줄이고, 높이다 보면 바로 현대의 전함이 나오게 된다.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 시대의 장남으로 태어난 장갑함, 그게 바로 북군의 모니터인 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