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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옛적에 우리 할매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호환마마라고 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오늘날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있으니, 종북이다.

 

누가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땅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종북'이라는 시대정신, 정언명령, 율법이 지배하는 곳이니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주 무서워 죽겠다.

 

종북, 주사파, 공산주의자, 김일성주의자, 총살감... 이런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매일 같이 헤드라인에 오르니 무섭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히 ‘종북 정국’이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 어릴 적만 해도 비디오 틀면 곧잘 경고 문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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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요즘 매일 같이 종북 주사파가 뉴스에 등장하는데, 이런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무분별한 어린이들이 동대문파, 칠성파 같은 건 줄 알고 ‘주사파’라고 불량써클 만들면 어쩌냐. 삼청교육대에 처넣을 수도 없는 각박한 세상인데!

 

암튼, 며칠 전 대통령께서도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라고 군불에 떡밥을 던져주셨다. 이제 불은 활활 타올랐고, 주작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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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발이 개끗발’

 

오늘 집에 가면 부정 타지 않게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이 문장을 한지에 대붓으로 큼지막하게 써서 가훈으로 남길까 한다. 짧은 인생이나마 살아보니 알겠다. 저 말은 진리다.

 

우리 윤통 지지율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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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5월 10일, 극우 유튜버와 함께한 취임식 이후 꾸준히 우하향이다. 영어로는 비기너스 럭, 우리말로는 첫발이 개끗발이라는 말에 이처럼 잘 들어맞는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인생 겸손하게 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렸다.

 

위 그래프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지지율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50%를 근근이 유지하던 지지율은 6월부터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다.

 

청와대 이전 비용이 개구라였다는 게 밝혀지고, 김건희 리스크는 점점 선명해졌으며, 박순애 교육부 장관 등 도대체 어디서 찾았나 싶은 감동 인사(?)가 등장하던 때이다.

 

거기에 도어스테핑. 그 놈의 도어스테핑이 제일 큰 문제다. 매일 미디어에 노출되니 윤통 스스로 이 모든 난장의 배후이자 연출가, 주연배우라는 것이 까발려지고 말았으며, 결국 지지율은 장렬하게 데드크로스를 그리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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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3.

 

지지율이 빠지자, 모두가 예상했던 클리셰 그대로 시나리오가 가동됐다.

 

검찰은 만지작거리던 2019년 탈북 선원 북송 사건과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거의 동시에 물고 늘어졌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는데,

 

1) 북한 문제이고,

 

2) 정보 접근이 제한돼 있으며

 

3) 관점에 따라 쟁점이 많은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국익은 모르겠고, 일단 상대방 머리채부터 잡고 본다는 점에서 추억의 NLL 사태와 매우 유사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선원 북송과 서해 공무원 피살 모두 사건 당시에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부와 뜻을 함께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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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걱정할 것 없다. 국민의힘 싸나이들, 그런 말 뒤집기쯤이야 대덴찌만큼이나 우습다. 이들이 누군가.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날리고, 그 정보를 화장실 옆 칸에서 들었다고 말하는 정권의 후예들이다. 보통 수준의 내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검찰과 감사원, 언론을 총동원해 전 정권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을 조지고 있다. 심지어 감사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소환 통보를 날리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사상 초유의 공작, 아니 공격인 셈인데, 영화로 치자면 가장 하이라이트 전투씬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탈북 선원 문제는 선원들이 살인을 자백했으므로 난민이나 탈북민으로 보기 어렵고, 서해 공무원 사건은 월북의 판단 근거가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함께 수집한 SI 정보에 근거했으므로 전 정부가 월북을 날조했다면 미군도 공범이라는 김순옥 뺨치는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건 모두

 

1) 문제없다

 

2) 중대한 결실은 없다

 

3) 해결 과정의 아쉬움이 있다

 

중 하나를 택할 문제이지, 나라가 망해부렀다!!! 고 말 할 이슈라 보기는 힘들다.

 

해서, 두 ‘종북 사건’으로 전 정권을 조지려는 모양새는 머리채를 잡는다기보다는 똥물을 뿌린다, 가 적절하다 하겠다.

 

4.

 

이 상황에서 똥물을 스스로 뒤집어쓴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거 누구요, 김문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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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스나이퍼 김

 

김문순대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했을 때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실에서는 "좌우 극단을 오간 사람. 사회 전체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웅진씽크빅 싸다구 날리는 설명을 곁들였다. 사회 전체는커녕 왼쪽도 오른쪽도 콩알만큼 밖에 못 보는 아저씨가 어떻게 노사 합의를 끌어낼 위원회를 맡을 수 있을까 싶었으나, 그의 기적과 같은 활약을 목도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애초에 김문순대의 열할은 노사 합의나 사회적 대화 따위가 아니었다. 

 

어느 영화에서나 깽판 치는 캐릭터가 꼭 하나 등장하는데, 그런 캐릭터는 긴장감을 높이고 진행 속도를 앞당긴다. <오징어게임>에서 허성태가 연기한 조폭 아저씨를 떠올리면 되겠다. 시선을 확 당기는 그런 역할.

 

이번에 김문순대가 맡은 역할이 딱 그렇다. 탈북선원 북송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왜 이렇게 북한 눈치를 봐?’라는 분위기를 띄워 놓고, 메인 스테이지에 김문순대가 등장. 특유의 패시브 스킬을 발휘한다.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문재인은 총살감”

 

“민주노총은 김정은의 기쁨조”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었던, 페이커도 낚일 환상의 어그로 능력을 국감장에서 마음껏 뽐낸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레전드라 불릴 그였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또 한 번 광역 어그로를 시전, 방송을 개박살내고 레전드를 넘어 전설로 등극한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신나게 받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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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의 짝짜꿍은 언제나 합이 좋다 (링크)

 

이렇게 똥물을 끼얹거나 스스로 똥물을 끼얹고 달려들면 상대도 더럽혀지기 마련이다. 실제 똥이 묻지 않아도 사람들 뇌리에는 똥 냄새가 날 것 같다, 더러울 것 같다는 이미지가 남게 된다. 즉, 김문순대는 그 누구보다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국감장에 등장했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5.

 

정리하자면,

 

1) 북한과 관련된 복잡하고 정보 접근이 제한된 사건을 정해서,

 

2) 검찰과 감사원을 동원해 마구 들쑤셔 판을 만들고,

 

3) 김문순대의 어그로로 판을 키우고,

 

4) 대통령께서 등장해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 불가능”이라 공언.

 

원스탭 투스탭을 넘어 쓰리스탭, 포스탭까지 완벽하게 내딛음으로써 무시무시한 ‘종북 정국’이 완성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니 어찌 무섭지 않을 수 없겠는가. 나는 조만간 쿠팡에서 요강을 주문할 예정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 같은 노력에도 집 나간 지지율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윤통께서 치성을 다해 진정성 있게 일을 추진하고 있고, 만국의 도사님들도 돕고 있다. 결국 모든 일은 순리대로 돌아가게 된다.

 

곧 무시무시한 종북 정국이 진가를 발휘하는 날이 온다는 말이다. 아아. 그날이 오면, 만국의 빨갱이들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엮여나가게 될 터. 하여 우리의 역할은 우리 주변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빨갱이들을 빠짐없이 잡아 소시지로 만드는 것이렸다. 이웃을 불신하고, 감시하여, 청결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 짝도 제대로 못 찾는 평범한 우리가 어떻게 빨갱이 종북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자. 영원한 우파의 오빠 조갑제 선생께서 일찍이 ‘빨갱이 감별법’을 설파하셨으니, 우리는 그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 감별법의 정확도도 의심할 것 없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감별하던 ‘15엔 50전’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뛰어난 정확도를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점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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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보라. 종북을 감별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방법이 너무 간단하기까지 하단다. 조갑제 선생의 내공이 이 정도시다. 여기서 잠깐 조갑제 선생이 종북을 한자로 썼다는 것에 태클을 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양심껏 벽에 코 박고 5분간 손들고 있어라.

 

조갑제 선생에게 한자란 한국의 혼백과 같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인들이 한국어만으로는 사고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다. 21대 총선에서 보수가 패배한 원인을 “한자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을 정도다. 우리랑은 사고의 스케일이 다른 분이란 말이다.

 

‘가짜 민족주의 선동에 넘어가 한자(漢字)를 포기함으로써 한국어를 반신불수로 만들어 사고(思考) 기능을 망가뜨렸다. 이는 교양의 기초를 허물고 분별력이 모자라는, 그리하여 잘 속는 국민들을 배출하였다.’

 

게다가 언어에는 맛이라는 게 있는데, 유지도 yuji로 써야 하는 것처럼, 종북도 從北으로 써야 제맛이 나는 것이니, 한자와 관련한 더 이상의 태클은 거절한다.

 

암튼. 이제부터 조갑제 선생의 빨갱이 감별법 3가지를 소개한다. 3가지 방법은 조갑제 선생이 서구 반공 지식인들의 노하우를 집대성하셨고, 예시 사진은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코 후비며 선정했다.

 

1. 온갖 좋은 말만 골라서 한다. 민주, 평화, 평등, 개혁, 통일, 진보, 평등, 민족, 해방, 자주 등등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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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신의 말을 순간적으로 뒤집고, 약속을 어긴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수치감이나 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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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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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딱 3가지다. 내용도 짧고 문장도 간결하니 이 정도는 모두 외울 수 있으리라 본다. 예시와 함께 기억하면 시냅스가 강화되어 더 잘 외워진다는 암기 꿀팁도 전해드린다. 546자 국민교육헌장도 줄줄 외던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이 이 정도를 못 외울 리 없다.

 

짬이 날 때마다 온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읽고 뼈에 새겨, 기상 빵빠레만 울려도 빨갱이 감별법을 줄줄 읊을 수 있도록 정진해 나가길 바란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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