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사부는 방향치였다

 

김덕(가명) 형님은 일을 가르쳐준 사부다. 그는 약점이 하나 있다. 위치 설명을 못 한다. 전화로 지금 어디냐고 물으면 '남쪽 방향'이라고 말한다. 다만 형님이 말하는 '남쪽'은 자기 앞이었다. 고속도로 동쪽에 현장이 있으면 자기 서쪽에 고속도로가 있다고 해야 할 텐데, 이 형님은 자기 앞에 고속도로가 있으니 '남쪽에 고속 도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큰 아파트 현장에선 TBM(Tool Box Meeting의 준말. 일과 시간 전에 그날 작업을 논의하는 일) 시간에 어느 구간을 해체팀이 해체 작업하니 이동 시 주의하라고 한다. 반드시 이야기한다. 거푸집 해체하는 곳 잘못 지나가면 크게 다치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그 구간 중 어디서 일하게 되는지 헷갈리진 않아야 했다.

 

하지만 꼭 헤맬 일이 생겼다. 말이 안 통하는 외국 친구들에게 일하는 지점 밖에 갔다 와야 할 일을 시키면 못 돌아오니 항상 나만 보냈다. 길이 헷갈려 전화하면 김덕 형님은 맨날 남쪽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사태를 꽤 큰 현장에서 몇 번 겪어 바보 된 뒤론 항상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았다.

 

01.JPG

 

아파트 현장들은 외부에 저렇게 동수 표시를 하고 지하층에서도 어디가 어디인지 대략적인 표시를 한다. 그러니까 '몇 동과 몇 동 사이의 어디'라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김덕 형님의 화법은 '몇 동 남쪽'이었다.

 

이 외에도 소소하게 못 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 팀에서 일단 버틸 수는 있게 해주셨던 분이라 어떻게 해서든 내가 맞출 방법을 고민했다. 인도 대륙의 깡오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일했는데 뭐.

 

그러나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김덕 형님의 껌딱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 형님이다.

 

02.jpg

김덕 형님의 쏘울메이트 양섭(가명) 형님

 

2. 동네 바보형 양섭 형님

 

김덕 형님은 일이 끝나면 주로 양섭 형님 집에 들렀다. 맥주 한두 캔 정도 마시고 귀가하곤 했다.

 

양섭 형님은 노가다 시작한 지 그때 7년이 넘은 사람이었지만 빠루 잡은 지 몇 주인 나와 일하는 속도가 비슷했던 분이다. 양섭 형님이 어떤 조직에 들어온 것은, 노가다 시작하면서가 처음이었다. 군대는 안 갔다 왔다. 조직 생활이 처음이니,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조직 경험이 없는 분들을 인도 대륙에서 꽤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백의 백지는 처음 봤다.

 

팀에서 양섭 형님을 연장자 대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직원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이었으니까.

 

뭐 이런 식의 행동이 일상이었다. 팀에서 한동안 일하다가 중국 집에 갔다 온 조선족 동생이 연락했단다. 둘이 술 마시다가 밤 11시쯤에 팀장에게 전화해,

 

"야~ 내가 너 형님 맞지? XX이 중국 갔다가 왔데. 내일부터 일 시키자"

 

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팀장이 72년생이라 8살 차이긴 하나, 사장에게 직원이 채용과 관련해서 뭐라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04.jpg

 

저녁 식사하기 전이면 대략 위의 사진과 같은 인력 배치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일과 다 끝내고 한참 자고 있을 11시에 전화 걸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일하다가 누군가에게 섭섭한 일이 생기면 거의 반드시 새벽 1시에서 2시 정도에 그 사람에게 전화한 다음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반복하건대 건설 노동자는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기상해야 한다. 한 참 자고 있을 1, 2시에 잠을 깨면 다시 자기도 힘들다. 난 14미터 위에서 일해야 하는 날 이 전화를 받았었다. 아침에 일터로 가면서 이 이야길 팀원들에게 했더니 다들 허탈하게들 웃었다. 한 번씩은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그 난리 통이 계속 이어지자 나중엔 필요한 전화도 안 했다. 중요한 지적 사항이 있으면 반장과 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전화하는 걸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휴일 특식 만들려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 봐서 들어가는 나를 잡아끌고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장바구니 내용물들을 일일이 꺼내서 확인하곤 '여자란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열변을 한 시간 토했다. 내가 밥을 만드는 게 그렇게 맘에 안 들었단다. 뭐라 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분이 이혼 횟수가 꽤 되는 분이었던지라 그런 말 하긴 좀 그런 분이었다는 뭐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전에 독일계 화공기업 현장 이야길 했던 적이 있다. 사망 사고가 났던 그 현장 말이다. 양섭 형님은 그 현장에서도 '스타(?)'였다. 안전관리자 아주머니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떼어낸 거푸집을 그분들 방향으로 집어 던진 분이 양섭 형님이었다. '여자들이 남자 일하는데 시끄럽게 한다'고.

 

건설사 안전관리자가 어려 보인다고 반말한 적도 있다. 우리 팀 반장이 기겁해 달려와 안전관리자에게 납작 엎드려 사과했다.

 

03.JPG

독일계 화공기업 현장.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봤던 곳.

그 이후로도 인체 잔해물은 몇 번 볼 일이 있었다.

 

이러고 살다 보니 워낙 동네 바보형으로 찍혀서 팀 내에서 거의 형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팀 내에서 자신이 형님 대접을 거의 못 받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열받아 있었다. 진짜 직장 생활하면서 상태 안 좋은 직장 상사들도 좀 겪어봤던 편이었지만 이분은 '어나더 레벨'이다.

 

하지만 난 다른 팀원들처럼 따 놓을 수는 없었다. 김덕 형님의 소울메이트시라 나까지 냉대하면 김덕 형님이 슬퍼하셨을 테니. 물론 그만둘 즈음에 같이 술 마신 신입 동생 녀석이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을 때 둘 다 대표적인 인물로 양섭 형님을 꼽기는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 신입 녀석이 말한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의미를 그때엔 막연하게만 생각했지, 거기에 담긴 뜻을 잘 알지는 못했다.

 

3.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담긴 뜻

 

건설 노동자라고 하면 먼지투성이의 옷을 입고, 술과 담배에 절어 있고, 공중도덕 같은 것은 내다 버린 이들을 연상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다. 건설 노동자 이미지를 그렇게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김덕 형님과 양섭 형님을 건설 노동자 일반이라고 보실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 그런 시각이 낯설지 않다.

 

처음에 일 시작하고 나서 근육통 때문에 가끔 동네 목욕탕 세신사에게 마사지를 받았던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받았더니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기에 노가다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다음에 갔을 때는 내가 씻지도 않고 탕에 들어갔다고 쌩난리쳤다. 씻지 않았는데 어떻게 머리가 젖어 있냐고 했지만 믿지를 않았다. 화나진 않았다. 용 그림을 몸에 그린 손님들에게 깍듯하게 대했던 걸 보면 그 세신사 분의 세계관에선 깡패보다 못한 존재가 노가다니까 그런 걸 텐데, 내가 그분의 세계관에 대해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독일계 화공기업 현장에서도 그랬다. 에어컴프레셔(공기 압축기)가 있어서 밥 먹으러 나갈 때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고 나가긴 했지만 연체동물은 아니니 그걸로 털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 상태로 외부에 있는 한식 뷔페에 가야 했다. 우리가 몰려 올라가면 사람들이 일제히 피했다. 땀 냄새 많이 나는 먼짓덩어리들이니까.

 

아니 뭐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분이 '육체노동은 아프리카나 인도에서도 이제 안 해'라고 사발 푸는 나라에서 바라는 바는 없다.

 

m_20210915200529_gkesubgc.jpgm_20210915200530_tbextmfu.jpg

출처-<MBC>

 

그 신입 녀석이 이야기했던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담긴 경멸 어린 시각 같은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한 게 현실이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쪽에서 진득하게 일하고 있으면 존중받아야 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만두고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사람보다 대체로 못한 대접을 받았다.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나은 곳으로 갈 능력이 있음을 뜻할 터이다.

 

4. 그래서 고인물들만 일하는 해체팀에선 임금체불이 잦다

 

나도 이 대우 받은 적 있다.

 

2020년 11월 20일. 이날은 내가 거푸집 해체팀에서 마지막으로 일한 날이다. 거의 두 달 보름 이상을 쉬지 않고 일했던 현장은 융건릉(隆健陵) 근처였다. 쉬지 않고 일했던 덕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골조가 끝났다. 골조만 보고 우리가 지은 건물이 팔렸다. 사연이 꽤 많았던 건축주들은 그게 기뻐서 목수팀과 해체팀을 불러 근처 한우 전문점에 가서 한우를 배부르게 사줬었다. 이전에 없던 일이다. 앞으로도 건축주가 한우 사줄 일이 있을까 싶다.

 

20221024_133834 융건릉 위치 .jpg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다.

 

05.jpg

그때 그 현장

 

건물이 팔려서 현장의 모든 사람에게 한우까지 사줬으니 당연히 공사대금은 바로 종합건설사에 입금되었다. 종합건설사는 내가 일하던 전문 건설회사에 돈을 입금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우리를 고용한 전문 건설업체의 사장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급여가 두 달 정도 밀릴 것 같으니 이해해달라"

 

고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사장 마눌이 차 새로 계약했다고 벤츠 GLA를 끌고 와서 자랑했다. 그걸 보더니 사장의 작은 형인 이사는 땅을 새로 샀다고 뻐겼다.

 

차 뽑았다고 그 돈 다 들어가는 거 아닌 건 안다. 그 차가 오는 데도 시간 오래 걸림도 알고. 그래도 그 전날 월급을 두 달 뒤에 준다고 한 다음 날에 회사 사장 마눌이 차 자랑하러 오는 게 말이나 되나? 거기다 땅 샀다고 자랑까지?

 

토악질이 나서 팀장에게 더 이상 일 못하겠다고 하고 그만뒀다. 그만두고 바로 다른 인력사무소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한 달여 뒤에 급여가 '약속대로 나오지 않자' 바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으로 찾아가서 체불임금 신고했다. 일주일 뒤에 '형님, 그러는 거 아닙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돈 입금했다는 알림이 떴다. 처음 일했던 해체팀의 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금체불은 안 했다.

 

"내가 주급 입금을 못 하면 우리 형님들이 날 껍질을 벗길 거라는 건 알고 있지. 껄껄. 그런데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가 팀장이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노동강도가 가장 강했던 것도 자기는 불법체류자에게도 월급 제때 주니까 그만큼 더 일하라고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김덕 형님과 양섭 형님 모두 다른 곳에 가서 자리 잡을 자신도 없었고, 임금체불을 겪기 쉽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팀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형님들에게 정말 탈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06.jpg

 

지난 5월 1일 수원 화성 행궁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서도 건설노조는 숫자로 압도했다. 그만큼 결속력 강한 산별(産別)이 된 이유에 다른 것은 없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야 저런 꼴들을 안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수도권 형틀 목수나 철근공의 경우, 합법적인 체류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면 거의 모두 노조 소속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할석·해체·정리 등까지도 노조 가입을 늘려가고 있다.

 

앞서 말한 해체팀의 신입이었던 녀석도 지금은 우리 노조 소속이다. 그 녀석이 말했던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작업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 가입도 생각 못하는 분들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함께 일한 모 형님은 부당하게 뒤집어쓰고 있는 채무에서 벗어나야 은행거래를 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법적인 도움도 노조 소속이 아니면 받기 어렵다. 하지만 본인의 삶의 궤적 때문에 시스템은 물론 남도 안 믿으려고 했다.

 

김덕 형님 본인은 관심을 가졌으나 현 대통령 열성 지지자기도 한 자신의 소울 메이트 양섭 형님 때문에 노조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같은 동료들에게 대접 못 받는 것에 한이 맺혀 있는 양섭 형님은 '가부장제가 우주적 질서'라고 믿는 분이었다. 노조란 '귀족들의 세계'라는 믿음을 가지신 분이다. 노조 가입 대상이라고 하면 지금도 펄쩍 뛴다.

 

지옥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지옥이고 천당은 천당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천당이라는 말,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계속>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