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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공격하라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면, 독일의 군수 기업 크루프 社(Friedrich Krupp AG)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30년 전쟁 당시부터 군수품을 생산했고, 프로이센 독일 통일의 가장 큰 혜택(전쟁을 부추겼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을 입은 게 크루프였다. 1, 2차 대전 당시에는 대포는 기본이었고, 전차, 전함, 유보트 등등 100여 가지에 이르는 각종 군수품과 장비들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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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하건대, 크루프는 20세기 초반 유럽 최대 규모의 회사였다. 2차대전 종전 후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거의 해체 직전까지 몰렸으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기사회생했다. 1968년에 주식회사로 전환됐고, 1999년 티센과 합병하면서 티센크루프가 됐다. 철강 쪽 관계자라면 낯익은 이름일 거다.

 

이 회사가 1차 대전 말 ‘기묘한’ 무기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바로 초장거리포 파리 건(Paris Gun). 군수업체가 대포를 만든다는 건, 쌀로 밥 짓는 거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이건 좀 특이하다.

 

이 포는 개발단계부터, 활용, 운용, 최후까지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았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이건 프랑스 수도 파리를 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였다.

 

성층권 부스터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당시 독일이 파리를 타격하는 건 꽤 난망한 일이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파리까지 닿은 건 아니고 최소한 100여 킬로미터 밖에 있었기에 독일이 프랑스를 포격할 거리는 아니었다. 현대전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155미리 포의 경우에도 최대한 장약을 붙이고 이것저것 해봐도 40킬로미터 정도가 한계다. 그런데 크루프는 파리를 포격할 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1차 대전 당시의 과학기술로 이게 가능할까? 가능했다. 비밀은 성층권에 있었다. 크루프 실험장에서 우연히 하나의 ‘비밀’이 밝혀졌는데, 그게 바로 성층권이었다. 실수로 대포를 고각으로 발사했는데, 이런 경우 포탄은 근거리에 낙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포탄은 사상을 뛰어넘는 장거리를 날아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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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두 번째. Stratosphere가 성층권이다.

비행기가 다니는 바로 그 고도.

 

크루프는 즉각 연구진을 꾸려 이 ‘기묘한 상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밝혀진 것이 ‘성층권’이었다.

 

“포탄이 공기가 희박한 층... 그러니까 성층권을 날아간 거다. 이렇게 되니까 공기의 저항을 덜 받아 사거리가 길어진다!!”

 

훗날 독일이 V-2 로켓을 만들어 쏘기 전까지 인류가 만든 물체가 성층권을 날아간 건 크루프의 포탄이 유일했다.

 

이렇게 이론적 토대를 확보한 크루프는 이걸 활용한 파리 공격용 대포를 개발하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자료들이 훗날 성층권 연구의 씨앗이 됐고, V-2 로켓의 뿌리가 돼 준다. 이 연구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우주개발은 상당히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번거로운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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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건

 

이렇게 해서 나온 파리포는 포신 길이 34미터, 구경 211mm(후기형은 238mm인데, 구경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된다), 포탄 중량 90~120킬로그램, 유효 사거리 130킬로미터, 운용 인원 80명.

 

수치만 보면 어마어마한데, 그 위력을 감안하면 의외로 무난하다 할 수 있다. 아니, 의외로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

 

이 파리포는 파리를 타격하기 위한 ‘단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파리 포격만을 생각했다. 즉, 어느 정도의 비효율은 감안하겠다는 거였다. 실제로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파리포는 성층권을 올라가야 했기에 포구 속도가 빨랐다. 대포가 포구 속도가 빠르면... 일단은 좋은 거다. 문제는 너무 빠르면 이게 포신의 수명을 갉아먹는다. 포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포강의 강철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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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조금 귀찮은(?!) 일이 생겼다. 포탄을 한 번 발사할 때마다 포신의 마모도를 계산해서 깎여나간 포강에 맞춰 포탄을 약간씩 크게 만들어 발사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크기가 다른 포탄들이 번호가 매겨진 상태에서 발사 순서를 기다리게 됐다.

 

문제는 이렇게 쏴도 포신의 수명은 65발이었고, 이렇게 쏜 다음에는 포신을 교체해 줘야 했다. 문제는 포를 개발했다고 모두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적국의 수도를 타격하는 전략 병기였기 때문에 프랑스도 눈에 불을 켜고 이 포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3문의 파리포를 숨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주변에 다른 포대들을 만들어서 위장했고, 위장포를 씌워 항공정찰을 피했다. 그리고 열차포였기에 수시로 이동하면서 프랑스군의 추적을 피했다(그렇게 피했지만 1문은 프랑스군에 발각돼 파괴됐다).

 

From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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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건 포탄

 

어쨌든 모든 준비가 끝나고 1918년 3월 23일 토요일 7시 20분. 파리를 향해 첫 번째 포탄이 발사됐다. 포탄이 떨어지자 프랑스에선 의견이 분분해졌다.

 

“이건 독일군의 77미리 포탄이야.”

 

“아니, 포탄이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와? 이건 독일 항공기 폭탄이야.”

 

“독일군이 어떻게 여기까지와? 이건 수류탄 공장에서 폭탄이 터진 거야.”

 

말들이 많았지만, 곧 모든 추측을 뒤엎을 결과가 나왔다. 독일에서 날아온 포탄이었던 거다. 23일 당일에만 25발의 포탄이 날아왔고, 이 때문에 16명의 프랑스인이 죽었다. 첫날의 포격으로 모든 게 확실해졌다. 파리는 7시간 동안 마비됐고, 파리 시민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짐을 꾸려 근교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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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으로 부서진 파리의 교회

 

파리건의 심리효과는 대내외적으로 탁월했다. 파리 시민들은 두려워했고, 독일인들은 열광했다. 적국의 수도를 타격한다는 프로파간다의 위력은 대단했다. 

 

성층권을 개척하다

 

물론, 실질적인 위력은 논외로 쳐야 한다. 포격이 시작된 1918년 3월부터 끝나는 8월까지 많이 쏴봐야 367발의 포탄(기록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이 파리로 날아갔다. 그 결과 약 25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하지만 그건 전선의 피해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심리 병기로서의 위력은 대단했지만, 실질적인 파괴력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독일은 이 파리포에 대해 집착했다. 프랑스는 파리포를 없애기 위해, 독일은 파리포를 계속 쏘기 위해. 서로의 국민들을 위해서 계속 쏘고, 계속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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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 구역에 표시된 파리 건 낙탄 위치

 

프랑스는 파리포를 찾기 위해 항공정찰, 지상 정찰병 투입, 대포병 사격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독일군은 기를 쓰고 이를 피해 다니며 포를 쐈다. 결국 전선이 뒤로 물러나면서 파리포를 쏠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파리포의 포격은 멈추게 됐다.

 

결국 독일은 체급의 한계를 인정하고, 항복했다. 그리고 파리포는 종전 직전 해체됐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철저히 파괴하고 은닉했다. 종전 후 연합군들도 자신들을 괴롭힌 파리포를 찾으려 애썼지만, 독일군은 자신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파리포를 넘겨주지 않았다. 독일은 항복했지만, 이때 깨우친 성층권의 비밀을 잊지 않고 이후 무기 개발에 활용한다. 다음 전쟁 때 쏘아올린 v-2 로켓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