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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북동부 태평양 서쪽 바다, 7000여 개의 섬이 모여 이루어진 군도 국가,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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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묘년 새해, 딴지일보 취재팀은 편집부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기사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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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콘텐츠 사상 최대 제작 인력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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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급 제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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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해외 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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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필리핀 수교 73주년 기념. 딴지일보 신년 대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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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뻗어가는 <근육병아리의 방구석 오마카세>, '필리핀 수산시장 대모험 편' 지금부터 시작한다.

 

자초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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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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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혼자 휴가 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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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의 코스를 짜서 연차를 진작에 소진했어야 했는데, 주중에 기사 쓰고 주말에 촛불집회 사진 찍으러 다니다 보니 12월이 다 되도록 남은 연차가 적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끼다 똥 되기 일보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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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떠난 휴가지, 필리핀 수도 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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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휴가를 세부나 보라카이같은 휴양지도 아니고, 쌩 도시로 갔느냐 싶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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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휴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정신머리가 있는 자라면, 애초에 남은 연차를 털라고 출발 이틀 전에 표를 끊어 무작정 해외로 나가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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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이번 필리핀행의 주범. 왜인지 마닐라 뒷골목을 주름잡으며 카지노 정킷방의 실세일 것만 같은 이 남자는, 의외로 미국 어느 주립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방학을 맞이해 논문 현지 조사 차 마닐라에 체류 중인 젊은 학자다. 근육병아리와는 중학교 동창. 중1 때 맞짱 한번 뜰뻔했지만, 눈빛 보니 질 거 같아서 그냥 친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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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박사님 숙소에서 뒹굴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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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대학 탐방도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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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고양이들이랑 놀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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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맥주를 신나게 조지는 나름 꿀잼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걸려 온 한 통의 보이스톡. 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였다.

 

죽돌 : 휴가 재밌드나.

 

근병 : 방에 누워서 넷플릭스 보고 있습니다.

 

죽돌 : 그건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거 아이가?

 

근병 : 여긴 산미구엘이 있으니까요.

 

죽돌 : 그거 한국에서도 팔지 않나?

 

근병 : 기분탓이겠죠.

 

죽돌 : 됐고. 총수님이 다음 주 월요일에 종무식 하자카는데, 그전에 들어오는 거 맞제?

 

근병 : 마침 그러네요.

 

죽돌 : 알따. 잘 놀다 오고. 거긴 뭐 수산시장 없나? 간 김에 기사나 하나 뽑아오지 왜.

 

근병 : 여보세요?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뚝)

 

내가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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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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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떨어져 장 보러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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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열려있는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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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도, 어디선가 자꾸 죽돌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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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돌 : 이리온 이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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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내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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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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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아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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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티나파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나무 위에서 훈제해서 먹는 필리핀 전통 생선 요리다. tinapa 라는 용어는 따갈로그어로 '훈제'라는 의미. '방구스' 혹은 '밀크피쉬'라고 부르는 필리핀 국민 생선으로 주로 만든다. 우리말 명칭으론 갯농어. 당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생선 요리를 주문한다면, 이 녀석으로 지지고 볶은 걸 만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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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어디든 '국민 생선'이라는 지위의 생선들은 염장의 운명을 타고 난다. 조업하기 쉬운 해역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많이 잡을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곧 저장이 필수이기 때문. 필리핀에선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머니가 고등어 대신 방구스를 소금에 절여놓으신 거다.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의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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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뼈 발라서 파는 구이용 방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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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점원분이 오셔서 자세하게 조리법을 설명해 주신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쓰레빠 끌고 나온 행색이나 멍청하게 듣고 있는 표정이나, 뭐로 봐도 이놈은 생선을 사지 않을 거라는 걸. 편견 없는 그의 프로페셔널에 다시 한번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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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석굴. 키로 단가 167페소다. 한화로 3700원. 한국 소매 단가 기준으로 보면 살짝 저렴. 굴은 한국에서도 잘못 먹으면 피똥싸니 쳐다도 보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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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똑같이 생겼다. 벌교에서 온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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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뛰어가면서 봐도 빼박 고등어. 여기서는 Galungong이라고 부르나 보다. 마리당 800원~1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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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 굴. 한참 제철인 한국의 겨울철 굴에 비해 빛깔이나 냄새가 좀 다르다. 1kg 15000원. 여기서도 꽤나 비싼 식재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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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뱃살. 역시 맛있는 건 세계 공통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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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황다랑어(yellow fin)/도미(maya-maya)/녹새치(blue marlin)/갯농어(bangus).

 

중대형 생선들을 요래 커팅 해놓는 거 보니 마닐라 사람들은 생선을 스테이크로 많이 먹나 보다. 도미 빼고는 주로 아쿠아리움에서 보던 애들이라 기분이 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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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한국에도 주력 새우인 흰다리새우로 추정. 1kg에 11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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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딸라끼똑'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생선인데, 현지 한인 분들에게 물어보니 병어란다. 병어라고 하니 왠지 또 명절 생각나고 친근. 그런데, 얘는 한국에서 병어라고 부르는 것과는 생물학적 분류상 좀 많이 다른 생선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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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요 뒤쪽 옆선에 난 모비늘은 전갱이과 생선의 대표적인 표식이기 때문. 농어목 병어과인 한국 병어에게는 있을 수 없는 비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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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필리핀의 '딸라끼똑'과 굳이 더 가까운 녀석을 찾자면, 병어보다는 이 녀석이 좀 더 유전자가 맞을 것이다. 노량진에서는 '병어돔'이라고 불린다. 사실 병어나 도미와는 별 관계없는 '무점매가리'라는 전갱이과 생선. 체형과 대가리가 뭔가 고급 어종인 병어랑 좀 비슷하게 생긴 김에, 기왕이면 더 있어 보이게 도미까지 붙이자! 해서, 병어+돔 이라는 네이밍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박사 : 맥주 다 샀음 집에 가자.

 

근병 : 엉 볼 거 다 봤다. 뭐 별거 없네.

 

필리핀 박사 : 그거 가지고 기사 쓰것어?

 

근병 : 어림없지. 뭐 어디 노량진 같은 데라도 있으면 모를까.

 

필리핀 박사 : 있는디?

 

근병 : 있다고? 노량진이?

 

필리핀 박사 : 졸라 있지. 여기 인구가 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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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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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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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모든 게 신선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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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호객까지도 노량진 구 시장 때와 매우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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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손 섬 파사이 시티 서쪽 해변에 위치한 담파시사이드 마켓(Dampa Sea Side Market)은 마닐라의 대표적인 수산시장이다. 몰 오브 아시아와 소피텔 플라자 호텔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어디서 접근하든 택시를 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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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시내에서 걸어가 보니 졸라 힘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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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기도 노량진처럼 여러 점포가 늘어서 대동소이한 물건을 파는 시스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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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바로 흥정에 들어가지 않고 일단 시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에서 호구가 왔다는 걸 시장 전역에 알려보자. 자고로 지갑은 늦게 꺼낼수록 쇼부에 유리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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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말미에서 한 상인과 눈이 마주침. 먼저 들어오는 선빵.

 

상인 : 쉬림프?!

 

근병 : 하우 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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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 @@@페소!

 

엥?... 전날 한인 커뮤니티에서 폭풍 검색으로 알아본 시세보다 싸다. 외국인이면 더 붙여 부르니까 요 가격까진 깎아 사보라는, 그 가격을 처음부터 부르는 상인. 내가 외국인같이 안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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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목도 계속 현지 적정가격. 뭐지... 검색을 잘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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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오는 길에, 택시 기사님에게 속성으로 배워온 흥정 따갈로그어가 아까워서, 일단 한번 질러봄.

 

근병 : 마할 마할 소브란 마할 (비싸요 비싸 너어무 비싸요)

 

상인 : 위 프라이스 굿. 게런티. (딴데 갔다와봐 짜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여기저기 상인들이 외치던 가격을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그렇다면, 걍 여기서 확실하게 승부를 보기로.

 

근병 : 오케이! 우린 두 명이고, 여기서 당신이 추천하는 대로 다 살 거임. 대신 토탈 디스카운트 콜?

 

상인 : 암먼 오브콜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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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병 : 왓 이즈 디스?

 

상인 : 알리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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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특산물인 진흙게 Alimango. 쩌먹으면 맛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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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물고기 다금바리. 여기선 바리류를 라푸라푸(lapu-lapu)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아 전설이지만, 주산지인 이곳에선 꽤나 흔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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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흔캐냐면 대강 이렇게 좌판에서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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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봤던 필리핀 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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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 How about squid? (오징어는 안 드실?)

 

근병 : only three ok? (세 마리만 분할 판매 가능?)

 

상인 : Sure (쌉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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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병아리는 여기서 무척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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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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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에 물을 쪽 빼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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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직한 사람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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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쌍따봉에 '니가 뭘 좀 아는구나'라는 표정의 화답.

 

상인 : 식당은 예약함?

 

근병 : 노노 추천 플리즈.

 

상인 : 커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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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한국의 수산시장처럼 조리비를 받고 요리해주는 집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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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 요리 어떻게 먹을래?

 

근병 : 버터 하프 칠리 하프

 

상인 : 오우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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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입구에 사 온 물건을 접수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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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잔 하면서 기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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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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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 크랩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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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망고 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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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이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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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집게발에 몰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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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집게발만 따로 팔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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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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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칠리 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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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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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먹던 거랑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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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같은 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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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히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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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볶음밥에 올려 먹으니 꽤나 훌륭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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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릭 버터 버전 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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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음식은 전반적으로 달다. 어지러울 정도로 당이 치솟아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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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리 해보니 구조를 깨달았다. 해체술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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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딱지는... 좀 무서우니 그냥 놔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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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쩄든 코어는 집게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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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에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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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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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맛 가득 잘 구운 몸통안에는 가볍게 양념된 여러 채소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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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아주 감칠 맛 터지고 개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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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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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시장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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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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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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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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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수산시장의 노을을 보며... 감상에 잠긴다.

 

 

난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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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 한 해 동안 회 써느라 고생 많았다 야. 새해엔 더 썰어라.

 

죽돌 : 총수님 근병이가 내년에는 킹크랩도 찐답니다.

 

총수 : 으아 조아써!!!

 

제가 언제요...

 

독자 여러분께

 

지난 한 해 동안 <근육병아리의 방구석 오마카세>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눌러 주신 따봉과 달아주신 댓글 덕분에, 노량진에서 법카를 마구 긁을 수 있어 행복한 2022년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계묘년 모두 윤석열보다 행복하고 김건희보다 부자 되십시오. 올해도 열심히 날로먹어보겠습니다.

 

근육병아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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