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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이 전쟁을 입에 올렸다

 

지난 12월 26일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범했다. 뭐가 됐든 간에 대한민국 영공이 뚫렸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넘어왔다면 곱게 돌려보내선 안 된다. 그게 실력행사가 됐든, 외교적인 경고가 됐든 간에 넘어왔다면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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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발견한 북한 무인기

출처-<한겨레>

 

영공을 지키지 못한 책임소재를 밝히는 문제나 이후의 대처방안 논의도 분명 이뤄져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아니, 콕 찍어서 대통령의 발언이 무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인기가 날아오는 상황이었으니, 발언의 수위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강하다. 무인기가 넘어온 지 이틀 만에 대통령은,

 

"어떠한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 보복하라!!"

 

이 정도만 되도 한 발 더 나간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확전도 각오하라!"

 

라는 발언이 나왔다. 그다음 날인 12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에 방문해서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도발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확고한 응징과 보복만이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상대에게 핵이 있든, 어떠한 대량살상무기가 있든 도발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하고, 두려워하거나 주저해서는 절대 안 된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란 발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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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9일 국방과학연구소

출처-<대통령실>

 

툭 까놓고 이 정도 발언은 윤석열 정부에서 나올 만하다고 본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다만, 이 발언을 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합참의장 정도면 된다는 거다. 즉, 군 관계자가 나서서,

 

"적의 도발을 분쇄하겠다!"

 

라고 말하는 건 수긍할 수 있다. 합참의장은 우리 군의 군령권을 가진 최고 지휘관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서 '전쟁'을 입에 올린다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 이전에 대한민국의 정책 결정권자다. 대통령은 하나의 사안을 두고, 외교적인 조처를 할 수도 있고 군사적인 조처를 할 수도 있다. 어느 하나에 매몰돼서도 안 되며, 그 영향력이 지대하기에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한다(이건 누구라도 이해할 부분이다). 즉, '전쟁'과 같은 극한 발언은 되도록 자제하거나 혹여 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아닌 인물이 하는 게 맞다. 북한의 경우만 봐도 김정은 대신 김여정이 나와서 온갖 '쌍욕'을 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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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무인기 침공날

출처-<연합뉴스>

 

2. 말의 무게를 인지하지 못하는 자

 

이런 상황에서 1월 4일에는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까지 거론했다. '검토'란 꼬리표를 보면서 개인적으론 이런 생각을 했었다.

 

"북한에 쓸 카드가 없어서 이렇게 흘리는 걸까? 그런데,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12월 26일 이후부터 쏟아낸 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건 대외용이라기보다는 대내용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대통령 입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자체로 분명 심각한 문제다. 그와 별개로 이 단어가 실천 가능한 것이냐는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을 고민한다면,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가 아니라 좀 더 은밀하고 차분한 준비를 하는 게 맞을 거다. 러-우 전쟁만 봐도 알겠지만, 전쟁 직전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분위기를 몰아갔다(물론, 미국은 전쟁 징후를 파악하고 그걸 우크라이나에 전달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몇 달 전에).

 

이 대목에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이,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나 영향력이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만 작동하고 사라지는 거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란 추측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말실수하더라도 그게 우리나라 안에서만 적당히 나오다 말 것이고, 정 안되면 언론사 몇 군데와 협조를 하든 협박을 하든 간에 '쇼부'를 치면 사라질 거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자신이 가지는 '말의 무게'를 인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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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2022 방산수출 전략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

출처-<대통령실 제공>

 

3.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자체 핵무장의 경우는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2021년 9월 국민의 힘 대선 예비후보 방송토론회 발언 중 발췌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생각입니다."

-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 중 발췌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까지만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1월 12일 마침내 대통령 입에서 자체 핵무장에 대한 멘트가 '공식 석상'에서 나오게 됐다.

 

"더 문제가 심각해져 가지고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습니다."

-2023년 1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중 발췌

 

내가 혹시 잘못 들었는지 싶어서 이 멘트 앞뒤의 영상을 다 확인해 봤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물론, 핵 보유를 선언한 것도,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아무리 전제를 달았다곤 하지만 대통령 입에서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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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대통령의 핵무장 발언은 핵을 실제로 가지려고 해도 혹은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문제가 되는 발언이다.

 

만약 핵무장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이런 식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미친 듯이 조용하게, 비밀리에 핵물질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비근한 예로 북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미국과 관계가 틀어진 이란도 마찬가지다. 아주 은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4. 핵연료를 100% 수입하는 대한민국

 

핵을 가지지 않겠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

 

"한국 놈들 또 핵무기 가지려고 폼 잡는 거 같은데?"

"이거 핵연료 막아야 하는 거 아냐?"

 

원자력 공급 그룹(NSG: Nuclear Suppliers Group)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해서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 원자력 관련 물자를 수출 통제하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룹이다. 이런 거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게 핵확산 금지 조약의 핵심이다. 툭 까놓고 말해보자. 핵무기 기술이란 거 별거 없다. 만들어진 지 70년이 넘어가는 기술이고, 대학생들이 핵무기 설계도를 만들 정도의 난이도다(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었고). 핵무기 기술의 90% 이상은 이미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NPT(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방지조약)는 핵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기술보다는 '핵물질'을 통제하는 게 더 확실하다고 판단해서 핵물질 통제에 목숨을 걸었다. 여기에는 핵물질뿐만 원자로와 그 부속 장비도 포함돼 있고,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포함한 산업 장비도 포함돼 있다. 얼마나 통제가 심하냐면, 베릴륨이나 지르코늄, 리튬-6 및 마르에이징강을 포함한 소재도 통제 대상이다(이걸로 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원심분리기를 제조한다고 통제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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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자력발전소 전경

출처-<한국수력원자력>

 

그럼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거 100% 수입이다. 월성 1호기에 들어가는(중수로 원전) 천연우라늄이나 경수로 원전에 쓰는 농축우라늄(3~5%짜리를 쓴다)을 모두 사다 쓴다. 여기에 들어가는 연료비도 어마어마하다. 연간 1조 원 안팎을 쓴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에서 핵무장 이야기가 나온다 치자. 그것도 대통령 입에서 말이다. 이 핵연료를 수출하겠는가? 당장 우리나라 전력공급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5. 미국이 물리는 공갈 젖꼭지(= 핵 공유)

 

물론, '전제'를 깔았다고는 하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들은 무시하기는 어려운… 어떤 기류가 느껴진다.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기획·공동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2023년 1월 2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선일보 인터뷰 중 발췌

 

나토의 핵 공유를 모델로, 나름 우리나라도 미국과 핵 공유를 하겠다는 건데 실상 나토 내에서도 핵 공유에 시큰둥한 상황인데, 한국이 과연 가능하겠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 있게,

 

"사실상 핵 공유 못지않은 실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라며, 핵 공유가 마치 핵을 나눠 가지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건 나토의 핵 공유를 잘 모르고 나온 소리이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평상시에 핵무기를 비핵무기 국가(미국 동맹국)에 보관하는데, 그 관리는 미국 공군이 한다. 그러다 전시가 되면 미국 공군의 탄약 지원대대가 핵무기를 핵 공유국의 전투기에 달아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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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USAF>

 

"핵폭탄 달아 줄 테니까 날아가서 떨어뜨려!"

 

라는 개념이다(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므로 암호를 입력해야지만 탄두가 활성화된다.). 딱 봐도 알겠지만, 핵 공유는 '소유'의 개념이 아니다. 이건 일종의 '달래주기'다.

 

"뭘 그렇게 핵무기를 가지려고 기를 써? 내가 어련히 다 알아서 지켜준다니까."

"그러다가 너희 발 빼면? 우리는 어쩌라고?"

"아... 진짜… 사람을 이렇게 못 믿나? 오케이 그럼 핵무기 맛이라도 보여줄까?"

"맛?"

 

이렇게 달래주기 위해서 나온 게 바로 핵 공유 개념이다. 즉,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그러니까 '실효적인 방안'과는 거리가 있는 말이다. 이 역시도 대외적인 발언이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란 느낌이 강하다. 문제는 발언의 수위가 점점 올라간다는 점이다.

 

자,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