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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설 노동자들이 사는 세계 

 

얼마 전 장모님을 건강보험에 가입시키려 수원에 있는 건강보험 외국인 센터를 찾았다. 내 신분증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외국인인 장모님의 서류를 받아 든 직원의 얼굴에서 익숙한 표정이 나왔다. 나이가 들 만큼 든 '한남', 그것도 '노가다'가 자식 보겠다고 제3세계 젊은 처자를 '수입'했는데 육아를 어떻게 하기 힘드니 '장모님'까지 수입했다고 비웃는 경멸의 표정(내가 어떻게 결혼하게 됐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주로 겪는 일이라 이젠 담담하다). 

 

없는 서류가 있다며 주한 네팔 대사관에서 추가 서류들을 챙겨오라고 했다. 그런데 주한 네팔 대사관에서 정확하게 어떤 서류를 떼어와야 하는지는 말 안 하고 서류만 흔들었다. 내가 어떤 서류를 갖다줘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고 일하는 분의 꾸겨진 표정을 짓게 하는 대상이 되어, 그분들의 '처분'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갑갑하다. 어쩌겠는가. 그들과 싸워봐야 소용없는 것을. 나름 형틀 목수면 '건설 기술인'이라고 건설 업계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현장 밖 사회적 인식은 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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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설기능인력에 관한 인식을

바꾸게 하겠다고 우리는 필사적이다만…

 

그럼에도 살다 보면 처와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의무를 다하고자, 경멸의 대상이 되는 세상으로 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생긴다. 조회수도 별로 안 나오는 글을 쓰느라 딴지 수뇌부에 미안했지만 그래도 쭉 썼던 이유는 내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던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 가치가 있는 글'을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짬 날 때 조금씩 만들어 놓으면, 그것도 개인 블로그 글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려운 시점에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신뢰할만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서 들은 풍월을 마치 자신이 겪어본 일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온 몇 가지를 본 뒤에 말하는 거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 현장 가면 별것 아닌 일을 해도 한 달에 4~5백만 원을 받는다는데 그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말이다. 이분들은 일당 14~16만 원으로 그 돈을 만들고자 몇 공수를 해야 하는지는 계산하지 않는다. 거기다 이 돈을 벌려면 삼성전자 현장 근처의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을 고려, 근처에 숙소를 잡고 기러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너는 절실하지 않아'라는 '고나리'질을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지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 하는 조언이 아니다(아. 이 글을 찾아 볼 연배가 좀 되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고나리질은 인터넷 게시판 따위에서 지나치게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이다. '관리'를 자판으로 빠르게 치면서 생긴 오타에서 비롯하였다).

 

2. 현장마다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건설 현장 일을 하기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지인 중에서 이런 고나리질을 하려는 이들이 있으면 바로 손절 리스트에 올려놓아야 한다. 왜냐면 건설 현장은 현장마다 노동 조건의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건설일용직들은 회사에 퇴직금을 적립할 수 없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현장에선 하루 6,500원을 개별 노동자 명의로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적립해준다. 이 돈을 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이 중에서 300원을 조직 운영비와 기금 운영비, 건설노동자 교육지원 사업 등으로 쓰고 노동자 한 명당 하루 6,200원씩 적립해준다.

 

건설노조에 가입해 있고 주로 아파트 단지 같은 대형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일한 날짜만큼 정확하게 적립된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현장은 이게 없다. 아파트 현장을 주로 도는 건설노조 소속 형틀 목수나 철근공의 경우엔 일 년에 대략 220~240일 정도를 적립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평균을 내면 형틀 목수가 일 년에 적립하는 퇴직공제 기금은 89일 정도밖엔 안 된다. 노조 소속 건설기술자는 전국에 6만 명으로 전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4% 수준이다. 평균이 89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형틀 목수 대부분이 퇴직공제 기금 한 푼 적립하지 못하는 현장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다.

 

나만 해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됐고, 일 년 평균 260일(장마철에도 직영 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했으니까) 이상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적립된 날짜는 800일을 조금 넘는다.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거푸집 해체팀이 건설 현장에서 일할 수 없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팀이었기에 밑바닥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터라 일한 날의 1/5 정도만 적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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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공제회 적립금도 적립할 수 없는 현장은 저렇게 원형 파이프 하나, 혹은 두 개를 밟고 6미터 이상 높은 곳에 올라가 힘을 몸 뒤로 줘야 하는 일들을 해야 하던 곳이다. 이렇게 상태 나쁜 현장에선 심지어 한겨울에 '언 밥'이 밥이라고 배달되고, 거기에 항의하면 조롱당하기도 한다.

 

지금은 노조 소속으로 삼성전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기선 저런 식으로 작업하면 작업지시를 한 사람부터 작업을 한 사람까지 모조리 퇴출당한다. '삼성에서 일하면 4~5백은 번다는데'라며 고나리질하는 이들이 이런 디테일을 알지 못한다. '디테일을 안다' 함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상황도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조건과 상황이라는 게 맞아야 그 현장에 갈 수 있고 4~5백을 벌 수 있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질 말은 아니다. 

 

3. 건설 노동 입문자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원칙

 

각설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가 '성실히 일해야 한다', '인사 잘해야 한다' 같은 것들은 '기본 직업윤리'다. 정말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나에게 맞는 공종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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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60개 공종은 '건설근로자 기능 등급제' 대상 공종이다. 건설 현장엔 훨씬 더 많은 형태의 일이 있다. 그중에서 저 60가지는 조(력)공과 기(능)공으로 일반적으로 구분되는 일들이다. 저기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건설일용직은 상대적으로 정년퇴직이 늦다. 본인이 건강관리를 잘해서 일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제한 조건이 좀 많이 붙긴 해도 계속 일할 수 있다. 그러니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사무직에서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 20~30년을 더 일할 수 있다. 그러니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1년 이내에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저 일의 상당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인력사무소에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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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사무소에서 초짜가 아닌 척하는 법 등이 노하우랍시고 돌아다니는데(뭔가 오래되고 능숙한 사람처럼 연기하는), 정작 현장에선 그런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잘 몰라도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뭐든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이들을 훨씬 좋아한다.

 

규모와 상관없이 건설회사에서 직접 고용하는 여러 가지 잡일을 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 현장에선 직영, 혹은 인력, 로터리 등으로 부르는 분들로 주로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현장에 배치된다. 워낙 많은 공종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달라고 하므로 저 위의 60개 공종 중 절반 정도는 충분히 접해볼 수 있다. 단 이런 경험은 규모가 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집 주변에서 가까운 인력사무소들 구글맵이나 네이버 지도 등으로 찾아내고 중에서 외관상 가장 큰 곳들을 추려야 한다. 그곳들에 직접 방문했을 때, 지자체에서 인증하거나 상장 등을 받은 적이 있는 곳이라면 이게 가능하다. 간판에 인력이라고 붙어 있고 작은 화이트보드 하나 있는 곳에선 일을 배정받기 어려울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기 어렵다.

 

준비물은 갈아입을 옷과 신발, 계절에 맞는 작업복과 안전화, 작업용 고무코팅 장갑 정도다(대부분의 인력사무소에선 개인 차를 얻어타고 출퇴근하기 때문에 차 안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 많다). 갈아입을 옷과 신발, 장갑 등을 가방에 넣고 작업복과 안전화를 착용하고 출근하면 된다(출근하기 전날 찾아가서 '건설업 기초 안전보건교육 이수증'과 '신분증'을 갖고 일종의 구직 등록 같은 것은 해두는 게 좋다. 전날 찾아가야 위에서 말한 지자체 표창장 같은 것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규모가 있는데도 그런 것이 안 보인다면 퇴각이 답이다. 이유는 뒤에 설명한다). 

 

처음엔 성실하고 말 잘 알아듣는다는 평가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건설 현장 용어들을 정리해 둔 것들을 꽤 찾을 수 있다. 대체로 영어 단어를 일본어식으로 발음하는 거다. 빨리 외울수록 편해진다. 인력사무소 내부에서 인정받게 되면 거의 한 현장으로 계속 배치된다. 인력사무소를 다니는 사람들끼린 이걸 두고 '고정 받는다' 등의 말을 한다. 이때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뭘 배우냐고?

 

4. 입문 단계에 바지런히 사수를 찾자

 

건물 전체 공정이 어떻게 굴러가는가부터 왜 저 공정에선 저런 사전 작업을 하는가,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하는가에 이르기까지다. 직영에 떨어지는 일들은 대체로 두리뭉실하기 때문에 매뉴얼로 정리된 것 같은 것도 없고, 작업 지시를 하는 사람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규모가 좀 있고 이런저런 상장을 많이 걸어놓고 있는 인력사무소라고 한다면 1군 건설회사 현장 소장들이 찾아서 끌고 다니는 직영 반장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1년 이상 고용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므로 퇴직금 안 주고자 별의별 수작을 다 부리는 곳이 건설 현장이다. 아파트 단지라고 하면 착공하고부터 2년 이상이 걸린다. 거기다 1군 건설회사 현장소장이면 대체로 회사에선 부장 이상인 사람들이다. 그런 양반들이 직접 찾아서 퇴직금 왕창 주면서 끌고 다니는 직영 반장님들이 일하는 방식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감탄사 밖엔 안 나온다. 이분들은 전체 공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을 어떻게 나누고 붙이고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쉽게 하는지도 바로바로 생각해낼 수 있다.

 

이런 분들과 일을 해보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전에 내가 어떤 식으로 일을 했었는지까지 반성하게 한다. 어떻게 해야 일을 최적화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하는 분들과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면 다른 공종의 일을 할 때도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 볼 수 있다. 삽질을 하도 많이 하는 바람에 고생도 했지만, 와중에 난 이런 분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찾아뵙고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낸다. 이분들은 어떤 일을 줘도 일정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과 함께 일하면 다양한 일들을 해볼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인력소개소 소장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면 같이 일 안 한다. 지자체의 상장과 여러 회사의 상장이 주는 의미가 이거다.

 

만약 내가 고나리질 전문가들의 아가리에 놀아나지 않고 저런 직영 반장님들부터 만났다면 형틀 목수가 아니라 다른 공종의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데다 아가리 파이터들에게 놀아나 2년간 거푸집 해체만 했다 보니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던 기술직은 형틀 목수밖에 없었다. 거푸집을 뜯는 일의 반대가 거푸집을 만드는 건데, 받는 돈은 그때의 두 배가 넘으니까.

 

하여튼 1년 정도 직영에서 다양한 일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면 내가 해볼 만한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정말 성실하게 일한다면 몇개월 내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직영으로 여러 공종에 지원 나가는 일을 했고 이른바 '일머리가 있다'고 평가받으면 일하는 중에도 여러 번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오늘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만 제대로 알고, 같이 일하는 사람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면 일머리가 있다고 평가받기 쉽다. 내가 조금 더 움직여서 그날의 일을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느냐가 이 평가의 핵심이다)나만 하더라도 용접·계장·전기·미장하시던 분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었다. 같은 팀에서 일하자고. 그런 제안을 듣게 될 즈음에 그분들에게 이걸 어떻게 배우고 임금 체계가 어떤지, 어떻게 기공이 될 수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면 쉽게 쉽게 이야기해준다.

 

5. 고급 인력으로 레벨업 하는 방법

 

그렇게 리스트들을 만들었으면 두 번째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지자체나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지원하는 해당 공종의 교육과정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난 수원·화성·안산·광명을 관할권으로 하는 안산건설 기능학교에 가서 20일간 교육을 받고 형틀 목수가 됐다. 용접이나 실내 목공의 경우엔 거의 100일간 교육을 받아야 초보자로 현장에 배치될 수 있지만 기(능)공이 되면 벌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낫다. 물론 이 교육 기간은 구직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배우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배우는 기간을 통으로 쉬어야 실업급여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자신의 형편에서 어떤 과정이 최선인지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전망이 좋아 보여도 교육 기간이 길어서 생계에 문제가 생기는 길을 선택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물론 밤에 대리운전 등을 하는 걸로 생계비 충당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거 걸리면 실업급여 다 토해내야 하고 벌금도 세게 맞는다.

 

앞서 이야기한 조건에 맞는 인력사무소에 일하러 나간다면, 쉬는 날 없이 거의 계속 일할 수 있다. 그런 규모의 인력사무소라면 여러 개의 현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든 말든 일할 조(력)공이 필요한 곳이 많다. 그렇게 일하면 대략 공제액 빼고 하루에 받는 일당은 12만 원 언저리가 된다. 일요일만 쉬고 일하면 대략 월에 300만 원 정도는 된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현장 소장이 끌고 다니는 직영 반장급'이 되면 어지간한 공종의 기(능)공 이상은 벌 수 있다. 그분들은 뭘 해도 성공하실 분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분들이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게 자신에게 맞는 공종을 찾아내서 그 공종의 '기(능)공'이 되라는 거다. 그러면 하루 1공수씩만 일해도 인력사무소에 나가던 시절보단 최소 1.5~2배는 번다. 그리고 직영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이것저것 찾아가면서 배웠던 것이 습관으로 박혀 있다면 남들보다 훨씬 빨리 숙련공과 그 이상의 자리에도 도달할 수 있다.

 

뭘 그렇게 배워야 하냐고? 형틀 목수라면 비계 자격증과 신호수 교육(각각 8시간 교육을 따로 받아야 한다. 현장에 따라 신호수는 현장 자체 교육까지 이수해야 일할 수 있다) 정도는 받아야 반장을 할 수 있다. 거푸집 기능사 시험은 경력을 2년 추가해주는 것이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있다면 계단 만드는 현치도(現치圖. 실물 크기의 치수대로 나타낸 도면) 그리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여기에 표준시방서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하고 도면은 기본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쫌 한다는 기(능)공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기다 요즘은 다뤄야 하는 거푸집의 종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CAD 정도는 기본으로 쓸 줄 알고 측량하는 법까지 알아야 데나오시(일본말 '手直し(てなおし)' 부정확한 곳을 손으로 수정한다는 말인데 건설 현장에선 다 뜯어서 재시공한다는 말로 쓴다)의 확률을 왕창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도면 안 보고 패드 들고 다니면서 CAD 파일을 보면서 작업 지시하는 반장님들 만나 뵙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자기 작업일지 쓰면서 짬 날 때마다 공부하는 형틀 목수들, 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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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5년 차 이상부터 받는 교육 내용이다. 물론 이런 거 몰라도 목수 일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분들 꽤 많다. 그러나 이 정도도 모르면 절대로 팀장 혹은 반장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주경야독하며, 필요하다면 노조 가입도 고려해봄 직하다. 노조라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하는 지부만 해도 조합원이 6천 명이고 같이 일하다가, 혹은 이야기를 하다가 두통나게 만드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니까. 심지어 조합원이라는 것이 '벼슬'인 분들도 종종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없었다면 기(능)공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임금이 나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로 일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지금도 사장 일가가 차를 바꿔도, 그 일가가 땅을 사도 '임금이 몇 달 밀리게 되니 양해해달라'는 이야길 해야 하는 현장 소장이나 오야지들이 숱하다.

 

지금 내가 일하는 현장도 45일 지급 유예였던 것을 노조가 들어오면서 15일 지급 유예로 바꿀 수 있었다. 지급 유예란 내가 월초부터 월말까지 일한 돈을 받는 게 미뤄짐을 뜻한다. 가령 3월 1일부터 31일까지 일한 돈을 5월 15일에 받기로 했다가 노조로 인해서 4월 15일(또는 그 전후 평일)에 받는 걸로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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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그동안 바꾼 게 이런 거다.

이게 문제라고 하면 그거야말로 사이코패스 아닌가

 

현 강원도지사께서 전임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이었던 시절에 주목받았던 걸 한 번 흉내 내 보겠다고 하다가 PF(project financing. 부동산 개발 사업 등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 시장 전체를 말아먹었다. 그 덕택에 건설사들 자금 사정이 메롱해졌다.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당사자는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는 걸로 끝냈다. 그래 놓고 나서 건설경기 하락의 원흉으로 노조를 지목하고 있다.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 고쳐서 쓰겠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분들이 다수여서 이런 정권이 들어섰다.

 

정리하면, 건설 일용직을 시작할 때 나처럼 삽질 안 하고 좀 더 쉽게 기술자가 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집 근처에서 큰 인력소개소, 특히 지자체 표창장이 있는 곳을 찾아 열심히 일한다

2. 여러 공종을 겪어보고 내가 해볼 만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3. 지자체 혹은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위탁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센터를 찾는다

4. 그 과정을 이수하고 그 공종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업무 지식을 최대한 빨리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

 

반복해 이야기하지만 내가 이걸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어금니 몇 개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았다. 이 업종을 접하고 있거나 접하게 될 많은 분들께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 외엔 바랄 게 없겠다. 

 

아빠가 되었는 지라 꽤 오랫동안 글 못 쓸 형틀 목수

Samuel 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