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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지난 2월 5일 서울 경동시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 스타벅스는 사실 업계의 강자잖아요? 굉장히. 여기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죠.”

 

라고 말해서 화제가 됐다. 전통시장 상생협력 모델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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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지난 3월 27일엔 경기 남부지역 지원 유세 도중 수원정에 출마한 이수정 후보의 손을 잡은 채 앞으로 나오며 “이수정은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외쳤다.

 

“이수정이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

 

그리고 지난 4월 3일 충북 충주 유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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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저는 검사 처음 시작한 날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져가야 할 잇속도 없다. 다만, 나라가 잘 되길 바란다”

 

한동훈과 서울대 법대 동기인 이연주 변호사가 유튜브에서 전한 이른바 ‘버들골 사건’은 의미심장하다. 법대 신입생들이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할 때 한동훈이

 

“안녕, 한동훈이라고 해. 내가 강남 8학군 출신이라고 너무 거리감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인사해서 나머지 신입생들이 모두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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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과 나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73년생 소띠다. 게다가 남성이다. 키도 작다. 눈과 귀가 두 개고 코가 하나, 입이 하나다. 팔다리가 두 개씩 달려 있고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쓴다. 아마 둘 다 성기 하나에 고환이 두 개지 싶지만 이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둘 다 머리숱이 빼곡한데, 동훈이는 ‘뚜껑’이라는 의혹이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다른 점도 이에 못지않게 많다. 우선 난 평생 말굽 같은 키높이 구두를 신어본 적 없고 현재 동훈이에 비해 배가 많이 나왔으며 상대적으로 가방끈도 짧고 무엇보다 동훈이는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나는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우선 마포구 노고산동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신촌로타리에서 유명한 어느 조폭 아저씨와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창천초등학교-동도중학교-한성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하자 그 조폭 아저씨는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완전 엘리트 출신이네! 근데 왜 아직 별(전과)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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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신촌

 

알겠는가. 마포구 노고산동-서대문구 창천동은 그런 동네다. 당시 내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주로 아현동 고압선, 성산동 철부지, 대흥동 까마귀파 출신들이었다. 가까이론 모래내, 멀리로는 안양에서까지 마포의 아성에 도전하겠다고 곧잘 원정을 오곤 했다.

 

그런 마포-서대문이지만 학교에 동훈이 같은 친구가 없진 않았다. 주로 반장을 맡는 친구들이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30~40년 전 학급반장의 역할이란, 수업 시작할 때 차렷-경례를 선창하고 체육시간에 공을 나르는 것이었다. 간혹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도 했다.

 

마포구 노고산동의 동훈이 또한 압구정동 동훈이처럼 공부를 잘했다. 그냥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모의고사 성적도 전국구에서 놀았다. ‘동훈이’여도 다 같은 동훈이는 아니었다. 어떤 동훈이는 엄청 두꺼운 안경을 쓰고 하루 종일 책상에 코를 박고 책만 보는 타입이 있던 반면, 또 어떤 동훈이는 ‘우리’와 어울려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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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이들’과 ‘마사오들’의 사이 또한 그럭저럭 좋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불가원-불가근의 관계랄까. 딱히 시비 붙을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소울메이트가 될 일도 없었다. 그저 나름의 보이지 않는 신사협정을 맺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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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중요하다. ‘마사오들’은 ‘동훈이들’을 ‘찐따’라고 멸시하지 않았고 ‘동훈이들’은 ‘마사오들’을 ‘양아치’라고 경멸하지 않았다. 그냥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타인’이었을 뿐이다. 속으론 어떻게 생각했을는지 몰라도 말과 행동에서 ‘너와 나는 다르다’는 티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직업을 갖고 사회적 위치와 경험이 달라질지언정 중고등학교 시절의 동훈이와 마사오는 서로를 소, 닭 보듯 볼 뿐 같은 학급, 같은 학우라는 지위는 인정했다.

 

압구정동 동훈이는 이 점에서 매우 다르다. 위에서 나열한 압구정동 동훈이의 발언 행태를 보면 지독히도 계급주의적이다. 소위 ‘속물’이라 부르는 천민자본주의적 세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아무 스스럼이 없다. 이는, 현대 대한민국 상류층이란 부류에게 근대 부르주아의 기본 소양인 ‘교양’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다.

 

압구정동 동훈이가 검사직을 수행하면서 피의자를 내려다보고 소시민들을 알로 보는 것은 그러려니 하겠다.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원래 알량한 법이니까. 알량한 권력을 쥐면 누구나 예외 없이 알량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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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주권자의 공복 따위 뻔한 말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데도 굳이 천한 것들에게 한 표 부탁한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감내하면서까지 정치에 뛰어들었으니 감사한 줄 알고 한 표를 내놓아야 한다는 논리와 자세로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정치란, 한정된 재화를 어떤 우선순위로 분배하느냐가 핵심이며 이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 설득과 협상이라는 미학이 탄생한다. 여기 어디에 선민의식과 시혜적 태도가 끼어들 틈이 있는가. 그저 어울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상극(相剋)이란 말이다.

 

아무래도 압구정, 더 나아가 강남이라는 터가 안 좋지 싶다. 노고산동 동훈이는 수줍은 얼굴과 애처로운 눈빛으로 삐쭉삐쭉 다가와서 “(그 포르노잡지) 나도 보여줘”라고 다정스레 말을 건넬 줄 아는 친구였는데. 노고산동 동훈이랑 오랜만에 마주 앉아 술 한잔하고 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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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