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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어 몇 가지 '경제 회복책'을 내놓았습니다. 비상경제민생회의는 2022년 7월부터 시작되어 어느새 23회까지 왔습니다. 그간 내놓았던 정책이나 안건들에 비상도 민생도 없는 부자 감세와 대기업 위주의 정책들이었지요. 윤 대통령은 지치지 않고 이를 이어왔습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감세입니다. 그동안 대놓고 부자 감세, 대기업 특혜를 외치던 모습과 달리 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강조하며 이번에야말로 민생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포장된 말장난이며 위장 전술이지요. 본 기사에서는 이번 민생회의에서 주로 다룬 '준조세'와 그 회의 내용까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 '준조세 = 그림자 조세'

 

국가에는 명시된 조세제도 외에 법정부담금이나 기부금, 성금 등을 포함하는 또 다른 금전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준조세(準組稅, quasi-tax,), 또는 그 성격 때문에 그림자조세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무엇이 준조세인지에 관해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명확히 통일된 개념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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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TV>

 

전국경제인연합(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국민과 기업이 강제로 부담하는 준조세의 부담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20년 기준 모든 국민과 기업이 부담하는 광의의 준조세는 약 164조 원입니다. 이는 2020년 조세 총액의 42.5%에 달하는 금액이며 2020년 GDP의 8.5%라고 합니다.

 

[짤막상식] 껌 살 때도 떼는 '법정부담금'이란_ _ YTN 사이언스 0-43 screenshot.png

출처-<YTN>

 

준조세에는 법정부담금이 있습니다. 법정부담금은 직접세보다 시민의 저항이 크지 않고, 국가에선 기금이나 특별회계 등의 형태로 관리하기 때문에 감독도 엄격하지 않습니다. 부과와 징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받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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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경제>

 

2024년 기준으로 국가의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관리하는 법정부담금이 91개로 그 금액이 약 24조 6157억 원에 달합니다. 이번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91개의 법정부담금 중 일부를 폐지나 감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례로 전기요금의 3.7% 비중으로 납부하는 전력 기금을 2년간 단계적으로 인하하겠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해외여행이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 도입하여 여권 발급 때 함께 내는 국제교류 기여금은 3,000원 감면하고, 출국납부금도 현 11,000원에서 7,000원으로 내리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영화 관객에게 입장권료의 3%로서 부과하던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은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른 소비자가 지불하는 관람료 중 450원에서 500원 정도가 감소합니다.

 

[짤막상식] 껌 살 때도 떼는 '법정부담금'이란_ _ YTN 사이언스 0-35 screenshot.png

출처-<YTN>

 

이 밖에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부과금 30% 감면합니다. 자동차 사고 피해지원 분담금도 3년간 50% 내립니다. 학교용지부담금·개발부담금·환경개선부담금·폐기물 부담금 등도 폐지하거나 감면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재부는 이번 조치로 줄어드는 법정부담금이 약 2조 원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2. 정부의 생색내기?

 

사실 세금이 폐지되거나 경감된다면 개인적으로서는 반길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체감되는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사실 시민 개인이나 가정에서 납부하는 준조세는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조사단체마다 준조세의 범위에 부가가치세를 포함하거나 4대 보험을 포함하는 등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 정부는 모든 준조세를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준조세 중에서도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법정부담금 91개 항목 중 32개를 이번에 일부 폐지하거나 액수를 감면하는 개편을 예고했습니다. 이 중 앞서 언급했던 출국납부금(4000원 감면)과 국제교류기여금(여권 발급 비용의 3,000원 감면)의 경우 비록 해외여행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시민 개인이 느끼는 체감은 크지 않을 터입니다.

 

출국납부금은 정확한 자료가 없으나 관련 자료들로 추정해 보면 2017년 기준 출국납부금 수입액은 약 3,648억 원입니다. 2017년 해외여행객 수가 약 2,700만 명으로 1인당 1만 3천 원가량 지불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를 4천 원 할인할 경우 대략 1,200억 원의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해외여행객 수가 약 2200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니 위와 비슷하게 연간 약 1,000억 원의 절감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다만, 이는 출국자 전체를 계산한 결과이며, 시민 개인에게 돌아가는 감면액으로 고려하면 부담의 큰 차이가 없을 터입니다. 한 겹 더 뜯어서 생각해 보면 국민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해외여행을 갈만한 형편이 되는 2,000만 명 정도가 4천 원 혜택를 본다는 것이기에 이게 서민을 위한 혜택이라고 말하긴 힘들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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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경제>

 

여권 발급 시 납부하는 국제교류 기여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권을 대부분 10년에 한 번 발급하기에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비용은 많지 않습니다.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3% 감면은 영화 입장권 가격 15,000원을 기준으로 450원이 절감됩니다. 1년에 영화를 십수 편 본다고 해도 1만 원이 넘지 않는 금액입니다. 지난 몇년 간 OTT의 발달 등으로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더불어 급격하게 영화 관람료가 올랐다고 느끼는 시민들에게 450원 절감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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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후 몇 안 되는 관객 천 만이 넘은 영화 

출처-<아시아경제>

 

3. 결국 혜택은 대기업에 간다

 

준조세의 폐지나 경감 등을 주장하는 많은 보고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고서에서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업이 납부하는 준조세입니다. 한국경제인연합은 21년 기업이 부담한 협의의 준조세가 약 77.1조 원이라고 밝히며, 이는 같은 해 법인세 70.4조 원보다 약 6.7조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또한 17년 대비 21년 증가한 협의의 준조세 증가분은 약 18.8조 원이었는데, 이중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같은 사회보험료의 증가분이 10.4조 원으로 약 55.3%를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대충 감이 오시겠지만, 기업들이 납부하는 준조세들은 사회보험료 성격이 절반 이상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게 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지요. 물론 과도한 과세는 소비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되거나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지만, 대기업 위주로 성장했던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 폐지되거나 감면된 부담금 중 눈여겨봐야 할 항목들이 있습니다. 2조 원가량 감소하는 부담금 수입에서 약 9천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전기요금 관련 부담금의 축소입니다. 전기요금의 3.7%로서 사용자에게 부과했던 항목인데, 2년에 걸쳐 각각 3.2%, 2.7%로 낮아집니다. 이에 4인 가구의 경우 연간 평균 8천 원의 전기료 절감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반 산업이나 차세대 공정 기술과 관련된 '뿌리 업종(‘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기초공정기술을 활용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인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공정기술 분야. 나무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종 제품을 만드는 데 스며들어 제조업 경쟁력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기업은 연간 62만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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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전진우 기자/뉴시스>

 

하지만 일괄적으로 요율을 인하해 버렸기에 전기 사용량이 많을수록 혜택을 보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결국 산업용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이 주로 혜택을 볼 터입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얻는 혜택을 약 300억 원으로 추산합니다. 정부에서는 요율인하 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합의가 되지 않아서 대기업이 제외되지 않은 건지, 합의가 되어서 대기업도 포함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요. 

 

무엇보다 이번 부담금 개편으로 건설업계가 누리는 혜택이 눈에 띕니다. 학교용지부담금과 개발부담금의 경우 폐지되거나 감면되어 연간 약 6,600억 원이 경감되리라 봅니다.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 건설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실질적인 감세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용지부담금의 경우 분양 사업자에게 분양가의 0.8%를 부과했던 것입니다. 기재부는 "인구감소로 새로운 학교용지 필요성이 점차 떨어지는 점과 부진한 건설 경기를 고려"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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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정책. 지난 9월 뉴스. 

이래서 KBS 사장이 바뀌었나 봅니다

출처-<KBS>

 

이 밖에도 환경개선부담금도 문제가 됩니다.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경감되는 금액도 130여억 원으로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환경정책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 중소기업에 한해 줄어드는 폐기물처분부담금도 문제입니다. 환경 분야의 부담금은 기본적으로 오염자 부담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비용을 감해주면 원인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모호해질 수 있습니다.

 

4. 세입은 줄고, 건설업계 지원은 는다

 

물론 이 같은 준조세나 부담금 같은 비용을 지불함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모르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런 부담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더욱 저항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기업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탐탁지 않고, 내가 받는 혜택도 두드러지지 않음에도 의무나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니 그렇게 나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한 해 국세 수입이 48조 5천억 원 감소했습니다. 역대급 세수 펑크라는 말과 함께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단기 차입한 금액도 117조 원이나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이랬다면 모르겠지만, 올해도 1월 국세 수입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돕니다. 올 1월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조 원이나 줄어 들었습니다. 1년의 끝도 아닌 1월 첫 달부터 이미 역대급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지요.

 

기재부는 경기 악화와 부동산, 주식시장 침체, 이와 더불어 작년 1월에 세수가 많았던 기저효과(基底效果. 기준 시점의 위치에 따라 경제 지표가 실제 상태보다 위축되거나 부풀려진 현상)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줄어든 항목을 살펴보면 부가가치세가 3조 7천억 원, 법인세가 1조 2천억 원, 소득세가 8천억 원 각각 감소했기에 올해 세입 여건 개선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세수 흐름에조차 상저하고(한 해의 경기가 상반기에는 저조하고 하반기에는 고조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를 이야기하며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정부는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기업의 신용과 담보에 기초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기존의 기업금융과 달리 기업과 법적으로 독립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부터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상환재원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 위기 진화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약 42조 원의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HUG)와 주택도시보증공사(HF)의 보증 금액을 현행 25조에 30조 원까지 5조 원 증액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비주택 사업장에서도 4조 원(건설공제조합)의 보증을 도입하는 등 총 9조 원을 PF사업장에 신규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금융뉴스] 중기·소상공인 43조 원 지원···PF 사업장 9조 원 투입(2024.3.27.) 2-1 screenshot.png

출처-<유튜브채널 '금융위원회'>

 

5. 윤 대통령은 나라 생각을 할까

 

비상경제민생회의라고 하지만 실상은 부자 감세, 대기업 감세와 진배없는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지속해서 세수가 부족하면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세수를 채우려고 추가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또 다른 조세정책을 펼칠 것입니다. 아니, 역대급 세수 펑크가 난 터에 부유층에게 증세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데, 국가 경제가 어떻게 되든 신경도 쓰지 않고 총선 생각에 여념이 없지요.

 

2024년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지요. 많은 시민은 이제 임기 만 2년이 가까워져 오는 이 시점에 윤 대통령의 수들을 다 아는 듯합니다. 실상 수라고 할 것도 뭐 없을 만큼 빤하기 때문이지요. 총선을 앞두고 행해지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총선은 물론, 총선 뒤의 여론이 반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어느 경제 전문기자의 말처럼, 그리고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한 얘기처럼 이제는 정말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에는 손을 떼고 최소한 정치보다 경제를 더 염두에 두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어 그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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