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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구 국가대표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채 축구 국가대표팀 이야기가 화제다. 감독의 리더십 부재와 그런 리더를 선수 시절의 이름값만으로 선임한 협회. 선수들 간의 흔한1) 갈등을 온갖 문제의 원인인 양 언론 플레이 하는 감독. 다시 그것을 돕고 조장하는 듯한 협회. 화난 대중을 필사적으로 자기 이득에 사용하려는 언론까지.

 

팀 자체를 하나의 군체, 일종의 상호작용을 하는 작은 생태계라고 한다면 감독은 그 시스템의 조율자여야 한다. 협회는 팀 외적인 문제들이 팀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거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해주는 온실 시스템을 이루어야 한다. 팀 스포츠를 할 때 전면에 나와서 활동하는 선수 개개인 만큼이나 중요한 게 선수 간의 호흡이나 스타일과 이를 조율하는 전술이라면, 그 전술을 효과적으로 짤 수 있도록 전술 집행관을 선임하고 전략자원들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보급지원은 구단(협회)이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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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르겐 클리스만 SNS>

 

단기 결전 한두 번이라면 개개의 화력 차이로 이길 수 있지만, 장기전이 되면 전략과 보급이 전투를 좌우한다. 선수 개인의 자기관리 외적인 경기 수행 능력 저하가 일어나는 경우를 막는 것이 팀 관리자의 미덕이다. 상황을 막기는커녕 선수들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미루거나 그 부분을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면, 구체적인 사항을 모두 확인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후진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왔는지가 느껴진다. 선수 개개인이 어떤 마음으로 팀에 합류했는지를 궁예질할 순 없지만,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 했다손 치더라도 구조가 망가져서는 팀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다. 좋은 사람들끼리 최선을 다해도 망가져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란 존재한다.

 

2. 내가 겪은 조직

 

그런 집단의 구성원으로 갈리다 보면 입에서 쓴맛이 감돈다. 열심히 시달려서 입에서 단내가 올라오는데 혀끝을 씁쓸하게 아리는 맛. 아사리판의 맛이다.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내내 느낀 감정이었다. 전액 장학금을 준다 해서 진학했더니 국가적 예산 삭감과 대학의 등록금 인상으로 학기당 200만 원이 비었다. 연구실에서 주는 월 3~40의 돈으로는 학비 땜빵도 안됐다. 그나마도 수업 조교로 2시수(주당 수업시간 4시간과 추가 업무)를 수행해야만 주는 장학금이었다. 그래도 돈 받는 일이라 조교 일을 성실히 할라치면 불호령이 날아왔다. 연구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엄한데 시간 쓴다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못하면 피해는 점점 대물림되고 사회 전체는 퇴보한다는 마음은 헛된 울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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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고려대대학원 총학생화>

 

생존이라도 하려면 조교 업무 외에 과외도 2개씩은 뛰어야만 했다. 그럼 월세를 제외하고 20만 원 정도가 남았다. 논문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기계 다루는 법도 공부해야 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이득만을 위해 나머지를 대충 때워야 하는 삶. 그래도 당시에는 몰랐다. 지금에야 명확히 깨달았다. 기형적인 대통령의 출현과 그 뒤에 숨어 기생하는 정당·언론·기업. 그나마 있던 구조가 망가지기 시작하니 온몸으로 강한 맛이 느껴졌다. 오래전 대학원생이던 때 맛봤던 아사리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3. 물리 세계

 

물리 공부를 하던 중에도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통계역학을 배울 때가 보통 그렇다. 통계역학은 통계적 방법론, 수식을 이용해서 물리적 현상을 분석하는 분야다. 대표적으로는 공기·물 등을 다루는 유체역학이 있다. 물과 공기는 생명에도 필수적이지만 통계물리에서도 필수 요소로 쓴다. 역사적으로도 유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다루며 학문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쉽게 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예제라서 그렇다. 우린 주로 물 같은 액체를 가두고, 공간을 나누고, 가열하고, 구멍을 뚫고, 해 본다.

 

개중에는 실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문제들도 있다. 열린 가열과 닫힌 가열의 문제 같은 것이 그러하다. 커다란 컨테이너에 물을 담고 나서 특정 정도의 열을 가열한다. 이때 위쪽의 뚜껑이 없는 경우와, 완전 밀폐된 경우, 적당히 구멍 뚫린 경우의 가열량 대비 온도 상승량 따위를 계산한다. 뚜껑 닫힌 경우가 온도가 빠르게 올라간다고 하는 것은 라면만 몇 번 끓여보아도 안다. 그런데 이를 통계역학으로 계산을 하고 나면 의도에 따라 뚜껑의 모양, 구멍의 크기, 적절한 가열량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뚜껑의 핵심 기능이 무엇인지 이해한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 있어 실증적 근거를 제공한다. 뚜껑 하나가 만드는 변화를 가열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불완전한 밀폐로 인한 '(냄비 바깥쪽과의) 수증기 교환'과 '열 손실 발생'으로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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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

 

압력밥솥은 완전 밀폐계다. 빠져나가지 못한 수증기가 팽창하고 분자 수가 증가해서 고압 상태를 이룬다. 단순히 열효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리 온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만들어 준다. 고온으로 단시간에 조리하는 때에 유리하다. 반대로 완전히 뚜껑을 열어버린 냄비의 경우 수분 증발이 격심하게 일어난다. 수증기가 부엌 전체로 퍼져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온도는 낮게 유지되고, 수분은 빠르게 날아간다. 식은 국·탕·찌개에 물을 조금 부어서 데우는 경우나, 낮은 온도로 가열해야 변형이 덜 일어나는 경우에 유용하지만, 생선조림같이 자작한 것을 추가 수분 없이 가열하는 데는 부적합하다. 겉은 마르고 아래는 타버린다.

 

'가열온도'가 음식에 평균적으로 가해지는 온도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뚜껑'은 내부의 수증기 순환량을 조절하여 현재 수행하는 요리에 어울리는 조리법을 구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뚜껑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다이소에서도 발견되는 프라이팬 위에 올리는 방충망 덮개가 그러하다. 방충망 구멍 사이로 수증기가 빠져나가지만, 공기의 대류현상은 막아 주어 수분증발은 유도하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똑똑한 도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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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옥션>

 

사물에 대한 종합적·다면적인 이해는 중요하다. 물리학이든 다른 현대 서양 학문이 주로 환원론적인 방식으로 정립된 구체적인 사실들을 다루기에 한 방향의 사실을 이해함에 머물러 다른 의미, 다른 방향, 다른 학문에서의 검토를 게을리하면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헛똑똑이가 된다.3) 냄비 위를 덮는 뚜껑만 하더라도 온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적으로 화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상당하다. 하물며 인간 세상사야. 법률적으로 그것도 구속과 압수수색 같은 국가권력을 행사해 온 것만으로 인간사회가 돌아가는 방법을 이해했다고 여기는 것은 상당한 오만이다. 

 

4. 내가 사는 사회

 

인간은 물보다는 복잡하고 다양성을 지닌 개체다. 다만 서로 간의 행동을 보며 자의로 또는 타의로 서로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체(流體, 기체와 액체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다체(多體, 셋 이상의 입자가 상호 작용을 하며 운동하는 모든 형태)와 같은 양상을 보일 때가 있다. 통계역학의 이치로 인간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복잡하니까. 다만 의로써 행동하고, 대의로 도덕을 이야기하는 이의 행동은 왜인지 늘 깨끗한 물이 도도히 흘러 암벽을 깎아내는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은 의로운 이들이 토론과 의견 제안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전라북도 행사장에서,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의료 개선 대국민 제언과 같은 곳에서 나타난 '동료시민'의 정당한 항의가 그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틈을 뚫고 바깥으로 빠져나간 첫 수증기. 안쪽에서 물이 끓을 만큼 끓고, 소통이 없음에 더 끓어 한계온도를 초과했다는 이야기일 테다.

 

이때 가장 현명한 물리학적 대처는 압력솥이 펑! 하고 터져버리기 전에 가열되는 열을 줄이거나, 새어 나오기 시작한 구멍을 막기보다 적절하게 열어 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처 능력에 한계가 있듯이, 정부의 가용 가능한 사람 수에도 한계치가 있을 테다.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압력을 낮추는, 최선의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입틀막' 된 체 무기력하게 끌려 나가는 '동료시민'의 모습이었다. 안타까웠다. 때로 역사는 역행하기도 한다지만 여기까지 와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동료시민'은 대체 누구를 뜻하는 단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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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오마이뉴스>

 

오판하고 있는 것이다. 가열되어 수증기가 새어 나오는 구멍을 억지로 틀어막으면 압력은 더 상승한다. 내부의 수증기는 더더욱 열을 축적하고 더욱더 사나운 에너지를 쌓는다. 과열되었다고 정치 현안 챙기기에서 한 발 멀어졌던 순간을 자책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끌려 나가는 친우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도한 지배자의 최후는 고환이 다 뜯겨나가 죽어 자빠진 침팬지 고블린과 같을 거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을 위안만으로 삼지는 못할 것 같다.4) 시민들은 지금 몹시 뜨거워져 있고, 압력이 높아진 터이다.

 


주)

1) 흔한의 기준은 김영광 선수나, 김진수 선수의 영상에서 말한 일상적 마찰의 정도를, 그들의 평가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다.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면 의견이 바뀔 수 있는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2) 혹, 구멍 숭숭 뚫린 망이 무슨 공기흐름을 막아주냐는 생각이 드신다면, 바람이 강한 날 방충망을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의 바람 세기를 꼭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의외로 상압,상온 상태의 공기는 끈적끈적해서 방충망 정도로 촘촘한 구멍을 통과 해야 하는 경우 대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뚜껑 반닫기 같은 효과랄까. 그보다 습기가 잘 빠져나가고, 물 떨어짐도 방지되는 방법이다.

3) 현대의 대다수 교육기관(대학원 포함)들이 제도적으로는 지식만 외우면 되는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진지하게 진정으로 공부하는 학자들이라면 포괄적이면서도 실체적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겸손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사고하는 것이 익숙하고, 또 그 학풍이 전달되긴 하지만 제도적으로 이런 사고를 검증하는 것은 절차와 과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다수 평가에서 제외되어 있다.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박사가 탄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

4) 유시민 작가의 매불쇼 수요난장판 발언 중

풍덩, 툭.

보던 유튜브에 대한 미련에 화장실까지 끌고간 노트북 모니터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아닐꺼야.

하지만 두 효과음의 시차가 너무 미묘하다.

아닐꺼야.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기준이던 풍만한 엉덩이 보다도 꽉찬 나의 둔부가 분명 거의 모든 곳을 봉쇄하고 있고.(아닐꺼야..)
살짝 다리를 벌리긴 했지만, 내 랩탑(무릎컴퓨터)를 내 무릎에 잘 얹혀 놓았는걸.
물리적으로, 노트북의 아래에 튀었다면 또 모를까 절대,, 모니터 위로.. 떨어 질수는 없는 것이야...

그래 아닐꺼야.

. . . .
나, 더워서 땀 흘리고 있었.. 던거 맞.. 나?
아니 당황해서 지금 흘리고 있는 건가?
아냐...
그러니까 지금 땀 량이... 아 이마만 촉촉한데 그..
아.... 냐.. 아냐 아냐 아냐....

0.3초쯤 만에 나는 새파랗게 변했다.
터치 모니터라 터치모니터 터치 모니터라 아마 더더욱.

감정이 또 이성을 목비틀어 죽여대고 있다..